1127화
솔직히 말하자면, 못한다.
그냥 가만히 물속에서 만지고 있는 거라면 구분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엄청 빠른 속도로 헤엄치는 중이니까 말이야. 당연히 내 손가락에도 물살이 느껴지고 있어서, 애액이 닿더라도 바로 호숫물에 감촉이 덮어씌워질 테지.
아예 음부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는다면 또 얘기가 다르겠지만, 이렇게 바지 위로 만져서는 말이야.
그래도 어차피 내 목적은 진짜 얘가 애액을 질질 흘리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뻔뻔하게 허세를 부려본 거였는데.
"네, 네가 지금 만져서 젖은 거야! 품에 안겼을 때부터 젖어 있던 거 아니야!"
거기에 또 낚여서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이실직고해 버리는 레이였다.
그냥 던진 말이었는데, 진짜로 흥분하고 있었냐. 감정 공유 발동하면 큰일 날 뻔했네.
"왜, 왜 그런 표정으로 보는 거야!?"
"아니. 너 아까 뭐라고 했지? 내가 너희같이 야한 줄 알아? 오히려 네가 제일…."
야하잖아.
그렇게 말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게 느껴졌다.
물론 이런 곳에서 내 어깨를 두드릴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밖에 없어서.
"……."
고개를 돌려보니 용사님이 귀신같은 얼굴을 하고는 손가락으로 레이의 다리 사이에 가 있는 내 손을 가리킨 후, 엄지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사, 사라야? 살벌하게 왜 이러니? 이건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 말이야.
"얘가 너무 딱딱하게 굳어 있으니까 좀 분위기를 풀어주려고 말이지. 이거 봐. 어제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 하던 애가 이제는 이렇게 재잘재잘 잘만 말하잖아. 이게 다 나만의…."
필사적으로 사라에게 변명해 봤지만, 내 노력은 레이의 입에서 터져 나온 짧은 한마디로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햐응!?"
…아, 아니.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간 건 인정해. 인정하겠는데 말이야. 그래도 꼭 이 타이밍에 그렇게 야릇한 콧소리를 흘려야만 했니?
"아, 아니야! 그런 거 진짜 아니라니까!? 사라야? 오빠 믿지!?"
손가락을 위로 치켜세웠다가 다시 자신의 목을 긋는 사라를 향해,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맹렬히 저었다.
제, 젠장. 이제 남은 방법은….
"야. 구원! 이리 와! 너 죽었…."
"여기에는 레이아도 마틸다도 없는 거 알지!? 치료하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물 밖으로 벗어나자마자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나는 겨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구원 너어어!"
물론 사라의 분노는 전혀 사그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주먹을 바들바들 떨면서 분노했지만, 폭발하지만 않는다면 일단 목숨은 건진 거니까.
그리고 사라가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목소리가 또 하나 있었으니.
"구원님! 오셨습니까!"
"아아. 응…그래…."
쳇. 왜 실비아가 아닌 아저씨가 튀어나오는 건데?
환한 미소와 함께 내 귀환을 환영해주는 요리스 디에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마음속 깊이 그렇게 생각했다.
마음 같아서는 며칠 동안 방치해둔 실비아를 만나러 가고 싶었지만, 그래도 제일 먼저 얼굴을 내밀고 환영해주는 이 아저씨를 그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나는 내가 며칠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은 이유, 그리고 쓰레온과 헬레나가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이유를 요리스에게 간략하게 설명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런 거였다.
전에 지하수로를 뚫고 오면서 엄청나게 거대한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았잖아? 성자 스킬까지 써가면서.
알다시피 이곳 칼데라호의 물에는 미약하게 여신의 마나가 담겨 있다.
그리고 이곳 호수의 물은 지하수로를 통해 수도 전체로 퍼져 나가 모든 사람이 씻고 마시는 데 이용하는 물이 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누군가가 여신의 마나에 영향받아 폭주한 사례는 없었다. 대체 왜 그런 걸까?
간단하다. 전에 잡은 그 거대 몬스터야말로 여신의 마나를 흡수하는 장본인이었던 거다.
그 몬스터가 필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여신의 마나가 지하수로로 넘어가지 않았던 거다.
그 몬스터를 잡을 때 강렬한 여신의 마나가 느껴진 이유도, 체내에 축적되어 있던 여신의 마나가 한꺼번에 방출됐기 때문이다.
"네. 거기까지는 실비아님에게 들었습니다."
뭐, 실비아한테는 떠나기 전에 미리 해준 얘기니까.
둘이서 속닥이느라 엄청 오들오들 떨고 있었으니 제대로 기억이나 할까 살짝 걱정됐지만, 아무래도 걱정은 필요 없었던 모양이다.
역시 우리 기사님이야. 할 때는 제대로 한다니까.
아무튼 실비아에게 미리 해둔 말에 이어서 계속하자면, 필터 역할을 하던 몬스터가 사라진 거다. 이제는 언제 여신의 마나가 담긴 물이 일반인들의 체내로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게 됐다.
그런 일이 발생하는 막기 위해, 우리는 실비아만을 남겨두고 칼데라호의 밑바닥으로 향했다.
그곳으로 가면 분명 뭔가가 있을 거다. 여신의 마나를 방출하는 뭔가가.
호수를 여신의 마나로 물들인 원인이 되는 그 무언가만 찾아내 밖으로 빼낸다면, 일반인들이 여신의 마나에 영향받을 위험성도 사라지고, 덤으로 여신의 마나를 연구하는 디에른 가문에도 큰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자신 있게 돌입한 우리였지만, 생각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
호수의 밑바닥. 웬만한 사람은 수압만으로 몸이 찌부러져 버릴 그곳에는, 지하 수로에서 필터 역할을 하던 그 거대 몬스터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있었던 거다. 그것도 여신의 마나를 듬뿍 먹어서인지 훨씬 더 거대한 모습으로.
그래도 일단 며칠 동안 싸우며 여신의 마나를 내뿜는 무언가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모든 전황이 우리한테 너무도 불리했다.
적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부터 문제인데, 물 속인만큼 우리의 움직임은 제약까지 있었다. 게다가 여신의 마나에 영향 받지 않기 위해 계속 마나로 몸 전체를 감싸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를 제일 힘들게 한 건 몬스터와의 전투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제일 우리를 힘들게 한 건, 호수의 밑바닥이 심각하게 넓다는 사실이었다.
사막에서 바늘 찾기라는 게 딱 그걸 두고 하는 말이겠지. 사방이 농밀한 여신의 마나로 둘러싸여 있어 마나를 추적해나가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
마나 추적에 능한 조력자까지 불러서 끈질기게 탐색해 봤지만, 결국 레온에게 다른 일이 생기기도 해서 일단 호수 밖으로 나오게 됐다.
"일이라 하심은? 그러고 보니 레온님과 헬레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군요."
"아, 아저씨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아니야. 별일은 아니고, 플리투스쪽에 작은 트러블이 있었던 모양이라. 그쪽 일을 처리하러 간 것뿐이야. 헬레나는 그냥 레온을 따라간 거고."
요리스의 얼굴이 사뭇 심각하게 변했기 때문에, 나는 황급히 그렇게 덧붙였다.
며칠 동안 가만히 있었던 걸 보면 이 아저씨도 배신할 생각은 없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용사의 실력에 의심을 가지면 곤란하니까.
"그랬군요. 용사님이 그리 쉽게 당하실 리가 없죠."
"당연하지. 내가 상처 하나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 밑에서도 조금 귀찮았다뿐이지, 딱히 위험하지는 않았어."
"역시 용사님은 다르군요. 그래서…크흠. 그쪽에 계신 그 아름다운 아가씨는…?"
간단하게 감탄을 한 번 내뱉어주고, 요리스는 은근슬쩍 화제를 사라에게로 돌렸다.
아까부터 계속 신경 쓰인다는 듯이 힐끔힐끔 보고 있었던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목소리까지 가다듬고 근엄한 척을 하다니. 이 아저씨가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아까부터 계속 말하려고 했는데."
황당해서 말도 못 하고 있자니, 옆에서 사라가 차가운 기운을 풀풀 풍기면서 대답했다.
여전히 나 이외의 남자 상대로는 떨어져 나갈 정도로 차가운 사라였다.
하지만 사라의 미모에 눈이 먼 건지, 요리스는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계속해서 나름 멋진 척을 해댔다.
"그러셨습니까. 저희 대화가 조금 길었군요. 아무래도 남자들끼리 중요한 대화를…."
"그 더러운 눈깔, 앞으로 인생 사는 데 필요 없어? 도려내 지고 싶어? 너무 당당하게 추잡스러운 시선을 보내니까 웃겨서 말도 안 나오는데. 구원. 이 사람 뭐야?"
사라야. 솔직히 나도 속이 후련하긴 하지만 말이야, 발언 수위가 조금 쎄지 않니?
오기 전에도 설명해 줬지만, 전쟁신의 세계라고 해서 딱히 무법 지대인 건 아니야. 협력 관계인 사람한테 그렇게까지 기선을 제압할 필요는 없어.
"…네, 네? 그, 그게 무슨"
옆에 있는 나한테도 느껴질 정도로, 아니. 방안 전체를 가득 메우는 숨이 턱 막히는 살기.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이런 살기를 느끼지 못할 정도면 전쟁신의 세계에서 살아남지는 못하겠지.
요리스는 그제야 퍼뜩 정신이 든 사람처럼 떨리는 시선을 내 쪽으로 돌리고, 필사적으로 무언의 질문을 던져왔다.
아마 ‘이, 이 정도 살기를 내뿜다니! 대체 이 여자는 누굽니까!?’라고 말하고 싶은 거겠지.
이런 수염 숭숭 난 아저씨랑 눈빛만으로 대화가 통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불쾌했지만, 사라한테 제대로 쫄아서 눈도 못 마주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아까 말했잖아. 마나 추적에 능한 조력자를 불렀다고. 소개하지. 용사 사라 아우덴이야."
리리안 플리투스의 손녀딸이지. 그런 소개도 덧붙일까 고민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괜한 정보를 건네주면 나중에 또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까.
그리고 그런 소개를 덧붙이지 않더라도, 이미 용사라는 소개만으로도 충분하기도 했다.
"요, 이런 여자…이, 이 아가씨도 말입니까!?"
이것 봐.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눈을 휘둥그레 뜨고 쳐다보잖아.
"왜? 못 믿겠어? 못 믿겠으면…."
전에 만든 그 석판으로 확인해 보던가.
그렇게 말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사라의 행동이 조금 더 빨랐다.
"잠깐. 멈춰. 사라야. 뭐 하려고?"
항상 차고 다니는 호신용 단검을 빼든 사라의 모습에, 나는 황급히 그 몸 앞으로 손을 뻗어 제지했다.
지금 저거 보여? 기껏해야 날이 손바닥 길이 정도밖에 안 되는 단검인데, 마나 때문에 길게 뻗어서 장검처럼 보이다니. 진짜 보면 볼수록 용사라는 직업은 사기야.
"별거 아니야. 모르면 알려주려고. 몸으로."
"왜 그렇게 적대적인 거야. 미리 말했잖아. 지금은 바프라에 속해 있지만, 여기 사람들은 우리한테 협력적이라고."
"어머, 바프라 사람이라서 이러는 줄 알아? 난 그냥 저 더러운 시선이 마음에 안 드는 것뿐인걸."
"이 아저씨 지금 그년의 마나에 영향받아서 이러는 거야. 우리가 바닥 있던 몬스터를 몇 마리 잡는 바람에 그년의 마나가 더 진해졌잖아? 아저씨, 그렇지? 여기에도 변화가 관측됐지?"
"그, 그렇습니다! 이 며칠 사이에 호수에 포함된 걸레신의 마나 농도가 급격하게 올라갔습니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 진심으로 기가 눌렸는지, 요리스는 허리를 90도로 꾸벅꾸벅 숙이며 필사적으로 대답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는 자기 자식도 매몰차게 버리려 하고, 우리가 용사라고 밝혔을 때도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등 냉혈한 이미지가 강한 아저씨였는데 말이야.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아니. 이렇게 변한 게 아니라, 그냥 이게 본모습인가.
"흥. 당신. 구원한테 감사하도록 해."
"앗, 네. 감사합니다."
아니. 사라도 말로 직접 표현하라는 소리가 아니었을 텐데. 시킨다고 그걸 또 그대로 하네.
뭐, 아무튼 이 아저씨가 이렇게까지 고분고분해진다는 건 나로서도 좋은 일이었다.
사라가 이걸 노리고 기선을 제압한 건지, 아니면 진짜로 그냥 시선이 기분 나빠서 화낸 건지는 둘째 치더라도.
"…뭐, 보다시피 나 말고는 제대로 된 대화도 안 하려고 하는 녀석이야. 다른 사람들한테도 행동에 주의하도록 일러둬."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다시 한번 고개를 푹 숙이면서 대답한 후, 요리스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내 눈치를 봤다.
사라하고는 눈 마주치는 것도 무서운지 필사적으로 눈동자를 컨트롤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애처로워 보였다.
"뭔데?"
"두 분의 관계는 역시…?"
"그래. 내 여자야."
"구원님께서는 은사모에게 힘을 실어주려 한다 들었습니다. 하지만 구원님의 곁에는 이미 레이님이 계신 게…?"
과연. 그냥 강해진 여신의 마나에 발정 나서 앞뒤 안 보고 사라한테 들이댄 건 줄 알았는데, 사라가 내 여자가 아니라는 계산도 하고 있었다는 거군.
"뭘 착각하고 있는 거야? 은사모가 뭔데?"
"남녀 간의 사랑은 사람의 본능이니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자들의 모임이라 들었습니다."
"그래. 중요한 건 사랑이지.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 꼭 한 명일 필요는 없잖아?"
"그 말씀은…?"
"왜? 내가 여자 둘을 동시에 사랑할 능력도 안 되는 것 같아?"
내가 일부러 능력이라는 단어에 힘을 줘서 말하며 양옆에 있던 사라와 레이의 몸을 확 끌어안자, 요리스의 눈에서 놀라움과 동시에 탐욕이 엿보였다.
나중에 있을 일을 위해 미리부터 떡밥을 깔아둔 거였는데, 이렇게나 빨리 미끼를 물다니.
내가 지금 한 말을 바꿔 말하면, 은사모를 주축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그날에는 능력만 있으면 여자 여럿을 끼고 다니는 것도 꿈이 아니라는 얘기가 되니까 말이야.
아닌척하면서 은근히 섹스에 관심 있던 아저씨답게, 이 아저씨도 결국 그런 걸 꿈꾸는 모양이다.
이렇게 된 이상 이제 이 아저씨도 은사모를 적극 지지하게 되겠지.
사실 이 아저씨는 다른 은사모 회원들과 달리 조금 포지션이 애매한 감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일이 더 쉽게 풀리는군.
뭐,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지.
"그래서 강해진 그년의 마나 말인데, 전문가의 견해로는 이대로 놔두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위험하겠지요. 용사님들에게는 큰 영향이 없는 것 같습니다만, 저희 같은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레벨이 낮은 일반인들이 영향을 받기 시작하면 큰일이 일어날 겁니다."
"그래? 아래로 흘러내려 가는 동안 그년의 마나도 상당히 희석될 텐데?"
여신의 마나를 흡수하는 몬스터라는 건 다 내가 지어낸 거짓말이니까.
지금까지 여신의 마나에 일반인이 영향을 받고 날뛰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으니, 분명 그전까지는 물이 흘러가는 중에 희석되어 영향력을 잃은 거겠지.
"지금의 강해진 농도를 생각해 봤을 때, 전부 희석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일반인들이 접하게 되면, 큰 사건이 벌어질 겁니다. 사람 한둘이 난동 피우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어쩌면 수도에 사는 사람들 전원이…."
"발정 나서 눈이 뒤집힐 수도 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빨리 뭔가 조치를…."
"역시 그렇군. 나쁘지 않아."
심각한 표정으로 앞으로 일어날 사태를 걱정하는 요리스와 반대로, 나는 입가에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네?"
"아니. 실은 말이지. 호수 밑바닥에서 그냥 나온 게 꼭 레온에게 일이 생겨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거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이대로 내버려두면 수도에 사는 모든 사람이 발정 날 거다. 하지만 여자는 없지. 있는 곳에 가더라도 섹스는 금기로 취급하고 있지. 그러면 그 갈 곳 없는 성욕이 점점 분노로 바뀔 텐데, 그 분노가 결국 어디로 향할까?"
"바, 바프라 전복을 위해, 수도에 사는 모두를 제물로 삼겠다는 겁니까?"
씨익하고 웃으며 말하자, 요리스가 턱을 덜덜 떨면서 괴물을 보는 것 같은 눈으로 날 쳐다봤다.
이런 방금 미소는 너무 흑막 같았나.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제물이라니. 설마. 난 그냥 지지를 얻고 싶은 것뿐이야. 싸움은 우리가 할 테니 피해자는 나올 일은 없어. 물론 그년의 마나에 당한 게 조금 문제지만, 어차피 섹스 한 번 하면 낫잖아? 은사모가 주축이 되는 새로운 바프라에서는 섹스를 금기시하는 바보 같은 일도 벌어지지 않을 테니, 딱히 문제없어."
"그, 그렇군요. 이거,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렇게 보충 설명을 해주니, 그제야 요리스는 한숨 돌렸다는 듯 몸에서 긴장을 풀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내 말이 그럴듯하게 들리는지,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면서 중얼중얼 감탄성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