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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1126화 (1,093/1,205)
  • 1126화

    아니. 이번만큼은 그냥 용서해 줄 생각은 없구나.

    요염하게 눈을 빛내는 천사님을 바라보면서, 나는 각오를 다질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천사님과의 둘만의 시간은 너무도 행복해서, 잠을 자고 일어나서도 그 여운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덕분에 아침부터 한 차례 더 힘을 쓰고 나서야, 우리는 겨우 차분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정말 괜찮겠어?"

    서로 옆으로 누운 채 내가 레이아를 뒤에서 끌어안는 자세. 한쪽 팔은 레이아에게 팔베개로 주고 나머지 한 손으로 그 가슴을 주물주물 어루만지면서, 나는 레이아의 귓가에 속삭였다.

    "네. 모처럼 구원 씨와 함께 지금까지 노력했는걸요.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쉽게 해결된다고 생각하니…왠지 아쉬워서. 이상한가요?"

    내 숨결이 간지러운 건지, 레이아는 살짝 귀를 앞으로 접으면서 쿡쿡 웃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뒤로 돌려서 내 표정을 엿보며, 쑥스러운 표정으로 속삭였다.

    그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 사랑스러우셔서, 나는 무심코 그 입술에 입을 맞췄다.

    물론, 천사님 역시도 부드럽게 입술을 움직이며 내 키스를 받아주셨다.

    우리는 지금 레이아의 구미호화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앨리시아에게 사도 임명을 한 직후, 종족 스킬 창을 볼 수 있게 됐을 때 바로 꺼낼 얘기였지만, 이렇게 둘이서 있을 타이밍이 좀처럼 없었으니까 말이야. 이제야 겨우 이 얘기를 하게 됐다는 거다.

    참고로 레이아의 종족 스킬 창은 조금 전에 확인해 봤다.

    그리고 예상대로 거기에는 레이아의 구미호화 컨트롤을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해결법으로 추정되는 스킬이 있었다.

    왜 이렇게 표현이 애매하냐면, 콕 집어서 구미호 변신이라는 스킬이 있었던 건 아니었거든. 대신에 구미호 어빌리티라는, 종족 능력 전반에 관련된 스킬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디아나도 하이 엘프 어빌리티라는 스킬이 있었지.

    디아나의 경우 하이 엘프 어빌리티를 포함한 대부분의 종족 스킬이 당연하다는 듯이 마스터였기 때문에 크게 눈여겨보지는 않았지만.

    반면 레이아의 경우, 디아나와 다르게 처참할 정도로 모든 종족 스킬의 레벨이 낮았다.

    비교 대상이 규격 외 존재인 디아나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아마 다른 사람과 비교해 봐도 평균 종족 스킬 레벨이 상당히 낮은 거 아닐까?

    디아나와 레이아를 제외하면 종족 스킬 창을 확인해 본 게 레이밖에 없어서,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그 종족 스킬 중에서도 다른 스킬들은 구미호 변신과 크게 관계가 없어 보이니, 구미호 상태 전반과 큰 관계가 있어 보이는 저 구미호 어빌리티의 레벨을 올리는 것이야말로 안정적인 구미호 변신을 해낼 방법이겠지.

    그래서 레이아한테 제안을 해봤던 거지만, 돌아온 대답은 완곡한 거절이었다.

    레이아의 마음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아니. 레이아와 함께 노력해온 당사자로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애초에 우리가 처음 같이 행동하게 된 계기가 바로, 레이아가 구미호 능력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이었으니까 말이야.

    우리에게 있어서 레이아가 구미호 능력을 다룰 수 있게 되는 건, 단순히 능력이 늘어나서 편해졌다는 걸로 끝나는 얘기가 아니라는 거지.

    "아니. 전혀. 앞으로도 같이 노력할 수 있다니, 나로서도 영광이지."

    "구원 씨…."

    레이아의 입술에서 입을 떼고 그렇게 말해주자, 레이아는 촉촉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가슴 한구석이 간질간질해지는, 그런 눈빛이었다.

    "후훗. 또 커지셨네요?"

    "아니. 미안. 또 레이아가 남들 앞에서 섹스 좋아한다고 외치거나, 머리 묶어서 내게 신호 보낸다고 생각하니까 흥분돼서."

    "정마알.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그렇게 자세히…일부러 그러시는 거죠?"

    "들켰어?"

    곱게 눈을 흘기면서 말하는 레이아에게 너스레를 떨자, 레이아가 꼬리로 내 가슴을 톡톡 때리면서 상체를 일으켰다.

    하지만 침대에서 벗어나지는 않고, 레이아는 두 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머리 뒤로 가져갔다.

    그렇게 손을 들어 올리자 자연스럽게 그 커다란 가슴도 살짝 위로 올라가게 됐고, 깨끗한 겨드랑이와 그 옆에 보이는 커다란 가슴이 무척이나 고혹적….

    "구원 씨도 차암. 어딜 그렇게 보시는 건가요?"

    그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겨우 가슴에서 시선을 올리니, 어느샌가 포니테일 구미호가 되어 있는 레이아와 눈이 마주쳤다.

    응? 포니테일? 구미호? 그렇다는 말은 즉, 그런 거지? 신호 보내는 거지?

    "벌써 이런 시간이네요. 슬슬 씻으러 가야겠어요. 오늘도 헬레나 씨의 교육이…."

    "레이아아아!"

    "꺄아악!"

    그래놓고 아닌 척 시간을 확인하는 레이아의 모습에, 나는 눈이 돌아가서 다시 한번 레이아를 덮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잖아. 이것도 저것도 전부 천사님이 너무 요망한 게 잘못이야!

    결국 우리는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겨우 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

    마틸다는 이미 성기사 지도를 위해 위로 올라간 상태였고, 레이아도 헬레나의 교육이 있다면서 황급히 위로 올라갔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 있는 건, 나와 사라, 그리고 디아나와 레이가 전부였다.

    "그래서, 구원은 지금부터 어떻게 할 거야?"

    "응? 그냥 실비아한테 연락이 올 때까지 느긋하게 있을 생각인데."

    어차피 여기에 온 목적은 전부 달성했으니까.

    레이 쪽을 힐끔 곁눈질하자, 나와 눈이 마주친 레이가 화들짝 놀라서는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쟤는 그젯밤부터 계속 저 모양이네. 어제도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뭐, 연애 초심자한테는 자극이 너무 심한 밤이었다는 건 나도 인정하지만. 그래도 저러다가 제2의 실비아가 되는 건 아닌지 몰라.

    아니. 실비아처럼 되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아무튼 눈 마주치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눈동자가 진동하는 횟수도 많아지는 레이에게서 눈을 떼고, 나는 다시 시선을 사라에게 돌렸다.

    "왜? 오빠랑 뭐 하고 싶은 거라도 있어? 사라가 원한다면 난 뭐든…."

    "아니야. 이 바보야. 진지한 얘기하는 거야."

    …나도 일단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며칠밖에 못 있을 거라고 했잖아."

    "아, 응. 생각보다 시간이 좀 걸리나 보네?"

    성의 지하에서 그런 짓을 해놓고 왔으니, 그날 당장 소문이 퍼져서 며칠 만에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질 줄 알았는데.

    혹시 바프라 녀석, 다 죽여 버려서 소문이 새어나가는 걸 애초에 틀어막아 버린 건가? 아무리 그래도 비밀까지 공유했던 자기 직속 부하들을 다 죽일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든데 말이야.

    "아무튼 예상대로면 곧 네 계획이 시작된다는 거잖아? 그때 돼서 황급히 돌아가지 말고, 미리 가서 준비해놓는 게 어떻겠냐는 거야."

    "아, 하긴. 너도 따라간다고 했지. 미리 가서 거기 분위기에 적응할 시간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실비아가 잘 변명했다고는 하지만, 디에른 가문 사람들한테 제대로 잘 설명할 필요도 있을 테고.

    "음. 이 몸도 그러기를 추천하네. 준비를 철저히 해서 나쁠 것은 없지. 다른 이들에게는 이 몸이 잘 말해두겠네."

    "그럼 지금부터 갈까?"

    다른 애들한테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하지 않은 게 아쉽기는 했지만, 어차피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하면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으니까.

    이번에는 디아나에게 맡기기로 하자.

    그런 고로 나와 사라, 레이는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바프라의 칼데라호로 오게 됐다.

    텔레포트 마법진의 영향으로 호숫물에 여신의 마나가 더 짙게 스며들어 있군. 뭐, 예상했던 결과니 당황할 필요는 없다.

    나는 설치한 텔레포트 마법진을 회수도 하지 않고, 레이의 몸을 붙잡은 채 위로 헤엄쳐나갔다.

    다만 내 품에 안긴 채로도 레이는 계속 겁먹은 눈치라서.

    "야. 누가 잡아먹냐. 그렇게 바들바들 떨게."

    "자, 잡아먹잖아!"

    내가 가볍게 농담을 던지자, 레이가 정색하고 대꾸했다.

    음. 반박할 수 없군. 실제로 맛있게 먹기는 했으니까. 다만.

    "너도 좋아했잖아. 기억 안 나? 너 그날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 그건 감정 공유 때문에!"

    그날 밤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는지, 레이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도리질 치며 소리쳤다.

    "그럼 지금 내 품에 안겨서 좋아하고 있는지 싫어하고 있는지 감정 공유로 확인해 볼까? 그 이후로 계속 꺼놓고 있었으니까, 이번에는 감정 공유 핑계도 못 대겠지?"

    "아, 안 돼! 그것만큼은! 그만둬!"

    뭘 이제 와서 그렇게 필사적으로 거부하는 건지.

    "어차피 사도 임명이 된 시점에서 네 감정은 명백해진 거야. 너도 전에 같이 있으면서 들었잖아? 사도 임명이 대체 무얼 의미하는지."

    "그, 그럼 너도 똑같잖아!"

    "응. 나도 너 엄청 좋아해."

    "넌 어떻게 그런 말을 그렇게 뻔뻔하게 말해!?"

    훗. 이 정도야 기본 소양이지. 이렇게 뻔뻔하지 않으면 10명이나 되는 여자를 동시에 끼고 사는 짓 같은 건 못한다고.

    "아무튼 그러니까 어디 한번 다시 감정 공유를 발동해서 서로의 마음을…."

    "안 돼! 그것만은 제발! 진짜 안 돼!"

    야. 아무리 그래도 너무 거부반응이 심한 거 아니냐? 이렇게까지 심하게 거부하니까, 오히려 궁금해지기까지 하잖아. 지금까지 쭉 감정 공유되면서 다녔으니까, 이제 와서 부끄러워할 일도 없을 텐데.

    아니면 지금 나한테 들키면 안 되는 감정이라도….

    "야. 너 설마 지금 내 품에 안겼다고 흥분했냐?"

    "아, 아, 아, 아니거든!? 내가 너희같이 야한 줄 알아!?"

    너희라니…그거 나 말고 다른 애들도 포함하는 거니?

    그야 그런 광경을 목격해 버렸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 못 할 건 아니지만…그거 다른 애들한테는 말하지 마라. 아마 진심으로 화낼 테니까.

    뭐, 아무튼 내가 야하다는 말 자체는 부정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당당하게 행동하기로 했다.

    "햐응!? 어, 어딜 만지는 거야!?"

    "응? 엉덩이."

    "뻐, 뻔뻔한 것도…!"

    "걱정하지 마. 자극하려는 거 아니야. 그냥 좀 젖었나 확인해 보려고."

    "무, 물속이니까 당연히 젖었지!"

    다 큰 처자가 함부로 젖었다고 하지 마라.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걸 알아도 살짝 흥분되잖아.

    뭐, 그 충고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지금은 이쪽에 집중해 볼까.

    "훗. 뭘 모르시는군. 너 아직도 내가 누군지 몰라? 나 성자야. 성자. 내가 그냥 물에 젖은 거랑 애액으로 젖은 것도 구분 못 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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