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1114화 (1,081/1,205)
  • 1114화

    그렇게 운을 떼면서, 나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여신을 이용한다는 게 얘들한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원래 세계에서부터 무신론자였던 나로서는 짐작조차 되지 않으니까.

    심지어 아까 실패하면 여신이 날 돌려보낼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조차, 여신에 대한 불평이 나오지 않았을 정도잖아?

    나보다 여신이 중요하다든가,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냥 얘들 머릿속에는 여신이란 절대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박여있는 거다.

    그래도 말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만약 내 레벨을 마틸다처럼 확 끌어올릴 수 있다면, 앞으로의 행보가 편해질 건 확실하니까.

    "그러니까, 최후의 자존심을 써서 내가 느낀 것의 일정 수준만이라도 강림한 여신님이 느낄 수 있게 하면, 나도 엄청난 레벨업을……!"

    "자네 바보인가?"

    하지만 내가 그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디아나의 냉혹한 평가가 떨어졌다.

    솔직히 이런 말을 꺼내면 제일 먼저 반대하는 건 성직자인 레이아나 마틸다일 줄 알았다. 특히 마틸다는 낮에 내 정기가 쪽쪽 빨리는 모습을 직접 봤으니까.

    하지만 제일 먼저 반대하는 게 성직자가 아닌 디아나라니. 물론 디아나 역시도 이 세계의 사람인만큼 여신에 대한 신앙심은 넘쳐흐르겠지만, 그래도 제일 머리 좋은 애가 저렇게 딴죽을 거니 불안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혹시 여신님에 대한 태도 운운 이전에, 그냥 내 제안 자체가 현실성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겠지?

    "그래요. 당신, 낮에도 그렇게나 괴로워 보이셨잖아요. 그런데 그런 걸 또 하겠다니…안 돼요."

    그리고 디아나의 말을 거들 듯이, 마틸다 역시도 고개를 맹렬히 저으며 반대했다.

    그렇게나 신앙심 투철한 추기경님조차도 여신님에게 불경하다는 얘기가 아닌 내 걱정부터 하는 건 무척이나 감동적이었지만, 너무 그렇게 고개를 세차게 흔들지 말아 줄래? 넌 안 그래도 물에 많이 뜨니까, 그렇게 흔들면 거기도 같이…아, 아무튼.

    낮에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넘어갔었는데도 이런 반응이 나온다니. 역시 추기경님의 눈을 완전히 속일 수는 없다는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빠른 레벨 업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물론 지금도 레벨 부족으로 힘에 부친 적은 없지만, 나중에 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모를 일이잖아?

    언제까지 이렇게 순탄하게 흘러가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힘에 부칠 날이 올 거야.

    "아니. 하지만 이렇게 멀쩡히 잘 살아 있잖아? 괜찮아. 조금만 참으면 손쉽게…."

    "멀쩡히 살아 있다라…. 바꿔 말하면 죽을 뻔 했다는 얘기로구먼."

    그래서 다시 마틸다를 달래주는 것부터 시작하려 했던 나였지만, 그 시작부터 바로 일이 꼬이고 말았다.

    "아, 아니. 에이. 너무 과장이 심하다. 그건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누군지 몰라? 나 성자야. 성자. 디아나 너 어젯밤에 나한테 혼이 덜났…."

    "성자라서 문제인 것일세. 결국 힘의 원천이 여신님이라는 것 아닌가."

    일부러 어젯밤 얘기를 꺼내 흔들어 봐도, 디아나는 동요하는 일 없이 그렇게 말했다.

    "여신님이 주신 힘으로 여신님을 감당 해내다니. 이 몸에게는 그런 것이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구먼."

    "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자네. 만약 정말로 자네가 괜찮더라도, 자네의 발상이 위험한 건 변함이 없네."

    그러니 고집부릴 필요 없네. 그런 의도를 담아서, 이번에는 타이르는 말투로 그렇게 말하는 디아나였다.

    그리고 디아나의 그 말은, 나한테도 무척이나 와 닿았다.

    왜냐하면 내가 괜찮더라도 내 발상이 위험하다는 얘기는, 다시 말해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즉, 여신을 몸에 강림시킬 레이아나 마틸다가 위험할 거라는 얘기니까.

    내가 아니라, 레이아나 마틸다가 위험해져? 어떻게…아, 그, 그런가…!

    "드디어 자네도 이해한 모양이구먼. 그렇다네. 자네가 생각하기에도, 여신님의 힘은 힐링 섹스만으로 버티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은가? 자네의 그…."

    "불굴의 성욕. 그러고 보니 여신님이 내게 경고할 때도, 불굴의 성욕만 콕 집어서 언급했었어."

    다시 말해서 힐링 섹스 같은 다른 스킬은 여신의 힘을 버티는데 최소한의 도움조차 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음. 역시나 그렇구먼. 이제 알겠는가? 최후의 자존심은 자네가 느낀 쾌감의 일부를 상대에게 전하는 스킬일세. 이번 경우에는 여신님이 주는 쾌감이 되겠구먼. 아무리 그 일부라고 하더라도, 평범한 사람이 버틸 수 있는 쾌감이 아닐세. 아무리 강림상태라고 하더라도, 몸은 여전히 레이아 양이나 마틸다 양 아닌가?"

    상당히 단정적으로 말하네. 마치…아, 그러고 보니 디아나는 그랬지. 하긴. 그러니 디아나가 내 얘기를 듣자마자 바로 반대 의견을 내세우지.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얘기라는 거야?"

    이제 와서는 무척이나 옛날 일처럼 느껴지는 디아나와의 첫 만남. 디아나가 내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최후의 자존심이었으니까 말이야.

    이 레벨이 되고 그런 기분을 느낀 건 처음일세! 였던가? 지금 생각해 보면 쾌감에 눈 돌아가서 달라붙는 거라고 착각해도 이상하지 않은 대사로군.

    뭐, 그렇지 않다는 건 내가 더 잘 알고 있지만.

    "…응긋. 그, 그런 걸세."

    오랜만에 돌이켜보니 새삼 부끄러워졌는지, 디아나는 얼굴을 빨갛게 붉히며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경험자가 하는 말이면 들을 수밖에 없네."

    "으, 으음…."

    솔직히 말해서, 가능성이 아예 안 보이는 건 아니었다.

    그때 여신에게 쥐어짜 내지며 정신을 못 차렸을 때, 불굴의 성욕이 내 몸을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지켜주는 건 어디까지나 내 정신. 뇌를 엉망진창으로 만들려고 몰려드는 쾌락의 파도를 간신히 보호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강림 상태에서는 몸을 조종하는 정신은 여신. 그러니 만약 그 상태에서 최후의 자존심을 쓰더라도, 죽을 만큼 정신적 충격을 받는 건 레이아나 마틸다가 아닌 여신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만 보고 도박을 하기에는 걸려 있는 것이 너무나도 컸다.

    레이아나 마틸다의 목숨을 걸고 하는 도박이라니. 절대 못 하지. 이번에는 순순히 포기하는 수밖에…아니.

    "그럼 최후의 자존심은 안 쓰고 그냥 강림상태로 잠깐 버텨서 레이아나 마틸다의 레벨만 엄청 올린 다음에…."

    "자네. 조금 전에 스스로 말하지 않았는가. 여신님이 불굴의 성욕을 언급하며 경고했다고. 그것이 어떤 경고였는지, 그 정도도 이 몸이 알지 못할 것 같은가?"

    아, 아차!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잘 얼버무리는 건데!

    아니. 나도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게 아니라, 한 번 해보니까 잠깐 정도는 진짜로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니까?

    "절대 안 돼. 레이아. 마틸다. 나중에 저 바보가 따로 부탁해도 절대 들어주면 안 돼요."

    "네, 네에…."

    "알고 있어요."

    "애초에 왜 갑자기 그렇게 레벨 업에 집착하는 거야? 혹시 우리한테 말 안 한 위기라도 있었어?"

    레이아와 마틸다에게 단단히 다짐받은 사라는, 곧장 칼끝을 내게로 돌려서 그런 의심까지 시작했다.

    "아, 아니! 그런 건 없었어. 진짜로! 그냥 레벨이 높으면 여러모로 편하고 좋잖아? 왠지 나중에 필요할 것도 같고."

    "그런 것 때문에 목숨을 걸겠다고?"

    그러니까 딱히 목숨을 걸겠다는 게 아니라….

    "저…구원 씨? 그렇게 급하시면, 오늘 차례는 추기경님과 바꿔 드릴까요? 추기경님은 이미 레벨이 많이 올랐으니까, 추기경님과…."

    "아, 아니야! 괜찮아! 항복! 알았어! 앞으로 괜히 레벨업에 집착하지 않을게!"

    게다가 레이아가 저런 제안까지 하자, 나도 이 이상 탐욕을 부릴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자기와의 시간을 희생하면서까지 이렇게 날 욕실에 데리고 와준 레이아다. 게다가 바로 조금 전까지 이 이후에 있을 둘만의 시간을 기대하고 있었을 텐데, 이 타이밍에 또 자신을 희생해서 순서를 바꾸겠다니.

    아무리 천사님한테 응석을 많이 부리는 나라지만, 그렇게까지 하게 할 수는 없지.

    "이 얘기는 이걸로 끝! 앞으로도 절대 꺼내지 않을게. 이제 됐지?"

    내가 두 손을 들고 항복하자, 그제야 다들 얼굴에서 긴장을 풀어줬다.

    "잘 생각했어. 아무리 실패하면 안 된다고 해도, 구원이 네가 목숨을 걸면서 성공하면 의미가 없으니까. 조바심내지 말고 지금까지처럼 차분히 하자. 알았지?"

    그리고 레이첼 누님이 다가와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나 역시도 몸에서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꿰뚫어 보고 있었나. 하긴 안내원 일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그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잔뜩. 그러니 자기 남자의 속마음을 간파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겠지.

    예상외의 일이 일어나면 머리가 백지가 되는 성격 때문에 가끔 그렇게 안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렇게 보면 역시 누님은 누님이야.

    "응. 알았어. 그럼 차분히 긴장 풀고 아까 하던 거나 마저 하자."

    "으, 으응!? 서, 설마 씻겨 달라는 얘기니?"

    …레이첼 누님. 모처럼 누님의 누님다운 모습에 감탄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렇게 삑사리까지 내면서 당황하면 어떻게 해요.

    "왜 그렇게 놀라? 아까 제대로 다 씻지 못한 채 어중간하게 끊겨 버렸잖아. 설마 이대로 방치하려고? 너무해."

    하지만 내게는 지금 이렇게 당황하는 사람이 필요했으니, 마침 잘 됐다. 왜냐하면.

    "레이첼. 신경 쓸 필요 없어요. 그 변태는 혼자 씻게…."

    저렇게 냉정하게 지적하는 애가 존재하니까 말이야.

    사라 쟤는 누가 누구한테 변태라는 거야? 아까는 자기가 제일 이성을 잃고 진짜 삽입까지 하려고 덤벼들었으면서.

    아무튼 저런 식으로 지적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만큼, 레이첼 누님이 패닉 상태에 빠지는 건 무척이나 도움이 됐다.

    "아, 알겠어! 나머지는 누나가 씻겨줄게!"

    "레이첼!?"

    이런 식으로 말이다. 훗. 사라 녀석 당황하기는. 모처럼 하렘왕의 기분을 만끽하는 거다. 내가 그렇게 간단히 포기할 리가 없잖아?

    "어, 어디를 씻겨주면 되니!? 누, 누나한테 전부 맡기렴!"

    그래도 눈이 팽글팽글 돌아갈 정도로 무리하는 레이첼 누님한테 조금 미안하기는 하니까, 다른 사람들도 가세시켜볼까.

    "글세? 씻겨준 건 다른 사람이니까 말이야. 레이아. 마틸다. 바넷사. 어디까지 씻겨줬었지?"

    "그, 그러네요 왼쪽은 우선…."

    "당신. 오늘 쪽은 그냥 제가 직접 마무리를 지어 드리겠어요."

    "아, 앗! 그러면 저도…!"

    어느새 구미호 모드가 풀려서 보랏빛 안광만 살짝 내비치며 부끄러워하는 레이아와 달리, 마틸다는 아예 대놓고 핑크빛 모드가 되어서 내게 달라붙어 왔다.

    그리고 그런 마틸다에게 이끌리듯 천사님까지 내게 다시 달라붙자, 순식간에 아까와 같은 하렘 포지션이 완성됐다.

    물론 아까에 비해서 조금 부족한 점이 있기는 했지만.

    "바넷사는?"

    "…제가 구원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것 같습니까?"

    "그래서 등 뒤는 그대로 방치하려고? 내가 직접 설명하기도 제일 어려운 부분인데. 너무하다. 우리 집사님이 이렇게나 책임감이 부족할 줄이야."

    "…크윽. 디아나 님. 다녀오겠습니다."

    "바넷사!?"

    역시나 완벽 집사. 일을 완벽하게 끝내지 않았다는 점을 걸고넘어지니 바로 낚이는군.

    디아나가 옆에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도, 바넷사는 결국 뚜벅뚜벅 걸어와 내 뒤에 자리를 잡았다.

    이로서 저쪽에 남은 건 사라와 디아나. 그리고 레이뿐.

    아까 상태로 돌아가려면 레이도 내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하지만, 아무리 레이라도 사라와 디아나가 쌍으로 당황하니 슬슬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게다가 아까 사라가 섹스하려고 덤벼드는 것까지 바로 앞에서 봤으니까 말이야.

    하는 수 없지. 이번에는 대신 레이첼 누님이 이쪽에 붙어 있으니, 앞쪽은 레이첼 누님에게 맡기기로 할까.

    아니. 이왕이면 조금만 더 욕심내볼까?

    "아, 사라야."

    첫 타겟은 역시 용사님이지.

    이렇게 내 주변에 다른 여자들이 잔뜩 모여 있는 것만으로도 눈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변태니까.

    "절대 안 갈 거야."

    물론 처음에는 이렇게 버텼지만, 이 정도는 예상 범위 안에 있었다.

    "아, 그래? 알겠어."

    "잠깐! 왜 나한테는 더 물고 늘어지지 않는 거야!?"

    "아니. 너 아까 폭주했잖아. 그러니까 그냥…."

    "뭐어!? 난 필요 없다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너도 오기 싫은 것 같고…."

    "나도 그쪽으로 갈 거야! 말리지 마!"

    훗. 성공했다. 원래라면 이렇게 간단하게 낚이지는 않겠지만, 지금 사라는 흥분한 상태니까 말이야. 낚는 것쯤은 간단하지.

    저쪽에서 레이가 "어떻게 저렇게 비열한 짓을…!" 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하자.

    뭐 어때서!? 하렘은 남자의 로망이라고! 내 여자를 조금 구슬리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

    "여기를 씻겨주면 되는 거잖아!?"

    아까와 마찬가지로 모델 워킹하듯이 성큼성큼 이쪽으로 다가온 사라는 내 다리 사이, 레이첼 누님의 옆으로 비집고 들어오더니 바로 내 물건으로 손을 뻗었다.

    "으헉. 야. 갑자기 그렇게…."

    "빳빳하게 세우고 있으면서 불평하지 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