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1060화 (1,044/1,205)
  •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60화 >

    "앗! 어, 으응? 잘못 봤나······?"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구미호 마을로 돌아오니, 어째선지 아직도 리사가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물론 위에서 있었던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자리를 벗어나려면 얼마든지 가능했을 텐데.

    "흐얏?! 까, 깜짝이야······. 넌 왜 계속 안 보이는 거야?! 투명인간이야?! 남자는 다 그런 거야?!"

    아니. 너야말로 왜 화를 내냐. 거기서 남자는 또 왜 나오고. 아까도 내가 은신하고 따라가는 거 봤잖아? 아니. 봤다고 하는 건 조금 어폐가 있지만, 아무튼.

    "볼일 다 봤으면 집에 들어가라. 부모님이 걱정한다."

    "내가 앤 줄 알아?!"

    아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애 맞잖아. 이 꼬맹아.

    "아직 성인식만 안 했을 뿐이지 몸은 진작에 어른이거든!"

    풋. 네 몸이 어딜 봐서. 시간만 있으면 붙잡고 한참을 비웃어줬겠지만, 아쉽게도 지금의 내게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래그래. 알았으니까 가서 코 자라. 그럼 난 바빠서 이만."

    "어?! 자, 잠깐! 야! 남자! 진짜로 없어?! 남자아!"

    팔을 휘저어서 진짜로 내가 주변에 없다는 걸 확인한 다음, 리사는 큰 목소리로 날 찾아댔다.

    저거 또 남자남자 거리네. 아까는 의식적으로 자제하고 있었던 건가?

    아무튼 그렇게 남자를 외쳐대면 다른 사람들이 내 존재를 눈치채니까 그만둬라.

    하지만 저 꼬맹이를 말리는데 시간을 잡아먹고 싶지는 않아서, 나는 재빨리 우리 애들의 저택으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이 소리 듣고 모이기 전에 이 마을을 뜨지 않으면.

    저택에서 텔레포트를 타고 원래 있던 장소. 중2병이 습격했던 그 장소로 돌아온 나는, 우선 장치를 조작해 마나 변환 기능만 꺼 버렸다.

    주변에 여신님의 마나를 남겨둔 채로 떠날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마법진은 텔레포트 마법 발동에 필요한 여신님의 마나를 계속해서 흡수하니, 이렇게 마나 변환 기능만 꺼두면 대기 중에 남아 있는 여신님의 마나를 전부 없앨 수 있다는 게 디아나의 설명이었다.

    그러면 그사이에 나는 주변을 둘러보기로 할까.

    일단 텐트 안에는 누가 들어온 흔적이 전혀 없었다.

    나는 인벤토리가 무한인 만큼 텐트도 펼쳐둔 상태 그대로 보관하니까 말이야. 텐트 바닥에 깔린 부드러운 카펫에는 아까 찍힌 내 발자국만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텐트 안을 확인하고 나서 일단 텐트 밖도 확인해 봤지만, 거기서 알 수 있는 일은 그다지 없었다.

    말발굽이나 사람 발자국. 거기에 마차 바퀴 자국까지. 땅바닥 여기저기에 진한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저건 우리가 습격당했을 때 남은 흔적이니까 말이야.

    그 이후에 누가 또 찾아왔다고 하더라도, 딱히 전문훈련을 받은 것도 아닌 내가 그 흔적을 알아보기는 힘들겠지.

    사냥꾼 레벨도 상당히 높은 사라가 있었다면 뭔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사라한테 기초라도 조금 배울 걸 그랬나?

    아무튼 아마 누군가 찾아왔다면 당연히 여신님의 마나를 감지했을 거고, 그러면 텐트 안을 확인하지 않을 리 없었다. 텐트 안에 흔적이 없었으니, 일단은 아무도 근처를 지나가지 않았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하지만 그러면 대체 레이 그 녀석은 왜 그렇게 놀란 거지? 아까 심장 떨릴 정도로 놀랐던 건, 분명 여길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그중2병을 앨리시아한테 맡기는 위험까지 무릅쓰고······젠장. 레이가 여기에 안 왔다고 생각하니 괜히 또 후회되네. 역시 내가 직접 데려갔어야 했는데.

    앨리시아를 못 믿는 건 아니다. 못 믿을 리가 없지.

    나한테 차이고도 내 뒷담 하는 모험가들을 혼쭐내준 것도 그렇고, 나 대신 몸을 던져 칼에 찔린 것도 그렇고. 앨리시아는 자신의 의리가 얼마나 두터운지 끊임없이 증명해 줬다. 그런 여자를 못 믿으면 세상에 누굴 믿겠어.

    문제는 앨리시아가 아니라······아니. 물론 미리엘도 딱히 의심할 구석은 없지만 말이야.

    과거야 어찌 됐든, 지금은 나한테 완전히 조교 돼서는 사도 임명까지 가능한 거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사도 임명이 되는 건 아니라고 할지라도, 사도 임명은 사도 임명. 내 추측이 정확하다면, 미리엘이 날 생각하는 마음 자체는 확실할 거다.

    확실할 텐데, 대체 이 찝찝한 기분은 뭘까?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내가 직접 중2병을 저택에 데려다주고 싶었지만, 이제 와서는 너무 늦었다.

    레이 그 녀석, 여기 오지도 않았으면서 괜히 헷갈리게 해서는.

    돌아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꼬치꼬치 캐물어 주리라 다짐하면서, 나는 텔레포트 마법진이 여신님의 마나를 전부 빨아들이기를 기다렸다.

    "저기 있군."

    모든 뒷정리를 완벽히 끝내고 나서, 나는 바닥에 남은 바퀴 자국을 쫓았다.

    이곳의 달빛 하나 없이 없는 밤은 눈에 닿는 모든 곳에 그림자 이동을 가능하게 해줬고, 나는 눈 깜짝할 새에 그 바퀴가 남긴 흔적의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중2병, 아까 붉은 달이 어쩌고 하지 않았었나? 그건 대체 뭐였지? ······뭐, 중2병이 하는 말을 일일이 다 이해하려고 하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인가.

    아무튼 마차 바퀴는 그리 크지 않은 마을로 이어져 있었다.

    우리가 구미호 산에서 처음 내려왔을 때 머물렀던 마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규모의 마을. 덕분에 내가 타고 있던 마차가 있는 곳을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녀왔어."

    "누구냐?!"

    마을에서 가장 큰 저택. 그곳의 정원에 케이로스 아저씨와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모여 있는 걸 보고 그림자 이동으로 다가가자, 병사들의 날카로운 창끝이 날 맞이해 줬다.

    "그만! 구원 님. 다녀오셨습니까. 안 그래도 지금 막 병사들을 보낼 참이었습니다."

    그래. 딱 봐도 그럴 것 같았어. 어쩐지 이런 시간에 병사들이 늘어서 있더라.

    이러니저러니 해도 서두른 보람은 있군. 만약 그 중2병을 저택까지 직접 데려다주고 왔으면, 분명 이놈들한테 텔레포트 마법진을 발각당했겠지.

    "그럴 필요 없어. 혼자서 다 처리하고 왔으니까."

    "역시나입니다. 그 남자는?"

    "이제 다시 습격해올 일은 없을 거야. 마차는 미안하게 됐어."

    "아니요. 그건 괜찮습니다만, 죽이지는 않으신 겁니까?"

    일단 죽였다는 뉘앙스를 풍길 셈이었는데 말이야.

    어째선지 이 아저씨는 내가 죽이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는 듯한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이래 봬도 전쟁신 세계에서 높은 지위를 꿰차고 있는 만큼, 피 냄새에 민감하기라도 한 걸까?

    "지금 당장 죽일 수는 없는 놈이라서 말이지."

    "뭔가 사정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당연히 죽일 거라는 말투로 말한 게 정답이었는지, 케이로스는 그 이상 캐묻지는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그런 거니까 아저씨도 밤늦게까지 일어나 있지 말고 그만 쉬자고."

    "네. 그게 좋겠군요. 그러면 다들 해산!"

    모여 있던 병사를 물리고, 나는 케이로스 아저씨와 함께 마을에서 제일 큰 저택인 이곳, 촌장의 저택으로 들어갔다.

    고급 호텔이 있는 곳이면 모를까, 이런 곳의 싸구려 호텔에서 높으신 분인 케이로스가 묵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케이로스는 당연히 촌장 집에서 묵게 됐다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건 우리 파티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서.

    "이 방이 레이 님이 계시는 방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케이로스 아저씨는 음흉한 미소와 함께 윙크했다.

    아니. 직접 안내까지 해준 건 고맙고, 일부러 레이랑 같은 방으로 안내해 준 것도 고맙지만 말이야. 얼굴 들이밀지 마라. 부담스럽다.

    "······땡큐."

    짧게 인사를 하고, 나는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내가 보게 된 것은.

    "으읍! 흐으읍! 으으읍!"

    "가만히 있으십시오!"

    침대 위에서 같이 뒹굴고 있는 실비아와 레이의 모습이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레이는 침대 위에 엎어져 있었고, 실비아가 그 뒤에서 한 손으로 레이의 팔을 꺾은 다음 나머지 한 손으로는 그 입을 틀어막아서 완전히 제압하고 있었다.

    물론 둘 다 입고 있던 병사용 갑옷은 진작에 벗어 던졌는지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심지어 그 안에 입고 있던 옷마저 여기저기 흐트러져 있어서, 얼핏 보기에는 실비아가 레이를 후배위로 범하고 있는 것 같은······.

    "너희 뭐하냐?"

    "흐야앗?!"

    "꺄악?!"

    보다 못한 내가 한마디 하자, 둘 다 겨우 내 존재를 눈치챘는지 기겁하며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구, 구, 구, 구원 님! 아, 아닙니다아! 이것은 그런 것이 아니오라!"

    "도와줘! 저 호모 위험해!"

    그리고 실비아가 그 성격 때문에 내게 다가오지 못하는 사이에, 레이가 황급히 내게 달려와서는 등 뒤로 숨어 버렸다.

    "야. 그러니까 실비아는 호모가 아니라고 몇 번을······."

    "그게 아냐! 나도 저 호모가 여자라는 건 알아!"

    그러니까, 여자라는 걸 아는 애가 왜 계속 실비아를 호모라고 부르냐?

    성별을 확실히 알면, 실비아가 호모가 될 수 없다는 것도 확실히······잠깐 기다려. 그러고 보니 방금 얘, 도와달라고 했지. 그럼 혹시 레이가 하려는 말은······.

    "시, 실비아?"

    "네? 왜 그러십······으헤? 아, 아, 아, 아닙니다아아!"

    내 부름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갸웃거린 실비아는, 이윽고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깨달았다는 듯 세차게 도리질을 치며 부정했다.

    "뭐가 아니라는 거야! 이 변태 호모! 그런 물건을 내 엉덩이에 비벼대 놓고!"

    "비, 비빈 적 없습니다! 당신이 계속 빠져나가려고 하니까! 전 구원 님 말씀대로 막은 것뿐입니다!"

    "거짓말하지 마! 혼자 몰래 안 갈 테니까, 풀어만 달라고 해도 계속 비볐잖아!"

    "당신이 언제 그랬습니까!"

    "말했어! 계속 말했어! 네가 못 들은 것뿐이야! 쪼끄만 주제에 쓸데없이 센 힘으로 입을 틀어막으니까!"

    "쓸데없지 않습니다! 이 힘은 구원 님을 지키기 위한 힘입니다!"

    "그, 그럼 그럴 때만 쓰면 되잖아! 왜 날 범하는 데 쓰는 거야! 이 호모 색정광!"

    "범한 적 없습니다! 호모 아닙니다! 색정광도 아닙니다!"

    "범하려고 했잖아! 옷까지 벗긴 주제에!"

    "옷은 벗긴 적 없습니다!"

    "갑옷은 벗겼잖아!"

    "둘이서 갑옷 입은 채로 올라가 있으면 구원 님이 주무실 침대가 망가지니까 벗긴 것뿐입니다!"

    "변명은 그럴듯하네!"

    "변명 아닙니다!"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둘 덕분에, 나는 굳이 묻지 않아도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알 수 있었다. 어쩐지 갑옷이 정리도 안 되고 바닥에 방치되어 있더라니.

    아니. 그보다 레이 이 녀석, 실비아한테 범해질까 봐 그렇게 놀란 거였어?! 난 그것 때문에 덩달아 놀라서 중2병 처리도 제대로 못하고 왔는데!

    진짜 착각도 유분수지! 착각······맞지 실비아야?

    "착각입니다아아!"

    내 표정을 보고 생각을 읽었는지, 실비아가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도 알아. 장난이야.

    "아무튼 둘 다 싸울 거면 날 사이에 두고 싸우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마주 보고 싸우지 그러냐. 난 한 발 빠져서 구경할 테니까."

    "날 저 호모랑 둘이 내버려 둘 셈이야!"

    "호모 아닙니다!"

    쳇. 어차피 치고받고 싸우지는 않을 것 같으니, 캣파이트나 조금 구경해 보려고 했더니. 모처럼 바람의 정령으로 방음까지 철저하게 해놨는데.

    하는 수 없지. 우리 실비아가 계속 저렇게 억울한 표정으로 있게 할 수도 없고.

    "그래. 레이. 실비아는 결코 동성애자가 아니야. 내가 그 몸으로 직접 몇 번이나 확인해 봤다고."

    "그, 그렇습니다아!"

    부끄럽지만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실비아는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외쳤다.

    아니. 부끄러워서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에 떨고 있는 건지도.

    아무튼 괴롭······장난쳐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하게 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본능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아무리 실비아가 여자랑 한 적이 있다고 해도 그렇지, 그런 식으로 사람을 차별하면 안 돼."

    "구, 구원니임?!"

    "히이익! 다, 다가오지 마! 이 짐승! 어쩐지 아까 내 가슴을 은근슬쩍 만지는 것 같았어!"

    우와. 레이 얘 진심으로 겁먹고 있어. 하긴 내가 감정 공유로 그런 착각을 할 정도였으니, 오죽하겠냐마는.

    "마, 만직적 없습니다! 그런 지방 덩어리 하나도 안 부럽습니다! 몸을 둔하게 할 뿐입니다! 돼지 같아 보일 뿐입니다!"

    시, 실비아야. 너까지 디아나를 닮아가면 어쩌려고 그래? 내가 문제야? 가슴이 큰 여자만 만나는 내가 문제야? 진정해! 그런 건 그냥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고!

    "누, 누가 돼지라는 거야?!"

    "돼지라고는 안 했습니다! 돼지 같아 보인다고만 했습니다!"

    "그게 그거잖아! 이 호모가!"

    아무래도 이대로 놔두면 내가 기대하는 흐뭇한 캣파이트가 아니게 될 것 같아서, 나는 하는 수 없이 또 중간에 끼어들기로 했다.

    "야. 레이. 진정해. 내가 아까 말했던 경험이라는 건, 네가 쟤 딜도 빨아준 걸 말하는 거니까. 그렇게 따지면 너도 호모가······."

    "으읏! 너, 넌 대체 누구 편이야?!"

    아니. 딱히 누구 편도 아닌데.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60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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