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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1058화 (1,042/1,205)
  •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58화 >

    이 녀석이 성역 선포에 당했던 건 내가 막 구미호 산을 내려왔을 때다.

    그 말이 무슨 의미냐면, 내 성자 스킬에 당한 채 지낸 기간이 엄청나게 오래됐다는 의미다.

    굳이 계산해 보지 않아도 역대 최장기간. 그나마 비교할 수 있는 건 예전에 펠리시아의 입안에 성자의 성수를 발라놓고 방치했을 때 정도일까.

    하지만 그때는 나도 레벨이 낮았고, 애초에 성자의 성수는 닿은 부위를 민감하게만 할 뿐 직접 쾌감을 남기는 스킬은 아니다. 펠리시아도 서큐버스라는 종족 특성상 내성이라고 할까, 몸이 민감한 것에 나름대로 익숙하다는 것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이 녀석은 다르다.

    내 스킬 중 가장 위력이 약한 스킬이라고는 하지만, 제대로 몸에 쾌감을 남기는 성역 선포를 받아 버린 거다.

    그것도 전쟁신의 종족. 그중에서도 제일 전쟁신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마인의 몸으로.

    그래. 이 녀석 마인이거든. 내가 이 세계에 내려와서 본 유일한 마인.

    그렇다고는 해도 직업란에 용사는 없었으니, 미리엘처럼 종족만 마인인 경우지만.

    아무튼 그때 술집에서 끈질기게 이 녀석이랑 얽혀보려고 했던 것도, 도망갈 때 성역 선포를 걸었던 것도, 이 녀석이 마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설마 맨정신······인지는 확실하지 않군. 중2병이니까. 아무튼 여기까지 쫓아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신이랑 유리의 뒤를 쫓던 이상한 할아범을 죽인 누명을 이놈한테 씌워놨으니, 당연히 어디 잡혀들어갈 줄 알았는데.

    잘도 이런 몸으로 안 잡히고 여기까지 쫓아왔네.

    아무튼 모든 상황이, 이 녀석이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을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괜히 미안해질 정도로 불쌍한 상황이었고, 엉덩이만 위로 든 채 바닥에 엎어져서 몸을 바들바들 떠는 모습이 한층 더 이 녀석을 불쌍해 보이게 했다.

    "야. 괜찮냐?"

    뭐, 아무리 불쌍하다고 해도 싸고 있는 사내새끼 몸을 상냥하게 만져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발끝으로 놈의 몸을 톡톡 건드리며 상태를 살폈다.

    "흥그읏······흐읏······!"

    건드릴 때마다 이상한 소리 내면서 떨지 마 새끼야.

    혹시 누가 올까 봐 너 바지에 지리는 거 보자마자 바로 성역 선포도 풀었는데. 이제 몸 안을 감돌고 있던 쾌감은 사라졌잖아?

    "야. 야? 야!"

    아까 그렇게 살기를 풀풀 풍기면서 습격한 놈이다.

    물론 그중2병 같은 말투 때문에 역으로 긴장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고레벨의 마인이다. 미리엘과 쓰레온의 실력이 호각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이 녀석도 아마 전투력은 상상 이상이겠지.

    그래서 언제든 성자 스킬을 쓸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발끝으로 놈의 몸을 쿡쿡 찔렀지만, 놈은 흐느끼며 몸을 떠는 것 말고는 계속해서 무반응으로 대응했다.

    아까의 그 살기를 생각해 보면, 성자 스킬의 효과가 풀린 순간 바지에 싸는 것도 무시하고 죽이려 달려들 줄 알았는데.

    아무리 마인이라도 남자는 남자. 역시 사정의 쾌감에는 이길 수 없다는 얘기인가? 그게 아니면······.

    "으흐읏······하읏······."

    뭔가 이상해서 발끝으로 놈의 몸을 살짝 뒤집어보자, 눈을 까뒤집고 하반신만 바들바들 떠는 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기절한 건가. 아니. 그건 좋아. 다 좋은데 말이야. 이 새끼 왜 이렇게 표정이랑 신음 소리가······아니. 나한테 그런 취미는 전혀 없지만 말이야!

    딜도를 장착한 실비아한테 이상한 반응했을 때? 그건 실비아였으니까 그랬던 거고!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이 녀석의 처리였다.

    보아하니 당장 깨운다고 해서 일어날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이걸 데리고 마차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몸 안을 감도는 영향력은 없어졌다고 하지만, 누가 봐도 성적인 무언가에 당해 버린 모습이니까 말이야. 신 그 녀석이 여신님의 마나와 관련 있는 집안 출신이라는 걸 안 이상, 함부로 놈에게 이런 걸 보여줄 수는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 녀석, 내가 여신님의 사자라는 걸 알고 있는 눈치였으니까. 굳이 신이 아니더라도 다른 놈들이 있는 곳에 데려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걸 여기서 죽여 버릴 수도 없고 말이야.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다든가,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다.

    이 손에 피를 묻힐 각오 따위, 얼마든지 되어 있다. 필요하면 언제든 할 수 있어. 실제로 이미 몇 번 하기도 했고. 뭐, 여신님의 성자로서는 그러면 안 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이 녀석을 죽이고 싶지 않은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냥 단순하게, 아무런 정보도 못 얻고 쉽게 죽여 버리는 건 아깝잖아?

    모처럼 만난 마인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그 마을에서 여기까지 쫓아오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서서 고민하게 됐다.

    데려갈 수는 없고, 그렇다고 해서 죽이기는 아깝다. 심지어 어떻게 해야 할지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하기까지 했다.

    지금은 실비아가 잘 통제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시간을 오래 끌면 분명 다른 놈들이 내 상황을 엿보러 달려올 거다.

    특히 이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 같은 불안감. 내가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난 그럴 상황이 전혀 아니니까. 그리고 내가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면, 이 불안감의 정체는 뻔하지.

    레이 그 녀석, 가만히 놔두면 분명 또 사고를 칠 거야.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통신용 반지는 아껴두는 건데.

    아니. 어차피 자기 전에는 남은 시간을 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아까 저녁 먹을 때 몰래 그림자 이동으로 멀리 떨어져서 우리 애들이랑 대화를 나눴거든. 설마 그게 화근이 될 줄이야.

    반지의 쿨타임은 대략 하루 정도.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우리 애들에게 조언을 얻을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내게 남은 수단은······조금 위험하지만, 역시 그 방법밖에 없나. 어차피 곧장 돌아오면 들킬 일도 없을 거고, 괜찮겠지?

    각오를 다진 나는, 인벤토리에서 두 가지 물건을 꺼냈다.

    하나는 커다란 텐트. 그리고 또 하나는 바로 디아나가 만들어준 소형 텔레포트 마법진이었다.

    마법진에는 반경 3M정도의 마나를 여신님의 마나로 변환시켜주는 장치도 달려 있어서, 누군가 근처에 다가오기라도 하면 끝장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소형 텔레포트 마법진의 구미호 산에 있는 우리 애들 집안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니, 이 녀석을 우리 애들한테 맡기고 재빨리 돌아오면 아무 문제도 없을 거야.

    일단 텔레포트 마법진의 모습을 가리기 위해 텐트 안에 마법진을 설치하고, 나는 곧장 마나 변환 장치를 가동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텔레포트 마법진에 불이 들어왔다.

    좋아. 그러면 이 녀석을······젠장. 바지를 축축하게 지린 사내새끼 몸 따위 만지고 싶지 않았는데.

    아니. 잠깐만. 이대로 데려가면, 우리 애들이 이 새끼 몸을 씻겨줘야 한다는 얘기가 되잖아?

    물론 디아나가 마법을 쓰면 순식간에 끝나겠지만, 아무리 마법이라고 해도 디아나가 다른 새끼 바지를, 그것도 정액을 싸지른 바지를 처리하는 건 싫었다.

    ······그, 그렇다면······내가, 내가 하는 수밖에······없는······건가······?

    아, 아니. 침착하자. 침착해. 괜찮아. 나도 내가 직접 할 필요는 없어. 물의 정령을 소환해서, 걔한테 맡기면 돼.

    그리고 남자라고 해도, 이 녀석은 생긴 게······아, 아니! 그건 딱히 상관없는 얘기지만!

    "아무튼 부탁할게!"

    얼른 물의 정령을 불러내서, 나는 놈의 바지를 처리하게 시켰다.

    "흥그읏!"

    야이······! 기절한 주제에 겨우 몸 좀 씻겨주는 것 가지고 이상한 소리 내지 마!

    아무튼 그렇게 물의 정령까지 불러서 대충 씻기고 나서, 나는 다시 놈의 몸을 들쳐메고 텔레포트 마법진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 텐트 안에서 나무로 된 집 안으로 바뀌게 됐다.

    "얘들아! 나 왔어!"

    시간이 없다. 저쪽에는 아직도 마나 변환 장치가 가동되고 있는 거다.

    이 녀석을 맡기고 대충 상황 설명만 한 다음에 바로 떠날 생각으로 우리 애들을 애타게 불렀지만, 어째선지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얘들아? 사라야! 디아나! 레이아! 마틸다!"

    대답은커녕,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은 확실히 밤이기는 하지만, 아직 잠들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이렇게 인기척이 없을 리가 없는데?

    자, 잠깐만. 이거 설마, 오늘은 나랑 이미 반지를 통해 대화를 마쳤으니, 더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위로 돌아가 버린 건······.

    제, 젠장! 하필 이럴 때에!

    그대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 집도 방음 설비가 완벽히 되어 있어서 내 목소리를 못 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온 집구석을 뒤져봤지만, 역시나 우리 애들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얘기는 이 녀석을 데리고 위에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얘기인데······.

    이 집에 방치해두고 간다는 발상은 처음부터 없었다.

    물론 우리 애들이 이런 놈한테 당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무런 경고 없이 이런 놈을 방치해두고 가는 건 위험해.

    게다가 우리 애들이 돌아오는 것보다 이 녀석이 먼저 정신을 차리게 되면, 그때는 구미호 마을이 난리가 날 거다.

    그러면 역시 남은 건 마을 중앙에 있는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해서 위로 올라간 다음, 믿을만한 사람한테 이 녀석을 맡겨야 한다는 얘기인데.

    힐끔 창밖을 보니, 아직 드문드문 불빛이 들어와 있는 것이 보였다.

    전에 우리 애들이 구미호들한테 필사적으로 내 모습을 감추려 했던 걸 생각해 보면, 상황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

    나 혼자였다면 그림자 은신과 그림자 이동으로 아무 문제 없이 텔레포트 마법진까지 갈 수 있었겠지만, 지금도 간헐적으로 신음하는 이 녀석을 데리고 가는 건······.

    "꺄악! 누, 누구?! 도, 도와······으읍! 읍!"

    어떻게 하면 좋을지 창밖을 보며 고민하고 있던 그 순간, 갑자기 문이 열리며 누군가 집안으로 들어왔다.

    여기에 사는 내 여자 중 하나가 아니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렇게 판단을 하고, 나는 곧장 그림자 이동을 써서 집안에 들어온 누군가의 등 뒤로 돌아갔다.

    팔째로 그 몸을 감싸 안고, 손으로는 입을 틀어막는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제압에, 여자는 다리를 휘저으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조용히. 시끄럽게 하면······."

    안 그래도 시간이 없는데, 레이 이 녀석은 대체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계속 감정 공유로 불안감을 전해오기까지 해서, 마음이 급해진 나는 일단 협박부터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그 여자를 내려다본 순간, 나는 그 얼굴이 본 기억 있는 얼굴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잠깐만. 너······이름이 리사였던가?"

    그래. 내가 여기에 와서 처음 만난 구미호.

    내가 원래 살던 세계로 치면 고등학생 나이쯤 되어 보이는 바로 그 구미호 꼬맹이였다.

    "흐읍?!"

    정체불명의 협박범이 자기 이름을 아는 것에 놀랐는지, 리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나야. 나. 구원."

    "으으읍! 으으읍!"

    야 이것아! 너 지금 나 알아보고 더 발버둥 치는 거야?! 어째서?! 그야 예전에 성자 스킬로 살짝 손봐준 적이 있기는 하지만, 다 지나간 일이잖아!

    젠장. 하는 수 없지.

    "야. 조용히 안 하면 또 그때처럼 콱······!"

    "······으으읍! 으으읍!"

    다행히도 협박이 먹혔다 싶었던 그 순간, 잠깐 침묵했던 리사는 다시 발버둥을 치면서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이, 이 꼬맹이가 진짜! 그, 그러고 보니 전에 레이이랑 대화할 때, 은근히 나랑 만나고 싶다는 뉘앙스를 풍겼었지.

    그럼 이 녀석 설마 성자 스킬에 당하고 싶어서······쪼끄만 게 발랑 까져가지고!

    "쉿! 조용히 해! 저기 쓰러져 있는 놈 안 보여?! 저게 일어나면 어쩌려고 그래?! 저거 마인이야! 마인! 너 마인이 뭔지 알아?! 용사의 혈족이라는 얘기야! 너 이 마을이 저놈 손에 쑥대밭이 되는 거 보고 싶어?!"

    "······흡?!"

    진짜 해주고 싶은 말은 무척 많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이 녀석이랑 그렇게 어울려줄 시간이 없었다.

    내가 다시 협박성 멘트를 내뱉자, 드디어 리사는 발버둥을 멈추고 숨을 들이 삼키며 조용해졌다.

    "알았지? 입에서 손 뗄 테니까 시끄럽게 하지 마라."

    "······."

    리가사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한 후, 나는 그 입에서 천천히 손을 뗐다.

    "너, 너! 저렇게 위험한 사람을 어째서······!"

    너라니. 레이도 그렇고 얘도 그렇고, 요즘 나한테 아무렇지도 않게 말 놓은 애들이 왜 이렇게······아니.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너무 내로남불인가.

    "나도 이 마을에 폐를 끼치려고 데려온 게 아니야. 그냥 내가 데리고 다닐 수도 없으니까 우리 애들한테 맡기려고 했던 거지. 그래서, 얘들 다 어디 갔어?"

    "자기들 원래 살던 데로······."

    역시 그랬나. 젠장. 오늘은 조금 일찍 반지로 연락한 게 이렇게 큰 스노우볼이 되어 굴러올 줄이야.

    그렇다면 역시나 저 녀석을 마을 중앙까지 들쳐메고 가서 위로 이동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야. 너 잠깐 나 좀 도와라."

    잠깐 생각한 끝에, 나는 리사를 이용하기로 했다.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58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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