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1039화 (1,023/1,205)
  •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39화 >

    잠깐의 해프닝이 있기는 했지만, 나는 다시 바넷사와 마차를 타고 저택으로 이동했다.

    물론 이번에도 마차 안에는 타지 않고, 마부석에 둘이서 나란히 앉아서 갔다.

    우리 저택이나 아라크네 클랜 하우스도 귀족이나 돈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주택가에 있었기 때문에, 마차는 거의 걷는 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천천히 이동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굳이 기다리게 할 필요 없었네."

    바넷사까지 여기서 기다리게 할 필요 없이, 그냥 먼저 돌아가게 했어도 됐는데. 어차피 그냥 걸어가도 금방인 거리니까.

    혹시 그것 때문에 아까 그런 농담 아닌 농담을 한 건가?

    "아뇨. 마침 잘 됐습니다."

    "오? 귀여운 말투는 이제 끝이야?"

    "······잠시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니. 딱히 계속하라는 의미로 한 말은 아니었는데. 뭐, 막상 안 한다고 하니까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지금만이라는 건, 진지한 말투를 써야 할 중요한 얘기가 있다는 건가?

    "뭔데?"

    "성에서 우연히 듣게 된 얘기입니다만."

    바넷사가 해준 얘기는, 확실히 장난치면서 할 말은 아니었다.

    나와 연인 관계가 되면서, 펠리시아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였으니까.

    일단 대외적으로 우리의 관계는 비밀로 해두고 있지만, 아무리 우리가 비밀로 하고 있겠다고 해도 소문이 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펠리시아가 다른 남자와의 관계를 모조리 끊고, 심지어 서큐버스의 힘이 폭주하는 상황까지 가더라도 내가 찾아올 때까지 참으면서 기다리는 거니까.

    당연히 성안 사람들 사이에서는 우리 관계가 소문이 파다하게 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소문과 같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 바로 오늘과 같은 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였다. 펠리시아가 서큐버스의 본능을 억지로 억누르느라 공무를 제대로 하게 되지 못하는 상황 말이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펠리시아가 요령 좋게도 자기가 행동불능이 될 타이밍을 계산하고 미리 일을 전부 처리해놓는 식으로 해와서 크게 문제가 안 됐다고 하지만, 오늘 일은 아마 그렇게 넘어가지는 못할 것 같다고.

    그게 바로 바넷사가 내게 얘기해주려고 한 얘기였다.

    하긴. 그렇겠지. 지금까지는 그래도 내가 올 때까지 아슬아슬하게 참아냈다면, 오늘은 아예 폭주해서 수많은 사람을 말려들게 했으니까.

    아마 성의 기능 중 일부는 정지까지 됐을 거고, 그야 말이 나오지 않는 게 이상한 상황이었다.

    ······그러고 보니 펠리시아 그녀석, 아까 나한테 신부로 받아주면 메이드가 딸려올 거라느니 뭔지 하는 소리를 했었지.

    공주님이 성에서 나올 생각이냐고 가볍게 받아치고 넘어갔지만, 혹시 자기가 성에서 입지를 잃게 될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하고 한 말인가?

    "주제넘은 참견이라면 죄송합니다. 구원 님께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아니. 참견이라니. 알려줘서 고마워."

    그런가. 펠리시아가 나 때문에 그런 상황에······.

    너무 방탕하게 살아서 여왕이 이곳 영주로 쫓아냈다고 하는 펠리시아였지만, 언젠가 디아나가 내게 해줬던 말은 조금 달랐다.

    능력은 확실한 펠리시아니, 이 중요한 영지를 다스리게 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기반을 다질 기회를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했었으니까.

    그러니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 펠리시아에게, 이런 문제는 무척이나 치명적인 걸지도 모른다. 모르지만······.

    "하지만 아마 괜찮을 거야."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나도 다 생각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여신님이 그랬잖아? 사도 임명이 10레벨이 되면 종족창을 열 수 있게 되고, 진작 그렇게 됐으면 지금까지의 고생이 훨씬 줄었을 거라고.

    여신님은 그때 레이아의 구미호 컨트롤만 예로 드셨지만, 아마 펠리시아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거 아닐까?

    그러니까 내가 사도 임명을 10레벨만 찍으면, 펠리시아도 더 이상 서큐버스 체질로 고생하지 않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만약 그렇게 되면 펠리시아의 안 좋은 여론은 오히려 크게 반전되겠지.

    듣기로는 이곳의 왕족. 여왕을 포함해서 모든 왕족은 서큐버스 특유의 성욕 때문에 섹스에 일정 시간을 할애한다고 하니까.

    하지만 펠리시아는 아예 그 시간을 없앨 수 있는 거니······.

    뭐, 그것도 결국 내가 빨리 사도 임명 레벨을 올려야 가능한 얘기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성보다 아라크네 클랜에 먼저 들러서, 미리엘한테 사도 임명을 한 다음에 펠리시아의 종족창을 열어서······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닌가.

    어차피 감정 공유 문제 때문에 사도 임명을 꼭 해야 하는 레이만 포함하더라도 레벨 10은 찍어지니까.

    펠리시아가 조금 고생할지도 모르겠지만, 괜히 서두른다고 미리엘까지 사도 임명을 할 필요는 없지.

    오늘 일 때문에 그 조건에 살짝 의문이 들기 시작한 사도 임명이었지만, 그래도 내 마음속에서는 사도 임명은 특별한 여자한테만 찍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여전히 강했다.

    그나저나 굳이 감정 공유 문제가 아니더라도 사도 임명 레벨을 올려야 할 사건이 터지다니. 이거 타이밍이 좋다고 봐야 하나 나쁘다고 봐야 하나.

    뭐, 이왕이면 좋게 생각하자. 레이한테 사도 임명을 해야 할 이유가 더 생겼다는 걸로.

    "정말로 괜찮으십니까?"

    "정말로 괜찮아. 왜? 이 주인님 말을 못 믿겠어?"

    "······."

    내가 그렇게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자, 바넷사가 특유의 무표정으로 날 곁눈질했다.

    야. 너 그렇게 무표정으로 있는다고 내가 네 속마음을 못 읽을 것 같아? 너 지금 "제 주인님은 디아나 님입니다."라고 하려고 했지? 아까까지 자기 스스로 나한테 "주인님! 주인님!"이라고 불러댄 주제에.

    "그래서, 아까 했던 이상한 포즈랑 귀여운 말투도, 이 얘기를 들려준 메이드한테 전수받은 거야?"

    내 질문에, 바넷사는 몸을 움찔하고 한차례 크게 떨었다.

    역시나. 어쩐지 바넷사 혼자서 그런 걸 다 생각해냈다는 게 이상하다 싶었어.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거나 말투도 묘하게 메이드 같았고.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숨겨져 있었군.

    "······그녀가 할 때는 귀여웠습니다."

    "바넷사. 우리 진지한 얘기 끝났어."

    "알고 있습니다. 그게······아······. 귀, 귀여웠단 말이에요오······크윽······."

    내 두루뭉술한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서는, 얼굴 새빨갛게 물들이고 수치심에 부들부들 떨면서도 주어진 벌칙을 수행하는 바넷사의 모습은 무척이나 귀여웠다.

    이 늠름하고 멋진 집사님한테 이런 감상을 품게 된 것만으로도, 오늘의 이 귀여운 말투로 말하기 벌칙은 매우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저택에 돌아가면 끝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그래. 맞아. 바넷사. 너 성에서 펠리시아의 기운에 닿았지?"

    기운에 닿는 느낌을 받자마자 바로 뒤로 빠졌으니, 그리 심각한 영향은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실제로 멀쩡해 보이기도 하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기운에 닿은 것 자체는 사실이다. 가만히 놔두면 점점 더 심해지지 않겠어?

    "괜찮아요오······바, 바넷사. 이 정도는······."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또 전처럼 못 버틸 때까지 참으려고? 이번엔 내가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네? 이제 자주 오시는 것 아니었습니······아니었어요오?"

    "그럴 생각이지만,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거니까. 저쪽에서 일이 발생하면 늦어질 수도 있는 거고. 그러니까 마차 대놓고 곧장 내 방으로 와. 알겠지?"

    서큐버스의 기운에 당한 걸 풀어준다는 건, 바넷사와 내가 둘이서 그런 짓을 한다는 거다.

    물론 성에서 다른 사람한테 해줬던 것처럼 스킬 한방으로 간단하게 끝낼 생각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오래 할 정도로 시간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정말 괜찮······."

    "구원 씨! 바넷사 씨! 다녀오셨어요?"

    그리고 바넷사에게 그렇게 시간을 투자한다는 건, 다른 사람들과 있을 밤까지의 시간이 더욱 짧아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마 바넷사는 그게 싫은 거겠지. 한사코 사양하려고 했던 바넷사였지만, 그런 바넷사의 말을 중간에 끊는 목소리가 있었다.

    바로 앞에 저택 정문이 보이는 길에서, 신전에라도 다녀오는 길인지 사제복을 입고 있는 레이아와 마주치게 된 거다.

    "응. 레이아는 신전에 다녀오는 길이야?"

    "네. 봉사 활동을 조금."

    역시 천사님이셔. 어쩜 저렇게 착하실까.

    천사님의 천사다움에 감탄하면서, 나는 팔꿈치로 살짝 바넷사의 옆구리를 찔렀다. 바넷사도 조용히 있지 말고 인사라도 하라는 의미로.

    "네, 네엣! 레이아 님! 지금 돌아왔어요!"

    그러자 내 기대대로, 바넷사는 벌칙을 충실히 수행하며 레이아의 마중에 대답해 줬다.

    "바, 바넷사 씨?"

    제아무리 천사님이라도, 바넷사의 이 말투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모양이었다.

    "귀엽지?"

    "으, 으응······귀엽······어, 어떻게 된 거에요?"

    우와. 바넷사야. 지금 봤어? 우리 천사님이 은근슬쩍 대답을 피했어. 너 그 말투 진짜 안 어울리나 봐.

    "으윽······큿······."

    천사님마저 곤란한 반응을 보이자 우리 철혈 집사님의 멘탈에 다시 한번 금이 갔는지, 바넷사는 마차 고삐를 쥔 손에 힘까지 잔뜩 쥐면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괜찮아. 내 눈에는 귀여우니까. 나한테 귀여우면 됐잖아?

    뭐, 말투가 아니라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귀여운 거지만. 아무렴 어때?

    "바넷사는 지금 여러모로 힘드니까 괜히 말 걸지 말아줘. 성에서 펠리시아의 기운에 당하기도 했고, 또······."

    대답하라고 옆구리까지 찌른 주제에, 나는 인제 와서야 바넷사를 두둔해 줬다.

    게다가 두둔해주는 척하면서, 일부러 바넷사가 서큐버스의 기운에 당했다는 정보까지 흘렸다.

    "공주님의 기운이라니······예전에 그것 말씀이신가요?"

    "그래. 예전에 얘가 화장하고 다니면서 숨기려고 했을 때의 그것. 풀어주려고 했는데 바넷사 얘가 계속 괜찮다고 하는 거 있지."

    "안 돼요, 바넷사 씨! 그런 건 제때 풀어주지 않으면 몸에 안 좋아요."

    역시나 천사님이셔. 서큐버스의 기운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실 리가 없는데도, 천사님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바넷사를 타일렀다.

    "역시 그렇지? 그러니까 미안한데 조금만 더 둘이서 있을게."

    "아, 네에······."

    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고 있었구나.

    자신이 "빨리 구원 씨와 섹스하세요!" 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는 발언을 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천사님은 살포시 뺨을 붉히고 몸을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었다.

    천사님. 천사님은 그렇게 살랑살랑만 흔들어도 여기저기 많이 흔들리시니까 다른 사람 앞에서는 자제하시는 게 좋아요.

    물론 꼬리 얘기다. 꼬리.

    아무튼 천사님한테 그렇게 말을 해놨으니, 다른 애들한테도 얘기가 전달되겠지.

    즉, 누군가의 난입을 걱정할 필요 없이 바넷사의 몸에서 서큐버스의 기운을 없애줄 수 있다는 얘기다.

    먼저 방에 돌아온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바넷사를 기다렸다.

    "······."

    그리고 잠시 후. 시킨 대로 마차를 대놓고 방으로 찾아온 바넷사는, 어째선지 무척이나 표정이 안 좋았다. 아니. 표정 자체는 여전히 무표정이지만,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말이야.

    심지어 자기 혼자 날 독점하는 게 다른 미안하다는 느낌도 아니었다. 저 표정은 마치 지금부터 시작될 이 행위 자체가 싫다는 느낌이······.

    뭐,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하는 성격이니까. 아무리 명분이 확실해도, 집사로 일할 때 이런 짓을 하는 건 싫은 걸지도 모른다.

    "바넷사. 그렇게 하기 싫으면 그냥 스킬로 풀어줄까?"

    많이 아쉽기는 했지만, 저렇게까지 싫어하는 애를 데리고 억지로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배려를 해준 거였지만.

    "······!"

    어째선지 그 역시도 싫은 모양이었다.

    한차례 눈썹을 움찔거린 후, 바넷사는 갑자기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버렸다.

    마치 마법이라도 쓴 것처럼 순식간에 알몸이 된 바넷사는, 그대로 성큼성큼 다가와서는 내 옷까지 순식간에 벗겨 버렸다.

    그리고는 날 밀어서 침대에 눕힌 후, 바넷사는 내 다리 사이에 자리 잡았다. 정면으로 마주 보고 앉는 자세가 아니라, 뒤로 돌아 엉덩이를 내미는 자세로.

    그렇게 내 물건 위에 음부를 걸치고 앉은 바넷사였지만, 아쉽게도 내 물건은 아직 서 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바넷사가 옷을 벗고 이렇게 올라타기까지 걸린 시간이 정말 눈 깜박할 사이였던 말이야. 바넷사가 싫어하는 것 같아서 섹스는 안 할 생각으로 있었는데, 서 있을 리가 없잖아?

    애초에 바넷사 얘는 이렇게 적극적으로 할 거면 그런 표정은 대체 왜 지은 걸까?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아쉽게도 고찰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응흣······후으······."

    아직 말랑말랑한 내 물건을 위쪽으로 쫙쫙 펴주듯이, 바넷사가 엉덩이를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39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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