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1036화 (1,020/1,205)
  •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36화 >

    다른 애들처럼 감격에 겨워하는 모습은 끝까지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 참은 것뿐이겠지.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텐션이 올라간 펠리시아와 조금 더 그렇게 시간을 보낸 후, 나는 메이드들의 안내를 받아 바넷사가 기다리고 있는 접객실로 향했다.

    가는 도중 평소보다 더 많은 시선이 느껴진 건, 분명 아까 그 성자 노릇 때문이겠지.

    펠리시아는 이상한 걱정을 했지만, 그건 걔가 못 봐서 그런 것뿐이야. 하나하나 세례 하듯 진짜 오랜만에 성자다웠잖아? 안 그래?

    그러니까 사방에서 느껴지는 이 시선에는 분명 성자님을 우러러보는 경애의 뜻이 담겨 있을 거야.

    그렇게 내심 조금 뿌듯해하면서 접객실에 들어서니, 문 앞에서 바로 바넷사가 마중을 나와줬다.

    "주인님! 돌아오셨어요?! 바넷사, 기다리다 지쳐 버릴 뻔했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주인님 얼굴을 보니까 이렇게 기운이······이것도 아닙니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바넷사다.

    "아니라고 할까······일단 그 포즈는 뭐야?"

    파이팅 포즈 라고 하면 바넷사의 이미지와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바넷사가 하고 있는 건 권투할 때 하는 그런 일반적인 파이팅 포즈가 아니었다.

    손등을 이쪽으로 향하고 팔꿈치 간격을 좁혀서 귀여운 느낌을 살리면서 동시에 팔 사이에 끼인 가슴으로 섹시함도 살짝 강조한 파이팅 포즈.

    거기에 상체를 숙이고 허리를 과하게 꺾기까지.

    마무리로 얘랑 있으면서 처음 보는 입꼬리를 과하게 올린 어색한 미소까지.

    이번에도 실패했다는 걸 깨닫고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으면서도, 바넷사는 아직 그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크흠. 바, 바넷사 생각해 봤는데에······."

    "평소 말투로 대답해도 되니까."

    "크윽······."

    편하게 해주려는 뜻이었는데, 바넷사는 어째선지 더 심한 굴욕을 받았다는 듯 깊은 침음을 흘렸다.

    "······말투만으로는 귀여움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이 포즈라고?"

    "······."

    거기까지 대화가 진행되고 나서야, 바넷사는 은근슬쩍 허리를 펴고 평소의 정자세 집사님으로 돌아왔다.

    얼굴은 아직 엄청나게 새빨개서, 평소의 늠름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바넷사."

    "······네에."

    아, 대답 한 번 끝나니까 또 귀여운 말투 쓰는구나. 진짜 시킨 일은 엄청 착실히 잘한다니까.

    그래도 이번에는 억지로 쥐어짜려는 목소리가 아니라 엄청 기죽은 목소리여서, 솔직히 귀여웠다.

    이런 모습 보고 귀여워하면 안 되는 건 알지만 말이야.

    "그냥 안 해도 상관없어. 아까도 말했지만, 나 전혀 화 안 났으니까. 벌도 네가 하도 원하니까 그냥 별생각 없이 말해 본 거고."

    "크윽······."

    아니. 그러니까 왜 거기서 자존심 구겨졌다는 반응을 보이는 거야? 귀여운 말투 안 써도 되면 넌 좋은 거 아니야?

    오히려 난 이대로도 괜찮다고. 솔직히 말해서 허스키한 목소리랑 엄청 안 어울려서 말투는 귀여운지 잘 모르겠지만,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을 때마다 치욕감에 부들부들 떠는 모습은 엄청 귀여우니까. 이런 때 아니면 얘가 이러는 걸 또 언제 보겠어.

    "바, 바넷사! 할 거야! 요······. ······할 거에요?"

    나도 모르니까 의문형으로 끝내지 마 이것아.

    아무튼 지금까지 시킨 일은 모두 완벽하게 해낸 집사님으로서의 오기인지, 바넷사는 그만해도 된다는 내 말도 무시하고 끝까지 이 귀여운 말투를 고수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뭐, 나야 좋지. 그럼 가자."

    생각보다 펠리시아가 심각하게 폭주하고 있었던 데다가 사도 임명까지 마치고 와서, 예정보다 성에서 너무 오래 시간을 지체하고 말았어.

    아직 오늘 할 일이 끝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서둘러 다음 목적지에 향하기로 했다.

    "왜 여기 앉으······옆에 앉아 주시는 거에요오?"

    마차에 탈 때 내가 처음부터 마부석에 같이 올라타자 바넷사가 살짝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응. 괜찮지?"

    "네, 네엣! 바넷사 어엄청 기뻐요오!"

    "푸흡. 아, 미안. 너무 귀여워서."

    "크윽······."

    그것도 대화로 잘 해결할 수 있어서, 우리는 문제 없이 다음 목적지. 아라크네의 클랜 하우스로 마차를 몰았다.

    뭐, 설득이 너무 잘 먹혀서, 가는 내내 어떤 식으로 말을 걸어도 대답 없이 침묵하기는 했지만.

    그리고 드디어 아라크네의 클랜 하우스.

    7계층에서 우리와 있었던 트러블은 소문내지 않고 간부들끼리만 알고 지냈던 모양이다.

    덕분에 우리는 아무런 문제도 없이, 오히려 동맹 클랜으로서 호의적인 환영을 받으며 클랜 하우스에 입성할 수 있었다.

    거기까지는 좋았지만, 하필 마차에서 내린 바로 그곳에 예상외의 인물이 진을 치고 있었다.

    "여어. 오랜만이다. 잘 지냈냐?"

    "어, 어어······."

    미리 말해두지만, 난 결코 앨리시아가 싫은 게 아니다.

    다만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게 되니까, 그러고 보니 내가 얠 잊고 있었다는 게 생각나서 말이야.

    7계층에서 미리엘이 일으킨 사건을 그렇게 잘 수습할 수 있었던 게 결국 전부 다 얘 덕분이었잖아. 물론 그때도 고맙다는 말은 했지만, 나중에 따로 만나서 고맙다는 말을 다시 한번 꼭 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생각만 하고서 지금까지 완전히 잊고 있었다니.

    아무리 그 이후로 이런저런 일들로 바빴다고는 하지만, 그런 게 변명이 되지는 않겠지. 내가 생각해도 너무했어.

    "새끼. 못 본 사이에 또 병아리 시절로 돌아갔냐?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하지만 앨리시아는 전혀 신경 안 쓴다는 듯, 내 등을 강하게 한 대 때리며 아무렇지 않게 날 대해 줬다.

    몸을 던져서 내 목숨을 구해 줄 정도로 날 좋아하면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티를 내다니. 대체 어떤 기분인 걸까?

    "아니. 오랜만에 보니까 반가워서."

    "짜식. 싱겁기는. 그래서, 무슨 일로 여기까지 행차하셨냐?"

    그래. 앨리시아와 따로 대화하는 건 꼭 해야 하는 일이지만, 지금은 여기 온 용건부터 해결하는 게 먼저였다.

    "지금 미리엘 있어?"

    "······미리엘? 있는데? 왜?"

    내 입에서 미리엘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아주 잠깐이지만 앨리시아의 표정이 굳은 게 보였다. 물론 곧바로 그 특유의 털털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뭐, 얘도 내가 미리엘이랑 며칠 동안 둘이 지내면서 무슨 짓을 했는지 대충이라도 알고 있을 테니, 복잡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을 거다.

    "어허. 어디 간부 나부랭이가. 클랜장님들끼리 중요한 말씀이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

    계속 앨리시아의 기분을 알 것 같아서 기분이 꿀꿀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기분을 겉으로 드러내면 분위기만 더 이상해질 뿐이다.

    나는 일단 앨리시아의 장단에 맞춰서, 장난기 있는 대답을 해주기로 했다.

    앨리시아도 평소처럼 털털하게 행동하고 있으니, 분명 이런 대응을 원하고 있을 거다.

    "뭐 이 새끼야?!"

    그리고 역시나, 앨리시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헤드락을 걸어왔다.

    야. 다 좋은데 말이야. 헤드락 할 때마다 네 가슴에 내 얼굴 닿는 건 알고 있는 거지?

    "아야! 아야! 간부 나부랭이가 사람 잡네! 바넷사! 그럼 기다리고 있어!"

    심지어 그렇게 헤드락을 건 채로 미리엘한테 데려가려는 건지 앨리시아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해서, 나는 최대한 엄살을 피우며 바넷사에게 손을 흔들었다.

    "네에! 다녀오세요!"

    ······바넷사야. 이렇게 사람 눈이 많은 곳에서도 넌 참 꿋꿋하구나.

    아니. 부끄럽지 않은 건 절대 아니겠지만.

    "······야. 쟤 저런 성격이었냐?"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앨리시아까지 벙찐 얼굴로 이런 말을 했을 정도니 말 다 했지.

    "그럼 간부 나부랭이. 여기서 누가 엿듣지 못하게 잘 감시나 하고 있으라고. 클랜장님들끼리 비밀······크하하······커헉. 헉······."

    아무튼 그렇게 미리엘의 집무실 앞까지 도착한 다음 내가 또 장난을 치자, 앨리시아의 주먹이 용서 없이 내 복부에 박혔다.

    야. 지금 건 살짝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냐?

    "비밀 얘기 좋아하네. 나도 들어갈 거야 새끼야."

    "아니. 앨리시아 씨. 그게 말이죠."

    "뭐 새끼야?"

    "······아뇨."

    젠장. 얘한테는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 함부로 빠지라고 하지도 못하겠네.

    이렇게 된 이상 미리엘한테 기대는 수밖에.

    "미리엘! 들어간다!"

    "앨리시아. 언제나 말하지만, 대답도 듣기 전에 문을 열면 노크하는 의미가 없어. 어서 와. 성자님. 오랜만이야."

    앨리시아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미리엘은 언제나 그렇듯 시원한 미소와 함께 날 맞이해 줬다.

    "그렇게까지 오랜만도 아니잖아?"

    우리 애들처럼 매일 얼굴 마주치고 살다가 못 본 것도 아니고, 이 정도면 얘랑은 오히려 얼굴 마주하는 빈도가 잦아진 편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니까.

    "그래? 난 무척이나 오랜만처럼 느껴지는데."

    하지만 내 대답을, 미리엘은 뭔가 의미심장한 말투로 그렇게 받아졌다.

    뭐야 저 미소는. 앨리시아 앞에서 그런 의미심장한 말투 쓰지 말라고.

    안 그래도 앨리시아 이 녀석 심경이 복잡할 텐데.

    "그래서 성자님. 오늘은 무슨 일이야?"

    "조금 7계층 일로 할 말이 있어서 왔어."

    "7계층 일?"

    "그래."

    그렇게 대답하면서, 나는 은근슬쩍 앨리시아 쪽에 눈짓했다. 빨리 얘 좀 쫓아내라고.

    "아?"

    그마저도 앨리시아는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는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나는 황급히 시선을 정면으로 향하고 모른척했다.

    이 녀석은 진짜 야생의 감이라도 있는 거야 뭐야. 왜 이렇게 감이 좋아?

    "7계층 일이면 남한테 함부로 들려줄 수는 없겠네. 앨리시아. 미안하지만 자리 좀 비켜줘."

    그나마 다행히도 미리엘 역시 눈치는 빨라서, 내 눈짓의 의미를 제대로 헤아려줬다.

    "뭐? 미리엘 너까지?!"

    "미안해. 앨리시아한테 비밀 얘기는 안 어울리잖아?"

    "내가 입이 가볍다는 거냐?! 나라도! 나라도······쳇! 치사해서 간다! 가!"

    앨리시아는 힐끔 하고 내 눈치를 한 번 보더니,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는 문을 쾅 닫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진짜 쓸데없이 감이 좋은 녀석이라니까.

    그런 기색은 전혀 내비치지 않았는데도 저렇게 불길한 기운을 읽어내다니.

    "그래서, 성자님. 무슨 일이야? 7계층 일이라니."

    "그전에 먼저. 너 지금 거기 앉아서 거만하게 뭐하냐?"

    미리엘은 지금 자기 의자에 앉아서 턱을 괴고, 책상 앞에 서 있는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여긴 미리엘의 집무실이니 별로 문제 될 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얘가 날 상대할 때는 아니야.

    "그렇군."

    미리엘도 순순히 그 사실을 인정하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뚜벅뚜벅 내게 걸어왔다.

    그리고 내 앞에서 그대로 무릎을 꿇은 후, 손을 가지런히 무릎 위에 얹고 입으로 내 바지 앞섶을 천천히 풀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살짝 불안하기는 했지만, 역시나 내가 했던 조교는 미리엘의 몸 깊숙한 곳에 여전히 잘 각인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응······후읏. 읏! 하아······하아······쪽. 하음. 쭈릅. 쪽. 쪼옥."

    입만으로 재주 좋게 내 바지 앞섶을 풀어낸 미리엘은, 그대로 내 팬티까지 입만 써서 아래로 내렸다.

    그러면서 튕겨져나온 내 물건에 얼굴을 맞기도 했지만, 미리엘은 기분 나쁜 내색은커녕 오히려 얼굴을 상기시키면서 내 물건 끝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내 물건 모양에 맞춰서 천천히 입술을 열어가며 내 물건을 삼키고는, 천천히 고개를 앞뒤로 움직여 내 물건을 자신의 입술로 훑어갔다.

    물론 미리엘이 그러는 동안, 나는 아무런 동작도 취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는 미리엘의 일거수일투족을 가만히 내려다보기만 했다.

    펠리시아랑 그렇게 해대고 왔으면서 아직 부족하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절대 내 욕망을 채우려는 행동이 아니야. 내가 한 조교가 아직도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아보려는 행동이지.

    뭐, 이것만으로 미리엘이 날 배신할 리 없다고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7계층에 이쪽 물건인 게 명백한 물건들이 유통되고 있어."

    아무튼 그렇게 미리엘의 입에 물건을 물린 채로, 나는 여기 온 목적을 말했다.

    "이쪽 물건?"

    그러자 미리엘도 이런 얘기에 꽤나 흥미가 있다는 듯, 내 물건에서 입을 떼고 고개를 들어서 날 똑바로 올려다봤다.

    그러면서도 손으로는 자신의 타액을 이용해 내 물건을 열심히 훑어주는 것이, 역시 겉으로 보기에는 내 조교의 영향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 여기 던전 밖의 물건. 너도 알겠지만, 이쪽에서 7계층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 당연히 이쪽 물건을 거기까지 가져갈 수 있는 사람도 한정되어 있다는 얘기지."

    "성자님은 우리를 용의자로 보고 있다는 얘기군."

    "그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을 뿐이야."

    "하핫. 성자님은 솔직하군. 그런 솔직한 점도 성자님의 매력 중 하나지만, 남을 떠보기에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물론 생각했다. 그래서 여기 오는 동안, 어떻게 빙 돌려서 말하며 떠볼까도 고민해 봤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말이야.

    애초에 7계층에 도달할 때까지 자신의 진짜 목적을 숨기고 우리에게 협력하는 척했던 녀석들이다. 만약 정말로 얘들이 범인이라면, 그런 식으로 떠본다고 해서 알아낼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러니까 결국 이렇게 직접 묻는 방법을 택하게 된 거다.

    적어도 이 방법이 빙 돌려 말하며 떠보는 것보다는 제대로 알아낼 확률이 높을 것 같았으니까.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질문은 이걸로 끝이 아니야."

    굳이 따지자면,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다고 볼 수 있지.

    내가 겨우 이걸로 끝내자고 그렇게 필사적으로 앨리시아를 밖으로 쫓아내려고 했겠어?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36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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