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1035화 (1,019/1,205)
  •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35화 >

    "어, 어머. 자기 빨리 왔네?"

    "말했잖아. 금방 올 거라고. 그래서."

    일부러 말을 끊은 후, 나는 엉망진창이 되어 있는 방안을 쭉 둘러봤다.

    처음 왔을 때부터 바닥에 메이드들이 치마를 까뒤집고 쓰러져 있을 정도였다. 당연히 방안도 제법 어질러져 있었지만, 지금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이 옷가지들은 대체······.

    "그 잠깐 사이에 누가 습격이라도 했어?"

    "흐윽. 자기, 나 무서웠어!"

    내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펠리시아는 손에 들고 있던 옷마저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내 가슴에 포옥 안겨서 우는 척을 했다.

    쓸데없이 순발력은 좋아가지고.

    "······."

    "······역시 이건 무리가 있지?"

    하지만 내가 응답이 없자, 펠리시아는 눈만 치켜떠서 내 얼굴을 힐끔 본 후 습격당해 겁에 질린 공주 컨셉을 빠르게 포기했다.

    "잘 아네. 그래서 이건 뭐야?"

    "오랜만에 만난 자기한테 잘 보이고 싶은 여심? ······뭐야. 그 표정은."

    아니. 너한테도 그런 게 있나 싶어서. 맨날 내가 올 때마다······하긴. 매번 서큐버스의 체질 때문에 그럴 상황이 아니었으니, 잘 보일 기회도 별로 없었겠네.

    생각해 보니 잘 차려입고 날 맞이한 적도 없는 건 아니었고.

    "꾸미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굳이 이렇게 전부 바닥에 늘어놓을 필요 있어?"

    "어머, 전부라니. 자기 여자를 너무 무시한다."

    모든 여자가 이렇게나 옷을 쌓아두고 사는 것처럼 말하지 마라. 공주님의 컬렉션을 너무 무시한 건 인정하겠다만.

    "은근슬쩍 말 돌리려고 하지 마라."

    "어머, 들켰어?"

    "내가 너랑 이런 얘기 한두 번 하냐."

    일단 기가 찬다는 의미를 담아 말했던 거지만, 펠리시아는 그 말을 듣고서는 생긋하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바넷사랑은 정반대의 의미로 표정 읽기 힘든 녀석인 주제에, 이럴 땐 순수하게 기쁜 티를 낸다니까.

    "그냥. 자기도 알잖아. 난 공주님이니까. 이런 건 해본 적이 없으니까."

    "즉, 정리정돈을 못 한다고."

    이 녀석은 뭐든 요령 있게 해내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런 약점이 있었을 줄이야.

    내 안에서 펠리시아의 인상이 조금 변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나쁜 의미로 변했다는 건 아니야. 오히려 이런 약점 하나 정도는 있는 편이 인간미 있고 좋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펠리시아의 생각은 또 다른 모양이었다.

    "거, 걱정할 거 없어 자기!"

    드물게 다급한 티를 내면서, 펠리시아는 갑자기 이상한 말을 외쳤다.

    걱정이라니. 그런 거 한 적 없는데.

    "이렇게 정리정돈을 못 하는 나라도, 어쩜! 신부로 받아줄 때는 메이드 수백 명이 같이 따라와 줘서······."

    "아니. 공주님이 성에서 나올 생각을 하면 어떻게 하냐. 왕위 계승 서열도 1위라면서. 신부가 될 때는······뭐,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고."

    아직 한참 미래의 일이잖아. 내가 결혼이라니.

    무조건 그렇게 하겠다고 정한 건 아니지만, 아마 결혼을 한다면 여신님의 사명을 완전히 끝낸 다음이 아닐까?

    "그럼 받아준다는 거네? 다행이다. 우리 아직 떨어지지 않아도 된대. 음쪽."

    펠리시아는 그런 내 말에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인 다음,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는 내 물건 끝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서 뺨을 비벼댔다.

    아니. 내 바지는 또 언제 벗긴 거야?! 그리고 떨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을 내 아들이랑 나누지 마!

    뭐, 왜 그러는지 대충 눈치는 챘지만.

    "그렇게 부끄러웠냐?"

    "······자기는 가끔 너어무 눈치가 없다니까."

    필사의 연기도 물거품이 됐다는 걸 깨달았는지, 펠리시아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무슨 소리야. 눈치가 좋으니까 그렇게 말한 거지. 이럴 때 아니면 네가 부끄러워 죽으려고 하는 표정을 언제 또 보겠어."

    "자기, 이렇게까지 성격 나빴던가?"

    "걱정하지 마. 이런 성격 나쁜 나라도, 웬걸! 신랑으로 받아줄 때는······."

    "지, 진짜 하지 마! 진짜 죽고 싶어······."

    그, 그렇게까지 부끄러웠냐?

    완전히 멘탈이 박살 난 것 같은 표정의 펠리시아를 보니, 아무리 장난치기 좋아하는 나라도 잠깐이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왜 잠깐이냐고? 아니. 그도 그럴 게, 이 녀석. 부끄러워 죽을 것 같은 표정인 주제에 손으로는 내 물건 훑고 있으니까.

    뭐지? 얼굴 바로 옆에 물건이 있으니까 서큐버스의 본능 같은 게 발동한 건가?

    "······그런데 다른 사람은? 혹시 성자 스킬을 썼어?"

    "그래."

    불리한 주제에서 말을 돌리려는 게 뻔히 보였지만, 나는 거기에 넘어가 주기로 했다.

    내 물건을 훑고 있는 손이야 어쨌든 너무 놀린 건 사실이고, 그 말주변 좋은 펠리시아가 이렇게 어설프게 얘기를 돌리려고 노력하는 것도 왠지 귀여워서 말이야.

    나도 진짜 얘를 좋아하긴 하나 보다.

    "아무리 자기라도, 성안에 있는 여자를 다 자기 걸로 하려는 건 안 되는 거 알지?"

    "왜 얘기가 또 그렇게 되냐. 섹스 안 했다니까. 그냥 스킬로 톡······."

    "자기는 자기 스킬에 안 맞아봤으니까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서 그래."

    아니. 꼭 그렇지만도 않아. 그야 내 스킬에는 안 맞아봤지만, 디아나한테 내 스킬을 카피한 마법도······그걸 생각해 보면 확실히 위험하긴 하네.

    디아나의 그 마법도 엄청 기분 좋았는데, 그게 내 스킬의 마이너 버전이니까.

    내 스킬에 제대로 당해서 절정까지 느끼면, 나 없이는 느낄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릴지도.

    그 청순해 보이던 메이드도 그 기가 세 보이던 기사도 전부······.

    "자기, 지금 이상한 생각 했지?"

    잠깐이지만 그런 상상을 했던 게 물건까지 영향을 미쳤는지, 펠리시아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날 올려다봤다.

    "벼, 별로?"

    "응응. 그래? 어머, 얘랑 하는 말이 다른데? 수상해. 면밀한 심문이 필요한 사안이야."

    야. 그거, 네 장난감······뭐, 맞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게 잡고 마구잡이로 흔들지 마라. 걔가 보기보다 민감한 애라고.

    "심문이라니. 어떤 식으로?"

    "이런 식으로!"

    그렇게 말하면서, 펠리시아는 내 몸을 침대로 밀어 넘어뜨렸다.

    물론 펠리시아가 민다고 밀릴 내가 아니어서, 침대로 넘어간 건 내 의지였지만.

    "아핫. 각오해."

    그리고 그런 날 내려다보면서, 펠리시아는 요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 그 미소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지만.

    "아하으······하으······자, 자기······."

    내 위에 올라탄 채로 몸을 축 늘어뜨리고, 펠리시아는 혀가 풀린 목소리로 날 불렀다.

    처음에는 주도권을 잡고 신나게 허리를 흔들었던 펠리시아였지만, 제아무리 서큐버스라도 성자한테 이길 수는 없었다는 얘기다.

    참고로 말하자면 난 아무것도 안 했다고.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펠리시아가 혼자 기분 좋아져서는 이렇게 된 것뿐이야.

    심지어 대놓고 자기 약점은 피하면서 나만 기분 좋게 하려는 허리 움직임이었는데도.

    "자기한테는 이길 수 없었어······."

    아, 날 부른 게 아니라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거였어?

    자기한테는 이라니. 이왕 그런 말을 할 거면 두 번째 음절은 파열음보다 파찰음이 어울리지 않냐?

    "아하하. 자기 변태. 아름다운 공주님 입에서 그런 외설적인 말이 나오는 게 듣고 싶어?"

    얘 의외로 아직 여유 있는 거 아니야? 아니. 음부 안쪽의 감촉으로 봐서는 상당히 여유가 없는 것 같은데.

    그리고 자기가 자기 입으로 아름답다고 하지 마라.

    "그러는 자기도 부정은 안 하네?"

    말은 똑바로 해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다.

    "아하핫. 그러고 보니 아까 내 매혹도 안 걸렸었지? 혹시 그런 걸까? 이미 날 너무너무 좋아하니까, 매혹도 소용이 없는 느낌?"

    내 말을 듣고 더더욱 기분이 좋아진 펠리시아는, 눈치채지 않아도 될 것까지 눈치를 채 버렸다.

    "뭐야 자기. 자기도 알면서 모른 체하고 있었구나? 아, 아하하. 알았다. 처음에 부끄러워했던 게 그거 때문이었구나. 어쩐지. 자기도 참. 부끄러워할 필요 없는데."

    젠장. 이 녀석 진짜 쓸데없이 머리는 좋아가지고.

    자기도 성욕에 눈이 멀어서 제정신이 아니었으면서, 내가 부끄러워했던 것까지 어떻게 일일이 전부 기억하고 있는 거야?

    "혀 내밀어."

    가만히 내버려 두면 또 펠리시아의 화술에 말려들어 가서 정신을 못 차리게 될 것 같아서, 나는 황급히 주제를 전환하기로 했다.

    조금 억지였지만, 어차피 오늘 찾아온 목적 중 하나가 이것이었으니까 상관없겠지.

    그리고 이 녀석한테는 이런 식으로 조금 강하게 밀어붙이는 게 잘 통하기도 하고.

    "아핫. 매혹도 안 통할 정도로 반해 버린 내 예쁜 얼굴을 보고 있자니까 키스라도 하고 싶어졌어?"

    내 명령조에 설렜는지 살짝 음부를 조였다가 푼 다음, 펠리시아는 또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말과 함께 혀를 내밀었다.

    이 녀석이니까 당연히 요염하게 혀를 내밀어서는 빨리 키스해달라고 움직이며 유혹이라도 할 줄 알았지만, 의외로 펠리시아는 마치 메롱 하는 것처럼 혀끝만 살짝 내밀고 귀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니까 그런 거 기습적으로 하지 말라고. 너 전부 다 계산하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

    "으헿?!"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살짝 내밀어진 펠리시아의 혀끝을 손가락으로 잡고 당겼다.

    "어, 어하는 거야?"

    "가만히 있어."

    키스를 기대하고 있던 펠리시아는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짧은 대답으로 펠리시아를 조용히 시켰다.

    지금부터 집중해야 하거든.

    길게 내밀어진 새빨간 혀의 한가운데에 시선을 고정하고, 나는 그대로 사도 임명을 발동했다.

    "으흐읏?! 아, 아아하아······."

    그리고 그대로 사도 인장을 새기자, 펠리시아의 혀가 축 늘어지면서 타액이 주르륵 흘러내려 오기 시작했다.

    안면 근육도 완전히 풀어져서 평소의 펠리시아라면 절대 짓지 않을 표정이 되었다.

    이런 표정은 섹스로 엉망진창이 될 때까지 느끼게 해도 좀처럼 짓지 않는 표정인데. 이게 사도 임명의 힘인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혀를 잡고 있던 손가락에 힘을 풀고 대신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아흥?! 흐아응?! 으읏?!"

    그리고 그 혀에 혀를 얽자, 펠리시아의 몸이 움찔움찔 떨리며 다시 한번 절정에 달해 버렸다.

    딱히 이걸 노리고 여기에다가 사도 인장을 새긴 건 아니었지만, 이거 괜찮네. 키스나 펠라 만으로도 절정에 달할 수 있는 공주님이라니.

    "으하으······하아······하아······자기······?"

    그렇게 진한 키스를 하고 나서 한참이 지나서야, 펠리시아는 겨우 숨을 고르며 날 불렀다.

    "응. 감사 인사는 됐어. 어차피······."

    "나······입으로 하는 것도 좋아하지만······여기가 최고 성감대는······아닌데······?"

    얘는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아니. 넌 사도 임명을 받고 처음 내뱉는 감상이 그거야?! 꼭 그거여야만 했어?!

    "그치만······실비아가 사도 인장은 최고 성감대에 새겨준다고······그걸로 자기 여자를 부끄럽게 하는 귀축 변태라고······."

    "실비아가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잖아?!"

    "응. 뒤에 건 내 평가."

    "그런 평가 필요 없어 이것아! 누가 귀축 변태라는 거야?! 전신 성감대라서 어디에 사도 인장이 새겨져도 안 이상한 변태 서큐버스가!"

    "으응! 자기, 너무해······."

    너무하다면서 느끼지 마라 이 변태야.

    진짜 내가 어쩌다가 이런 녀석까지 좋아하게 돼서는.

    "그래서?"

    "뭐가 또?"

    "혀에 해준 이유."

    "말했잖아. 넌 어차피 전신 성감대니까 어디에 해도 안 이상하다고."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하는 말이다. 얘 섹스 애널라이즈 쓰면 전신이 핑크색으로 보인다니까. 실비아한테 성감대 하나 정도는 나눠줬으면 할 정도다.

    "그러면 다른 곳도 많잖아. 하필 혀에다가?"

    "뭐, 너 말도 많으니까."

    "아하핫. 말할 때마다 자기 생각하라고?"

    아니. 진짜 순수하게 너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그 특유의 말장난이라서 혀에다가 한 건데.

    하지만 뭐, 저렇게 좋은 쪽으로 착각한다면 굳이 정정해 줄 필요는 없겠지.

    그리고 혀에 새길 때 그런 발상을 떠올리지 못했을 뿐, 말할 때마다 내 생각한다는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당히 괜찮았다.

    응? 근데 말할 때마다 내 생각하게 한다는 거, 전에도 언젠가 한 번 쓴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역시. 자기 그렇게 옛날부터 날 좋아했었구나?"

    응? 얘는 또 갑자기 무슨 소리를······아. 아아! 그래! 그러고 보니 옛날에 성자의 성수로 얘 입안을 성감대로 만들고 방치한 적이 있었지!

    아니. 그때는 호감 같은 거 전혀 없이 진짜로 혼 좀 나보라는 생각으로 한 거였는데.

    "그렇게 옛날부터 좋아했으면서 애나 태우고. 자기, 역시 너무 귀축이야."

    그래. 이제 와서 그런 말 해봐야 무슨 소용이냐. 결국 네 생각대로 이렇게 서로 좋아하게 됐는데. 너 좋을 대로 생각해라.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35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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