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33화 >
"자네, 괜찮은가?!"
"아니. 근데 호 해주면 괜찮아질 것 같아."
정말 걱정하는 눈치니까 그냥 괜찮다고 해도 됐겠지만, 나는 그만 심술궂은 대답을 내뱉고 말았다.
어쩔 수 없잖아. 그나마 아이언 페니스가 알까지 보호해줘서 다행이지. 조금 전에는 진짜 놀라서 반사적으로 다리를 오므리면서 고통이 없다는 걸 깨닫기까지 걸린 짧은 시간 동안 등에서 식은땀을 주륵주륵 흘렸다고.
그러니까 이 정도 심술을 부려도 벌은 안 받을 거야.
그리고 어차피 디아나도 평소처럼 "무슨 말을 하는 겐가!" 라고 꾸짖는 걸로 끝날 테니까.
"이, 이곳에 말인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내 생각보다 디아나는 훨씬 더 많이 당황했던 모양이었다.
낭패한 표정으로 내 다리 사이를 지그시 바라본 디아나는 화들짝 놀라서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른 애들의 얼굴을 엿봤다.
디아나야. 뭘 그렇게 각오를 다지는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거야.
그야 내 엄살 아닌 엄살이 조금 심하기는 했지만.
"으, 으으······이, 이 몸은······."
"농담이야. 당황하기는."
왠지 이대로 놔두면 정말로 다들 보는 앞에서 내 알에 대고 입김을 호 하고 불어줄 기세여서, 나는 하는 수 없이 몸을 일으키고 말랑말랑한 뺨을 가볍게 꼬집어줬다.
"그, 그안두게에······."
와. 얘 진짜 놀랐나 본데? 아니면 그냥 남들 앞에서 내 다리 사이에 얼굴 박고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이러는 건가?
"남들 보는 앞에서 내 물건을 직접 만진 적도 있으면서 이제 와서 부끄러워하기는."
"이, 이, 이 몸이 언제 그랬다는겐가아?!"
디아나의 상태가 너무 이상해서 조금 충격 요법을 써보자, 원래대로 돌아오신 우리 대마법사님은 버럭하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디아나야.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어떻게 해. 찔리는 게 많은 사람처럼 보이잖아. 뭐, 실제로 많지만.
"있잖아? 피임 마법 걸어줬을 때."
조금만 더 놀리면 자폭하는 모습도 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안 그래도 방금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 애한테 그렇게까지 하는 건 미안하잖아?
나는 적당히 놀리고 슬슬 구명줄을 던져주기로 했다.
"아······코, 코홈! 코홈! 그, 그렇구먼! 이 몸이 그때 기억을 잠시 잊었구먼! 그, 그러고 보니 자네! 슬슬 피임 마법도 다시 걸어야 할 때가 아닌가?! 자, 이쪽으로 오게!"
그러자 구명줄을 덥석 잡은 디아나는, 덤으로 내 옷도 덥석 잡아서는 화장실 쪽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
"뭐? 그거라면 그냥 여기서······아, 알았어. 갈게. 가면 되잖아."
그러니까 그렇게 째려보지 말라고. 무서워 죽겠다 야.
"자네란 남자는! 자네란 남자느으은!"
무척이나 당연하게도, 화장실에 들어와서 문을 닫자마자 디아나는 무자비한 연속 콩닥콩닥 펀치를 날리며 내 가슴을 유린했다.
음. 심장에 직접 타격을 주는 기술이로군. 이게 바로 격산타우라는 건가.
"미안. 장난이 좀 지나쳤지? 아, 그래도 내 다리 사이에 얼굴 묻고 있었던 건 내가 한 게 아니라······."
"그 정도는 이 몸도 아네!"
도저히 분이 안 풀린다는 듯, 디아나는 씩씩 어깨로 숨을 쉬며 날 노려봤다.
"어차피 쟤들도 다 실수인 거 알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흥분하지 말고."
"흥분 안 했네!"
"아니. 그 흥분 얘기가 아니라."
"이 몸도 그 흥분 얘기를 한 것이 아닐세!"
"알아. 농담이야."
"후우욱! 후우욱!"
디아나야. 네가 무슨 성난 황소니?
저렇게 콧김을 뿜뿜 내뿜고 있어도 마냥 귀여워 보이기만 한다는 것도 대단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이 이상 장난치는 건 정말 위험할 것 같아서, 나는 그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디아나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후우. 꺼내게."
그렇게 잠시 후. 겨우 진정한 디아나가 내 다리 사이를 가리키며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응? 진짜로 해주게?"
"음. 슬슬 어차피 슬슬 다시 걸어야 할 시기 아닌가."
"뭐, 그것도 그렇지만."
바지와 팬티를 잡고 한 번에 내리자, 디아나가 내 물건을 손끝으로 톡 건드리고는 다시 바지를 올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어? 벌써 끝이야?"
전에는 그래도 시간이 조금 더 걸렸던 것 같은데?
별거 아닌 마법처럼 보여도 한 달 넘게 유지되게 하려면 마나를 제대로 응축시킬 필요가 있다고, 언젠가 디아나가 설명해준 기억이 분명히 있었다.
"음. 이걸로 자네는 한 달 동안 발기할 수 없을 걸세."
"내 아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살려놔! 이 성기살해범! 너 이게 얼마나 심각한 죄인 줄 알아? 그냥 살해도 아니고 성기살해는 특수살해죄가 적용되어서······!"
"후흥. 농담일세."
얘, 얘가 심장 떨어질 농담을 하고 있어!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이상한 헛소리까지 주절주절 떠들어 버렸잖아!
그나마 디아나가 익숙하다는 듯 별다른 반응을 안 해줘서 그렇게까지 무안하지는 않았지만, 아니. 생각해보니까 이런 거에 익숙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그건 그거대로 무안한데.
아무튼 짓궂은 미소를 짓는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뺨을 꼬집고 마구 흔들어주고 싶었지만, 나도 아까 한 짓이 있다 보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바로 지고의 대마법사의 힘이라는 것일세."
아, 그러고 보니 250레벨을 넘으면서 자동으로 지고의 대마법사로 전직까지 됐었지.
디아나의 설명에 따르면, 250레벨이 넘은 마법사는 자기 전공에 따라 전직을 하게 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화염 마법이 전공이면 화염의 대마법사 같은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디아나의 직업은 바로 지고의 대마법사. 모든 분야의 마법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디아나만이 도달한 경지라고 한다.
지고의 대마법사라는 호칭은 그냥 별명 같은 게 아니었다는 얘기다.
250레벨의 전직이 이 정도 수준이면, 500레벨의 전직은 대체 어느 정도 수준인 걸까?
"이 몸의 위대함이 새삼 느껴지는가?"
내가 잠시 말이 없자 무안해졌는지, 디아나는 가슴을 쫙 펴면서 우쭐거리는 척을 했다.
얘가 또 마음에 없는 말을 하기는.
"아니. 그냥 예뻐서 쳐다보고 있었는데."
"음! 그 또한 이 몸의 위대함 아니겠는가!"
그런 말과는 달리, 디아나는 이뻐 죽겠다는 듯 까치발을 하고 내 머리를 마구잡이로 쓰다듬었다.
역시 이렇게 대답하는 게 정답이었나.
아무튼 볼일은 끝났으니, 여기서 오래 있을 필요는 없었다. 괜히 오래 있으면 밖에 있는 애들이 또 다른 오해를 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래서 바지를 끌어 올리고 화장실을 나서려고 한순간, 갑자기 한가지 아이디어가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참. 디아나. 조금 궁금한 게 있는데."
"음? 뭔가?"
"이 피임 마법, 스크롤 같은 걸로 만들 수는 없어? 내가 저쪽에서도 쓸 수 있게."
우리는 곁에 대마법사님 본인이 계시니 직접 사용한 적은 없지만, 이 세계에는 마법을 전혀 쓸 수 없는 사람도 일회용으로 마법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스크롤이라는 물건이 존재했다.
물론 그렇게 좋은 물건인 만큼 만들기 까다롭고, 만드는데 드는 재료비나 인건비도 어마어마하다는 모양이지만, 여기가 그런 건 신경 쓸 곳은 아니잖아?
각 분야의 톱이라고 할 수 있는 마법사들이 다 모여있는 이 저택에서 말이야.
"스크롤로 말인가? 그런 것이 대체······자네 설마!"
내 말을 듣고 엉뚱한 오해를 했는지, 디아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아니. 저쪽에 오래 있으려는 게 아니야. 이쪽으로 올 방법도 찾았는데 내가 뭐 하러 그러겠어? 내가 아니라 거기 있는 녀석들한테 쓰려고 그래."
"그런가. 흠. 스크롤로 말인가."
황급히 손사래 치면서 오해를 풀어주자, 디아나는 안심한 표정으로 손으로 턱을 만지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안 돼?"
"안될 것은 없네만, 대량으로 만드는 것은 아무리 이 몸이라도 한계가 있네. 특히나 이런 지속 시간이 중요한 마법을 스크롤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아, 그거라면 괜찮아. 짧아도 상관없어. 아니. 짧게 만들어줘. 하루 정도만 지속되게. 그리고 그렇게 많이 만들 필요도 없어. 일단은······그래. 한 다섯 개 정도만 있으면 돼."
"음? 하루? 다섯 개? 그것으로 되겠는가?"
아무리 머리 좋은 디아나라도, 내가 그걸로 뭘 하려는 건지는 짐작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야 그렇겠지. 우리 디아나는 순수하니까. 머리에 싸울 생각밖에 없는 놈들을 색욕으로 타락시키려는 내 사악한 계획에까지는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겠지.
"응."
"그 정도라면 오늘 중에 전부 만들 수 있네."
"그럼 부탁 좀 할게."
그렇게 얘기를 마무리하고 나서, 우리는 사이좋게 화장실을 나섰다.
"아침부터 둘이서 화장실에서 뭘 그렇게 오래 있어?"
물론 핀잔 섞인 시선이 침대에서 날아왔지만, 난 당황하지 않았다.
"에이. 알면서 뭘 그래. 하핫. 남자랑 여자가 둘이서 화장실에 들어가다 보면 좀 오래 있을 수도 있고 그런 거 아니겠······."
"자네에에! 일부러 오해 살 말 하지 말게!"
아무튼 그렇게 앞으로의 계획도 조금 가다듬으면서, 오늘도 유쾌하게 아침을 시작한 우리였다.
그리고 지금은 마차 안.
조금 전까지 같이 있었던 레이첼 누님을 길드에서 내려주고, 우리는 곧장 성으로 향했다.
말했잖아? 오늘은 할 일이 많다고.
이렇게 성에 방문하는 것 역시도 그 할 일 중 하나였다.
펠리시아 그 녀석, 괜찮으려나? 전에 얼굴 보고 나서 오늘까지. 진작에 폭주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나는 살짝 불안해졌다.
사실은 그래서 어제 성부터 올 생각이었지만······아니. 그렇다고 해서 사라를 탓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말이야. 어제 사라랑 보낸 시간은 나한테도 무척이나 행복한 시간이었으니까.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나는 레이첼 누님과 동반 출근할 정도로 이른 아침부터 마차에 타고 있다는 얘기다.
"······구원 님."
"응?"
그렇게 살짝 좌불안석이 되어있자니, 갑자기 마부석에서 바넷사가 말을 걸어왔다.
이거 또 드문 일이네. 내가 먼저 마부석에 말을 걸어서 바넷사가 대꾸해준 적은 많아도, 바넷사가 먼저 마부석에서 말을 걸어주는 일은 거의 없는데.
"죄송합니다."
"응? 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갑자기 바넷사가 사과를 해왔다.
전혀 짐작 가는 일이 없는데. 무슨 일 있었던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실수라도 했나?
"어제 아침. 그런 태도를 보여서 죄송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랬지. 얘 성직자 콤비의 더블 펠라 보고 질투해서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문 닫고 나가버렸지. 완전히 까먹고 있었네. 그 후에 이런저런 일이 있었으니까 말이야.
"괜찮아. 바넷사의 질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해."
물론 그때는 조금 많이 당황스러웠지만, 이제는 화낼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애초에 조금 전까지 잊고 있었는데 화를 낼 리가 없잖아?
오히려 그때 일을 아직까지 마음에 두고 있다가 단둘이 되자마자 사과하는 모습에 미소까지 지어질 정도였다.
"읏! 농담이 아닙니다."
그래서 가볍게 넘어가 주려고 한 나였지만, 바넷사는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그렇게 받아쳤다.
"나도 농담 아니야. 괜찮다는 뜻으로······."
"안 됩니다."
"으, 응?"
뭐야 이거. 그러니까 지금, 얘가 내 용서를 거부한 거야? 용서의 거부라니. 같이 나란히 늘어놓는 것부터 위화감이 들 정도로 이상한 조합이잖아. 진짜 뭐야 이거.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됐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피해자인 내가 용서해주겠다는데······잠깐. 얘 이거 설마.
"그럼 벌이라도 받을래?"
"······되도록. 일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부탁합니다."
진짜냐. 심지어 그런 류의 벌이라는 걸 상정하고 있는 것 같은 말투잖아.
그야 물론 내가 내 여자들한테 줄 수 있는 벌이라고는 그런 것 정도밖에 없지만 말이야.
진짜 뭐지. 혹시 호 해달라니까 진짜로 해주려고 했던 디아나를 벤치 마킹하는 건가?
"그럼 오늘 하루 종일 팬티 벗고······야! 벗지 마! 얘가 진짜 미쳤······남들이 보면 어쩌려고 그래!"
"······죄송합니다."
"얘가 진짜······."
갑자기 바지에 손을 가져가는 바넷사를 보고 화들짝 놀란 나는, 얼른 그 행동을 멈추게 하고는 그림자 이동을 써서 마부석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 얼굴을 빤히 엿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바넷사는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표정 자체는 무표정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분위기 같은 게 침울하다는 얘기다.
그게 이렇게까지 침울해할 일인가?
집사로서, 아니. 내 여자로서도? 둘 다 동시에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알았어. 벌이라도 받지 않으면 기분이 안 풀린다 이거지?"
"······."
바넷사는 내 말에 무반응이었지만, 이건 무언의 긍정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 그렇다면······.
"그럼 오늘은 귀여운 말투로 말해."
조금 생각한 끝에, 나는 그런 벌을 내리기로 했다.
자신의 실패에 진심으로 침울해하고 있는 애한테 야한 벌을 주는 것도 좀 아닌 것 같고, 이거라면 내 기분을 좋아지게 해서 내게 한 실수를 만회한다는 명분도 서니까.
"······네?"
"내 기분을 풀어주고 싶은 거잖아? 오늘은 귀여운 말투로 말해."
"······귀여운 말투라 하심은?"
"그건 네가 직접 생각해야지. 그것도 포함해서 벌이야."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33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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