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1032화 (1,016/1,205)
  •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32화 >

    다시 말해서, 내일 밤에 직접 찾아갈 때까지 저쪽 상황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그나마 조금 전에 얻은 단편적인 정보를 통해서, 실비아가 엄청 고생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지만.

    그 고생도 아마 십중팔구 레이 때문이겠지. 걔 말고는 트러블을 일으킬 일이 없으니까.

    그렉과 듀크는 이상한 놈들이기는 해도 자기들의 위치나 하면 안 되는 일 정도는 분간할 수 있는 놈들이고, 쓰레온은 분명 헬레나한테 빠져서 정신이 없을 거다.

    그리고 신과 유리는 세상 물정을 좀 모르기는 해도 도망 다니는 입장으로서 조용히 숨어 지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놈들이다.

    그런 대도시의 영주를 하고 있는 파란에 이르러서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야.

    그럼 남은 건 딱 한 녀석밖에 없지 않겠어?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실비아 걔가 나랑 있으면 맨날 죽네 마네 엄살을 피워서 그렇지, 사실 저렇게 약한 소리를 쉽게 내뱉는 애가 아닌데 말이야. 나랑 관련된 일만 아니면 뭐든 기사 정신으로 터프하게 견뎌내는 실비아가 그런 약한 목소리를 낼 정도라니.

    괜히 연락했다가 궁금증만 더 증폭되고 말았지만, 어차피 지금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만두자. 신변에 위험이 생겼다든가 하는 일도 아닌 것 같고. 실비아가 알아서 잘 처리하겠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내일 밤에 알아내기로 하고, 나는 빛을 잃은 반지에서 깔끔하게 눈을 뗐다.

    "이걸 이렇게 해서······어떤가?!"

    샤워를 마치고 와서 따끈따끈 촉촉해진 우리 애들에게 둘러싸여, 나는 자기 전에 가벼운 잡담을 나눴다.

    처음에는 하릴없는 얘기였지만 어느샌가 화제가 디아나가 요즘 개발 중이라는 마법 도구 관련 얘기로 흘러가서, 지금은 눈앞에서 디아나가 시연을 펼치는 중이었다.

    "오오오!"

    "공연이 아니네만······."

    내가 신기한 표정을 지으며 물개박수를 치자, 디아나는 미묘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내심 뿌듯해 보이기도 하는 게, 은근히 기쁘기는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거, 쓸 일이 있을까?"

    "모르네!"

    아니. 모르네! 라니. 그렇게 가슴 활짝 펴고 당당하게 얘기할 말이야?

    "어차피 자네의 아공간은 무한하지 않는가. 가지고 다녀서 손해 볼 일은 없네."

    뭐, 그야 그렇지. 며칠 전에 건네받은 도구까지 합쳐서 일일이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건네받았기 때문에, 정작 필요할 때 꺼내 쓰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은 있지만.

    이건 굳이 말하지 말고 있자. 디아나도 날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건데 굳이 초 칠 필요 없잖아?

    "그나저나 그 단기간 내에 이렇게나 많은 도구를 발명해 내다니. 역시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건가."

    "그렇게 말할 정도로 새로운 발명은 없네. 다 기존에 있던 것들을 보완하거나 조금 강화한 것뿐일세."

    "충분히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애초에 새로운 도구라는 건······그러고 보니."

    "음? 무슨 일 있는가?"

    "아니. 그게 말이지. 레이첼 누님. 아라크네 클랜, 특히 간부들은 요즘 어때요? 요즘도 던전에 다녀요?"

    새로운 도구라고 하니 갑자기 미약 생각이 나서 말이야.

    어차피 내일 나 자신도 직접 찾아가서 떠볼 생각이지만, 그전에 미리 정보를 얻어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래. 실은 말이지. 아래에서 미약을 접했을 때부터 아라크네 클랜이 살짝 의심됐거든.

    아니. 아라크네 클랜이 우리보다 먼저 바프라와 접촉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걔들이 아니면 이쪽 세계에서 그쪽 세계 사람과 접촉할 집단이 없잖아?

    "응. 처음 1주 정도는 아예 오지 않았지만, 요즘은 빈번히······아, 그래도 전처럼 장시간 머무르는 일은 거의 없어."

    아라크네 클랜의 궁극적인 목표는 전쟁신의 종족들과 만나 힘을 얻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꿈은 내게 가로막혀 좌절됐고, 그렇게 된 이상 더는 던전에 다닐 이유가 없다.

    그러니 이제는 던전에서 완전히 발길을 끊었다는 대답이 나오는 것도 살짝 기대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그렇게 일이 쉽게 풀리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빈번히라니······미리엘도?"

    "응."

    쉽게 풀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수상한 상황이 되어 있었다.

    목적이 없어졌다곤 하나 돈벌이를 위해서는 여전히 던전을 다녀야 하긴 했다. 오랫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그러니 던전을 다니는 것까지는 사실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간부들만 던전을 다니고 있었다면 솔직히 의심할 생각도 안 들었을 거야.

    그런데 미리엘도 다니고 있다고? 걔는 분명 내가 조교로······그런데도 던전에 다니고 있다고? 대체 어떻게?

    "하지만 7계층으로 가지는 않았을 거야. 텔레포트 마법진은 길드에서 막고 있고, 던전에 있는 기간도 7계층에 다녀오기에는 너무 짧은걸."

    누님이 하시는 말은 지극히 당연한 말이었다.

    던전을 다니면서 길드의 눈을 피하는 건 불가능하니, 아마 아라크네 클랜은 정말로 7계층에는 다니지 않고 있을 거다.

    애초에 이렇게 정보를 전해 듣고 안심하기 위해서 길드에 협력을 요청한 거였잖아?

    "음. 의심하는 마음은 이해하네만, 이 몸도 그곳에 미약을 유통하는 범인이 아라크네 클랜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네. 앞뒤가 맞질 않지 않은가."

    게다가 디아나까지 저렇게 말하고 있으니, 내 의심이 사실이 될 확률의 거의 0에 가까웠다.

    이성은 그렇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왠지 의심된단 말이지.

    "하지만 이 세계에 미약 같은 건 없잖아?"

    "음. 여신님의 마나를 이용 중이라는 의견에는 동의하네. 문제는 여신님의 마나를 얻는 방법이네만, 가장 그럴듯한 방법은 역시······."

    "역시?"

    왠지 디아나가 힐끔 내 물건을 본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우선은 자네가 의심하는 대로 아라크네 클랜부터 확인하고 오게. 그다음에 이 몸의 의견을 들려주겠네."

    뭐, 뭐야. 괜히 사람 불안하게. 왜 그래? 왜 그렇게 말을 아끼는데? 그것도 내 물건을 힐끔 본 다음에.

    "자, 내일도 할 일이 많으니 일찍 자세."

    디, 디아나? 대마법사님? 진짜로 왜······.

    "오늘은 이 몸이 낭군님의 다리를 베고 자겠네. 또 자네들에게 맡기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말일세."

    "디, 디아나 씨!"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에요! 당신! 당신도 뭐라고 말 좀 해주세요!"

    "응? 아, 응. 황홀한 광경이었어. 헤헷."

    "구원 씨도 차암!"

    자기 전에 맞는 천사님의 꼬리치기도 제게는 포상입니다. 폭신폭신 따끈따끈. 이대로 베개로 쓰고 싶다.

    아무튼 그렇게 어제와는 다른 배치로 다 같이 잠을 자게 됐다.

    왠지 디아나의 화술에 그대로 말려들어 간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어쩔 수 없지.

    내가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주제로 말을 돌리다니. 하여간 이래서 머리 좋은 애는.

    "냐음. 냐음. 쪽. 쪽. 냥군니이임."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레이아와 마틸다에게 당당하게 핀잔을 줬던 디아나는, 지금 내 다리 사이에 얼굴을 박고 뺨과 입술을 비비며 좋은 꿈을 꾸는 중이었다.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그 광경을 목격한 내가 할 일은 당연히.

    "천사님. 천사님."

    우선 오른팔을 봉인하고 있는 천사님을 깨우는 것이었다.

    "으응······후훗. 구원 씨. 안녕히 주무셨어요?"

    가볍게 흔드는 것만으로도 잠에서 깨어나신 천사님은, 반쯤 감겨도 여전히 매력적인 눈동자로 날 마주 보며 배시시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그리고 몸을 살짝 굴려서 더욱 내게 밀착하자, 커다란 가슴이 내 가슴 옆을 짓눌러서.

    "으햐응! 응냐응······."

    반사적으로 물건이 움찔거리며 디아나의 얼굴을 때리고 말았다.

    살짝 얼굴이 떠올랐다가 다시 내 다리 사이에 얼굴을 박고도, 다행히도 디아나는 일어나지 않아 줬지만.

    "응. 미안. 깨워서 미안. 조금 더 자도 돼."

    "네에······."

    나는 그런 천사님의 머리를 끌어안아서 내 가슴 위에 얹은 후, 자유로워진 오른손으로 인벤토리에서 마법구를 꺼냈다. 언젠가 디아나가 만들어준 영상 촬영용 마법구를.

    원래 이런 장면은 영상으로 남겨줘야 하는 것 아니겠어? 굳이 야한 의미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말이야.

    "디아나. 맛있어?"

    "음냐. 음냐."

    내 짓궂은 질문에, 디아나는 마치 대답하는 것처럼 입술을 오물오물 움직였다.

    그 입술에 맞아있는 부위가 부위인 만큼 야한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 되겠지만, 저 천진난만하게 잠들어 있는 얼굴을 보고 있자면 야한 생각보다는 귀엽다는 생각이 더 먼저 들어서, 나는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됐다.

    저 나이로 천진난만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외모라니. 디아나, 무서운 아이······!

    "어머."

    그리고 내가 그러고 있자 천사님도 무슨 일인가 싶었는지 시선을 아래로 내리시고는, 마찬가지로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어제 천사님 자신이 마틸다랑 둘이서 이러고 있었다는 얘기를 해줬을 때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어쩔 줄을 몰라하셨는데.

    역시 레이아의 눈에도 디아나의 모습이 그렇게 야하게 보이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구원 씨, 손에 들고 계신 건 뭔가요?"

    "응? 아, 이거? 영상 찍는 도구."

    그러고 보니 레이아는 처음 보는 거였나?

    "어머, 그게······그럼······후훗. 구원 씨. 너무 짓궂으세요."

    자기 전에 디아나한테 은근슬쩍 디스를 당했는데도, 우리 천사님은 쌤통이라는 표정을 짓기는커녕 오히려 날 말리려고까지 했다.

    이것이 바로 천사님의 위엄이라는 건가.

    뭐, 애초에 정말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니까. 그저 부끄럽기만 했을 뿐 디스 당했다는 감각조차 없으신 건지도 모른다.

    "아응······당시인······음. 쪽. 쪽."

    다른 한 명은 다리 베고 자게 했으면 또 똑같은 사고를 벌였을 것 같지만.

    얘는 혹시 기본 모드가 핑크빛 모드인 게 아닐까? 잘 때조차 이런다니.

    "아니. 어제 그렇게 당당하게 자기라면 절대 안 그럴 것처럼 말했으니까, 이렇게 찍어서 보여주는 것도······."

    "안 돼요. 얼마나 부끄러우시겠어요."

    아무튼 천사님이랑 둘이서 속닥속닥 이런 얘기를 나누고 있자니, 뭔가 아이를 접하는 태도를 두고 아옹다옹하는 부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디아나는 아이가 아니지만. 오히려 여기에서 제일 압도적으로 나이가 많지만.

    "후훗."

    그리고 그런 느낌은 받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천사님도 포근한 미소와 함께 내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춰줬다.

    "또 둘이서만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해?"

    나도 고개를 돌려서 레이아의 뺨에 입을 맞춰주려고 한 순간, 갑자기 우리 사이에 끼어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어제 낮에 자기만 날 독차지했다는 이유로, 혼자 내 몸을 베지 않고 레이아의 옆에서 잠을 잤던 사라였다.

    "응. 아니. 내 다리 사이에."

    "다리 사이? 아아······."

    그저 흐뭇한 미소만 지었던 레이아와 달리, 사라는 디아나의 얼굴을 보고서는 뭔가 말로 형용하기 힘든 애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그러고 보니 사라 얘는 취향이······.

    "흥분하지 마라."

    "흐, 흥분은! 누가 이런 걸로 흥분한다는 거야?!"

    누구긴 누구야. 너지 이것아. 흥분해서 소리까지 지르기는.

    그나마 도중부터 자기도 너무 소리가 컸다는 걸 알았는지 음량을 줄였지만, 이미 사라가 첫 소절을 내뱉은 순간 다른 애들도 전부 눈을 뜨고 말았다.

    내 목덜미에 키스를 해대던 마틸다도, 이제 곧 출근 시간이니 어차피 슬슬 일어날 시간이었던 레이첼 누님도. 그리고······.

    "아음. 아침부터 무슨 소란······인······가아······."

    내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디아나도.

    눈을 뜨면서 반사적으로 내 물건에 그 말랑말랑한 뺨을 한 번 더 비빈 디아나는, 자신의 뺨에 닿은 감촉이 묘하게 딱딱하다는 사실에 위화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뺨을 댄 자세 그대로 굳어진 디아나는 잠시 후 마치 녹이 순 기계처럼 끼긱끼긱하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서 자신이 베고 있던 것을 확인한 후, 순식간에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는 또다시 끼긱끼긱하고 고개를 위로 들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나와 레이아, 사라의 시선을 확인한 다음.

    "이, 이건 아닐세! 보지 말게! 이쪽 보지 말게!"

    쫙 편 손바닥을 앞으로 힘껏 내밀며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거기까지는 참 귀엽고 흐뭇한 광경이었지만, 문제는 디아나의 자세가 무척이나 낮았다는 것에 있었다.

    그리고 내 다리 사이에서 낮은 자세로 손바닥을 앞으로 쭉 내미니, 그 손이 도착한 곳은 당연히······.

    "크허억?!"

    지금까지 몇 번이나 확인하려다가 무서워서 포기한 거였는데, 그걸 설마 이런 식으로 확인하게 될 줄이야.

    아이언 페니스라는 스킬, 알의 방어력도 강화해주는 스킬이었구나.

    ······알을 얻어맞았다는 정신적 충격까지 막아주지는 못했지만.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32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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