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1026화 (1,010/1,205)
  •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26화 >

    흔히 알려진 협상 기술 중에 이런 기술이 있다.

    원하는 가격이 있으면 우선 그 가격의 배를 부른 후 상대방에게 못 이기는 척 조정하면서 원하는 가격으로 맞춰가라고.

    우선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제시 당한 후에 그 절반의 가격을 제시하면, 그것이 설령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다소 높은 금액이라고 할지라도 그냥 넘어갈 수 있게 된다는 거다.

    그리고 그건 우리 애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어서, 레이에게 사도 임명을 해야 할 것 같다는 내 의견은 깜짝 놀랄 정도로 쉽게 받아들여졌다.

    사도 임명을 적극 활용하라는 여신님의 말씀에 비하면 그 정도는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진 거겠지.

    게다가 지금 이 상황도 내 편을 들어줬다.

    지금 시각은 밤. 그것도 한밤중이었다.

    밤이 되자마자 구미호 마을로 건너와서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으니까 말이야.

    원래라면 한참 잠을 자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고, 여신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잠시 더 얘기를 나누던 우리의 의견 역시도 일단 얘기를 일단락하고 잠부터 자자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래서 다 같이 지하실을 나서는 와중에, 나는 은근슬쩍 사라의 가는 허리를 팔로 감고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레이한테 사도 임명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제일 기분 나빠 보였던 건 사라였으니까. 라는 이유로 그런 건 아니었다.

    아니. 그야 사라가 제일 감정적으로 의견을 표출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다지 기분 나빠 보이지 않았다.

    사라 역시도 마구잡이로 사도 임명을 하고 다니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고, 아니면 오랜만에 나와 보내는 밤에 괜히 기분 나쁜 티를 내면서 분위기를 망치는 건 싫다고 생각해 참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 오늘 밤은 바로 사라의 차례니까 말이야.

    7계층에서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오랫동안 차례를 신경 쓰지 않으며 지냈지만, 그래도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고.

    7계층에 내려오기 전날 밤이 분명 바넷사와 둘이서······는 아니고 디아나랑 셋이서 보냈지. 아무튼 바넷사의 차례였으니,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차례는 사라한테 돌아왔다는 얘기다.

    "흐응. 그래도 이건 제대로 기억하고 있네?"

    사라의 가늘면서도 탄력 있는 허리를 잡아서 내 쪽으로 끌어당기자, 한순간에 기분이 급상승한 사라가 진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몸을 밀착시켰다.

    "야. ‘그래도’ 라니. 너 오빠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냐? 그럼 이것도 기억 못 할까 봐?"

    "흥. 다른 여자랑 노는데 정신 팔려서 까먹을 줄 알았지."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사라가 진심이 아니라는 건 누가 봐도 명확했다.

    얘가 진심으로 이런 소리를 하면 둘 중 하나거든.

    진심으로 살기를 풀풀 풍기거나, 아니면 성벽이 자극받아서 흥분하고 있거나.

    "얘가 큰일 날 소리 하네. 나중에 실비아한테 물어봐라. 내가 너희 생각하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섹스해달라고 들이미는 여자들을 차례차례 물리치는 그 얘기를 구구절절 듣고 있으면 너도 눈물을 참지 못하고 주룩주룩 흘리며 성자님의 인내심을 찬양해 마지

    않을······."

    "들이미는 여자가 그렇게 많았어?"

    살짝 과장을 섞어서 무용담을 늘어놓자, 사라가 조금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야. 야. 갑자기 그렇게 진지해지면 내가 머쓱해지잖아.

    "뭐······그럭저럭."

    정확히 말하자면 헬레나랑 레이뿐이었고, 그마저도 제대로 거절한 건 헬레나뿐이었다. 결국 레이가 들이밀었을 때는 실비아랑 같이 입으로 봉사 받아버렸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대답이 궁해진 황급히 얘기의 주제를 돌릴 필요성을 느꼈다.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중요한 건 내가 머릿속의 달력에 하루하루 X표를 치면서 너랑 잘 날만을 기다려왔다는 사실이지."

    탄력 있는 멋진 엉덩이에 살짝 손을 얹으며 그렇게 말하자, 사라도 기분이 나쁘진 않은지 엉덩이에서 손을 치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사라도 그동안 얼마나 참아왔는지 새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실비아는? 매일 같이 자지 않았어?"

    "그건 그거. 이건 이거지. 아무튼 각오해. 오늘 밤은 못 잘 테니까. 시간도 별로 없으니까 밤사이에 그동안 해보고 싶은데 참았던 거 다 해볼 거야."

    "······그냥 시간이 부족하면 굳이 밤에 다 하려고 할 필요 없이 내일도 이어서 하면 되잖아. 오랜만에 왔으니까."

    그래서 아예 엉덩이 위에 올려놓은 손에 힘을 주며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자, 사라 역시도 내 욕망을 그대로 받아줬다.

    뭐, 오랜만에 이런 말을 하는 게 부끄러운지, 아니면 앞에서 가고 있는 다른 애들한테 들릴까 봐 부끄러운지, 살짝 시선을 옆으로 돌리며 얼굴을 붉히기는 했지만.

    "아니. 나도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일까지는 좀 그렇잖아. 할 일도 있고. 그걸 내일모레까지 다 끝내려면······."

    그런 사라의 뺨에 가볍게 키스를 해주면서 그렇게 말하자, 갑자기 사라가 고개를 홱 돌려서 내 쪽을 쳐다봤다. 그것도 왠지 엄청 낭패했다는 표정으로.

    "내일모레까지라니? 혹시 시간 별로 없다고 한 거, 오늘 밤 얘기가 아니라 여기 있을 시간을 말하는 거야?"

    "으, 응? 내가 말 안 했나? 일이 있어서 모레에는 저쪽으로 다시 넘어가야 돼."

    은사모의 비밀 회동이 사흘 후에 있을 거라고 했으니까 말이야.

    저쪽으로 건너갈 수 있는 건 밤 시간밖에 없으니, 늦어도 이틀 후의 밤에는 저쪽으로 넘어가야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말 안 했어 이 바보야!"

    어차피 사라와의 밤은 문제없이 치를 수 있으니 부담 없이 말했지만, 어째선지 사라는 갑자기 날 엄청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생각해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문제였다.

    오랜만에 느긋이 이렇게 같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틀 만에 다시 가야 한다고 갑작스럽게 통보를 받은 거니까.

    "우리 사라. 그렇게 오빠랑 오래 같이 있고 싶었구나? 그래도 미안해. 급한 일만 처리하면 또 올 테니까. 그리고 어차피 오늘 밤은 문제없이 사라 너랑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당연히 오래 있고 싶지! 그리고 그런 문제가 아니야 이 바보야!"

    그래서 나는 당장의 일. 오늘 밤에만 주목하자면서 사라를 다독여주려고 했지만, 그게 더 역효과가 일어났는지 날 쏘아보는 사라의 눈빛이 더 강렬해졌다.

    어째서지? 그래도 같이 밤을 보낼 수 있는 만큼 다른 애들보다는 낫잖아?

    "하아. 이 바보는 진짜. 하아아······."

    그런 눈빛으로 사라를 쳐다보자, 사라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들으라는 듯이 한숨을 푹푹 내쉬기 시작했다.

    "왜, 왜? 왜 그러는데?"

    "바보. 바보. 바보 멍청이!"

    "야. 너. 바보도 뒤에 오빠 붙일 때만 하라고 했는데 멍청이까지?!"

    "멍텅구리 오빠!"

    당황해서 말도 안 나오고 있는 내게 메롱까지 하면서 추가타를 먹인 후, 사라는 획하고 몸을 돌려서 빠른 발걸음으로 앞서가던 다른 애들에게 다가갔다.

    야! 너 거기 안 서! 오빠만 붙인다고 다 용서되는 게 아니야 이것아!

    그런 사라의 엉덩이라도 때려줄 생각으로 황급히 뒤쫓아 간 나였지만, 이어지는 사라의 말에 발걸음을 우뚝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다 같이 자죠?"

    그래. 저 생긴 것만 차갑고 속은 착해 빠진 녀석은 이틀 후면 다시 가버릴 내 하룻밤을 맘 편히 독점하고 즐길 수 있을 성격이 못 되는 거였다.

    쟤도 진짜 손해 보고 사는 성격이라니까. 생긴 건 완전 차가운 도시 여자 스타일이면서.

    "음?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가?"

    "저 바보. 이틀 뒤에는 돌아가야 한데요."

    물론 갑작스러운 사라의 말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어지는 사라의 대답에 바로 이해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사라 씨. 괜찮으신가요?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괜찮아요. 어차피 조금······어쩌면 조금 많이······미뤄지는 것뿐이니까요."

    역시나 우리 천사님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사양하려고 했지만, 이미 한 번 결심한 사라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사실 중간에 살짝 흔들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저 정도는 애교로 넘어가 주자.

    그나저나 저렇게 말한다는 건······.

    "어? 사라야? 그럼 혹시 오늘 밤만이 아니라 내일 밤도······."

    "당연하지 이 바보야."

    이, 이럴 수가! 아니. 다 같이 자는 게 싫다는 건 아니야. 전혀 아니고말고.

    오랜만에 사라랑 자는 걸 기대하고 왔다는 것 또한 사실이어서, 이틀 내내 다 같이 잔다는 건 이번에는 아무하고도······.

    "흥. 그렇게 하고 싶으면 다음에는 시간 넉넉히 잡고 와. 이 바보야."

    허망한 표정을 지으며 사라의 엉덩이로 손을 뻗어봤지만, 사라는 그런 내 손을 이번에는 매몰차게 ‘탁’ 쳐내고 말았다.

    뭐, 그러면서도 결국 침대에 가서는 내게 찰싹 달라붙어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지만.

    "야. 역시 한 침대에서 이 정도 인원이 다 같이 자는 건 힘들지 않을까."

    장소가 바뀌어 내 방의 침대. 그 위에 대자로 누워서,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힘없이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우리 애들을 안 보고 천장을 보고 있는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단지 움직일 수 없는 것뿐이다.

    "시끄러워. 가만히 있어."

    그리고 힘없이 흘러나온 내 의견은 사라에 의해 가볍게 묵살되고 말았다.

    지금 침대 위의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랬다. 가운데에 내가 대자로 누워서 왼쪽 팔을 사라가, 오른쪽 팔을 레이첼 누님이 팔베게로 쓰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허벅지는 레이아가, 왼쪽 허벅지는 마틸다가 베개로 쓰고, 내 몸 위에는 디아나가 올라타고 있기까지

    했다.

    참고로 말하자면 바넷사는 이렇게 될 줄 알았는지 미리 도망갔다.

    일단은 "이틀 후에 출발하셔야 한다면 저는 그 준비를 해놓겠습니다."라는 명분을 가지고 집사 일을 하러 갔지만, 그거 분명 이렇게 될 줄 알고 도망간 거야.

    두고 봐. 아마 밤새 이 방으로 안 돌아올걸.

    뭐, 바넷사까지 있었으면 내 몸 위에 더 올라탈 곳도 없어서 진짜 지옥도가 펼쳐졌을 것 같으니, 오히려 도망가준 게 고맙기까지 했지만.

    아무튼 내 미약한 저항은 가볍게 묵살되어 버려서, 나는 정말로 이대로 자게 될 처지가 되어버렸다.

    이런 식으로 자는 게 처음도 아니면서 인제 와서 뭐가 문제야? 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했다.

    아니. 그게 말이지. 나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라랑 섹스할 생각으로 가득했잖아?

    게다가 오랜만에 우리 애들의 부드러운 몸의 감촉이나 향긋한 향기가 전신을 가득 메우고 있는 거잖아?

    잡념 때문에 잘 수가 없다고. 뭐야 이 고문.

    특히나 위에 올라탄 디아나의 다리가 내 다리 사이까지 뻗어있는데, 지금은 마나로 물건을 죽여놓고 있으니 망정이지, 마나를 끊는 순간 바로 발기해서 저 말랑말랑한 다리 사이에 끼일걸?

    물론 바지를 입고 있기는 하지만, 저런 천 옷 따위로 내 물건을 가로막을 수는 없지.

    아예 진짜로 발기시켜서 다리 사이에 껴버릴까?

    그러면 디아나가 깜짝 놀라서······아니. 아까 구미호 마을에서 그렇게 자극하기도 했으니까 어쩌면 또 남들 앞에서 내 물건을 다리 사이에 끼웠다는 사실에 흥분해서······.

    그런 잡념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지만, 그러면서도 어느샌가 나는 잠들었던 모양이다.

    역시 긴 여행으로 피로가 쌓였던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다시 정신을 차린 건, 레이첼 누님이 출근을 위해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어, 어머. 구원아. 미안. 깨워버렸니?"

    "아니. 뭐, 응. 괜찮아."

    사실 누님 때문에 깼다는 느낌보다는 뭔가 다른 느낌 때문에 깬 것 같은데.

    잠이 덜 깨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나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깨어났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으, 응. 그러니? 미안. 조금 더 자렴."

    누님은 그런 내가 귀엽다는 듯이 미소 지으면서 내 눈꺼풀에 가볍게 입술을 맞춰주고, 조용히 하지만 빠르게 방을 나섰다.

    왠지 모르게 당황한 것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내가 자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게 그렇게 미안했던 걸까? 이따가 가서 괜찮다고 해주자.

    당장 쫓아가서 괜찮다고 해주면 더 좋겠지만, 그러기에는 지금 내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두 팔 두 다리를 봉인되어 있으니까 말이야. 쫓아가기는커녕 일어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얘기다.

    진짜 어제는 용케 이러고 잠들었네. 디아나 다리 사이에 물건을 끼울까도 진지하게 고민했었······응?

    피식 웃으면서 잠이 덜 깨서 멍한 머리로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나는 드디어 일어날 때부터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어, 어째선지······하반신이 시원한데? 정확히 말하자면 하반신 전체는 아니고, 특정 부위만.

    간신히 고개만 들어서 아래쪽을 힐끔 보자, 역시나 바지와 속옷이라는 봉인에서 해방된 내 물건이 늠름하게 우뚝 서서는 하늘을 향하고 있는 게 보였다.

    뭐, 뭐야 이거?! 뭐지?! 뭐가 어떻게 된 거지!?

    혹시 내가 잠결에······아,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내 팔은 둘 다 봉인되어 있었는데?!

    아, 아니.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우선은 저것부터······.

    그렇게 생각하며 오른팔을 움직이려고 한 순간, 나는 새삼 내 몸 위에 아무도 올라타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레이첼 누님이 일어나면서 자기가 있던 자리로 디아나를 옮겨준 걸까?

    디아나는 지금 내 오른팔을 베개 삼아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즉, 내 양팔은 여전히 봉인 상태라는 얘기였다.

    어, 어라? 잠깐만. 그럼 이게 어떻게······나 설마 누가 일어날 때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야?

    아니. 하지만 이 상태로 누가 잠에서 깨어나기라도 하면 분명······.

    "으응······구원 씨이······."

    잠이 확 깨서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보는 나였지만, 명확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새로운 사건까지 내 물건을 덮쳐왔다. 천사님의 입술이라는 초대형 사건이.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26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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