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22화 >
여신님께서 일부러 그렇게 만드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던전 바깥쪽과 7계층의 초입은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 거의 같아서, 던전 밖으로 나온 지금도 여전히 하늘은 어두웠다.
그런 시간이다 보니 아무리 워커홀릭인 우리 레이첼 누님이라고 할지라도 안내원 석을 지키고 있지는 않아서, 우리는 아쉽지만 다른 안내원 누님께 귀환 보고를 마치고 저택으로 돌아가게 됐다.
······적어도 레이첼 누님이라면 그간 있었던 내 고생을 알아줬을 텐데.
아니. 딱히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정말로 상관없지만 말이야!
아무튼 오랜만에 맛보는 도시 밖의 공기를 차분히 음미할 틈도 없이, 우리는 황급히 저택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저택에서도, 우리를 반겨주는 건 야간 근무를 서고 있는 메이드였다.
또 한 명의 워커홀릭은 그래도 날 반겨주지 않을까 살짝 기대했지만, 역시 이런 시간이면 아무리 바넷사라도 자고 있나.
"······어서 오십시오. 구원 님."
그렇게 생각하며 지하로 가기 위해 통로의 모퉁이를 돈 그 순간, 그곳에 조용히 서 있던 바넷사가 평소와 다름없는 포커페이스로 날 맞이해줬다.
깜짝이야. 얘는 무슨 지박령도 아니고 왜 하필 여기서 이러고 기다리고 있는 거야?
부딪힐 뻔한 그 순간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조금 가슴을 진정시키고 보니 이건 이거대로 나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살짝 기대를 벗어나는 환영 인사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아무리 바넷사라도 이렇게 오랜만에 보면 포커페이스가 무너져서는 "구, 구원니이이임!"하고 안겨들 줄 알았거든.
그래도 막상 보니까 이 기대를 벗어난 모습이 더 좋아 보이는 거 있지. 바넷사답잖아?
"응. 다녀왔어."
"응으읍?!"
마침 모퉁이를 돌다가 부딪힐 뻔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허리에 팔을 감고 그대로 그 입술에 키스를 해줬다.
제아무리 바넷사라도 깜짝 놀랐는지 그 차가운 눈동자가 살짝 커지기는 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그 부드러운 입술 틈 사이에 혀까지 집어넣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하면 밀쳐낼 줄 알았는데.
바넷사 씨. 어째서 긴장했던 몸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하시는 건가요? 혹시 유혹하는 거야?
살짝. 아주 살짝 고민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갈 때가 아니었다.
아쉽지만 적당한 타이밍에 딥 키스를 마무리하고, 나는 바넷사의 입술에서 입을 뗐다.
"······하아. 갑자기 뭘 하시는 겁니까."
입술이 떨어지고 조금 지나서, 정확히는 우리의 입술 사이에 연결되어 있던 가는 타액의 끈이 완전히 끊어지고 나서, 바넷사는 손등으로 가볍게 입술을 훔쳤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몸에서는 힘이 축 빠져 있어서, 그 등은 뒤로 살짝 휜 채 허리에 감긴 내 팔에 자신의 체중을 전부 맡기고 있었다.
무뚝뚝한 말투와는 달리, 오랜만에 맛보는 키스에 힘이 완전히 풀어져 버린 모양이었다.
"그 말투는 너무하지 않아? 오랜만에 보는 내 여자한테 이 정도도 못 해?"
"지금은 구원 님의 여자가······."
"지금은 내 여자잖아?"
단골 멘트인 "지금은 집사입니다."를 시전하려고 했던 바넷사였지만, 나는 빠르게 그 말을 끊고 바넷사의 몸쪽을 눈짓했다.
얘가 아직 잠이 덜 깼나.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라는 의미를 담아서.
"············읏!"
눈치 빠른 바넷사는 가까운 거리에서 보낸 내 눈짓을 정확히 읽고 자신의 몸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나서야 자신의 옷차림이 엄청나게 흐트러져 있음을 깨달았는지 황급히 내게 떨어져서는 옷차림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아니. 실은 옷매무새가 엉망이었거든. 그 단정함의 대명사인 바넷사가 말이야.
심지어 셔츠의 버튼마저 한 칸씩 어긋나 있었으니, 바넷사가 얼마나 황급히 옷을 걸치고 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도 그 짧은 시간 동안 세수를 마치고 머리까지 정돈하고 온 건 대단하지만.
하지만 저거, 누가 봐도 자다가 내 기척을 감지하고 일어나서는 황급히 옷을 걸치고 온 거잖아?
그런 애가 "지금은 집사입니다." 같은 말을 하려고 하다니. 얜 진짜 대체 얼마나 일에 중독되어 있는 거야.
"딱히 그 옷차림 그대로라도 상관없는데. 덜렁쟁이 어필이 평소 모습과의 갭으로 남심을 자극해서 귀엽······."
"시, 시끄럽습니다."
······어, 어? 지금 나한테 시끄럽다고 한 거야?! 너무해! 난 그냥 귀엽다고 칭찬해준 것뿐인데!
그런 의미를 담아서 바넷사를 바라봤지만, 바넷사는 "지금은 집사가 아니니 이 정도로 끝내준 걸 다행으로 여기십시오."라고 말하는 것 같은 눈빛으로 맞받아쳤다.
확실히. 집사의 핀잔이 아니라 내 여자의 투정이라면 나도 할 말이 없군.
쳇. 얘는 자기 스탠스를 너무 잘 이용한다니까.
"아무리 재회의 인사라도 너무 뜨거운 거 아냐? 우리한테는 키스도 안 해줬으면서."
그렇게 바넷사와의 눈싸움이 일단락됐을 무렵, 이번에는 뒤에서 사라의 핀잔이 들려왔다.
헛! 내 기척을 감지하자마자 황급히 뛰쳐나온 바넷사의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잠깐 뒤에 있는 애들의 존재를 잊고 있었어!
"아, 아니! 이건 그러니까! 그게 말이지!"
"뭘 그렇게 당황하는 거야? 농담이야."
나는 팔을 이리저리 휘저으면서 변명을 늘어놓으려고 했지만,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격에 그 어떤 변명의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정말로 농담이기는 했는지 사라도 장난스러운 미소만 짓고 있어서 다행이기는 했지만.
깜짝 놀랐잖아. 네가 하면 장난이 장난으로 들리지 않는다고. 다른 여자랑 얽힌 문제는 특히나.
그리고 생각해보니까 말이야.
"생각해보니까 오늘만 안 했다뿐이지 너희랑도 재회의 키스는 했잖아! 특히 사라 너는 제일 진하게 했으면서! 아예 재회의 키스로도 모자라서 재회의 섹······!"
"그러니까 농담이라고 했잖아, 이 바보야!"
말 한마디 더 했다가 괜히 옆구리만 한 차례 꼬집히게 된 나였다.
아무튼 그렇게 바넷사와의 재회까지 일단락되고 나서,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목표는 지하······가 아니라 실은 레이첼 누님의 방이었다.
아니. 아예 바넷사도 안 만났다면 또 모를까, 바넷사까지 합류했는데 레이첼 누님만 안 보고 바로 용무를 보러 가는 건 왠지 누님만 따돌리는 것 같아서 미안하잖아.
그래서 다른 애들은 먼저 지하실에 가 있도록 하고, 나만 이렇게 혼자 레이첼 누님을 보러 왔다는 얘기다.
아마 자고 있겠지만, 오랜만에 내 얼굴을 보는 거니 깨워도 화내진 않으시겠지.
아니. 뭐, 사실 별거 없는 이유로 깨워도 누님이 화내실 것 같지는 않지만.
몰래 방문을 열고 그 안을 엿보니, 역시나 레이첼 누님은 침대에 누워서 잠들어 계셨······.
"으응······응······."
으, 응? 뭐지? 잠꼬대치고는 묘하게 색기 넘치는 이 소리는. 서, 설마······.
자기도 모르게 은신까지 발동하고 나서,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보이는 방 안에 그림자 이동을 사용해서 넘어갔다.
그리고 침대 근처로 가보니, 역시나 이불 아래에서 레이첼 누님의 몸이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심지어 이불 위로 보이는 누님의 얼굴은, 인벤토리에 넣지 않고 저택 옷장에 넣어뒀던 내 옷에 파묻혀있었다.
거기 있는 건 전부 깨끗이 빤 거니까 딱히 내 냄새 같은 건 안 묻어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아무튼 그렇게 내 옷에 코를 박고 하반신에 손을 가져가서 꼬물꼬물 움직이는 누님의 모습을 보고, 나는 잠시 사고가 정지했다.
이거 어쩌지. 방해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아니. 여기서 내가 모습을 드러내는 게 방해가 될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야. 오히려 도움이 됐으면 도움이······그, 그야 물론 지금 그런 걸 할 때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말이야! 그럼! 알고 있고말고!
지금 내 바지 앞이 이렇게 된 건 어디까지나 생리 현상이고,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은 전혀······아니. 조금밖에 하지 않았어!
"저······누님?"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이성을 제어하기 힘들어질 것 같아서, 나는 고민 끝에 결국 내 존재를 드러내기로 했다.
이걸로 누님도 자위를 멈추고 재회의 기쁨을······그렇게 생각했지만.
"아아······구원이가아······."
어째선지 누님은 놀라는 척도 안 하고 요염한 눈길을 내게 보내며 내 목에 팔을 감았다.
그리고 그대로 날 당겨서 침대에 눕히더니, 내 위로 올라타서는 목덜미에 코를 박고 킁킁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킁킁. 하으······진짜 같은 냄새애······."
녹아내릴 것 같은 목소리로 그런 말을 중얼거리면서, 누님은 허리를 꼬물꼬물 움직여서 위로 우뚝 텐트를 치고 있는 내 바지 앞섶에 자신의 하반신을 비벼대기 시작했다.
거기에 위쪽은 이제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혀로 할짝할짝 목덜미를 핥기까지 했다.
"정말로 진짜같아아······."
아니. 누님. 저 진짜 맞는데요. 진짜가 아니면 대체 뭐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거기에 이 잠이 덜 깬 것 같은 몽롱한 목소리까지. 혹시 이 누님······.
"저······레이첼 누님?"
"으응?"
"이거 꿈 아니야."
"············."
내가 그렇게 말한 순간, 꼬물꼬물 움직여대던 누님의 모든 동작이 일제히 우뚝 멈췄다.
그리고 마치 감촉을 확인하듯이 내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콕콕 찔러보시더니.
"으헿?! 헿?! 하으?!"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귀여운 외침과 함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 이불에 다리가 감겨서는 그대로 침대 밑으로 추락하려고 했다.
뭐, 그 전에 내가 그 몸을 끌어당겨서 어떻게든 추락만은 면했지만.
"오랜만이야."
"으, 으응······."
끌어안은 자세가 되어서 인사를 건네봤지만, 누님은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도 필사적으로 눈을 돌리며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왜 그래?"
뭐, 이유야 묻지 않아도 명확했지만, 나는 굳이 물어보기로 했다. 그러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았으니까.
"보, 보지 마······."
"보지 말라는 건 너무하지 않아? 이렇게 오랜만에 보는 건데."
"그, 그러면 조금만 봐······."
처음에는 아예 두 손으로 얼굴까지 가렸던 누님이었지만, 이어지는 내 말에 결국 손가락 사이를 살짝 벌려서 정말로 조그만 얼굴을 보여주셨다.
진짜 이 누님은 왜 이렇게 귀여우신 거야. 생긴 건 완전히 이지적인 커리어 우먼인데.
"그렇게 손으로 코까지 가리고 있어도 괜찮아?"
그 모습이 너무 귀여우신 나머지, 나는 괜히 더 누님을 놀려주고 싶어졌다.
"응? 코는 왜······저, 정마알!"
내 의도를 바로 파악하지는 못하고 아주 잠깐 고개를 갸웃했던 누님이었지만, 역시나 이해력이 빠른 누님답게 곧 내 의도를 파악하셔서는 더욱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몸을 움츠리셨다.
이런 너무 놀렸나.
"괜찮아. 이해해. 나도 레이첼 냄새 맞는 걸 좋아하는걸. 이렇게 좋은 향기가······."
"그만해! 정말 그만해! 미안해! 누나가 다 잘못했어!"
조금은 커버해줄 생각으로 나도 누님의 정수리에 코를 파묻고 향긋한 샴푸 향을 들이켰지만, 어째선지 누님은 이제 사과까지 하시기 시작했다.
"아니. 진짜로 괜찮은데······."
그런 중얼거림은 누님의 귀까지 닿지 않았는지, 이제는 아예 내게서 떨어져서는 뒤를 돌아 침대에 얼굴을 박고 머리 위로 이불을 뒤집어쓴 채 어쩔 줄을 몰라하는 누님이었다.
누님. 다 좋은데요. 그러고 계시면 제 쪽에 엉덩이만 내밀고 있는 자세가 되어서 괜히 더 낭심, 아니. 남심을 자극하게 돼요.
"레이첼. 진정해. 난 진짜 괜찮······."
"하읏!?"
손을 뻗어서 쓰다듬으며 위로를 해주려고도 해봤지만, 하필 만진 곳이 좋지 않았는지 누님은 이제 몸을 바들바들 떨기까지 하셨다.
으음. 아무리 만질 곳이 여기밖에 없었다고는 해도 엉덩이를 쓰다듬는 건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었나.
일부러 그런 거 아니냐고? 하핫. 그럴 리가.
좋아. 이렇게 된 이상 조금 강경하게 나가보기로 할까.
"레이첼. 정말로 나랑 얼굴도 안 볼 거야? 이렇게 오랜만에 봤는데?"
그래도 이번 말은 꽤나 효과적이었던 모양이다.
누님은 몸을 한 차례 움찔하고 떨더니, 이불 아래에서 쓰읍 하아 하고 크게 심호흡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못 본 사이에 왜 이렇게 짓궂어졌니?"
그리고 이불 아래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와서는, 고개만 살짝 돌려서 토라진 표정으로 내 얼굴을 엿봤다.
"그러는 레이첼은 더 귀여워졌네."
"정말! 누나한테 정말 그러기니!"
그 후로도 조금 더 장난을 주고받은 다음에야, 누님은 겨우 내 냄새에 유혹되어 잠결에 자위하는 모습을 들켰다는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여기에? 다른 사람들은?"
그리고 진정하신 누님은, 겨우 내가 혼자 여기에 있다는 것에서 위화감을 느꼈는지 그런 질문을 던지셨다.
"아, 지하에서 기다리고 있어. 사실 여신님을 부르려고 온 거라서. 나는 오랜만에 누님 얼굴 좀 보려고 잠깐······."
"그러면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잖니! 어서 가야지!"
"아니. 괜찮······."
"괜찮긴 뭐가 괜찮니! 누나는 괜찮으니까."
그리고 역시나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나와 원래부터 이 세계에서 살던 사람들은 여신님 강림에 대한 마음가짐이 다른 건지, 누님에게 등을 떠밀려 나는 파자마 차림의 누님과 함께 황급히 지하실로 향하게 됐다.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22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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