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20화 >
레이아의 명안은 다 같이 우울해져 있었던 우리의 표정을 순식간에 밝게 만들기에 충분한 제안이었다.
그래. 여신님이라면 분명 어떻게든 해주실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할 정도인데, 처음부터 여신님의 세계에서 나고 자라며 여신님을 믿어왔던 다른 애들은 오죽할까.
"그럼 레이아! 지금 당장 해요! 할 수 있죠?"
조금 전까지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던 사라마저도, 확연히 표정이 밝아져서는 여신 강림을 재촉했다.
전에는 한 번 강림하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던 여신님이지만, 이제는 레이아도 성녀다.
편법이 아닌 정식으로 여신님을 강림시킬 수 있게 된 만큼, 스킬의 쿨타임도 확연히 줄어서 1개월이 됐다.
뭐, 그래도 여전히 길다면 긴 쿨타임이지만, 어차피 우리한테는 마틸다도 있으니까.
마틸다도 레벨은 이미 진작에 250에 도달했고, 이제 성녀가 되기 위해 필요조건만 충족되면 언제든 성녀가 될 수 있다.
하필 그 필요조건이라는 게 대사제의 마음가짐 혹은 성기사의 마음가짐이라는 패시브 스킬이 만렙이 되는 것이라서, 중간에 전직을 한 번 한 적 있는 마틸다에게는 매우 불리한 조건이었지만.
그래도 진작에 성녀 후보로 거론됐던 마틸다인 만큼 원래부터 성기사의 마음가짐 레벨이 무척이나 높아서, 그런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성녀가 될 수 있는 날은 그리 머지않았다.
그렇게 되면 내 곁에는 두 명의 성녀가 있게 되니, 여신 강림에 필요한 한 달이라는 쿨 타임도 그렇게까지 긴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겠지.
아무튼 지금은 그런 미래의 일보다는 우선 당장 여신님을 강림시키는 게 중요했다.
이전에 여신님을 강림시키고 벌써 1개월이 훌쩍 지났으니, 마음만 먹으면 여신님은 언제든지 불러낼 수 있는 상황.
그러니 할 수 있냐고 물어보는 사라의 말은 전혀 잘못된 게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사라에 뒤이어 레이아에게 여신 강림을 부탁하려고 했던 바로 그 순간.
"절대! 저어얼! 대! 안 되네!"
어째서인지 디아나가 맹 반대를 했다.
"어째서?"
"장소를 생각하게!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는 겐가!"
"아, 그런가. 하긴. 전쟁신의 영역에서 여신님을 강림시키는 건 아무래도 좀 그렇지?"
특히나 여기는 남의 눈을 피해 숨어 사는 구미호들의 마을. 그런 곳에서 여신님을 강림시켰다가는 분명 대대적인 공습이 시작될 거다.
아무리 마을이 결계로 보호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 방벽 같은 게 아니니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괜히 구미호들한테 폐 끼치기도 싫고.
"그것뿐만이······그, 그렇네! 바로 그걸세!"
그렇게 생각하고 납득한 나였지만, 아무래도 디아나가 반대한 이유는 그것 때문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도중부터 애써 아닌 척하려고 하고 있지만, 이미 늦었다고.
"그것뿐만이 아니라니?"
"이곳의 처자들이 얼마나 심성이 고운지 아는가? 그런 처자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응. 그리고? 더 있잖아?"
"무, 무슨 말을 하는 겐지! 이 몸은 전혀 모르겠구먼!"
"정말로?"
"으······."
필사적으로 모른 척하는 디아나였지만, 한 번 문 먹이를 놓칠 내가 아니었다.
나는 디아나가 다시 입을 열 때까지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봤다.
디아나도 처음에는 똑같이 눈싸움을 하려고 했던 모양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눈에서 점점 힘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결국에는 홱 하고 눈을 피하며 옹알옹알 뭔가를 중얼거렸다.
"······님이 ······림하시면······."
"응?"
"여신님이 강림하시면 어떻게 되는지,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여신님이 강림하시면? 그야 주위에 신성한 기운이 퍼져 나가고, 그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지게 되지.
그러니까 아까 그런 말을 한 거 아니야. 다른 놈들이 여신님의 기운을 눈치채고 여기로 공습을 가할 거라고. 그걸 굳이······잠깐. 그것 말고도 또 뭔가가 더 있는 건가?
"아, 크, 큰일 날뻔했네요······."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그게 대체 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나였지만, 그런 나와 달리 다른 세 명은 디아나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단번에 눈치챈 모양이었다.
쳇. 치사하게 자기들끼리만 알기야?
"왜? 무슨 일인데?"
"뭘 꾸물대는 거야? 감정이 공유되고 있다면서? 빨리 여신님한테 해결책을 들어야지! 빨리 움직여!"
"그래요. 당신. 어서 가요."
게다가 다 같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는 내게 그 이유를 알려주기 싫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렇다면 나한테도 다 생각이 있지.
"레이아 누나아아······."
나는 곧장 몸을 돌려서, 뒤에서 날 끌어안고 있던 천사님을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쳐다봤다.
다른 사람이 보면 덩치 산만 한 놈이 뭐하는 거냐고 생각하고 말겠지만, 우리 천사님만큼은 분명 다를 거다.
"아으······구, 구원 씨이······."
내 생각대로 역시나 이 초롱초롱 공격은 천사님께 효과가 있어서, 천사님은 너무 귀엽고 안쓰러워서 꼬집어주고 싶다는 듯 손을 조물조물 거리면서 날 마주 보셨다.
"야! 치사하게 레이아한테 그러기야?!"
뒤에서 사라가 내 등을 찰싹찰싹 때리며 방해하려 했지만, 나는 굴하지 않았다.
남자에게는 때론 절대 질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게 있는 법이야.
그리고 그 노력은 이윽고 결실을 맺어서, 천사님은 눈썹을 내리고 곤란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대답해주셨다.
"그게······여신님께서 강림하시면 그 신성한 기운이 사방을 감싸잖아요?"
"응."
"그게 물론 저희에게는 무척이나 신성한 기운이지만······."
"아, 그런가. 구미호들이 단체로 발정한다는 얘기인가."
"알았으면 빨리 서둘러!"
레이아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겨우 사태를 깨달은 나는 감탄을 내뱉었지만, 돌아온 건 사라의 등짝 스매시뿐이었다.
"에이.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렇게 호들갑이야? 구미호들이 발정한다고 해서 내가 뭐 그걸로 헬렐레하기라도 할까 봐? 날 뭐로 보고. 오빠 그런 사람······."
"구원. 그 감정 공유라는 건 어쩌다가 그렇게 됐다고 했지?"
"······죄송합니다."
농담을 던졌다가 본전도 못 찾은 나는, 사라의 차가운 대답에 사과밖에 할 말이 없었다.
"하아······구원이 구미호들 모습을 못 봐서 그래."
하지만 우리 착한 사라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또 살짝 안쓰러워졌는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냥 살짝 달아오르는 정도라면서?"
그야 물론 그건 마나 변환기를 통해 변한 마나에 닿았을 때 얘기고, 여신님이 강림했을 때의 기운을 직접 쐬면 어떻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겠지만.
하지만 그러면 사라가 저렇게까지 말하는 건 뭔가 이상하지 않아?
"마나의 영향은요. 문제는 그다음이에요."
게다가 사라의 말에 완전히 동의한다는 듯, 마틸다까지 그런 말을 해왔다.
"이런 곳에서 숨어 살고 있다 보니 남자와의 접촉이 적을 수밖에 없잖아요? 물론 대를 잇기 위해 가끔 산을 내려가 남자를 납치해 왔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남자와 접촉할 수 있었던 건 몇몇 한정된 구미호뿐. 대부분의 구미호는 남자와의 접
촉은커녕 성적인 쾌감조차도 알지 못하며 살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성적인 쾌감도? 자위도 안 하며 살았다는 얘기야?"
"그래요."
진짜냐. 하여간 전쟁신 종족이라는 놈들은 왜 다들 하나같이······.
"특히. 구미호는 태생이 그런 종족이잖아요? 그런 종족이 성적인 쾌감이라고는 전혀 느끼지 못하며 살아왔던 거예요. 아예 호기심 자체가 없을 때는 그래도 문제없었던 모양이지만, 지금은 달라요. 그런 이들이 여신님의 마나에 접함으로써 성적인 쾌감에 관심
을 가지게 되면서, 그 본능에 불이 붙었으니까요."
본능에 불이 붙었다니······.
"너희 여기서 지내도 괜찮은 거 맞아? 혹시 무슨 일 당한 거 아니지?"
조금 불안해진 나였지만, 마틸다는 그런 내 반응이 귀엽다는 듯 가볍게 내 뺨에 입을 맞춰줬다.
"음. 괜찮아요. 몇몇 분을 신전으로 데려가서 제대로 교육도 했으니까요. 여자 끼리 해결하려는 생각은 여기 분들도 안 하세요."
"그 교육 때문에 다른 문제가 발생했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사라는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내 옆구리를 살짝 꼬집었다.
아, 그래. 그러고 보니 그 교육 영상을 보고 나한테 더 관심을 가졌다고 했었지.
"교, 교육 때문이 아니에요! 어차피 그 두 분 때문에라도 여기 분들은 구원 씨께······!"
하지만 레이아는 나고 자란 신전의 시스템이 그런 취급을 받는 게 싫은 건지, 손을 홰홰 저으며 사라의 말을 부정하려고 했다?
그 두 분? 아, 로엘이랑 리사 얘기인가. 그러고 보니 그 둘한테는 성자 스킬까지 썼었지.
걔들, 성적 쾌감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내 성자 스킬을 맞았던 건가. 그거 좀 미안한 짓을 했네. 엄청 뒤늦은 얘기지만.
어, 잠깐만. 하지만 지금 레이아가 하는 말을 봐서는 그 둘 다 나한테······.
"레, 레이아!"
그런 내 생각을 끊는 것처럼, 사라가 황급히 레이아의 이름을 외쳤다.
"아, 구, 구원 씨! 지금 얘기는요! 그러니까······!"
그리고 이름을 불린 레이아는 손을 홰홰 저으며 황급히 변명을 하려고 했지만, 그런 레이아의 변명을 끊는 목소리가 있었다.
"어머 여러분. 이런 밤중에 이런 곳에서 다 같이 무슨 일이신가요?"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시선을 옮기니, 거기에는 화제의 당사자 로엘이 있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서 훨씬 요염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지만.
"낭군님은 줄 수 없네에!"
그리고 로엘의 목소리가 들린 것과 거의 동시에, 당황하고 있던 레이아를 제외한 나머지 셋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사라와 마틸다는 마치 벽을 치는 것처럼 나와 로엘 사이를 막아섰고, 디아나는 필사적인 목소리로 귀여운 말을 외치며 내게 안겨들었다.
사라나 마틸다와 달리 디아나의 행동은 이 상황을 회피하는데 썩 도움 되는 행동은 아닌 것 같았지만, 아니. 오히려 방해되는 것으로밖에 안 보였지만, 아무렴 어때. 이렇게나 귀여운데.
"어머, 로엘 씨. 안녕하세요. 로엘 씨야 말로 이런 밤중에 무슨 일이신가요?"
마틸다야. 천연덕스럽게 반응한 건 좋지만, 방금 디아나의 외침 못 들었니?
로엘의 귀에도 분명히 들어갔을 텐데, 인제 와서 그렇게 말해봤자······.
"조금 밖이 소란스러운 것 같아서요."
어, 어라? 저걸 받아줘?
심지어 로엘의 시선은 이쪽을 전혀 향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사라와 마틸다가 앞에서 벽을 치고 있어도, 키 차이 때문에 내가 보이지 않을 리가 없는데도.
"어머, 그랬나요? 미안해요. 텔레포트 마법진에 용무가 있어서요."
"위로 가시는 건가요? 그러면 또 교육받을 아이들을 선별해서······."
"아뇨. 미안해요. 오늘은 저희끼리 따로 볼 일이 있어서요."
"그런가요······. 아쉽네요."
로엘과 마틸다가 그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폴짝폴짝 점프도 해보고 손을 위로 들고 열심히 흔들어도 봤지만, 역시나 로엘은 내 쪽에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흠. 이렇게까지 해도 반응이 없다는 건 역시, 그 마법을 썼다고 생각해야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마지막 확인을 위해 디아나의 엉덩이에 손을 얹고 부드럽게 주물렀다.
"햐읏!? 가, 갑자기 뭘 하는 겐가?!"
"아니. 이 마법, 그 마법이잖아? 우리가 애용했던 노출 플레이 전용······."
"그런 전용 마법 만든 적 없네! 그냥 투명 마법과 방음 마법일세!"
"아무튼 이 마법을 쓰면 자연스럽게 그때 생각이 떠오르잖아?"
"떠오르지 않네! 전혀 떠오르지 않네!"
"정말로? 그야 디아나는 완전히 쾌락에 절어서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제대로 떠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귀여운 엉덩이 위에 얹었던 손을 스르륵 옆으로 움직였다.
엉덩이를 지나 골반 위로. 거기에서 살짝 위로 올라가 그 가녀린 허리를 한차례 쓰다듬어 준 후, 다시 옆으로 미끄러져서 하복부 위로.
그렇게 팔로 허리를 감고 손을 하복부 위에 올려놓은 자세가 된 후, 나는 손가락으로 그 하복부 위에 하트를 그리는 것처럼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옷으로 가려져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마 사도 인장의 중앙 부분을 제대로 덧그리고 있을 거다.
"응······흐긋······그, 그런 의미로······한 말이······."
역시나 사도 인장이 제대로 자극받았는지, 아니면 정말로 노출 플레이할 때의 기억을 떠올려서 그런 건지, 디아나는 몸이 절로 달아오르는 듯 가볍게 하복부를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몸을 떨리는 것을 이용해서, 나는 손을 더듬어 옷으로 가려져 있는 사도 인장의 정확한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음. 여기인가.
"그래? 그러면 정말로 안 떠오르는 거야? 그 정도 노출 플레이는 기억에도 안 남을 정도로 싱거웠어?"
"그, 그렇지 않네! 으읏······이, 이 몸은······!"
디아나는 당황해서는 내 말을 황급히 부정하려고 했지만, 그 선택은 실수였다.
그 말을 부정한다는 건, 노출 플레이가 기분 좋았다고 인정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뭐, 긍정했어도 그럼 이번에야말로 기억에 남을 플레이를 해주겠다면서 나중에 더 강도 높은 노출 플레이를 했을 테니, 어느 쪽을 선택해도 함정에 빠지는 질문이었지만.
"그럼. 기분 좋았구나. 노출 플레이."
"으응······하읏······!"
손을 더듬어서 찾아낸 사도 인장의 정중앙. 손끝을 이용해 하복부가 살짝 들어갈 정도의 힘으로 꾸욱 누르자, 디아나가 다리를 오므림과 동시에 디아나의 뜨거운 한숨이 느껴졌다.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20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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