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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1017화 (1,001/1,205)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17화 >

"아무튼 그렇게 됐으니 한동안은 서로 불편해도 조금 참자고. 나도 나름대로 해결법을 알아볼 테니까."

"······."

이 상식 없는 애라면 굳이 해결할 필요가 있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이 녀석이라도 그렇게까지 상식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뭐, 바로 조금 전에 혼자서 흥분이 극에 달해 절정을 느낀다는 말도 안 되는 경험을 했으니까, 이게 얼마나 불편할지 정도는 싫어도 깨달을 수밖에 없었겠지.

"그럼······."

"잠깐 기다려. 어디에 가려는 거야?"

대충 얘기가 일단락됐다고 생각하고 방을 빠져나가려고 했던 나였지만, 레이는 날 보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방금 말했잖아. 해결법을 알아볼 거라고."

"지금부터?"

레이는 창문을 향해 힐끔 눈짓하며 그렇게 질문을 던졌다.

뭐, 확실히 많이 늦기는 했지.

레이를 따라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니, 일어날 때만 해도 붉은 노을이 깔려있었던 하늘은 어느샌가 어스름이 깔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말이지. 그렇기 때문에 바로 움직이려는 거야. 뭐, 그걸 얘한테 말해줄 수는 없지만.

"빠르면 빠를수록 좋잖아? 며칠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고."

"멀리 갈 생각이야?!"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자, 레이가 화들짝 놀라서는 두 손으로 내 팔목을 꽉 붙잡았다.

"당연하지. 너도 내가 여기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잖아. 그런 내가 이 근처에 정보원이 있겠어?"

"그러면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겠다는 말이잖아! 그래선······!"

"무슨 걱정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네 생각만큼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다른 놈들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느라 그런 거지, 나 혼자면 저기까지 가는데 하루면 충분해."

"거짓말!"

"진짜라니까. 지난밤에 날 구하겠다고 혼자 돌격한 것도 그렇고, 넌 대체 용사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너도 들었잖아? 실비아랑 레온이 단둘이서 온종일 성문을 틀어막았다는 얘기.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용사의 힘은 훨씬 더 막강하다고."

뭐, 이렇게 말하는 나도 실은 용사가 아니지만.

하지만 저기까지 가는데 하루면 충분하다는 얘기 자체는 거짓이 아니니 괜찮겠지.

"······내가 잘못했다는 거야? 네가 아무 말 없이 돌아오지 않으니까 그런 거잖아!"

"아니. 그걸로 널 탓하는 게 아니라 말이지."

사실 그렇게 멋대로 행동한 건 주의를 줘야 마땅한 일이지만, 날 위해서 그렇게 행동한 것이니 냉정하게 주의만 주기도 힘들었다.

애초에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하려던 것도 아니었는데, 이 녀석은 왜 이렇게 주제에 엇나가는 얘기를 많이 하는 걸까.

"나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든 그 마음 자체는 고마워. 물론 다음부터는 조금 더 신중하게 행동했으면 더 좋겠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이 녀석을 구해낸 이후로 이 얘기를 제대로 한 적이 없었던 것 역시 사실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진심으로 레이에게 감사와 주의를 같이 전하기로 했다.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레이는, 조금 몸을 딱딱하게 굳힌 채로 날 노려봤다.

겉모습만 봐서는 내 말이 마음에 안 드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너 나랑 감정이 공유되고 있다는 거 알지?"

내 마음은 왠지 모르게 따듯해지고 있었다.

감정 공유라는 건 그냥 귀찮기만 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럴 때 보면 나름 쓸만한 구석이 없는 건 아니구나.

뭐, 그래 봤자 쓸만한 점보다는 귀찮은 점이 더 많지만.

내 감정도 얘한테 그대로 전해진다는 얘기기도 하고.

"나도 알아! 내가 바본 줄 알아?!"

부끄러워하는 레이의 머리에 가볍게 손을 얹어서 한차례 쓰다듬어주고, 나는 그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아무튼 그런 거니까. 그럼 며칠 다녀올게."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는 드디어 큰일 하나 끝낸 기분으로 방을 나섰다.

"······왜 따라오는 건데."

문제는 레이도 따라서 방을 나왔다는 거지만.

"배웅하려는 거잖아. 뭐 문제 있어?"

그럼 없겠냐? 네가 따라오면 실비아랑 둘이서 얘기를 못 하잖아!

"······마음대로 해라."

하지만 보아하니 얘를 떼어놓으려면 밤을 꼬박 새워도 모자랄 것 같아서, 나는 결국 포기하고 꽁무니에 레이를 단 채로 우선 파란이 있는 곳부터 들르기로 했다.

물론 이따가 실비아한테도 말할 거지만, 여기 집주인한테도 며칠 자리를 비운다고 얘기해둬야 할 테니까. 확인할 것도 있고.

"아앙! 흐아응! 으응!"

그렇게 파란을 찾아간 건 좋았지만, 방에 들어간 우리의 눈에 제일 처음 보인 광경은 느끼하게 생긴 아저씨가 자기 여자랑 뒹굴고 있는 광경이었다.

"으허헛! 형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이런 씨······섹스하고 있으면 방에 들이지를 마!"

젠장! 저것들은 당당하게 뭘 보여주고 있는 거야?! 메이드가 아무렇지도 않게 방에 들이길래 방심하고 있었는데!

"하핫. 죄송합니다. 때마침 콘돔의 시제품이 완성되어서······."

"변명은 집어치워!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거잖아!"

"역시 형님이십니다! 알아주시는 겁니까!"

이 아저씨가 진짜! 그런 뜻으로 말한 거 아니야!

지난밤에 그 강간마들 상대로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길래 속으로 이 아저씨의 평가를 조금 상향 수정하고 있었는데! 그걸 이런 식으로 배신해?!

"아무튼 밖에 있을 테니까 끝나고 불러!"

심지어 얘기하는 동안에도 계속 허리를 흔들고 있어서, 나는 더 참지 못하고 황급히 방을 빠져나와야만 했다.

"비밀 모임인지 뭔지에서 남들한테 보여준다고 했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저 아저씨도 진짜 정신이······야. 레이야.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데. 넌 저러면 안 된다. 남한테 보여주는 건 부끄러운 거야."

그리고 문 앞에 서서, 나는 레이에게 주의해줬다.

안 그래도 이 녀석은 성에 관련한 상식이 과하게 부족하니까, 괜히 저런 아저씨한테 물들면 안 되지 않겠어?

그야 내가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사람 된 도리로 이 정도는 알려줘야지.

"넌 진짜 내가 바본 줄 알아?! 나도 알몸을 보이는 게 부끄럽다는 것 정도는 알아!"

뭐, 그런 내 마음도 몰라주고 이 녀석은 날 노려봤지만.

야. 뭔가 대답이 불안한데. 알몸뿐만이 아니라 성행위를 보여주는 것도 부끄러운 짓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레이 쪽을 힐끔 보자, 레이는 어째선지 나와 눈싸움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계속해서 날 노려보고 있었다.

"왜? 무슨 할 말이라도 있냐?"

"······저런 걸로 흥분하지 마."

"뭐? 그게 갑자기 무슨······."

너무도 갑작스러운 말에 잠깐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잠깐 생각할 시간을 가진 후 나는 레이가 한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아니거든?! 뭘 내 탓하고 있는 거야?! 그냥 네가 혼자 흥분한 거겠지! 이 변태녀야!"

"누, 누가 변태녀라는 거야?! 이렇게 세워놓고!"

그렇게 말하면서, 레이는 텐트 치고 있는 내 물건을 바지 위로 덥석 잡았다.

"네가 흥분하니까 나도 이렇게 된 거 아니야! 그러는 너야말로!"

그래서 나도 보답으로, 그 가슴을 덥석 잡고는 빳빳이 서 있는 유두를 꼬집어줬다.

속옷을 안 입고 다니니까 이렇게 유두를 쉽게 잡히는 거라고.

그나마 입고 있는 게 아까처럼 얇은 면 옷 한 장은 아니어서 옷 위로 티가 나지는 않지만.

"아으응! 이, 이게 진짜! 아······."

당연히 유두를 꼬집힌 레이는 더욱 눈에 불을 켜고 내게 덤벼들려고 했지만, 갑자기 내 어깨너머로 시선을 주더니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 시선을 바닥으로 떨궜다.

조금 의아해하면서 등 뒤로 시선을 돌리자, 아까 우리를 방으로 안내해준 메이드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만 있는 게 아니었지.

"야. 잠깐만. 그냥 둘 다 살짝 흥분한 게 합쳐져서 이렇게 된 거라고 타협하자."

이대로 싸우고 있어봤자 서로 흑역사만 늘어날 뿐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레이의 귓가에 입을 대고 타협안을 제시했다.

"으응······. 조, 좋아."

그 귀에 숨결이 닿는 게 간지러웠는지 조금 몸을 움츠리면서, 레이도 내 제안에 동의해줬다.

야. 동의했으면 물건 좀 놔주는 게 어떠냐? 아니. 애초에 메이드랑 눈이 마주친 시점에서 놓으라고. 왜 이렇게 끝까지 잡고 있는 건데?

뭐, 여전히 유두를 꼬집고 있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아니. 그게 말이지. 이 녀석이 물건을 안 놔주고 있는데 나만 놔주면 괜히 지는 것 같잖아.

애도 아니면서 뭐 하는 거냐고? 남자는 몇 살이 되든 애야.

"그럼 셋 하면 동시에 놓는 거다? 하나······둘······셋."

혹시라도 이 녀석이 자기만 놓지 않으면 어쩌나 조금 경계했지만, 다행히도 셋을 세는 순간 우리는 동시에 서로의 몸에서 손을 뗐다.

아무리 그래도 서로 그렇게까지 애 같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

뭐, 저 몸만 봐도 애가 아니라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유두를 꼬집힌 게 꽤나 당황스러웠던 건지 한쪽 팔로 자신의 가슴을 꽉 누르고 있는 레이를 보며, 나는 무심코 그렇게 생각해버렸다.

아니. 팔로 누르고 있으니까 괜히 더 가슴이 강조돼서 말이야.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서로 조금 떨어져서 어색한 시간을 보내게 됐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 겨우 방문이 열리며 파란이 모습을 드러냈다.

휴우. 진짜 지옥 같은 시간이었어. 어색해서 시간이 더 안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지, 아니면 진짜로 오래 걸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어찌나 안 가던지.

"오냐."

그리고 그 대답은, 파란의 얼굴을 보자 알 수 있었다.

이 녀석, 기어코 끝까지 하고 나왔군.

그야 내가 나올 때 끝나고 부르라고 하기는 했지만, 보통 그래도 중간에 끊고 용건부터 듣지 않냐?

생각 같아서는 욕이라도 퍼부어주고 싶었지만, 이미 레이와의 공방으로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그냥 빨리 용건만 말하고 끝내기로 했다.

"며칠간 자리를 비운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다 같이 비우는 건 아니고, 나 혼자만. 그래서 말인데. 너희 은사모의 비밀 회동이 정확히 언제라고 했지?"

"3일 후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3일이라······이거 생각보다 너무 빠듯한데? 가서 할 일이 한둘이 아닌 데 고작 3일이라니.

어쩔 수 없지. 우선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돌아와야지. 어차피 갔다 올 기회가 이번 한 번만 있는 것도 아닐 테니까.

"알았어. 그러면 일단은 그때 맞춰서 돌아오도록 하지. 아, 그리고······."

"네."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혹시 미약에 대해 아는 게 있냐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나는 바로 생각을 접었다.

그것까지 얘기하면 너무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까. 안 그래도 시간이 빠듯하니, 지금은 빨리 저쪽으로 넘어가는 것부터 생각해야지.

그렇게 파란과 대충 얘기를 마치고 나서, 나는 곧바로 실비아가 잠들어있는 내 방으로 향했다. 물론 여전히 레이를 꽁무니에 달고서.

"여기서 잠깐 기다려."

물론 방안까지 레이를 달고 갈 수는 없어서, 나는 방에 들어가기 전에 레이를 먼저 제지했다.

"왜?"

"실비아가 여전히 잠들어있을지도 모르니까. 넌 자다가 누가 깨워서 일어났는데 방 안에 룸메이트 말고 다른 사람까지 있으면 기분 좋겠어?"

실은 실비아가 발가벗고 자고 있어서 그런 거지만.

"······빨리 깨우고 불러."

그러니까 왜 그렇게 실비아한테 질투심을 내비치는 거야? 실비아가 여자라는 걸 알고 있다면 또 모를까,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잖아?

이 녀석, 진짜 내가 동성애에도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기다리고 있어."

아무튼 레이를 문 앞에 대기시키고 방 안에 들어가 보니, 여전히 실비아는 침대 위에서 세상모르고 쿨쿨 잠들어있었다.

아까 내가 실험한다면서 섹스할 때도 깨어나지 않았을 정도니, 어지간히도 피곤했던 모양이다.

뭐, 성문 앞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실비아. 실비아."

이렇게 고이 잠들어있는 실비아를 깨우는 게 마음이 편치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실비아에게 인사도 없이 갔다 올 수는 없었다.

"우응······구원니이임······."

그 몸을 살며시 흔들어서 깨우자, 스르르 눈을 뜬 실비아는 잠이 덜 깬 표정으로 내 목에 팔을 뻗어서는 날 꼭 껴안았다.

"음냐······음냐······실비아느은······."

"실비아. 다시 자지 말고. 잠깐만 일어나줘."

"으으응······."

그리고 그 상태로 다시 잠들려고 하는 실비아였지만, 내가 그 몸을 껴안고 살짝 흔들자 실비아는 멍한 목소리와 함께 다시 잠에서 깼다.

팔에 살짝 힘을 풀어서 맞붙어있던 상체를 떼고는,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내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는 실비아.

"으, 으아아······."

처음에는 완전히 꿈나라에 가있는 표정이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눈이 뜨이기 시작하더니, 결국 얼굴이 새빨갛게 익어서는 몸을 바들바들 떨게 된 실비아였다.

"잘 잤어?"

"히우으으응······."

하지만 내가 인사와 함께 그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춰주자, 실비아의 몸에서 다시 힘이 쭉 빠지며 그 몸이 침대 위로 무너져내렸다.

"시, 실비아! 갑자기 죽으려고 하면 안 돼!"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17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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