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15화 >
안 그래도 새벽이 되어서야 저택으로 돌아왔는데 그 이후에 그런 사건까지 있다 보니, 실비아와 함께 잠이 들게 된 건 창밖이 환하게 밝아올 무렵이었다.
하지만 밤사이에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고 있다는 듯 아무도 우리를 깨우러 오지 않아서, 나와 실비아는 저녁 무렵까지 푹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리고 물론 그동안 힐링 섹스의 효과도 계속 받고 있어서, 밤낮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나는 상쾌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을 거다. 분명 그랬을 텐데······.
"으헉?!"
어째선지 나는 무척이나 불안한 마음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등은 식은땀으로 인해 기분 나쁠 정도로 축축하게 젖어있었고, 심장은 마치 동네 한 바퀴를 전력질주하고 온 사람처럼 쿵쾅쿵쾅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왜 이러는지는 나 자신조차도 잘 알 수 없었다.
혹시 자는 동안 안 좋은 꿈이라도 꾼 걸까?
그런 생각에 머리를 감싸 안고 기억을 떠올리려고도 해봤지만, 애초에 꿈을 꾼 기억 자체가 없으니 그러고 있다고 해서 갑자기 안 좋은 꿈 내용이 떠오를 리가 없었다.
"우선······일어날까."
불안한 마음을 그렇게 혼잣말하는 것으로 얼버무리고는, 나는 삽입을 풀고 침대에서 나왔다.
그리고 아직 잠들어있는 실비아를 똑바로 뉘이고 목까지 이불을 제대로 덮어준 후, 나는 그 말랑말랑한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지난밤에는, 아니. 지지난밤부터 잠도 못 자고 줄곧 긴장 상태를 유지해왔던 실비아다. 아직은 조금 더 수면이 필요하겠지.
"아우응······쥭습니다아······."
꿈속에서도 여전히 나랑 뒹굴고 있는 건지, 그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매만져주자 실비아가 귀엽게 몸을 떨면서 신음했다.
그 귀여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까까지 온몸을 휘감고 있던 불안감이 조금은 옅어진 기분이 들었다.
쿡쿡 웃으면서 그 예쁜 이마에도 가볍게 키스를 해준 후, 나는 물의 정령을 불러서 나와 실비아의 몸을 씻겼다. 그리고 덤으로 축축하게 젖은 침대의 물기도 싹 제거한 후 바람의 정령으로 환기까지 시킨 다음, 인벤토리에서 옷을 꺼내서······.
"야!"
아직 인벤토리에서 속옷조차 꺼내지 않았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면서 레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으학?! 깜짝이야! 넌 무슨 애가······! 들어오기 전에 노크 좀 해라!"
어제도 욕실에 그렇게 쳐들어오더니! 저건 대체 가정교육을 어떻게······젠장! 그러고 보니 진짜로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녀석이었지!
당연히 화들짝 놀라서 앞을 가리려고 한 나였지만, 실비아의 안에서 막 나와 여전히 당당히 서 있는 내 물건은 손으로 가린다고 해서 가려질 크기가 아니었다.
게다가 레이는 뻔뻔하게도 그런 내 물건에 힐끔 눈길을 주더니.
"뭐 어때. 어차피 어제 볼 건 다 봤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말까지 해댔다.
뭐 이런 녀석이······! 말싸움으로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가 바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더니, 이 녀석이 딱 그랬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혀 놀림으로 밀릴 내가 아니지. 펠리시아에게 단련된 내 실력을 무시하지 말라고.
괴물과 싸우기 위해서는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네가 그렇게 상식 없는 말로 혼동을 일으킨다면, 나 역시도 상식을 버리고 혼동을 일으켜 맞대응해주지.
"그럼 이제부터 너도 내 앞에 있을 땐 다 벗고 있어라! 어제 볼 거 다 봤으니까!"
어떠냐?! 회심의 일격을 날린 심정으로 레이를 바라봤지만, 레이의 반응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 조금 달랐다.
"안 그래도······."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치맛자락. 아니. 지금 보니 레이는 전에 내가 임시로 입고 있으라고 줬던 내 옷을 입고 있었다.
대체 그제 쇼핑하면서 챙겨준 옷들은 어디다 두고 그런 옷을······이라는 생각이 잠깐 떠올랐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레이는 미니 원피스처럼 걸쳐 입은 내 옷의 밑자락을 잡고는, 그걸 위로 들어 올리려고 하고 있었다.
어? 야. 이 미친······상식 없는 녀석아. 너 진짜 지금부터 여기서 벗으려고?
"그, 그리고 실비아 앞에서도! 실비아도 볼 거 다 봤으니까!"
"큭?!"
당황은 했지만, 그래도 난 그 짧은 순간에 최상의 판단을 할 수 있었다.
이 녀석은 역시나 마음이 있는 내 앞에서나 이러는 거지, 죽도록 싫어하는 실비아 앞에서까지 다 벗고 다닐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선택적 상식 없음이라니. 상대하기 너무 버겁잖아.
아무튼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낸 나는 이걸 겨우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됐다.
위험했어. 방금 이 녀석 다리 사이로 살짝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고. 방금 그거 설마······.
뚝.
그렇게 잠깐 레이의 다리 사이를 의식하고 있자니, 내 옷 아래. 그 다리 사이에서 투명한 액체가 뚝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저거 역시 내가 생각하는 그거 맞지?
그러고 보니 동그랗게 부분 그 두 가슴의 중앙에도 뭔가가 볼록하게 튀어나와 내 옷을 밀며 자기주장을 하는 것이 보였다.
이건 진짜······그러니까 속옷 좀 입고 다니라고!
"읏?!"
아무리 상식 없는 이 녀석이라고 해도 이건 부끄러운지, 레이는 내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눈치채자마자 살짝 다리를 오므렸다.
그러자 아래를 향해 길게 늘어져 있던 투명한 실이 옷 아래로 엿보이는 매끈한 허벅지에 찰싹 달라붙어서는······그러니까 난 왜 저걸 이렇게 자세히 보고 있는 거야?!
무심코 물건 끝이 앞을 가리고 있는 손바닥을 강타했을 정도로 큰 충격을 주는 광경이었지만, 나는 애써 그 모습에 태클 걸지 않기로 했다.
아니. 왠지 태클 걸면 괜히 더 복잡해질 것 같아서 말이야.
"실비아 앞에서도 벗고 다닐 거 아니면 눈 좀 돌려라. 옷 좀 입자."
"······맘대로 입으면 되잖아."
손을 휘휘 내저으면서 레이를 쫓아내려고 했지만, 레이는 날 한 차례 노려보더니 뒤를 휙 돌아서 척하고 선 다음 허리에 손을 얹었다.
아무래도 진짜 말 그대로 눈만 돌리고, 방을 나갈 생각은 절대 없는 모양이었다.
오냐. 알았다. 여기 찾아온 용무를 마치지 않는 이상 나가지 않겠다는 거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비아가 곤히 잠들어있는 이 방에 계속 저 녀석이 있게 놔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실비아는 지금 이불 아래에 아무것도, 심지어 맨날 장비하던 딜도 조차 뺀 상태니까.
어제 기껏 안 들키기 위해 그런 노력을 해놓고 이렇게 허무하게 들킬 수는 없지.
"자, 됐어. 일단 나가자."
나는 인벤토리에서 대충 옷을 꺼내 걸쳐 입고는, 레이의 등을 밀며 방에서 나갔다. 어차피 볼 일이 있는 건 나지 이 방이 아닐 테니까.
내 생각대로 레이는 나랑 같이 나가는 거면 상관없다는 듯, 아니. 오히려 잘 됐다는 듯 순순히 복도로 나갔다.
"따라와."
하지만 지금부터 할 얘기가 이런 복도에서 할 얘기는 아니라는 듯, 내 손목을 덥석 잡더니 그대로 자기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어제 내가 기절한 다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말해."
방에 들어오자마자 내 어깨너머로 손을 뻗어서 문을 쾅 닫은 레이는, 전문 용어로 벽쿵이라고 하는 자세가 되어 진지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이 녀석이 기절한 다음에는, 실비아랑 둘이서 침대에서 알콩달콩하면서 기분 좋은 시간을 잔뜩 즐긴 게 전부니까.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말하기는커녕, 단 하나도 제대로 말해줄 수 있는 내용이 없었다.
"왜?"
그래서 나는 일단 이 녀석이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지 파악부터 하기로 했다.
"이······이거!"
그러자 레이는 날 노려보면서 얼굴을 붉히더니, 여전히 한 손은 벽쿵을 한 채 나머지 한 손으로 옷자락을 집어서 위로 살짝 들어 올렸다. 그 매끈한 허리와 배꼽이 보일 정도까지.
저렇게 얼굴을 붉힐 거면 안 보여줘도 되는데.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그런 표정 짓고 있으니까 괜히 나까지 부끄러워지잖아.
아무튼 아까 눈치챘던 것처럼 역시나 이 녀석은 옷 아래에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고, 옷을 배꼽 위까지 들어 올리자 당연히 그 아래로는 제일 중요한 곳이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뭐, 그래도 내 위치에서는 음부가 정면으로 보이지는 않았고, 그 위쪽 끝부분이 살짝 보일락 말락 하는 정도였지만.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진짜 중요한 건, 레이의 음부에서 흘러나온 애액이 매력적인 허벅지를 타고 아래로 줄줄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피부가 검은 덕분에 애액이 흐른 길이 쓸데없이 더 잘 보였다.
"내가 기절한 다음에도, 뭔가 더 했지?!"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부끄러운 곳을 보여주면서, 레이는 그렇게 나를 몰아붙였다.
겉으로만 보면 윽박지르는 것 같은 태도였지만, 나는 그 목소리에서 미약하게 레이의 바람이 섞여 있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레이가 내심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도.
"아······."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대충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레이는 지금 자신의 하반신이 저렇게 된 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해하는 거다.
물론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레이가 기대하는 대로 내가 그 이후 섹스를 해서 저렇게 된 것도 아니지만.
어제의 내 예상이 맞는다면, 레이는 그냥 기절한 사이에 내 흥분을 공유했을 뿐이다. 실비아랑 섹스하면서 느낀 내 흥분을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모습을 보아서는 이 녀석······하긴. 충분히 그럴 수 있겠군. 아무래도 자란 환경이 환경이다 보니까.
"왜 그래?"
잠시 말이 없는 날 보고 괜히 더 불안해진 레이는 내 눈을 엿보면서 되물었다.
"아니. 일단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건 맞으니까 안심해."
"일단······?"
"그래. 일단 직접 겪어보는 게 빠르겠지. 여기에 꼼짝 말고 가만히 있어 봐. 곧 돌아올 테니까."
살짝 안심하면서도 여전히 의구심이 남아있는 레이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나는 황급히 방을 나서려고 했다.
"뭘 하려는 건데?"
"조금 있으면 알 테니까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꼭 가만히 있어야 한다? 조금 있다가 내가 다시 여기로 올 테니까. 그때까지 누가 찾아와도 문 열어주지 말고 너도 어디 나갈 생각하지 말고 혼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
"내가 무슨 애인 줄 알아?"
넌 이렇게 단단히 말해두지 않으면 어디로 튈지 짐작이 안 되니까 그런다 이것아.
레이는 내 주의에 상당히 불안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그러면서도 어째선지 속으로는 조금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기다리고 있어."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하고, 나는 방을 빠져나와서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물론 목표는 여전히 침대에 곤히 잠들어있는 실비아였다.
자고 있는 실비아한테 실험을 위해 몹쓸 짓을 한다는 죄책감 때문일까? 아니면 이 실험으로 확실해질 결과를 상상해서? 나는 또다시 심장이 쿵쾅쿵쾅 시끄럽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심장 박동 소리를 무시하고, 나는 슬그머니 이불을 걷은 후 실비아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이런 걸 위해서 실비아의 몸을 쓰는 게 정말로 죄책감이 들기는 했지만, 하는 수 없지.
적어도 할 때만큼은 실험을 의식하지 말고 실비아랑 사랑을 나누는 것에 초점을 맞추자.
뭐, 실비아가 잠들어있는 만큼 그게 얼마나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미안. 실비아. 사랑해."
나는 실비아의 귓가에 나지막이 그렇게 속삭여주고는, 자신의 바지를 내려 물건을 바깥으로 꺼냈다.
그리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실비아의 두 다리를 양옆으로 벌린 후, 내 물건을 실비아의 음부에 천천히 맞댔다.
"하앗······하앗······하앗······이, 흐읏······이거언······."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나 내 추측은 정확했다.
잠들어있는 실비아와 한 판하고 다시 레이의 방으로 돌아오니, 거기에는 바닥에 쓰러져서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레이의 모습이 있었다. 물론 그 엉덩이 아래로는 작게 물웅덩이를 만든 채로.
"너, 자기 종족 특징에 대해 뭔가 들은 거 없냐?"
절정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건지 몽롱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레이.
그리고 레이가 그런 상태라는 것은, 나 역시도 그 흥분을 같이 맛보고 있다는 얘기였다.
지난밤에도 그랬잖아? 마지막에 내가 혼자 싼 것만 말하는 게 아니야. 레이가 흥분할 타이밍마다 나도 같이 흥분해서는 안 해도 되는 행동까지 했었잖아?
아무튼 그렇다 보니 나도 괜히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최대한 냉정을 가장하고 레이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내 종족······? 읏······다크 엘프······."
종족 얘기가 나오자 순혈 다크 엘프 후손을 남기기 위해 자신을 이용하려 했던 자신의 아버지, 바프라의 기억이 떠오른 거겠지.
레이는 살짝 두려움에 떨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대체 그때의 기억이 얼마나 끔찍했으면, 그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저런 반응일까?
보고 있는 나까지······응? 잠깐만. 나까지?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15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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