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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1014화 (998/1,205)
  •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14화 >

    기절한 레이를 그냥 그대로 둘 수도 없어서 일단 자기 방에 데려다 놓은 후, 나는 실비아에게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는 처지가 됐다.

    젠장. 방에 들어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실비아를 끌어안고 밤새 실비아 테라피를 맛보며 행복한 한때를 보낼 생각밖에 없었는데. 어쩌다 일이 이렇게 꼬인 거야.

    "······그렇게 된 거야."

    우선은 레이와 섹스를 하게 된 이유부터.

    이건 원래 돌아오자마자 설명을 해야 했지만, 날 위해 고생한 실비아한테 너무 미안하면서도 그런 실비아가 한편으로는 너무 사랑스러워 실비아와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뒤로 미뤄둔 것이 화근이 됐다.

    뭐, 화근이 됐다고 해도 실비아가 그렇게까지 화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마 질투가 안 생긴 건 아니겠지. 아까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삐친 얼굴까지 했었으니까.

    실비아는 날 대할 때 여러모로 주저하는 게 많다 보니, 아마 화가 나도 제대로 화를 못 내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 그랬습니까아······."

    아무튼 내 설명을 들은 실비아는, 바로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줬다.

    다른 것도 아니고 복상사에 관한 내용이니까 말이야.

    누구보다도 복상사와 가까이 있는 실비아로서는 도저히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 됐든 다른 여자와 했다는 것 자체는 사실이어서, 실비아가 저렇게 이해해줘도 내 양심은 계속해서 찔렸다.

    게다가 내 생각이 맞다면 아마······.

    "응. 아, 그래도 난 안 쌌어! 어차피 힐링 섹스만이 목적이었으니까."

    "그랬군요······그래서······."

    그래서 나는 괜스레 더 변명을 늘어놨고, 그 변명을 들은 실비아는 어째선지 드디어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하반신 쪽으로 힐끔 시선을 줬다.

    잠깐만. 실비아야. 혹시 너도 내가 아까 아무도 안 건드렸는데 혼자 싸버린 걸 의식하고 있었던 거니?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그때 좀 참았다고 내가 그랬겠어? 애초에 레이 입에 한 번 싸기도 했잖아!

    아까 그렇게 싸버린 건 그런 게 아니라 좀 더 심각한 이유가 있어! ······아마도지만.

    "······그래서 섹스를 하고 난 다음부터 느꼈던 건데. 뭔가 이상한 거야."

    하지만 바로 그렇게 주장해봤자 설득력 하나도 없이 구차해 보이기만 할 것 같아서, 나는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우선 순서대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상······말입니까?"

    "그래."

    레이가 깨어나고 나서 그 하반신을 수건으로 닦아줄 때, 그냥 닦아주기만 하는 건데도 이상하게 음부에서 애액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나왔던 것.

    그리고 욕조에 쳐들어오고 나서 보여준 레이의 태도. 그 태도가 너무 적극적이어서, 마치 레이 자신이 섹스를 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으니까 말이야.

    "섹스를 하고 싶어······그건······!"

    내 말을 듣고 실비아도 뭔가 짐작 가는 점이 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그래. 헬레나가 포션을 마신 후 보여줬던 반응과 비슷하지. 하지만 문제는 레이는 이미 내가 충분히 느끼게 해줬다는 거야. 아까 다른 놈들이랑 같이 있을 때도 말했지만, 나는 레이가 마신 미약이 어떤 식으로든 여신님의 마나를 이용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그 여신님의 마나로 만든 미약을 내가 풀어주지 못할 리가 없잖아? 펠리시아의 힘이 폭주했을 때도 펠리시아 대신 발정 상태를 풀어줄 수 있었는데 말이야."

    내가 가진 성자의 힘은 이쪽 방면으로는 여신님이 만든 모든 종족이나 직업보다 상위 호환일 거다.

    그런 내가 섹스까지 해놓고 미약 효과 하나 제대로 풀지 못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레이의 반응이 헬레나랑 완벽히 같았던 것도 아니야."

    헬레나는 누구랑 해도 좋다는 느낌이었지만, 레이는 그렇지 않았으니까.

    헬레나는 분명 처음에는 나한테 들이댔었고, 내가 쓰레온한테 떠넘기자 쓰레온이라도 전혀 문제없다는 듯이 들이댔었다.

    하지만 레이는 그렇지 않았다. 섹스를 하고 싶은 대상은 나 하나로 정해져 있었고, 줄곧 실비아는 방해라는 표정이었다.

    만약 레이가 헬레나랑 비슷한 상태였다면, 섹스만 할 수 있으면 상대가 실비아라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행동했을 거다.

    "그러면······?"

    내 설명을 전부 들은 실비아는 그럼 어떻게 된 건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그야 그렇겠지. 여기까지만 들으면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의도적으로 빼놓고 말한 부분도 있으니까.

    "응.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인데······."

    사실 지금까지 말한 건 앞으로 할 말을 위한 사전 설명이었고, 지금부터 할 말이 진짜 본론이었다.

    나는 최대한 미안한 기색을 풀풀 풍기면서, 실비아의 얼굴을 힐끔 엿봤다.

    "그······디아나의 첫 키스를 통해 나랑 디아나의 수명이 공유된다는 얘기, 들은 적 있지?"

    "네에. 디아나 님과 같은 순혈 엘프만이 가지는 고유의 특징이라는 얘기를······으응? 으아?!"

    거기까지 말하자 겨우 실비아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눈치챘는지,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을 더욱 크게 뜨고는 날 쳐다봤다.

    "미리 말해두지만, 키스는 안 했어! 진짜야!"

    나도 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바로 머리를 열심히 굴려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되새겨봤는데, 역시 키스 같은 건 한 기억이 없었다. 키스하려는 걸 피한 적은 있어도.

    그래. 아무리 그래도 내가 키스까지 막 하고 다닐 리가 없잖아?

    하지만 첫 키스가 아니라면 남은 건 역시······.

    "그런데 순혈 다크 엘프는 첫 키스가 아니라 첫 경험이 트리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말이지······."

    다른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순혈 엘프가 첫 키스를 통해 수명을 공유한다면, 순혈 다크 엘프는 첫 경험을 통해서. 그리고 공유하는 것은 수명이 아니라 아마도······흥분 상태였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정황이 맞아떨어졌다.

    섹스를 마친 후 하반신을 닦아줄 때. 분명 레이에게 그만큼의 성적 자극은 없었을 거다.

    하지만 그때 나는 확실히 흥분하고 있었다.

    외모만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애랑 섹스를 해놓고도 나는 싸지 않았으니까.

    그런 상태에서 수건으로 직접 음부까지 닦아주고 있자니, 고역도 그런 고역이 없었다.

    그때 난 확실히 흥분하고 있었고, 그런 내 흥분을 레이가 공유하고 있었다면 그 음부에서 그렇게 애액이 줄줄 흘렀던 것도 이해가 됐다.

    그리고 레이가 욕실로 쳐들어왔을 때.

    나는 그때 실비아와 같이 욕조에 들어와 있었고, 실비아가 없는 가슴으로 열심히 비벼주는 모습에 흥분하고 있었다.

    그러니 레이가 그런 내 흥분을 자신도 느끼고 있었다면, 욕조에 쳐들어와서 내게 들이댄 것도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지막에 내가 혼자서 쌌을 때.

    그건 더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 그때 레이는 내 손으로 절정에 달하고 있었으니까.

    사실 나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지만, 사람은 극도로 흥분하면 때론 아무런 자극 없이도 사정이 가능하다고 하더라고.

    즉, 나 역시도 절정에 달하는 레이의 흥분이 공유되어 싸버린 거다.

    응. 역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흥분 상태가 공유되는 게 맞는 것 같아.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어.

    "······실비아?"

    그렇게 조심스레 모든 추측을 얘기한 나였지만, 실비아는 내 얘기를 전부 듣고도 반응이 없었다.

    물론 이런 얘기를 듣고도 아무 감흥이 없어서 무반응인 건 아니었고, 단순히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 얼음이 되어있는 것뿐이었지만.

    "으······."

    눈앞에서 손을 휘휘 저으며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는 실비아를 잠시 그대로 놔두자, 수 분 후 겨우 실비아가 두 손을 위로 들어 올리며 움직임을 보였다.

    "으?"

    "으아아아······구원 님이 다른 여자에게 손대지 못하도록 감시하라고 그렇게나 다짐을 받았는데······. 실비아는······실비아는······."

    그리고 들어 올린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면서, 실비아는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서 끙끙 앓기 시작했다.

    ······역시 감시역으로 따라온 거였구나.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시, 실비아!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그냥 내가 지조가 없는 거니까! 그러니까······!"

    "구원 님은 나쁘지 않습니다!"

    "어, 어엉?"

    얘 지금 내 잘못 아니라고 나한테 화낸 거야?

    얘가 나한테 화내는 것 자체가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 이유가 또 날 위한 거라는 게 또 황당해서 할 말이 없어졌다.

    이건 대체 어떻게 반응하면 좋은 거야?

    "이렇게나······이렇게나 곁에 있었는데도······우으······실비아는 쓸모없는 멍청입니다아······."

    하지만 그런 내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실비아는 꿋꿋이 머리를 움켜쥔 채 자기혐오에 가까운 말까지 내뱉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책임감이 강한 성격인데, 그러면서 또 내 잘못은 절대 없다고 생각하는 무조건적인 충성심까지 있어서 이상한 방향으로 폭주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따지고 보면, 아니. 굳이 따지고 보지 않아도 이건 명백히 내 잘못인데. 이걸 내 잘못이 아니라 감시를 제대로 못 한 자신의 실패라고 생각하다니.

    "실비아. 나 화낸다?"

    그 너무 어처구니없는 반응에 헛웃음이 나오는 걸 참으면서, 나는 진지한 목소리로 실비아에게 그렇게 말했다.

    일단 자기혐오는 멈추게 해야 하지 않겠어?

    "느헤?"

    "내가 사랑하는 여자한테 쓸모없는 멍청이라고 하지 마."

    응. 나도 알아. 지금 말은 조금 오글거렸지.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실비아가 폭주해버릴 것 같으니까 말이야.

    실비아처럼 무조건적인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 애한테는, 조금 강압적일지라도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제일 효과가 좋다고.

    "······사랑······저, 져 마입니까아아?!"

    "그럼 내 눈앞에 지금 너 말고 누가 있는데."

    "으아으······우으······."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나니 이제는 내가 바로 앞에서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는 지금 이 상황도 눈에 들어오게 됐는지, 실비아는 겨우 평소의 실비아로 돌아와서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그래. 내 앞에서는 이래 줘야 바로 실비아지.

    "그리고 진짜로 실비아는 실패한 거 없어. 어쩌다 보니 레이 그 녀석이랑 이렇게 되어버렸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내가 걔를 데리고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래. 흥분할 때 같이 흥분하는 게 뭐 어때서? 그런 거 무시하고 서로 각자의 인생을 즐기면 그만이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실비아를 끌어안고 다독여주자, 실비아가 내 품 안에서 몸을 움찔하고 떨었다.

    그냥 내게 안긴 게 좋아서 떠는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왜? 할 말이라도 있어?"

    실비아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듣지 않아도 대충 짐작이 됐지만, 나는 그래도 일단 실비아의 입으로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그, 그런 게에······."

    "응."

    "할 수 있으십니까아?"

    역시나. 뭐, 그야 그렇겠지.

    사실 나도 방금 그렇게 말하면서 나 스스로가 엄청 쓰레기 같다고 생각했거든.

    본의가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내 실수 때문에 그 처녀까지 가져가게 됐고, 그걸로 인해 이렇게 서로를 속박하는 관계가 되어버린 거다.

    심지어 레이는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명백하게 내게 마음이 있었다.

    그게 진짜로 이성으로서의 호감인지, 아니면 구해준 사람에게 가지는 호의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런 레이랑 이런 관계가 되어 놓고 서로 각자의 인생을 즐기자니. 음. 다시 생각해도 정말 쓰레기 같군.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레이를 받아줘야 한다는 얘기가 되는데······이렇게 갑자기? 내가 걔를?

    지금까지 내 여자들은 전부 어떤 식으로든 인연을 쌓아가면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었다.

    그런데 레이 걔랑은 그런 게 전무하잖아. 그런데 갑자기 받아들이라니.

    아니. 따지고 보면 그나마 실비아랑 비슷한 케이스라고 볼 수 없는 것도 아니기는 하다.

    실비아도 처음에는 성노예라도 좋으니까 데리고 다녀 달라고만 했었고, 나도 별 감정 없이 진짜로 데리고 다니기만 할 생각으로 받아들였었으니까.

    그러다가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실비아도 이런 관계가 됐으니 레이라고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그래도 그때랑 지금은 상황이 다르잖아?

    그땐 나도 풋풋할 때였고. 지금은 내가 여자가 몇인데 또 그런······.

    "······."

    속으로 그런 고뇌를 하고 있자, 실비아가 불안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아, 안 되지 안돼! 내가 이렇게 흔들리고 있으면 괜히 실비아만 더 불안해할 뿐이야!

    "일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겠어?"

    "그, 그렇습니까아······."

    시, 실비아야?! 그 표정, 지금 날 못 믿는 거니?!

    그런 여자 따위! 난 얼마든지 매정하게 버릴 수 있다니까?! 애초에 그 녀석은 바프라를 몰락시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고, 도구라는 건 이용 가치가 없어지면 버려질······우와아. 나 지금 진짜 쓰레기 같았어. 응.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

    아, 아니! 그래도 깊은 관계가 되지 않으려는 노력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아무튼 일단 이 얘기는 끝이야! 지금은 다른 여자 얘기보다 더 중요한 게 있잖아!"

    "느헷?! 흐야앗!?"

    어쩐지 얘기하면 얘기할수록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져들어 가는 기분이어서, 나는 황급히 얘기를 중단하고는 실비아의 몸을 끌어안았다.

    애초에 오늘 밤은 고생한 실비아를 위로해주는 것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으니, 더 중요한 게 있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고.

    지금부터 실비아랑 섹스를 하면 방에 혼자 레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나는 애써 그 생각을 무시하고 실비아에게 전념하기로 했다.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14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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