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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1003화 (987/1,205)
  •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03화 >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몰래 뒤라도 밟자고! 그런데 너 뭐라고 했어?! 구원 님이면 괜찮아?! 절대 문제없어?! 너 호위 기사라면서! 그런 사람이 이렇게 될 때까지 여기서 뭘 하고 있었는데?!"

    레이의 외침에 실비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대답할 기력도 생기지 않았다.

    아니. 사실 레이가 뭐라고 하는지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머리가 멍해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한숨도 자지 않고 밤을 지새웠기 때문이 아니다. 구원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때라도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구원 님이. 수많은 실력자를 성자 스킬로 어렵지 않게 제압해왔던 그 구원 님이.

    기다리는 동안 물론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실비아는 구원을 믿고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언제나처럼 아이같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곳으로 돌아오실 거라고.

    하지만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도, 구원은 돌아오지 않았다.

    구원 님 대한 믿음이 확고했던 만큼, 실비아가 받은 충격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지금의 이 상황이 도저히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뭐라도 말해봐!"

    하지만 레이가 이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자신을 책망하는 모습을 보고도, 이게 현실이 아니라고 눈을 돌리는 건 불가능했다.

    "······나, 나는······."

    레이의 말에 따라 뭐라도 말해보려고 했던 실비아였지만, 이런 상황에서 할 말이 있을 리가 없었다.

    창백해진 얼굴로 입술을 바르르 떠는 실비아의 모습에 레이는 분통이 터진다는 듯 바닥을 발로 찼다.

    "이제 됐어! 당신 같은 사람의 말에 넘어간 내가 바보였지!"

    어딜 가려는 겁니까? 어차피 당신 실력으로는 가봤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당신은 바프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중요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가만히 계십시오.

    아마 평소의 실비아였다면 그렇게 말하며 레이를 잡아뒀을 거다.

    구원 님이 어떤 의도로 레이를 구해서 데리고 다니는 건지 잘 알고 있으니까. 구원 님이 없는 지금은, 자신이 나서서 구원 님의 계획이 어그러지는 일을 막아야 한다.

    머리 한구석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실비아는 레이를 붙잡을 수 없었다.

    붙잡기는커녕 이제 와서 구원 님이 정말로 없다는 사실이 실감 나기 시작해서,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우으······으······흑······으아아아!"

    쾅 하고 문이 닫힌 후, 실비아는 두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고 펑펑 울었다.

    기사 가문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기사가 되는 걸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지금까지. 언제나 기사의 마음가짐을 머릿속에 새기고 있는 실비아였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펑펑 우는 건 인생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드문 일이었다.

    구원 님이 4계층에서 실종됐던 그때 말고 이렇게 울어본 적이 있었을까?

    더 나올 눈물도 없어질 때까지 펑펑 울고 나서야, 실비아는 팅팅 부은 눈을 손등으로 쓱쓱 비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4계층에서 구원 님이 실종되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분명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으니까.

    구원 님의 기사로서, 울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기사님! 아까 레이 씨에게 들었습니다만, 구원 님이······!"

    방을 나서자, 문 앞에는 그렉과 듀크가 안절부절못하면서 실비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도 구원 님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고 있는 만큼, 지금의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플······레온은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실비아에게 그런 둘을 다독일 여유는 없었다.

    "네? 레온 님이라면 자신의 방에······기, 기사님?"

    그렉의 대답을 듣자마자, 실비아는 성큼성큼 레온의 방으로 걸어갔다.

    이 둘도 제법 실력은 있었지만, 지금부터 자신이 하려는 일에 데려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괜히 데려갔다가 죽기라도 하면 귀찮아진다.

    자신이 지켜줄 필요가 없는 실력자만 데려갈 생각으로, 실비아는 레온의 방에 갔다.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문은 단단히 잠겨있었다. 단단히 잠겨있다고 해도, 실비아의 힘을 버텨낼 정도로 튼튼한 문은 아니었지만.

    우지끈!

    가볍게 힘을 줘서 돌리자, 손잡이에서 들리면 안 될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그렇게 열고 들어간 방 안에는 두 남녀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서로 뒤엉켜있었다.

    "아응! 레온 님! 기분······에? 꺄악?!"

    "어?! 우, 우왁?!"

    플리투스······!

    구원 님이 돌아오시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여자에 빠져있는 그 모습에 분노가 차올랐지만, 여기서 저 남자에게 덤벼들 수는 없었다.

    분하지만 저래 봬도 실력 하나는 확실하니까.

    "바, 바벳! 뭐 하는 거야?! 노크는 하고 들어와야 할 거 아니야?!"

    "지금부터 성문으로 갈 겁니다."

    황급히 옷가지를 걸쳐입는 레온에게 다가가서, 실비아는 그 멱살을 잡아끌었다.

    "뭐?! 갑자기 거길 왜······?! 야! 바벳!"

    저항하는 레온을 아랑곳도 하지 않고, 실비아는 방구석에 대충 놓여있는 검만 챙겨서 저택을 나섰다.

    레이는 아마 구원 님을 구하기 위해 배로 향했겠지.

    그 실력에 혼자 배로 쳐들어가서 구원 님을 구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원래부터 레이를 노리고 있던 놈들은 황금이 굴러들어온 심정으로 레이를 생포해버리겠지.

    그렇다면 지금부터 배로 쳐들어가도 늦었을지도 모른다.

    그 배가 항구로 들어오지 않고 강 한가운데에 멈춰서 있는 이유는 바로 배 어딘가에 있을 구원 님과 레이를 찾기 위해서라고 했으니까.

    구원 님도, 레이도 찾아서 잡아뒀다면, 더는 강에 멈춰있을 이유가 없다. 당장 항구에 배를 대고 진상품을 옮기겠지.

    아니. 내가 울면서 쓸데없는 시간을 보낸 만큼, 벌써 그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배에 가봤자 구원 님과 레이를 벌써 도시 어딘가에 빼돌렸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놈들 구원 님을 꼭 살려뒀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야, 야? 바벳? 너 괜찮냐?"

    자기도 모르게 살기를 흘리는 실비아의 모습에, 레온은 더 소란피울 엄두도 못 내고 조심스럽게 실비아의 안색을 살폈다.

    하지만 이번에도 실비아는 레온의 말을 무시했다.

    지금은 최악의 경우는 생각하지 말자. 구원 님이 살아 계실 거라고 생각하고 행동하자.

    아무튼 지금 배에 가봤자 구원 님이 이미 도시 어딘가에 빼돌려져 있을 가능성이 있는 이상,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놈들이 앞으로 지나갈 길목을 사전에 막아서는 거다.

    "지금부터 여기로 개미 한 마리도 못 지나가게 하는 겁니다."

    오늘도 통행객들로 바글거리는 성문 앞에 서서, 실비아는 레온에게 그렇게 고했다.

    "뭐? 그게 무슨······."

    레온은 황당하다는 말투로 대꾸했지만, 실비아는 거기에 더 대답하지 않고 성문으로 돌진했다.

    "잠깐! 거기! 순서를 기다······크학!"

    "네, 네놈! 뭐 하는 놈이냐!"

    막아서는 경비병의 목을 날리자, 다른 경비병들이 기겁하며 실비아에게 창을 내밀었다.

    물론, 실비아에게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

    "이시간부로 이곳으로의 통행은 금지한다."

    "뭐? 이 새끼는 또 뭐 하는 새끼야? 어디서 이런 미친놈이······."

    그렇게 말한 경비병도, 말을 다 마치기 전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지금부터 하려는 일을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기선을 확실히 제압해야 한다.

    물론 이런 대도시의 경비병쯤 되니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아서, 동료의 목이 날아가는 걸 보고도 경비병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지만.

    "이런 미친!"

    멀리서 레온이 검을 빼 들고 이쪽으로 가세하는 모습을 힐끔 곁눈질하며, 실비아는 검을 휘둘러 경비병들을 베어 넘겼다.

    지금부터 그 배의 놈들이 여길 지나기 위해 올 때까지 막아서자.

    "그, 그렇게 된 겁니다아······."

    필사적으로 눈을 피하며 그렇게 고백하는 실비아였다.

    실비아는 그저 부끄럽기만 한 모양이었지만, 나는 실비아의 말을 듣고 더욱더 마음이 아파졌다.

    쓰레온의 입으로 전해 듣는 거랑 실비아한테 직접 듣는 것은 전혀 느낌이 달랐다.

    게다가 실비아는 성격이 이렇다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나한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 건지, 자기가 느낌 심경까지 고스란히 전부 다 말해줘서 더욱 그랬다.

    "실비아······."

    "아으······아아······."

    내가 그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해주자, 실비아는 몸을 바르르 떨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음 같아서는 온종일 꽉 끌어안고 안 놓아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보다 먼저 할 일이 있었다.

    실비아랑 끌어안고 지내는 건 조금만 더 나중으로 미루자.

    "실비아 말대로, 레이는 이미 잡혀있다고 생각하는 게 좋겠군."

    실비아의 판단은 정확했다.

    레이는 이미 놈들에게 잡혀버렸고, 여기서 더 지체하고 있을 이유가 없어진 놈들은 당장 이 도시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아까 성문 앞에서 발견한 그 두 놈의 모습이 바로 그 증거였다.

    실비아에게 오산이 있었다면, 실비아가 놈들의 모습을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실비아의 예상대로 놈들이 찾아왔는데도, 실비아는 놈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전부 때려눕히기만 했으니까.

    그 두 놈 이외에도 배에서 봤던 갑옷 차림의 놈들이 더 쓰러져 있었으니, 아마 우선적으로 전투력이 높은 놈들이 달려들어 실비아와 쓰레온을 뚫으려고 했던 거겠지.

    하지만 놈들은 실비아와 쓰레온의 검 앞에 무력하게 쓰러져버렸으니, 아마 그 뒤를 따라서 짐을 옮기던 놈들은 어디론가 도망가지 않았을까?

    제일 가능성이 높은 건 다시 자기들 배로 도망간 거겠지만, 도시 어딘가에 숨어있을 가능성도 없는 건 아니었다.

    바프라의 직속 부대라는 놈들이 이런 대도시에 머무를 거점 하나도 없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알았어. 그러면 우선 배로 가자."

    어차피 도시 안으로 다시 잠입하려면 강을 통해 항구로 들어가야 한다.

    실비아도 쓰레온도 얼굴이 팔릴 대로 팔려 버렸으니, 성문을 통해 다시 들어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잠수용 마스크를 장착하고, 우리는 강 아래에서 도시로 다가갔다.

    혹시 전투 부대가 당하는 걸 보고 너무 겁먹은 나머지, 짐을 나르던 놈들은 배를 타고 다른 데로 도망가버린 거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잠깐 했지만, 다행히도 배는 아직 항구에 정박해있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었다.

    성문을 틀어막던 사람들이 없어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놈들은 당장에라도 이 도시를 빠져나가려고 할 테니까.

    "레온. 너는 일단 저택으로 돌아가서 그렉과 듀크에서 사정을 전해. 그리고 파란한테 협력을 구해. 아마 파란 정도의 위치라면 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을 속속들이 알 수 있는 정보력이 있을 테니까. 이 배의 놈들이 도시의 어디를 임시 거점으로 삼고 있는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겠지."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쓰레온에게 그렇게 지시를 내렸다.

    원래는 성문보다 경비가 더욱 삼엄한 항구였지만, 조금 전까지 성문 쪽에서 그런 소동이 있었던 거다.

    동원할 수 있는 경비 인력은 전부 성문 쪽에 집결해있는지, 항구에는 제대로 된 경비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경비병이 없는 걸 기회로 보는 건지, 한눈에 봐도 불법적인 일을 저지를 것 같은 놈들이 각자 자신들의 배에 뭔가를 실으며 소란을 피워대고 있기까지 했다.

    지금이라면 쓰레온이 저택까지 가더라도 누구한테 붙들리지는 않겠지.

    게다가 이 녀석은 워낙 얼굴에 개성도 존재감도 없어서 인상이 머리에 잘 안 남는 놈이니까.

    실제로 성문에서도 주목은 실비아가 독차지하고 있었잖아.

    싸우는 것만 놓고 보면 이 녀석도 엄청나게 활약했을 게 분명한데도.

    뭐, 그래도 일단 뒤집어쓰고 다닐 후드는 하나 줘야겠지만.

    사실 마음 같아서는 이런 중요한 역할은 쓰레온보다 실비아에게 맡기고 싶었지만, 어제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또 배의 정찰은 나 혼자 할 테니까 실비아는 쓰레온이랑 같이 저택으로 가달라는 명령을 할 정도로 나는 뻔뻔하지 못했다.

    아까 실비아의 심정을 그렇게 구구절절이 들었는데 사람이 어떻게 그러겠어?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나는 쓰레온만 저택으로 보내기로 했다.

    "알았어. 위치를 파악하는 즉시 그 여자를 구하러 가면 되는 거지?"

    이거 봐. 벌써부터 의욕만 앞서있잖아.

    "아니. 이 이상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 위치만 파악해놓고 기다려. 구하는 건 내가 은신 능력으로 해결할 테니까."

    "뭐?! 이렇게 된 게 다 누구 때문인데 또 너 혼자······!"

    내가 능력이 없어서 잡힌 게 아니잖아!

    그렇게 반박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이 녀석이랑 싸우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일단 실비아랑 옆에서 같이 싸워준 놈이니, 아무리 쓰레온이라도 고마운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레이가 또 놈들한테 잡혀갔다는 걸 알면 헬레나가 불안해할 거 아니야. 괜히 티 내지 말고, 너는 아무 일도 없는 척 헬레나를 안심시켜주고 있어."

    "그건······그렇군······."

    내가 그렇게 말해주자, 쓰레온은 크게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날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로 그걸 이제야 깨달은 거냐. 네가 그래서 여자한테 인기가······아니다. 말을 말자.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실비아. 가자."

    "넵!"

    쓰레온이 급하게 저택으로 향하는 걸 본 후, 나는 실비아를 데리고 항구에 정박해있는 배 안으로 잠입했다.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03화 > 끝

    ⓒ CurtainCall#o87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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