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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1000화 (984/1,205)
  •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00화 >

    "오오. 여기가 그 소문으로만 듣던!"

    여기는 구미호 마을에서 모두가 지내고 있는 건물 안.

    구미호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곳에 있기는 했지만, 건물 자체는 깔끔하고 좋아 보여서, 구미호들과 착실히 우호 관계를 쌓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후훗. 네. 마음에 드셨나요?"

    "응! 뭐, 어차피 내 마음에 들고 안 들고가 중요한 게 아니지만."

    "어머, 그렇지 않아요. 구원 씨가 좋아해 주시면 제가 기쁜걸요."

    크흑! 처, 천사니임! 그래! 이거야! 이게 그리웠다고!

    아니. 그렇다고 해서 실비아만으로는 부족했다는 건 아니지만, 알잖아? 모두에게는 각자 나름의 장점이 있는 법이야.

    "너무 좋아하잖아······."

    "걱정 마. 너도 이만큼 좋아하니까."

    "그, 그런 걱정 안 했어 이 바보야!"

    천사님의 일거수일투족에 전부 헤벌쭉하는 날 보고 뒤에서 사라가 살짝 질투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그런 불만도 말 한마디로 순식간에 잠재울 수 있었다.

    훗. 안됐지만 지금의 나는 너무 오랜만에 너희를 봐서 부끄러운 말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슈퍼 구원 모드라고.

    ······ 슈퍼 구원 모드라고 하니까 뭔가 다른 뜻이 있는 것 같아서 어감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지금의 나라면······ !

    "당시인······ ? 저는요······ ?"

    "그야 물론 마틸다도 똑같이 좋아하지."

    "아아······ 기뻐요······."

    "으허읏······ !"

    뛰는 놈 위에 나는 추기경 있다고, 핑크 마틸다의 이 애정 공세만큼은 아무리 슈퍼 구원 모드인 나라고 해도 버틸 수가 없었지만.

    추기경님. 지금 제 가슴에 손을 얹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유두를 간질이지 않으셨나요? 진짜 이래도 돼요?

    "아, 아무튼. 좋아 보이기는 하는데, 조금 너무 구석진 곳에 있는 거 아니야?"

    구미호 마을에 텔레포트 마법진까지 깔았을 정도니까, 모든 구미호한테 환영받고 있는 줄 알았는데. 역시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는 걸까?

    "장소는 일부러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잡았네."

    하지만 그런 내 의문을 디아나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듣자 하니 디아나는 최근 로엘의 도움을 받아 이쪽 세계의 마법 구조를 분석하는 것에 몰두하고 있는데, 혹여나 무슨 문제가 생길 것을 대비해서 일부러 사람들이 잘 안 오는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무슨 문제라니······ 혹시 폭발 같은 거라도 하는 건 아니지?

    에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디아나가 설마.

    그런 쓸데없는 걱정보다는.

    "로엘이라······."

    그러고 보니 모처럼 구미호 마을에 왔으니까 인사라도 해두는 게 좋으려나?

    마음 같아서는 밤까지 우리 애들이랑 노닥거리는 것에 모든 시간을 쏟고 싶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지.

    "잠깐 인사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문 쪽으로 몸을 돌린 순간, 사라가 재빨리 문 앞을 막아섰다.

    자기 딴에는 자연스럽게 문에 기대는 척하고 있지만, 난 봤어. 방금까지 내 근처에 있던 애가 거의 순간이동 하는 것 같은 속도로 문 앞까지 이동하는걸.

    게다가 사라뿐만이 아니었다. 레이아도 그 커다란 가슴 사이에 내 팔을 끼워서 단단히 붙잡았고, 마틸다마저 내 몸을 꽉 끌어안아서 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아니. 마틸다는 그냥 나랑 달라붙어 있고 싶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보다 이쪽일세! 여기에 필요한 물건을 준비해놨네!"

    "로엘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어?"

    디아나까지 어색하게 날 방으로 끌고 들어가려 하는 걸 보고, 나는 도저히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뇨. 그런 거 없어요."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역시나 부정.

    천사님이 하시는 말씀이니 거짓말은 아니겠지만······.

    "단지······."

    역시나 뭔가 더 있는지, 천사님은 내게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것처럼 눈을 내리깔았다.

    저러고 계시니 긴 속눈썹이 더욱 돋보여서 너무 아름다우시······ 아니. 이게 아니지. 하마터면 외모에 홀려서 이대로 넘어갈 뻔했네.

    "그게······ 여기 분들이 여신님의 마나 안에서 안전하다는 건 확인했으니까요. 시험 삼아서 몇 분에게 위쪽 세계을 안내해드렸는데요."

    "구미호를 여신님 쪽 세계에?! 괜찮았어?!"

    "네에. 저희도 주의에 주의를 기울였고, 신전과 길드에도 도움을 받아서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어요. 다만······."

    거기까지 말하고 다시 한번 말을 멈춘 레이아의 눈에서, 어째선지 살짝 보랏빛 안광이 새어 나왔다.

    어? 잠깐만. 지금 머리를 묶지도 않았는데, 이 타이밍에?

    그렇다는 말은 즉······.

    "그게······ 아무래도 구미호라는 종족이 그런 종족이기도 하고, 여신님의 마나로 조금 몸이 달아오른 것처럼 보이셔서,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면 남성분의 정기를 전부 빨아들이는 사고가 일어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우선 교육용으로 영상을 보여드렸는데요······."

    영상이라니······ 아니. 잠깐만. 내가 생각하는 그 영상 말하는 거 아니지?

    레이아. 아까부터 안광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데, 혹시······.

    "혹시 레이아도 같이 봤어?"

    "네에······ 영상을 볼 때는 교육할 사제가 한 명 붙어야 한다는 게 규칙이니까요. 원래라면 여성분의 교육은 남성 사제가 담당하지만, 이번에는 구미호 씨가 힘을 다루지 못하면 위험하니까······."

    "그 말은 그 구미호랑 레이아는······."

    "아, 아니에요! 이상한 짓은 절대 안 했어요! 단지 옆에서 같이 보기만······ 아으······."

    내 말에 황급히 손을 내저으면서, 레이아는 다급하게 말했다.

    제게는 구원 씨밖에 없어요! 상대가 구원 씨가 아니라면, 그게 설령 여자라고 하더라도 그런 짓은 하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 것처럼.

    뭔가 다행인 것 같은, 아쉬운 것 같은 묘한 기분이었다.

    아니. 아쉽다는 건 다른 게 아니라. 상대가 여자, 그것도 기본적인 미모가 보장된 구미호니까. 그런 여자가 레이아랑 둘이서 가위 치기를 하면 얼마나 멋진 광경이······ 위험해. 살짝 커질 뻔했네.

    "아무튼 구원은 마을에 갈 필요 없다는 얘기야!"

    우물쭈물하면서 쓸데없는 말로 빠져버린 레이아를 보다 못하겠는지, 결국 사라가 나서서는 그렇게 외치며 얘기를 급하게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생각해보면, 그나마 그 영상을 본 게 레이아라서 다행이네.

    만약 레이아가 아니라 사라가 그걸 봤으면, 사라 취향상 분명 엄청 흥분해서······ 아니. 아무튼.

    "혹시 나······ 구미호들한테 노려지고 있어?"

    "마을로 가려고 하기만 해봐. 가만 안 둬."

    진짜냐. 그 정도야?

    전에도 한 번 봤지만. 이 마을은 모든 구성원이 미녀 미소녀로 이루어진 천국이었다.

    즉, 내가 마을로 내려가기만 하면 그 많은 미녀 미소녀들이 모조리 내게 달려들어 무수히 많은 섹스의 요청이······ !

    "야! 구원! 듣고 있어?!"

    "어, 엉?! 그럼! 듣고 있지. 내가 사라 네 목소리를 듣지 않을 리가······."

    "마틸다 씨. 혹시 커졌어요?"

    너무해! 날 의심하는 거야?!

    "네에? 응후훗. 우리 구원 씨는 언제나 늠름하게······."

    "오해할 말 하지 마! 안 커졌어! 의심스러우면 만져보던가!"

    아까 다른 이유로 살짝 커질 뻔 하기는 했지만, 결국 참아냈다고!

    "후훗. 죄송해요. 응······ 쪽."

    마틸다의 뜬금없는 말에 내가 화들짝 놀라서 일갈하자, 마틸다는 하나도 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라는 듯 내 입술에 입을 맞춰왔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얘 저주가 더 심해진 거 아니야? 아무래도 이상한데.

    아니. 저주가 더 번지지 않은 건 아까 눈으로 직접 봤지만 말이야.

    "하아······."

    그래도 마틸다의 이런 모습 때문에 더 화낼 기력도 안 생기는지, 사라는 커다랗게 한숨 한 번만 내쉬고 그 이상 날 추궁하지는 않았다.

    뭐, 반지로 대화할 때마다 마틸다를 제압하는 건 사라 역할이었으니까. 사라도 마틸다의 폭주에는 진이 빠졌다는 건가.

    아무튼 그렇게 해서 구미호 마을로 찾아가는 걸 금지당한 나는, 순순히 디아나가 들어간 방으로 따라 들어가기로 했다.

    사실 여기까지 내려온 이유도 다름 아닌 이것 때문이었다.

    디아나는 그냥 이곳의 색다른 마법 이론을 연구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내가 다시 돌아왔을 때를 대비하여 내게 도움이 될만한 물건들도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고 한다.

    디아나도 설마 내가 이렇게까지 빨리 돌아올지는 몰랐기 때문에, 생각하고 있던 것을 전부 만들지는 못했다는 모양이지만.

    "이것도! 그리고 이것도 가져가게!"

    "이건?"

    "이걸 이렇게 해서 이렇게 쓰면 이렇게 되는 걸세!"

    "으, 응······ 그렇구나."

    엣! 헴! 하고 가슴을 활짝 펴며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디아나였지만, 솔직히 말해서 설명을 들어도 잘 와닿지 않았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물건을 건네받아서 머릿속에서 정리가 잘 안 되지 않는다고 할까, 집으로 돌아가는 손주한테 할머니께서 이것저것 바리바리 챙겨주시는 느낌이······.

    크, 크흠!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잘 상상이 안 돼서 말이야! 설명은 들었지만, 그게 진짜로 된다고? 진짜 된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유용할지는······.

    물론 너희들의 힘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뭐, 그런 식으로 몇몇 물건들은 실용성이 의심되는 물건도 있었지만, 그래도 전부 디아나가 날 위해 만들어준 것들이다. 감사하게 받도록 하자.

    그리고 의심스러운 물건들이 눈에 띄어서 그렇지,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꼭 필요한 물건들도 많았다.

    특히나 제일 좋았던 게 바로 이 텔레포트 마법진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텔레포트 마법진보다 크기가 훨씬 작은 이 물건은, 길드와 연결된 것이 아니라 이 집에 디아나가 따로 설치한 텔레포트 마법진과 연결된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크기가 작은 만큼 설치도 복잡하지 않아서, 나 혼자서도 충분히 설치할 수 있게 개량했다고 한다.

    그러니 이것만 가지고 가면 이제 마나 고갈의 위험을 감수해가며 초장거리 그림자 이동을 할 필요도, 밤이 아니면 올 수 없다는 제약도 사라지는 거다.

    뭐, 이것도 제약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소형화시켰어도 마나 변환 장치는 붙어 있어서 주변 마나를 여신님의 마나로 바꿔버릴 것이고, 무엇보다 내가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여기에 건너온 동안 다른 누군가가 저쪽에 설치된 텔레포트 마법진을 발견하면 큰일이 난다.

    그러니 설치하기 위해서는 나만의 거점이라고 할만한 곳을 우선 마련해야 하겠지만, 그런 제약을 고려하더라도 이 텔레포트 마법진은 앞으로 무척이나 도움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디아나! 아으! 이 귀여운 것!"

    "으햣?! 그만, 다들 보지 않는가아······."

    내가 그 몸을 끌어안고 얼굴에 마구잡이로 키스를 해주자, 디아나는 거부하는 척하면서도 입가를 흐물흐물 거리며 기분 좋은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진짜. 이 나이 먹고 이렇게 귀여워도 되는 거야? 아, 이거 칭찬입니다. 디스한 거 아니에요.

    아무튼 그렇게 챙길 것도 챙겨 받은 나는, 그 이후로 우리 애들과 반지로 못다 했던 말을 나누며 밤까지 시간을 보냈다.

    마음 같아서는 위로 올라가서 레이첼 누님이나 바넷사, 펠리시아의 얼굴도 보고 오고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시간 여유가 많지는 않았다.

    특히 펠리시아는 슬슬 진짜로 위험할 것 같아서 한번 봐주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지. 빠른 시일 내에 꼭 다시 돌아오기로 하자.

    "그럼 다녀올게."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나누고, 나는 다시 사라와 함께 산 정상의 가장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갔다.

    사라가 같이 올라온 이유는 물론, 내게 내가 왔던 곳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기 위해였다.

    "자, 저기······."

    어둑어둑해진 넬슨강 너머에서도 유독 많은 불빛이 모여있는 도시를 손가락으로 가리킨 사라는, 어째서인지 갑자기 입을 다물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으응. 나도 어두워서 잘은 안 보이는데, 도시 정문 쪽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문제? 혹시 실비아야?"

    "거기까지는······."

    "알았어. 그럼 난 얼른 가볼게. 나중에 또 봐."

    "응."

    사라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춰주고, 나는 곧바로 그림자 이동을 사용했다.

    그리고 아침에 실패했던 때와는 달리, 아주 잠깐 머리가 어질어질해짐과 동시에 내 눈앞에는 시끌벅적한 항구 도시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분명 어제는 구토감과 함께 정신까지 잃었는데, 지금은 몸이 무겁기는 해도 정신은 멀쩡했다.

    스테이터스 창을 열어보니, 아주 조금이지만 마나가 남아있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된 거지? 이유가 궁금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나는 무거운 몸을 움직여 황급히 도시의 정문 쪽으로 달려나갔다.

    먼저 저택부터 갈까도 생각해 봤지만, 아무래도 사라의 얘기를 들은 다음부터 계속 가슴이 울렁거려서 말이야.

    내 직감이 말하고 있어. 저곳에 분명 실비아가 있을 거라고.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000화 > 끝

    ⓒ CurtainCall#o87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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