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992화 (976/1,205)
  •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92화 >

    "흠······. 그런 일이······."

    뒤에서 마틸다가 오늘도 폭주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겨우 다시 이전에 하던 얘기를 마저 할 수 있게 된 거다.

    조금 전에 헬레나의 그런 모습을 보고 더욱더 디아나의 의견이 듣고 싶어진 나는, 간단하게 내가 겪은 일들을 디아나에게 얘기해줬다. 헬레나라는 여자를 구하게 되어서 포션을 줬고, 그 여자가 쓰레온의 조잡한 애무에도 엄청나게 느꼈다고.

    "그렇다면 확실해진 것 같구먼. 구미호는 그 특성도 있으니 전투 본능이 그런 식으로 발현되는 것일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었네만, 그 처자는 평범한 인간인 게지?"

    "응. 애널라이즈로 확인해봤으니 확실해. 완전 평범한 인간이었어."

    사실 우리 여신님의 교리 때문에 던전 밖의 사람들은 오히려 평범한 인간인 경우가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여기는 당연하다는 듯이 지나가는 사람 대부분의 종족이 평범한 인간이었다.

    사실 우리가 제일 처음 이곳의 존재를 의심한 것도 사라의 종족이 마인이라는 점을 알게 된 다음이었으니, 혹시 또 마인을 보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지나다니는 사람마다 애널라이즈로 종족명을 스캔해봤거든.

    참고로 말하자면 그런 노력 끝에 발견한 마인은 지금까지 딱 한 명밖에 없었다.

    마인이 있긴 있었냐고? 있었으면 그게 대체 누구냐고?

    내가 여기 내려와서 레이를 제외하고 뜬금없이 엉겨 붙은 사람은 한 명밖에 더 없잖아?

    짜식. 지금쯤 엄청 고생하고 있겠지?

    그때는 처음 간 마을에서 바로 만나 버려서, 여기에서는 마인도 나름대로 흔한 종족인가보다 싶어서 적당히 엉겨만 보고 굳이 더 쫓으려고 하지는 않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내 뒤를 쫓는 걸 기다려서 조금 더 얽혀볼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들었다.

    설마 바프라 본인도 마인이 아니었고, 그 직속 부하 중에도 마인이 안 보일 정도로 마인이 희귀한 종족일 줄이야.

    뭐, 지나간 일을 후회해봐야 어쩔 수 없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 우리 애들과의 대화에 집중하자.

    "그렇다는 것은 역시나 여신님의 마나는 이곳 사람들에게 성적인 흥분을 유발하는 모양이구먼."

    "역시 그렇게 봐야겠지? 헬레나가 유독 더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는 뭘까? 레벨이 낮아서?"

    "흠. 판단하기에는 아직 불확실한 요소가 너무 많구먼. 포션은 흡수가 빠르니 그 영향일 수도 있고, 포션이 가져다주는 신진대사의 활성화 효과가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네."

    "그런가······."

    이럴 때 디아나가 여기에 있었다면, 직접 이것저것 해보고 조금 더 확실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내 아쉬움이 반지 너머로도 느껴졌는지, 디아나가 오랜만에 연장자 느낌을 잔뜩 내면서 날 다독여줬다.

    "그런 표정 짓지 말게. 이쪽에서도 최대한 이것저것 알아보겠네."

    아니. 표정은 안 보이잖아. 뭐, 보지 않아도 뻔하다는 얘기겠지만.

    그래도 디아나야. 만약 네가 지금의 날 직접 봤으면 기절했을걸?

    품 안에서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실비아의 머리를 한 차례 부드럽게 쓰다듬어 준 후, 나는 계속해서 반지에 말을 건넸다.

    "무슨 소리야. 난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해서 아쉬운 게 아니야. 디아나 얼굴이 보고 싶어서 절로 한숨이 나온 거지."

    봤지? 이게 바로 처세술이라는 거야. 안 그래도 요즘 내가 대처 능력이 물이 올랐잖아.

    디아나도 내 재치있는 대답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

    "원망할 거면 정찰만 하고 오겠다고 가서 돌아올 기약도 없어진 자네를 탓하게."

    어, 어라? 이게 아닌데?

    "디, 디아나 누나? 혹시 조금 원망 중이세요?"

    "당연하지 않은가."

    아니. 그야 정찰만 다녀온다고 하고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기약이 없어진 건 사실이지만.

    설마 잠깐 산에 내려갔다가 사랑의 도피를 하다가 위기에 빠진 바프라의 간부 자식 커플을 만날 줄 누가 알았겠어?! 그런 기회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도 없잖아? 덕분에 바프라에 섹스의 멋짐을 전파할 시나리오가 이렇게나 훌륭하게 진행되었고.

    ······ 네. 전부 제 잘못이죠.

    "그러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말게. 혼내는 건 자네가 돌아온 다음 날로 미뤄둘 터이니."

    ······ 결국 혼내기는 할 거구나.

    그래도 돌아온 다음 날이라는 건, 돌아온 당일은 잔뜩 알콩달콩하겠다는 얘기인가.

    역시 우리 디아나는 생각하는 게 하나하나 귀여······.

    "이번에는 표정이 너무 풀어졌네."

    그러니까 어떻게 그렇게 아는 건데?! 혹시 반지에 일방적으로 이쪽 모습이 전송되는 기능이라도 달려있는 거 아니지?!

    아니. 그랬다면 디아나 목소리가 저렇게 안정적일 리가 없지.

    결국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 없는 절정에 발버둥 중인 실비아의 정수리에 뺨을 비벼준 다음, 나는 다시 반지에 입을 가져다 댔다.

    "최대한 빨리 얼굴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음. 그렇다고 해서 무리하면 안 되네. 자네가 안전하게 임무를 완수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게. 자네를 위해서라면 이 몸도 얼마든지 참을 수 있으니 말일세."

    "디, 디아나······."

    "흠흠. 그런 표정 지을 필요 없네. 낭군님의 일을 이렇게 보필하는 것도 정실의 역할······."

    "디아나! 중요한 얘기 중이라 일부러 둘만 얘기하게 물러나 줬더니 이상한 말 하지 마세요!"

    "무, 뭐가 이상한 말인가! 이 몸은······ !"

    "정실은 저예요!"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서열로 보더라도 이 몸이······ !"

    "이런 거에 서열이 어디 있어요?!"

    "으윽······ !"

    웬만해선 나이 얘기를 안 하는 디아나가 나이 어필까지 하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지만, 역시나 우리 용사님은 그런 걸로 기죽는 성격이 아니었다.

    "애초에 구원이랑 더 먼저 만난 건 저잖아요! 나이가 아니라 같이 다닌 기간으로 서열을 정하면 정통성은 제게······ !"

    "방금 사라양 이런 것에 서열이 어디 있냐고 하지 않았는가! 이런 것은 기간이 중요한 것이 아닐세!"

    오오. 이번엔 디아나가 사라가 했던 말을 그대로 받아쳐서 사라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아니. 난 왜 반지 너머로 들려오는 캣파이트에 흥분하고 있는 거지.

    시꺼먼 사내새끼들하고만 다니다가 오랜만에 날 두고 여자들끼리 싸우는 소리를 들으니까 왠지 기뻐서 그만.

    슬슬 감상은 그만두고 둘을 말려볼까.

    둘 다 날 두고 싸우는 건 그만둬! 난 너희 모두의 것이야!

    그렇게 내가 외치기 전에, 갑자기 둘의 싸우는 소리가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둘이 말싸움을 그만둔 건 아니다. 그냥 조금 싸우는 곳에서 거리가 멀어졌다는 느낌일 뿐.

    "후훗. 두 분은 여전하세요. 구원 씨.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구원 씨가 언제 돌아와도 웃는 얼굴로 맞이할 수 있도록, 여기는 제······ 꺄악!"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어요!"

    그리고나서 귀를 간질이는 것 같은,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지는 천사님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중간에 마틸다의 난입으로 말을 다 끝맺지는 못하셨지만.

    사라랑 디아나가 둘이서 저러고 있으니, 그야 당연히 마틸다를 제압하고 있을 사람도 사라졌겠지.

    그보다 마틸다야. 반지랑 너무 가깝지 않냐?

    "추기경님 말씀처럼, 언제 돌아오셔도 저희가 웃는 얼굴로 구원 씨를 맞이할게요. 그러니까 무리하시면 절대 안 돼요?"

    크흑. 천사님······. 뒤에서는 용사랑 대마법사가 둘이서 자기가 정실이라고 싸우고 있는데, 혼자 눈에 부각되려 하지도 않고 저희가라니. 역시 성녀님 포지션이 너무 잘 어울리셔.

    "응. 고마워. 사랑해. 레이아. 마틸다도 사랑해."

    "네! 당신! 사랑해요!"

    슬슬 반지의 빛이 약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둘에게 황급히 사랑을 속삭였다.

    그런데 마틸다야. 혹시 반지에 입 맞추고 얘기하고 있는 거 아니지?

    "마틸다는 너무 폭주하지 말고. 알았지?"

    "아아······ 당시인······ 네에······."

    뭐, 그래도 이 상태의 마틸다만큼 내 얘기를 잘 듣는 애도 없어서, 내가 가볍게 한마디 하자 바로 목소리가 몽롱하게 풀려서는 반지에서 떨어져 줬지만.

    그리고 타이밍 좋게도, 마틸다가 반지에서 조금 떨어지는 기척이 느껴짐과 동시에 반지의 빛이 완전히 꺼져버렸다.

    사라랑 디아나한테는 인사도 못 하고 끝나버렸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런 상황이었으니까.

    "미안. 많이 기다렸지?"

    "흐아아······ 하으······ 하아아······."

    반지의 불이 꺼지기가 무섭게 입에서 손을 떼고 축 늘어져 버린 실비아가 제대로 침대 위에 눕는 자세가 되도록 하면서, 나는 몸을 일으켰다.

    대화하는 사이에 혼자 이렇게나 많이 느껴버리다니. 실은 그 덕분에 대화하는 내내 물건이 너무 움찔움찔 떨려서 힘들었다고.

    보답으로 너도 힘들 정도로 움찔움찔 떨게 해주지.

    "쥬, 쥭습니댜아······ 조, 조그만 쉬게······."

    "하핫. 얘는 참. 아직 시작도 한 적이 없는데 쉬게 해달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흐이으으으응읏!?"

    애처롭게 목숨을 구걸하는 기사님에게 빙긋 한 번 웃어준 후, 나는 정상위 자세로 허리를 강하게 처넣었다.

    "흐에에······ 헤엑······ 아우으······."

    그리고 그 결과, 오늘도 실비아는 정신을 완전히 잃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게 됐다.

    여기 와서는 거의 매일같이 하고 있는 거니까, 얘도 슬슬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나름 집중 훈련을 받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잖아.

    아니. 물론 매번 이렇게 반응하는 게 귀여우니까, 영원히 이대로 있어 줬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없다면 거짓말이 되겠지만.

    아무튼 어젯밤에 하지 못한 몫까지 불태운 덕분에, 실비아는 평소보다도 조금 더 빨리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 이상은 정말로 무리일 것 같으니, 나도 슬슬 잘까.

    똑. 똑.

    그렇게 생각하고 실비아와 연결된 채로 그 몸을 안아서 빙글 반 바퀴 돌려고 한 순간, 갑자기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이 시간에? 대체 누가?! 설마 그 미친놈들이 자기들도 성공적으로 섹스를 마쳤다고 기뻐서 찾아온 건 아니겠지?

    ······ 자는 척하자. 조용히 있으면 자는 줄 알고 그냥 가겠지.

    실비아랑 이런 모습으로 같이 있는 거다. 지금 내가 사람을 맞이해줄 모습도 아니고, 설령 이런 모습이 아니더라도 이 시간에 찾아오는 불청객을 반갑게 맞이해줄 정도로 난 도량이 넓은 사람이 아니었다.

    끼이익······.

    그렇게 생각하고 몸을 빙글 돌려서 내가 침대에 눕고 실비아가 내 위에 오도록 하려는 순간, 문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미친! 이걸 그냥 들어온다고?!

    위험해! 이 모습을 보이면!

    마음 같아서는 뭐라고 한 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이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게 무엇보다도 급했다.

    나는 몸을 돌리려던 것을 그만두고, 그대로 몸을 아래로 밀착시켰다.

    그렇게 실비아를 사이에 두고 엎드린 자세가 되어서,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린다.

    다행히도 호화로운 저택인 만큼 좋은 침대를 쓰고 있어서, 실비아는 내 몸 아래에 눌리고도 답답한 기색 없이 그대로 이불에 포옥 파묻혔다.

    좋아. 이대로라면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나 혼자 침대 위에 엎드려있는 것처럼 보이겠지?

    그리고 소리가 방 밖으로 새어나가는 걸 막기 위해 불러놓고 있었던 바람의 정령의 힘으로 냄새까지 빼내자, 완벽 범죄가 완성되었다.

    그나저나 어떤 미친놈이 이 시간에 허락도 없이······.

    "······ 실례."

    레이 너였냐?! 네가 이 시간에 여길 왜 와?!

    그나마 하마터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따질뻔했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충동을 억누르고 계속해서 엎드려 자는 척을 했다.

    "제대로 자고 있지? 흥. 이래도 은신을 못 한다고 할 거야?"

    들어오기도 전부터 다 들켰거든?!

    아니. 애초에 너 노크하고 들어왔잖아, 이것아! 그런 주제에 은신은 무슨 얼어 죽을 은신이야?!

    "호위 기사라는 남자는······ 어딘가 간 건가?"

    다행히도 실비아의 존재는 눈치채지 못한 건지, 레이는 슬그머니 문을 닫고 조용히 방에 들어와서는 내게 점점 다가왔다.

    그러니까 왜 다가오는 건데?! 무슨 목적으로 온 거야!? 좀 나가라!

    "······."

    당연한 얘기지만 그런 내 마음의 소리는 레이에게 전혀 닿지 않아서, 레이는 침대 곁으로 다가와서는 말없이 날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뭐, 뭐야 얘. 갑자기 왜 이래? 무섭게. 설마 암습이라도 하려고 온 건 아니겠지?

    "후우······ 후우우······."

    한참을 내려다보던 레이는 마치 긴장을 풀려는 것처럼 깊게 심호흡을 하면서 숨을 고르더니, 내 한쪽 손목을 잡아서 살짝 들어 올렸다.

    엎드린 상태에서 팔이 들어 올려지니 자연스럽게 한쪽 가슴도 살짝 들려서, 자칫하면 내 몸 밑의 실비아가 보일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 됐지만, 나는 그다지 걱정스럽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레이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내 손목을 잡고 있는 그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통해 절실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긴장하고 있을 정도면, 시야도 엄청 좁아져 있겠지.

    게다가 처음 만난 방에 숨어있던 경비병들도 눈치 못 챘을 정도니까. 딱히 밤눈이 좋은 건 아니라고 봐야겠지.

    그러니까 아마 실비아의 모습이 들킬 위험은 없을 거다.

    그나저나 이 녀석, 진짜로 대체 뭘 하러 온 거지?

    대체 왜 이렇게 긴장한 거야?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92화 > 끝

    ⓒ CurtainCall#o87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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