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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990화 (974/1,205)
  •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90화 >

    파란이 돌아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방을 나설 때보다 더욱 기세 좋게 문을 박차고 들어온 파란은, 시뻘게진 얼굴로 방안을 살피더니 내가 있는 곳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날 향해 전력으로 질주해왔다.

    덩치 좋은 아저씨가 저런 표정을 짓고 저렇게 기세 좋게 덤벼드니, 아무리 대범한 나라도 살짝 움찔하게 됐다.

    그래서 앞으로 친하게 지내며 돈독한 협력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하마터면 발로 차버릴 뻔했지만, 다행히도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기세 좋게 달려온 주제에, 파란은 내 몸에 손끝 하나 스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란은 대신 나한테 도달하기 직전에 높이 점프를 하더니, 그대로 땅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쿵 하고 박았다.

    이건 또 뭐 하자는 거야?

    "형님!"

    "이 아저씨가 지금 누구보고 형님이라는 거야?!"

    내가 웬만하면 아저씨 무릎은 괜찮냐고 말해주려고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 나이에 나한테 형님은 아니잖아?! 내가 그렇게 나이 많아 보여!? 아무리 약자 태세로 매력 수치가 떨어져 있어도 그렇지!

    "신이 형님으로 모시는 이유를 통감했습니다! 이 파란도 앞으로 형님을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형님! 그러니 제발 제게 여성을 기쁘게 할 비법을 전수해주십시오!"

    이 아저씨가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형님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하는 거야?

    그리고 뭐? 여성을 기쁘게 할 비법? 그런 건 네가 알아서 잘······ 잠깐만. 그러고 보니, 여기는 섹스란 즉 아이를 가지기 위한 행위인 세계였다.

    쾌락이 목적이 아니다 보니 애무 같은 행위도 당연히 생각조차 하지 테고, 그렇다는 말은 즉······.

    내 머릿속에 불현듯이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방문을 두드렸을 때, 아쉬워 죽으려고 하는 신과 달리 유리는 조금 안도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

    그러고 보니 듀크와 그렉이 자기들 몸으로 열심히 섹스란 무엇인지 강의해줄 때도, 삽입하고 흔드는 걸 중점적으로 가르쳤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난 눈이 더러워지는 기분이라서 제대로 안 봤기 때문에 확실하지는 않지만.

    혹시 이 녀석들, 삽입하기 전에 우선 애무부터 해서 여자 몸을 달궈놔야 한다는 그런 기초적인 교육부터 필요한 수준인 거야?

    "사랑은 느꼈습니다! 확실히 굉장했습니다!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건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 느낌을 제니와 온전히 공유할 수 없다는 건 너무도 불행한 일입니다! 아까 형님께서는 말했죠? 서로 기분 좋아지면서 사랑을 재확인하고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행위라고! 그러니 부탁합니다! 제게 그 비법을 전수해주십시오!"

    아니. 아저씨. 아저씨의 첫 경험이 얼마나 좋았는지 그다지 알고 싶지 않으니까 그렇게 큰 목소리로 열변하지 마세요. 기분 나쁘게 조금 상상해 버렸잖아요.

    "어? 혀, 형님?"

    하지만 그런 내 감상과 다르게, 신은 파란의 외침에서 뭔가 느끼는 바가 있었던 모양이다.

    "······ 왜?"

    "혹시 유리도, 저와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건가요?"

    "그야······."

    "형니이이임!"

    이 새끼는 또 왜 이래?! 넌 또 무릎을 왜 꿇어?!

    두 놈이 동시에 내 발 앞에 조아리자, 나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젠장. 옛날에도 내가 그 난리가 나서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런 곳까지 와서 또 섹스 강의나 하게 생겼다니.

    젠장. 여신님한테 목적을 들었을 때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해놨어야 했는데.

    아니. 애초에 전수하라고 해도, 어떻게 하라는 거야?

    "아니. 나도 전수해 주고 싶은 마음은 차고 넘치지만 말이야. 그런 건 직접 보여주면서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신 너 내가 유리 몸을 만지면서 알려주면 참을 수 있냐? 댁은?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제니? 내가 그 여자 몸을 만지면서 알려주면, 그게 머리에 들어올 것 같아? 참을 수 있어?"

    "으으윽······."

    "크으윽······."

    혹시 대장간의 변태 커플 요한과 한나처럼 직접 몸을 만지며 알려달라고 할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도 신과 파란은 거기까지 막 나가는 놈들은 아니었다.

    엄청나게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 있기는 했지만,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완전히 단념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뭐, 그래도 애무라는 개념에 대해 대략적인 설명은 필요할 테니, 나중에 듀크와 그렉이라는 숙련된 조교의 시범이라도 보여주면서 배우게 하자.

    저래 봬도 고레벨 모험가인 만큼 꽤나 잘할 테니까, 조교로서 손색은 없을······.

    "저기······ 제가 할까요?"

    그렇게 혼자서 앞으로의 플랜을 짜고 있었을 때, 갑자기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끼어들어 왔다.

    뒤를 돌아보자 후드를 벗은 헬레나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한발 앞으로 나와 있었다.

    "무, 뭘?"

    "시험을 위해 여자의 몸이 필요하신 거죠?"

    당황해서 말도 제대로 안 나오는 날 향해, 헬레나는 마치 ‘제가 뭔가 이상한 말이라도 했나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야. 이상하지. 너 그놈들한테 강제로 그런 짓을 당한 지 아직 만 하루도 안 됐다고. 그런 애가 어떻게 애무 강의의 시험대가 될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잖아?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 거야?

    "헬레나! 그런 거 안 돼!"

    다행히도 내가 이상한 건 아니었는지, 레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헬레나를 막았다.

    하지만 헬레나는 그런 레이에게도 전혀 문제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으응. 안 되지 않아. 난 어차피 이제 처녀도 아니니까, 딱히 문제없는걸. 그리고 두 분의 저렇게나 멋진 사랑을 돕는 일인걸. 그리고 또 두 분의 사랑이 더욱 멋져지면, 그걸 세상에 전파하는 거잖아? 나 같은 평범한 여자가 그런 멋진 일의 도움이 될 수 있다니. 근사하지 않니?"

    아니.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그냥 좀 많이 착한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까 어딘가 정신이 나갔다고 해야 할까. 정신세계가 4차원인 여자였잖아.

    그게 아니면 혹시 포션의 영향인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있지만 실은 몸이 달아 올라있고, 저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해서라도 성적인 쾌감을 얻고 싶어서 저러는 건가?

    "헬레나 양!"

    그 진의가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었지만, 아무튼 헬레나의 표면적인 주장 자체는 무척이나 자기 헌신적인 말이었다.

    신은 그런 헬레나의 태도에 무척이나 깊은 감명을 받았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헬레나의 두 손을 꼭 감싸 쥐고 위아래로 격하게 흔들었다.

    "헬레나 양이 이렇게나 훌륭한 사람이었다니. 미처 몰라봤어. 정말 고마워."

    일부러 말은 안 하고 있었지만, 사실 신과 유리는 헬레나가 합류했을 때부터 헬레나를 살짝 무시하고 있었다.

    대놓고 깔보는 표정을 짓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노골적으로 대화를 피한다고 할까?

    나는 그 모습에서 너같이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평민이 우리랑 동등하게 말을 주고받으려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었다.

    하지만 그랬던 신이, 이제는 저렇게 헬레나의 두 손을 감싸 쥐고 붕붕 흔들고 있는 거다.

    얼마나 감명받은 건지는 더 설명이 필요 없겠지?

    "아니에요. 제가 하고 싶어서 그런걸요."

    "이렇게나······ ! 어쩜 이렇게나······ !"

    야. 뭘 그렇게 감동하는 거냐. 저 여자 지금 대놓고 섹스하고 싶다고 말한 거라고.

    진짜 제정신인 건가?

    "하지만 헬레나! 조금 전에 그런 일을 당하고도······ !"

    레이는 어떻게 해서든 이 분위기를 깨고 싶다는 듯 그렇게 외쳤지만, 헬레나의 결심은 굳건했다.

    "레이. 그래서 더 그런 거야. 구원 님이 말씀하셨잖아? 섹스는 사실 그렇게 멋진 것이라고. 그러니까 나도 섹스에 대한 기억을 그런 안 좋은 기억만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아. 구원 님의 손길로 어루만져지면, 분명 내 안 좋은 기억도 전부 덮어쓸 수 있을 거야."

    아니. 야. 아까부터 뭔가 나랑 네가 섹스하는 게 확정인 것 같은 말투로 말하고 있는데, 만약. 만에 하나 한다고 해도 애무 강의만 할 거니까. 삽입하고 흔들어댈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면······."

    아니. 레이 네가 거기서 꺾여버리면 안 되지.

    그야 저렇게까지 말하면 너도 할 말이 없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좀 더 친구의 정조를 위해 힘을 내 보라고. 무리인가.

    이거 이대로 가다가는 진짜로 내가 저 여자랑 하는 분위기가 될 것 같은데.

    싫은데 그런 거. 얼굴이 내 취향이 아니라든가 그런 게 문제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냥 애무 방법을 알려주는 것쯤은 눈 딱 감고 여기저기 만지면서 알려줘 버리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그러고 나면 우리 애들 볼 낯이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물론 필요하다면 꼭 필요한 일이니까 다들 이해해주겠지만, 어제 제대로 목소리도 못 듣고 이런 짓을 하게 되는 게 너무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거부만 할 수도 없는 것이, 이게 실제로 도움이 될 거라는 게 문제였다.

    한 번 제대로 알려주고 나면 신과 파란은 신나서 섹스에 빠져들 테고, 굳이 내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들의 비밀 클럽에 전파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거다.

    그렇게 되면 나는 애무 강의 한 번으로 바프라를 내부부터 야금야금 무너뜨려 버리게 되는 거지.

    "야. 레온."

    그래서 그냥 거부하지 못하고 조금 고민한 끝에, 나는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해결책을 생각해냈다.

    "어, 엉?"

    내가 쓰레온이 아닌 레온이라고 부르자 당황했는지, 레온이 바보 같은 목소리를 내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러면 여기에 레온이 너 말고 더 있냐?

    "헬레나는 네가 상대해."

    "내, 내가?!"

    네가 보기에는 내가 애무 강의를 해도 될 정도로 잘한다는 거냐?! 라는 표정을 짓는 쓰레온이었지만, 물론 그럴 리가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그래. 옆에서 보면서 내가 교정해줄게. 못 하는 애를 보면서 어디가 어떻게 틀렸는지 설명하며 교정해주는 게 더 교육적으로 효과가 있을 것 같으니까."

    "내가 그렇게 못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설마 자각 없었냐?"

    "네, 네놈······ !"

    다들 보는 앞에서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쓰레온은 용사답게 살기를 줄줄이 내뿜으며 분노했지만, 이어지는 내 말에 곧바로 그 살기가 꺾이고 말았다.

    "그래서, 나한테 맨투맨 강의를 받는 게 싫다고?"

    "그······ !"

    하여간 저놈도 참 자기 본능에 솔직한 놈이라니까.

    하긴. 듀크랑 그렉이 둘이 끌어안고 설명해주는 것도 열심히 들을 정도로 섹스를 잘하고 싶은 열망이 큰 놈이다.

    이런 찬스를 놓치고 싶을 리가 없지.

    "그리고······."

    나는 쓰레온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남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음. 가까이서 보니까 한층 더 밥맛 떨어지는 얼굴이군.

    "이거 너한테도 진짜 도움 되는 기회야. 아무리 네게 걸린 저주가 강력해도, 너도 레벨이 있으니까 헬레나 정도의 여자는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느끼게 할 수 있을걸? 그렇게 우선 자신감을 붙이라고. 처음부터 수준 높은 여자랑 잘 될 생각하지 말고."

    "너, 너······ ! 그런 깊은 뜻이······ !"

    뭘 또 그렇게 쳐다보냐. 양심 찔리게.

    그냥 내가 헬레나랑 하기 싫어서 대충 그럴듯한 말로 포장한 것뿐인데.

    뭐, 네가 그걸로 납득한다면 아무래도 좋지만.

    "헬레나 양도 그래도 되지? 혹시라도 이 녀석이 폭주할 것 같으면 내가 막아줄 테니까. 아픈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덮어쓸 수 있게 최대한 옆에서 도와줄게."

    "네. 여러분의 도움이 되신다면 전 얼마든지······ 그······ 잘 부탁드립니다."

    아까 말했던 두 분의 멋진 사랑을 돕고 싶다 운운이 그냥 빈말은 아니었는지, 헬레나는 신과 파란을 힐끔 보더니 쓰레온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마, 맡겨둬!"

    쓰레온아. 네가 그런 말을 하니까 왜 그렇게 안 어울리냐.

    그리고 이왕 그런 말을 할 거면 좀 더 자신감 있게 말하라고.

    아무튼 그렇게 해서 나는 때아닌 애무 강의를, 그것도 실습으로 하게 됐다.

    하게 된 것 좋지만, 아니. 사실 좋지는 않지만 이제 와서 어쩔 수 없으니까 좋다고 치자. 하지만.

    "왜 너희까지 보는 건데?! 너희는 딱히 교육도 필요 없잖아?!"

    신과 유리, 그리고 파란과 파란이 데려온 제니라는 여자까지.

    이 넷은 교육을 받는 당사자니 자리에 있는 게 당연했지만, 관계없는 놈들까지 옆에서 구경하려 하고 있었다.

    "하핫. 소문으로만 듣던 구원 님의 강의를 직접 보게 될 기회를 제가 놓칠 리 없지 않습니까.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제대로 눈에 담아서 이것 역시도 훗날 구원 님의 업적을 칭송하기 위한 노래로······."

    "만들지 마, 이 정신 나간 호랑이 머리야!"

    이놈은 무슨 색마 전설이라도 쓰고 싶은 거야?!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90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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