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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976화 (960/1,205)
  •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76화 >

    섹스의 뒤처리를 끝내고 덤으로 실비아의 옷차림까지 전부, 심지어 딜도 같은 것까지 전부 장착시켜서 제대로 옷을 입혀준 다음, 상쾌한 기분으로 텐트에서 나왔다.

    이런 세계에서도 태양은 눈 부셔서, 기분 좋은 아침 햇살이 내 몸을 포근하게 감싸줬다.

    하지만 나는 그 기분 좋은 광합성 활동에 마냥 빠져있을 수 없었다.

    바로 옆 텐트에서 신과 유리가 정답게 대화를 나누며 텐트를 정리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유리, 괜찮아. 넌 가만히 있어. 피곤한데 괜히 움직일 필요 없어. 텐트 정도는 나 혼자서 할게!"

    아니. 정확히 말하면 텐트 해체는 신 혼자 하고 있었고, 유리는 옆에서 보고만 있었지만.

    유리는 나서서 도우려고 하는 모양이었지만, 신이 그런 유리를 마치 톡 건드리면 깨져버릴 유리처럼 다루며 극구 말리고 있었다.

    저 녀석들, 드디어 한 건가.

    하지만 설마 하룻밤 만에 모든 진도를 다 빼버릴 줄이야. 솔직히 부추긴 나도 거기까지는 기대 안 했는데.

    자식. 그래도 할 때는 하네. 밖에 소리가 새어 나올 위험도 감수하고 거기까지 하다니.

    아니. 위험이 아니지. 우리는 바람의 정령으로 소리를 막고 있어서 들리지 않았지만, 떨거지 삼인방한테는 다 들린 게 아닐까?

    "괜찮아. 별로 피곤하지 않아. 어차피 움직인 건 입···아, 읏······."

    말하는 도중 내 존재를 눈치챘는지, 유리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입을 닫아버렸다.

    과연. 끝까지는 안 간 모양이구나. 다시 보니까 유리도 딱히 하반신이 불편한 것 같지 않고.

    하긴 저 숙맥이 소리가 들릴 일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하지만 뭐, 입으로 한 것만으로도 큰 성과다.

    게다가 반응을 보아하니 지난밤의 행위가 엄청나게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니까. 아마 실전에 대한 기대감은 이 이상 없을 정도로 부풀어 올랐겠지.

    이제 내가 간섭하지 않더라도, 자기 혼자 알아서 진도를 쫙쫙 뺄 거라는 얘기다.

    "아, 미안. 오붓하게 하던 얘기마저 해."

    그렇기 때문에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방해되지 않도록 다시 자기 텐트 안으로 들어가 줬다.

    여신님 보이십니까? 저희가 해냈습니다.

    훗날 오늘의 사건을 돌이켜 보면, 학계에서는 이렇게 평가하겠지.

    유리가 신에게 입으로 해준 건 그 커플에게는 섹스로 이어지는 작은 진전에 불과했겠지만, 마신의 추종자들에게는 대 섹스 시대가 열리는 위대한 신호탄이었다.

    ···뭔가 명언처럼 말해보고 싶었는데, 섹스라는 단어가 들어가니 맛이 확 떨어지네.

    아무튼 그렇게 바프라를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전에 신에게 섹스의 참맛을 알려준다는 계획도 어느 정도 성공해서, 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길을 나설 수 있었다.

    뭐, 그래도 어제 우리 애들과 대화하면서 느꼈던 안타까움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는 없었지만.

    어쩔 수 없잖아?! 각양각색의 미녀들이,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라 디아나 레이아 마틸다라는 절세 미녀들까지 진을 치고 있는 노천 온천이라고!

    젠장! 다시 생각해도···생각해봤자 괜히 더 안타깝기만 하니까 그만하자.

    "형님들 여기서 곧바로 가면 오늘 안에 마을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오늘은 그렇게 가는 것이 어떨까요? 구원 형님도 노숙에는 질리지 않으셨습니까?"

    내 핑계 대지 마라 이놈아. 눈에 아주 그냥 성욕이 꽉꽉 들어차 있는 주제에.

    너 그냥 여관에 가면 섹스 할 수 있으니까 빨리 마을에 가려는 거잖아?

    "괜찮네. 어차피 보험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오늘만큼은 지지해주지.

    나는 유리가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신을 향해 힘껏 엄지를 들어 올리며 이빨을 환하게 드러내는 미소를 보여줬다.

    그리고 신 역시도 엄지를 척 들어 올리며 그런 내 엄지 척에 감사 인사를 표했다.

    야. 나는 그렇다 쳐도 너는 그러는 거 유리한테 들키면 위험한 거 아니냐?

    뭐, 입으로 해줬다는 걸 아침에 들킨 이후로, 유리는 쭉 먼 산만 바라보고 있으니 들키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해서, 우리는 마을이 있는 방향으로 일직선으로 달려갔다.

    원래는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방향을 이리저리 틀고 흔적도 지우면서 다녔지만,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 그 중2병한테 누명도 씌웠으니까 시선 분산도 됐을 테고.

    "겨우 도착했군요!"

    해가 완전히 저물었을 무렵이 되어서야, 아니. 여기는 해가 저무는 게 아니라 어두운 면으로 돌아가면서 날이 어두워지는 거지만.

    아무튼 완전히 밤이 되어서야, 우리는 마을에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마을이라고 하기에 이번에도 지난번에 봤던 그 마을 정도의 규모를 생각했지만, 의외로 상당히 규모가 큰 곳이었다.

    마을이라기보다는 도시에 가까운 규모.

    게다가 완전히 밤이 되었는데도 모든 마을에 환하게 불이 켜져 있고 사람들은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어서, 마치 던전 밖의 도시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뭔가 쓸데없이 소란스러운 곳이군."

    "넬슨강의 쉼터로 유명한 마을이니까요. 근방에 요지는 없지만, 각지에 물류를 운반하는 배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으로 이용되어 낮과 밤의 경계가 없기로 유명하죠."

    "아아. 여기가 그···."

    어두워서 얼굴이 잘 안 보이게 되자 부끄러움이 조금은 사라진 건지, 드디어 입을 열고 우리에게 설명해주는 유리.

    나는 그런 설명을 들으면서, 뭔가 아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넬슨강이 뭔지 쥐뿔도 모르지만.

    다시 보니 저기 너머에 커다란 배들이 정착해있는 바다 같은 곳이 보이니, 저기가 넬슨강이겠지.

    "그러면 너희도 배를 타고 여기까지 온 거야?"

    "네. 그때는 친구인 파란의 호의로 하류지 물류를 운반하는 배에 끼어들 수 있었습니다만···."

    "그러면 여기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도 배를 타야 한다는 건가.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거지만, 여기도 배에 끼워 태워줄 인맥은 있어?"

    "없습니다."

    역시나. 어쩐지 말끝을 흐리더라니.

    그래. 그렇게 일이 잘 풀릴 거라고는 나도 처음부터 기대도 안 했다.

    "수도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길은?"

    "그것도···없습니다."

    "그럼 숨어 탈 수밖에 없겠네. 그래서 어디로 가는 배를 타면 돼?"

    "아스라입니다."

    "알았어. 하는 수 없지. 일단 여관부터 잡고 생각하자."

    여기까지 오는 며칠 동안 몬스터는 충분히 잡았으니, 돈은 충분하다.

    그러니 돈을 내고 밀항을 의뢰하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그러면 너무 뒤를 쉽게 밟힐 것 같아서 말이야.

    여기까지 빨리 오기 위해서 오늘은 흔적도 안 지우고 일직선으로 이동했으니, 배를 타는 것만큼은 조금 더 수고를 들여서 은밀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사실 숨어 타는 것이 그리 어려울 것 같지도 않고.

    그러니 일단 숨어 타는 걸 목표로 하고, 그게 안 될 것 같으면 돈 주고 밀항하는 걸 고려해 봐야지.

    "그, 그럼 형님들. 편히 쉬십시오. 내일은 힘든 여정이 될지도 모르니 저희도 빨리 들어가서 쉬겠습니다."

    여관에 도착하자마자, 신은 유리를 데리고 서둘러서 자신들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니. 자기들 딴에는 서두르지 않는 척하고 있었지만, 누가 봐도 빨리 방에 가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처럼 보였다. 특히 신이.

    그 이후 나도 떨거지 삼인방과 헤어져 실비아와 방에 들어온 다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실비아의 옷을 벗···기지는 않았다.

    "실비아."

    "네, 네헵!"

    실비아는 또 하룻밤이 시작된 줄 알고 몸을 딱딱하게 굳히며 긴장했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아니야. 나도 무척이나 그러고 싶지만,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미안. 오늘은 먼저 좀 쉬고 있어. 난 가서 염탐 좀 하고 올게."

    "염탐···말입니까아?"

    "그래. 어느 배가 아스라로 가는 배고, 또 어떻게 해야 숨어들기 좋은지 정도는 알아내야 하니까. 그러려면 밤에 알아보는 게 제일 좋고."

    "그, 그런 것이라면 저도···!"

    우리 기특한 실비아는 역시나 자기도 따라가겠다고 발 벗고 나섰지만, 나는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나 혼자 가는 게 제일 좋아. 잊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래 봬도 내 직업이 암살자 계통이잖아."

    그래. 그것도 그냥 암살자도 아니고, 월영무사다.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런 어두운 밤이야말로 내가 활동하기 제일 좋은 시간이거든.

    갑옷을 벗은 나는 인벤토리에서 검은 옷을 꺼내 챙겨입었다.

    거기에 검은 장갑과 검은 신발, 그리고 검은 천을 복면처럼 둘러서 피부가 드러난 곳을 꼼꼼히 다 가린 다음, 나는 실비아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어 줬다.

    "그럼 쉬고 있어."

    "기, 기다리겠습니다!"

    "안 돼. 쉬고 있어."

    원래 내 말이라면 죽으라는 시늉을 해도 들을 실비아였지만, 이번만큼은 실비아도 물러설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붕붕 흔들며 저항했다.

    그냥 좀 보고 오는 건데 너무 걱정이 심하네.

    "하는 수 없지. 그럼 준비하면서 기다리고 있어."

    "아읏···우으으···."

    내가 그 가슴에 손을 얹으며 가볍게 키스해주자, 그제야 실비아는 몸에 힘이 빠지면서 다리를 후들후들 떨더니 그대로 침대에 풀썩 주저앉았다.

    "다녀올게."

    "다녀오십시오오···."

    그렇게 해서, 나는 창문을 박차고 나가 밤과 완전히 동화됐다.

    직업이 그냥 암살자일 때부터 있었던 은신 스킬도 있지만, 월영무사로 전직하고 은신 스킬 레벨을 올리면서 그림자 은신이라는 새로운 패시브도 생겼거든.

    말 그대로 그림자에 있을 때 행동의 은밀성이 올라가는 패시브로, 은신과 같이 결합되면 그 시너지가 무시무시하게 올라가는 패시브 스킬이었다.

    특히나 이런 어두운 밤에는 굳이 그림자를 찾을 필요도 없이 패시브가 상시 발동된 상태가 되거든.

    여기에 눈에 닿는 그림자로 이동할 수 있는 그림자 이동까지 있으니 말 다 했지.

    이런 밤에 쓰는 그림자 스킬은, 그야말로 눈이 닿는 곳 어디든 이동할 수 있는 블링크 스킬이나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게다가 그냥 그걸로 끝이 아니다.

    아직 스킬 포인트를 투자하지는 않았지만, 어둠 속에서도 시력을 강화하는 야간투시 스킬도 있고, 심지어 어둠 속에서는 공격과 방어에 보정치를 얻는 패시브 스킬마저 있다.

    이런 스킬들을 다 찍으면 그야말로 월영무사라는 직업의 진면목이 드러나게 되는 거지.

    설마 내 월영무사 스킬이 이제 와서 빛을 보게 될 줄이야.

    던전 안에서는 심지어 사방이 막힌 동굴에서조차 사방에서 은은하게 빛이 나고 있었기 때문에, 월영무사 고유의 스킬들이 빛 볼 일이 없었거든.

    그래서 스킬도 굳이 찍지 않았던 거고.

    그나마 그림자 은신은 그림자 이동과 결합해서 허를 찌르기 좋으니까 찍었지만.

    아무튼 그런 이유로 어둠과 완전히 동화된 나는, 그림자 이동을 이용해서 건물 천장에서 천장으로 이동하며 순식간에 항구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일단 눈앞에 보인 제일 큰 배의 돛대 위로 올라가서는, 쪼그려 앉은 자세로 아래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기분은 그야말로 다크 히어로. 지금이라면 밤만 되면 항상 특수 분장하고 건물 위로 올라가서 이런 자세로 폼을 잡는 대기업 회장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나 참. 무거워 죽겠네. 대체 무기를 얼마나 싣는 거야? 이거 다 쓸 놈은 있어서 가져가는 거야?"

    "그러게 말이야. 도착할 때쯤이면 다 뒈져있는 거 아냐?"

    여긴 아니군. 말하는 걸 보니 전쟁 지역으로 가는 배 같은데, 아무리 전쟁을 좋아하는 세계라고 하더라도 수도 한복판에서 갑자기 전쟁이 터졌을 리는 없으니까.

    제일 큰 배라서 숨어들 곳도 많고 좋을 것 같았는데, 하는 수 없지.

    나는 재빠르게 이 배를 포기하고, 다른 배의 돛대에 올라타서 마찬가지로 선원들의 말을 엿들었다.

    "옆 항구 쪽은 전쟁으로 불바다가 됐다는데, 바프라님은 이런 걸 뭐 하는 데 쓰려는 거지?"

    그런 식으로 배를 옮겨 다니길 두어 차례 반복했을 때, 드디어 내 귀에 원하는 말이 들려오게 됐다.

    배 크기는 처음 갔던 배보다 조금 작지만, 그래도 숨어들 공간은 충분히 있어 보이는 커다란 배였다.

    다만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거기! 쓸데 없는 말하지 마라!"

    꽤 강해 보이는 경비병들이 곳곳에 깔려 있다는 점이지만.

    아니. 처음 탔던 그 무기 나르는 배도 경비병은 많았지만, 여기 경비병들의 수준은 그보다 적어도 두 단계 이상 높아 보였다.

    거기 경비병이 레벨 120대 언저리들이었다면, 여기 경비병들은 평균 180 정도.

    귀검이라는 할아범이 레벨 200 정도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경비병치고 지나치게 높은 수치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래 봤자 우리 상대는 전혀 안 되겠지만, 저것들을 그냥 다 때려잡으면 되는 문제가 아니니까 말이야.

    그리고 여기 놈들은 전부 근접직인 주제에 묘하게 마나에 민감하다고 할까, 진짜 기를 쓰는 무협인 같은 놈들이라 잠입하기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그나마 나 정도 수준이 되니 이렇게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거지. 다른 녀석들, 특히 레벨이 부족한 신과 유리는 배에 접근하려고 하는 순간 들키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서 바프라의 보스한테 물건을 진상하러 가는 배에 돈 주고 밀항 시도가 통할 것 같지도 않고.

    골치 아픈 상황에 마주치게 되어서,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76화 > 끝

    ⓒ CurtainC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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