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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971화 (955/1,205)
  •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71화 >

    마지막으로 한 방 먹여주기는 했지만, 결국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아니. 어차피 무협의 클리셰를 생각하면서 별 근거도 없이 얽혀보려고 했던 거니까, 딱히 상관은 없지만 말이야.

    "쳇. 놓쳤······뭘 너희끼리 다시 시켜서 먹고 있는 거야?!"

    빈손으로 털레털레 식당으로 돌아오자, 다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식사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나마 실비아는 혼자 빵에 손을 뻗을지 말지 고민하는 자세로 기다리고 있어 줬지만.

    역시 너밖에 없다. 실비아야. 그래도 넌 내 눈치 안 보고 맘껏 먹어도 돼.

    "아, 성······구원 님. 돌아오셨습니까."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뻔뻔하게 손을 들며 맞이하기는.

    "그러게 쓸데없이 자리는 왜 박차고 나간 거야?"

    게다가 쓰레온에 이르러서는, 한술 더 떠 중2병의 뒤를 쫓았던 내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그런 말까지 내뱉었다.

    저, 저······젠장! 확실히 의미 없는 짓이었지만!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저놈한테 들으면 괜히 화가 나!

    "너! 정의 바보!"

    "네? 저 말입니까?"

    하지만 딱히 할 말은 없었기 때문에, 나는 타겟을 듀크에게 돌리기로 했다.

    "너 평소에 온갖 정의로운 척은 다 하고 다니면서! 이렇게 식당이 개박살······."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나는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분명 나서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엉망진창이었던 식당이었는데, 다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고 떠들며 식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까 중2병한테 얻어터진 그 마초맨들까지도.

    혹시 나 혼자 환각이라고 봤나? 잠깐 그런 의심이 들 정도로 말도 안 되는 광경이었지만, 자세히 잘 살펴보면 박살 난 테이블이라든가 의자의 흔적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대충 테이프 같은 걸로 붙여서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었지만.

    "뭘 혼자 열 내는 거야. 식당에서 이 정도 일은 일상다반사잖아."

    게다가 내 황당함에 화룡점정을 찍은 것이, 바로 그런 신의 대사였다.

    아니. 세상에 어느 식당이 이런 일이 일상다반사야!

    그야 무협지의 객잔에서는 심심하면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설마 진짜로 심심하면 일어나는 일인 거였냐?!

    뭔가 일일이 태클 걸기도 지쳐서, 나는 그냥 아무 말 없이 실비아의 옆에 앉았다.

    "아까 이대로 가면 안 된다고 불쌍하게 외치던 식당 주인은 뭐였던 거야."

    "그렇게 하면 가끔 수리비를 주고 가는 호구가 있으니까. 정말 가끔이지만."

    "······."

    대체 뭐 하는 데야 여기.

    여신님. 다시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요? 아무리 종의 다양성이 보고 싶어도 그렇죠. 정말로 이런 놈들까지, 이런 세계까지 교화해야겠어요?

    "플리투스는 이러지 않는 거냐?"

    하지만 신으로서는 오히려 이렇게까지 반응하는 내가 더 이상하다는 듯, 목소리를 낮추고 그런 질문까지 던졌다.

    아차. 지금까지 잘 연기해놓고 다 된 밥에 재를 뿌릴뻔했네.

    그리고 쓰레온아. 네 이름 부른 거 아니니까 움찔거리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그건 가보고 나서 직접 경험해봐. 처음부터 다 알고 가면 재미 없잖아? 지금은 그런 것보다, 아까 하던 얘기나 마저 하지."

    대충 얘기를 얼버무리고 나서, 나는 곧바로 놈의 주의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 그거 말인가."

    그리고 신 역시도 아까 못다 한 얘기가 계속 신경 쓰이고 있기는 했던 모양이다.

    이런 반응을 보면, 역시 내 생각대로란 말이지.

    여신님에 대한 증오심으로 섹스를 죄악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게 기분 좋다는 것쯤은 알고 있는 거다. 그리고 남자의 본능으로, 그 행위에 끌리고 있기까지.

    물론 그래도 다른 놈들이라면 섹스의 섹자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킬지도 모르겠지만, 이 녀석은 이미 바프라에서 금기시하고 있는 사랑에 눈을 뜨고 도망 나온 몸이다.

    다른 금기에 대한 저항감도 상대적으로 약하겠지.

    "그래. 어디까지 말했더라······아, 그래. 그래. 결국 걸레 신의 목적은, 아이를 많이 낳게 하기 위함이라는 말까지 했지. 즉, 그 걸레 신의 궁극적인 목표는 섹스가 아니라는 뜻이야. 섹스는 어디까지나 수단에 불과해. 그러니까 그걸 역이용하는 거야."

    "여, 역이용한다니?"

    내가 계속해서 섹스라는 단어를 연호하자 옆에 있는 유리는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돌려버렸지만, 신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미끼를 덥석 물어서,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 같이 몸을 낮추고 내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섹스하면서, 아이를 갖지 않게 하는 거다. 아이를 많이 낳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걸레 신이 이용한 섹스의 쾌감만을 듬뿍 맛보면서, 정작 걸레 신이 원하는 결과는 내놓지 않는 거지. 어때? 걸레 신을 엿먹일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허업!"

    물론 전부 헛소리다.

    정말로 여신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모험가들 사이에서는 당연시되고 있는 피임 마법을 막지 않으셨을 리가 없다.

    물론 피임 마법이 종의 가능성이 어쩌고 하는 여신님의 뜻과 어울리지 않는 마법인 건 맞다.

    실제로 그런 이유 때문에 성직자들은 자신의 몸에 피임 마법을 거는 걸 금기시하고 있고 말이다.

    그러니 피임 마법의 경우, 여신님이 대의를 위해 눈감아 주고 있는 면도 없잖아 있기는 하겠지.

    특히나 피임 마법은 모험가들이 많이 쓰는 마법인데, 그 모험가들이 던전을 탐험하며 마석을 캐오는 것이 전쟁 신의 힘을 갈아먹는 결과로 이어지는 시스템인 모양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닐 거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지만, 아마 여신님은 당장의 결과만 본 것이 아니라 더 넓게 봤을 거다.

    피임 마법을 사용하면 아이에 관심 없거나 당장 낳으면 안 되는 사람도 거리낌 없이 섹스할 수 있을 거고, 그렇게 섹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면 늦든 빠르든 언젠가는 결국 아이를 가지게 될 테니까.

    그리고 내가 이용하려는 것이, 바로 이 점이었다.

    우선은 이런 식으로 여기 놈들을 구슬려서 섹스에 빠지게 하는 거다.

    일단 맛을 들이고 나면, 끊으려고 해도 쉽게 끊어지는 게 아니니까.

    "대, 대단하군. 그런 생각을 해내다니. 하지만······대체 어떻게 아이를 낳지 않을 수 있지?"

    그 장대한 계획의 첫 번째 희생양인 신은 이미 내 말에 홀라당 넘어간 모양이었다.

    머릿속으로는 벌써 유리랑 침대에서 뒹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이라도 하고 있는지, 눈을 시뻘겋게 충혈시키면서 내 대답을 촉구했다.

    혹시 그렇지 않을까 싶었지만, 역시나 그런 건가.

    아무래도 이 세계는 피임 마법이 없는 모양이다.

    뭐, 섹스는 대를 잇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행위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을 테니, 그야 아이를 낳지 않기 위한 마법 같은 걸 개발했을 리가 없지.

    하지만 그것도 전부 내 예측 범위 안이라는 말씀.

    아니. 오히려 피임 마법이 없는 편이, 내 계획을 진행하기 더 좋았다.

    "간단해. 두 가지 방법이 있어. 하나는 피임구를 사용하는 거고, 또 하나는 다른 구멍을 사용하는 거지."

    그래. 이런 식으로 얘기를 진행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이 세계는 피임 마법 대신, 콘돔 섹스나 애널 섹스로 섹스에 빠지게 해주겠어.

    피임 마법을 걸고 하는 건 섹스의 기분을 온전히 다 느낄 수 있지만, 콘돔 섹스나 애널 섹스는 그렇지 않다.

    사람은 호기심의 동물이니까 말이야. 일단 콘돔 섹스나 애널 섹스로 섹스의 맛을 들이고 나면,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을 거다.

    콘돔 없이 섹스하는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 뒤가 아니라 앞으로 하는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 하고 말이지.

    설령 그것이 금기라고 할지라도. 선악과에 손을 댄 아담과 이브처럼, 결국 그 선을 넘어버리고 말겠지.

    나는 그저 옆에서 지켜보며, 살짝 거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아담과 이브를 현혹한 뱀처럼.

    ······왠지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성자보다는 사악한 무언가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런 거 아니니까!

    난 성자고, 이건 어디까지나 여신님의 뜻에 따라 그렇게 하고 있을 뿐이야!

    "다, 다, 다른 구멍이라고 하면······."

    "너도 여자의 몸 구조는 알고 있을 텐데?"

    높으신 분의 자식이면 대를 잇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 정도는 배웠을 테니까.

    "정말 모르겠어? 내가 가르쳐줘?"

    "그, 그럴······! 아무리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라도, 유리의 몸을 함부로 보여줄 것 같아!"

    내 말을 대체 어떻게 해석한 건지, 신은 흥분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고 했다.

    자신이 쫓기는 몸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는지, 심호흡하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기분은 나쁘다는 듯, 놈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듯 내게 경고했다.

    아니. 그냥 그림 같은 거라도 그려서 알려준다는 뜻이었는데······.

    일일이 너무 과민반응하는 게 귀찮기는 했지만, 이것도 여신님이 내려주신 사명을 위해서다.

    성자인 내가 넓은 마음으로 참아야지.

    "바보. 나도 너희가 왜 도망 나왔는지 정도는 알아."

    "그, 그렇군······."

    나는 일단 가볍게 신을 진정시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래도 이래서야, 앞으로 전도 다난할 것 같군. 그럼 일단 확인하지. 네 여자랑 사랑의 결실을 맺으면서, 동시에 걸레 신을 엿먹이는 행위. 너도 하고 싶은 거 맞지?"

    "······."

    이건 또 왜 대답이 없어.

    방금까지, 아니. 지금도 눈을 시뻘겋게 충혈시키고 있는 주제에.

    "왜? 하기 싫어?"

    "그······! 하, 하고 싶다."

    내가 대답을 추궁하자, 그제야 녀석은 유리 쪽을 힐끔 곁눈질하면서 어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냥 대놓고 하고 싶다고 말하기 낯부끄러웠던 것뿐이냐. 사내새끼가 되어서. 뭐, 됐어.

    "좋아. 그럼 가자."

    신이나 유리뿐만 아니라 다들 내 얘기에 집중한 모양이지만, 그 와중에도 먹을 건 다 챙겨 먹은 모양이었다.

    말끔하게 빈 접시만 놓여있는 식탁을 확인한 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 가다니 어딜?"

    "아까 뭐 들었냐? 뒤로 하는 것 말고 또 하나 방법이 있다고 했잖아?"

    "아, 그, 그렇군. 피임크음."

    그래. 그래. 누가 들을지 모르니 말조심하는 자세. 그거 하나는 마음에 든다.

    "보면 알겠지만 공교롭게도 우리 파티는 전원 남자라서 말이지. 그런 목적의 도구는 가져오지 않았어. 그러니 지금부터 도구점에 제작 의뢰를 하러 가도록 하지."

    하나부터 열까지 거짓말이지만, 신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군. 하지만 괜찮은 걸까? 아무리 여신을 엿먹이기 위한 행위라고 해도, 여기선 섹으음의 인식이 그다지······."

    "괜찮아. 어차피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말하지 않고 의뢰하면, 무슨 도구인지 절대 모를 테니까."

    그렇게 해서, 우리는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다 같이 도구점을 찾아가게 됐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콘돔을 주문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만들 수 있겠어?"

    물론 물건에 씌울 물건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으니, 나는 손가락에 씌울 물건이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콘돔에 대한 설명을 마쳤다.

    호인족인만큼 손도 두꺼운 그렉의 손을 보여주면서 저놈의 손가락에도 끼울 수 있을 정도로 신축성이 좋게 만들어달라고 했으니, 이런 식의 설명이라도 충분히 물건에 끼울 수 있을 만한 것이 완성되겠지.

    "흐음. 그런 식으로 말이군요. 하지만 아무리 얇게 만들어도, 맨손과 같은 감촉을 느끼기는 불가능할 겁니다. 정교한 작업을 하기는 조금 어려움이 있겠지요.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도구점 주인은 턱에 손을 대고 잠깐 생각에 빠지는 것 같더니, 그런 대답을 들려줬다.

    "상관없어."

    오히려 나야 더 좋지.

    사실 너무 좋은 물건이 나올까 봐 걱정했는데.

    여기는 원래 세계보다 소재도 더 풍부하고, 마법의 힘으로 도구 제작 능력도 더 뛰어나니까.

    안 낀 것과 똑같은 감촉의 콘돔 같은 게 나와버리면, 오히려 내 계획에 차질만 생긴다.

    "만드는데 시간은 얼마나 걸릴 것 같지?"

    "흐음. 저도 이런 식의 물건은 처음 만들어보는 것이니 정확하진 않습니다만······점심 즈음에는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충분해. 그럼 부탁하지."

    우리도 여기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으니 너무 오래 걸리면 나중에 더 큰 도시에 가서 의뢰할 생각이었지만, 역시 마법이 있는 세계답게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대충 선금을 몇 푼 건네고, 파티원들과 함께 다시 도구점을 빠져나왔다.

    "그럼 일단 물건은 점심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그동안 이번에는 그쪽 얘기를 들어보도록 할까."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71화 > 끝

    ⓒ CurtainC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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