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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944화 (928/1,205)
  •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44화 >

    결국 마틸다는 평소와 다름없이 모두와 아침 식사를 즐기고 난 후에야 저택을 나설 수 있었다.

    "그러니까 미안하다니까. 괘, 괜찮지?"

    신전에서 마중 나온 사람과 마차를 타고 떠나려는 마틸다의 등 뒤를 배웅하자, 마틸다는 곱게 눈을 흘기면서 볼멘소리를 하려고 했다.

    "괜찮지 않······으응······쪽. 네에······. 다녀올게요."

    가볍게 키스를 해주자 바로 핑크빛 모드가 되어서는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마차 안으로 사라졌지만.

    "레이아도. 잘 다녀와."

    "후훗. 네. 다녀올게요."

    그리고 레이아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내게 가볍게 키스를 해준 다음 마차 안으로 사라졌다.

    성녀가 되어서 치유 능력이 더 향상됐으니 곧장 그 힘을 어려운 사람을 위해 쓰고 싶다는 레이아다운 이유로, 오늘은 레이아도 같이 신전에 간다는 모양이다.

    "자, 그럼······."

    아무튼 그렇게 레이아와 마틸다가 탄 마차가 저택을 빠져나가 사라지는 것까지 지켜본 후, 나는 잠깐 생각에 빠졌다.

    평소에 시간이 남아돌 때처럼 뭘 하면 좋을지 생각하는 게 아니다.

    이대로 며칠 동안은 던전에 가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기 때문에 시간이 남는 건 맞지만, 적어도 오늘은 제대로 할 일이 있거든.

    "사라가 좋을까 디아나가 좋을까. 아니. 아예 둘 다······."

    "뭐가?"

    "우왓! 깜짝이야!"

    혼자 고민하고 있자, 갑자기 사라가 등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분명 암살자 계통 직업은 내가 가지고 있는데 왜 얘가 내 등 뒤를 더 잘 잡는 느낌일까.

    "매일 그런 식으로 골라잡는 거야?"

    "······응?"

    가볍게 눈을 흘기면서 사라가 내뱉은 말을, 나는 처음에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수 초의 침묵 후, 나는 겨우 사라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필 내가 방금 중얼거린 말이,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오늘은 누구랑 섹스할지 고민하는 것 같은 말이었잖아!

    "아, 아니거든?! 너 대체 사람을 뭐로 보고!"

    "매번 시간 남으면 여자 하나 잡고 뒹굴기만 하는 변태."

    "······."

    치사하게 팩트로 때리지 마라.

    "어머, 생각해보니 이제는 하나만 잡는 것도 아니네. 방금도 둘 다······라고 중얼거렸고. 그랬다가는 디아나가 정말로 폭발할걸?"

    야. 셋이서 한 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서 너랑 레이아도 동의하에······아니. 잠깐. 그보다.

    "디아나······라는 것은, 사라 씨는 아닌 겁니까."

    "그럴 리가 없잖아. 이 변태야! 설마 진짜로 그런 생각 하고 있었던 거야?!"

    살짝 희망을 가져봤지만, 사라는 얼굴을 붉히며 곧바로 날 매도했다.

    그것도 그런가. 어쩔 수 없이 한 번 했다고 해서, 거부감이 없어지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쳇······아, 아니.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혀를 찼지만, 사라의 날카로운 눈길에 바로 정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난 여기서 포기하지 않는다고. 원래 뭐든 처음이 제일 어려운 법이니까. 한 번 해버린 이상, 분명 다시 한번 찬스는 있을 거야!

    아무튼 지금은 그런 것보다.

    "그게 아니라 쓰레온네 누구랑 같이 가야 할지 생각 하고 있었어."

    그래. 사실은 이런 별거 아닌 고민을 하고 있었던 거다.

    "응? 그 사람 집에는 왜?"

    "너도 여신님의 말을 들었잖아."

    "여신님의 말씀 때문에 지금부터 약속 잘 지키는 착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는 거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하는 사라.

    야. 내가 여신님 말 잘 듣고 착한 사람이 되는 게 그렇게 이상······하구나. 응.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다.

    "그게 아니라 여신님이 본 주제에 들어가기에 앞서 쓰레온 얘기부터 한 게 마음에 걸려서 말이야. 어쩌면 앞으로 사명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쓰레온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있을 거라는 뜻 아닐까?"

    "그러고 보니······그러네."

    "그래. 그래서 일단 쓰레온한테 가보려는 거야. 어차피 집도 근처고. 말 전해주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사라에게, 나는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고 말해줬다.

    어떠냐. 네 서방님 추리 능력이. 머리 쌩쌩 돌아가지 않냐?

    하지만 우리 용사님은 내가 자랑만 하고 있도록 두지 않으셨다.

    "그러면 혼자 가도 되잖아? 왜 누굴 데려가려고 해? ······데이트?"

    "그, 그래! 데이트! 어때? 이 스윗한······."

    "아니구나."

    처음에는 기대를 담아서 날 쳐다본 사라였지만, 내가 그렇다고 해주자마자 바로 실망감에 물든 표정을 지으며 게슴츠레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그러니까 넌 대체 어떻게 내 생각을 읽는 거냐.

    "그래서, 사실은?"

    "······나 혼자 가서 앞으로 내 사명만 충실하게 도우면 네 저주도 풀릴 거라고 말해봤자 안 믿을 테니까."

    "푸흡!"

    "웃지 마 이것아!"

    남자들의 신뢰 관계란 원래 그런 법이라고!

    아니. 쓰레온이랑 신뢰 관계를 쌓은 기억은 없지만.

    "미안. 구원이 너무 주제 파악을 잘······."

    "주제라고 하지 마!"

    숨넘어갈 것처럼 배를 잡고 깔깔 웃는 사라에게 한 소리 해줬지만, 사라의 웃음은 끝날 줄 몰랐다.

    뭐, 웃는 모습이 예뻐서 보기 좋기는 하다만.

    짜증보다 이런 생각이 먼저 드는 걸 보니, 나도 중증은 중증인 모양이다.

    "하앗······하앗······미안. 그럼 디아나랑 다녀와."

    너무 웃어서 산소가 부족한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사라는 눈가에 눈물까지 훔치고 겨우 웃음을 참은 다음 그렇게 말해줬다.

    "응? 네가 같이 가는 게 아니라?"

    지금 완전히 너랑 같이 가는 분위기 아니었냐?

    "나는······다른 남자 집에 가는 거 싫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얘 나 말고 다른 남자 싫어했지.

    요즘은 얘가 내 여자라는 소문이 퍼져서 접근하는 남자도 없고, 그러다 보니 얘가 혐오스러운 눈으로 다른 남자를 보는 장면을 마주칠 일도 없어서 잠깐 깜빡하고 있었다.

    "알았어. 그럼 다녀올게."

    "응."

    그렇게 해서, 나는 지하의 연구실에서 뭔가에 골몰해있던 디아나를 끌고 나와 같이 쓰레온의 저택에 향하게 됐다.

    사정을 설명하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끌고 나왔는데도, 디아나는 그다지 곤혹해 하지 않았다.

    "대체 이 몸을 어디로 데려가려는 겐가?"

    눈동자를 반짝이며 저렇게 묻는 걸 보니, 곤혹은커녕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하여간 겁도 없다니까. 뭐, 그만큼 날 신뢰하고 있다는 얘기도 되겠지만.

    하지만 디아나의 저런 표정을 보면 골려주고 싶은 게 나라는 놈이라서 말이지.

    "맞춰봐."

    "음? 퀴즈인가? 힌트는 없는가?"

    머리 쓰는 걸 좋아하는 디아나답게, 이런 수수께끼는 오히려 반기는 모습이었다.

    "힌트? 흠······힌트라. 아, 그래. 앞으로 던전에 다니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러 가는 거야."

    어떻게 하면 사실만 말하면서 디아나를 착각하게 할 수 있을까.

    조금 고민한 끝에, 나는 그런 힌트를 던져줬다.

    "으으음? 그래선 너무 많지 않은가."

    "디아나만 데려가는 이유는, 디아나만 필요하기 때문이야."

    "이 몸만? 마법 관련 일인가? 아니면 누군가와 교섭이 필요한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이런. 힌트를 너무 어설프게 줬나.

    곧바로 정답에 근접해버렸잖아. 난 이런 걸 원한 게 아닌데.

    "햐응?!"

    일부러 디아나를 정답에서 멀어뜨리기 위해, 나는 디아나의 몸을 내 쪽으로 당겨서 바짝 밀착시키고는 고개를 숙여 그 귓불을 입술로 가볍게 깨물었다.

    "잘 생각해 봐. 뭘 것 같아?"

    "아으읏······서, 설마 자네에······!"

    그리고 이번에는 제대로 내 의도대로 흘러가서, 디아나는 드디어 이상한 방향으로 착각해준 모양이었다.

    "자네라니. 낭군님이라고 해야지?"

    그런 디아나에게 확인사살을 하듯 섹스할 때 아니면 디아나가 잘 안 쓰는 호칭을 입에 담자, 디아나의 다리가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자, 자네 대체 무슨 생각을······! 그, 그러면 저택에서는 왜 데리고 나온 겐가아?!"

    "그야 저택에서 나오지 않으면 못 하잖아?"

    "뭘 말인가?! 대체 어떤 플레이를 하려고 그러는 겐가아!"

    벌써 머릿속에서 전라로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진 건지, 디아나는 반쯤 패닉 상태가 되어서 눈동자를 떨고 있었다.

    "대마법사님의 위엄을 보여주자고. 그 대마법사님이 그러고 서 있으면 분명······."

    "부, 분명 뭔가?! 어딜 서 있으라는 겐가?! 어, 어떻게 위엄을 보여주라는 겐가아! 이, 이 몸, 지금은 가슴도 없네!"

    두 팔을 교차시켜서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는 동작까지 취하면서, 디아나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아니. 가슴으로 위엄을 보여주라는 얘기가 아닌데.

    평소에는 맨날 성장하면 굉장하다고 자랑하는 디아나의 입에서 지금은 없다는 말까지 나오는 걸 보니, 상당히 절박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괜찮아. 넌 그 자체만으로도 빛나."

    "이, 이런 상황에서 이 몸이 그런 말로 기뻐할 것 같은가아?!"

    디아나야. 입꼬리 살짝 올라갔어.

    게다가 입으로는 그렇게 항의하면서도 발은 계속 움직여서 날 따라오고 있는 걸 보니, 실은 너도 살짝 기대하고 있는 거 아니야?

    크크큭. 입으로는 저항해도 몸은 솔직하······아, 아니. 이건 너무 조교 하는 놈 대사 같은가.

    나는 최대한 선량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면서, 디아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줬다.

    "왜 그런 미소를 짓는 겐가?! 어떤 의미인가?! 그, 그만두세. 저, 저택으로 돌아가면 뭐든 해줄 테니······."

    하지만 내가 선량하게 보인다고 지은 미소는, 디아나의 눈에 사악한 미소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진짜지?"

    "으, 음?"

    "나중에 저택에서 뭐든 해주기로 한 거다?"

    갑자기 태도가 바뀐 내게 당황하는 디아나였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앞의 대문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래도 우선은 볼일부터 마치자."

    "저곳은······플리투스가의 저택 아닌가."

    도착지가 쓰레온의 저택이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디아나는 드디어 야한 걸 하러 온 게 아니라고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래. 여신님의 말씀을 좀 전해주려고."

    "그, 그럼 아까 한 말은 무엇이었는가?!"

    "뭐가? 난 딱히 거짓말한 기억은 없는데."

    "하, 하지만······! 하지만! 이 몸만 필요하다고!"

    빠르게 우리가 나눴던 대화를 돌이켜본 후, 디아나는 바로 오류를 찾아낸 모양이었다.

    하여간 머리 돌아가는 건 엄청 빠르다니까.

    하지만 그것도 딱히 거짓말은 아니었는데.

    사라는 다른 남자 저택에 가는 걸 싫어하고, 레이아와 마틸다는 신전에 갔다. 실비아는 나하고 있으면 제대로 말도 못 하게 되니까 설득력이 떨어지고, 레이첼 누님도 출근. 바넷사는 저택에서 일을 해야 하니까 말이야.

    결국 남은 선택지는 디아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우으으! 자네라는 남자는! 자네라는 남자는!"

    "크하핫. 아까 했던 말 잊지 말라고."

    필사의 토닥토닥 어택을 날리며 분통을 터트리는 디아나를 무시한 채, 나는 당당하게 쓰레온네 저택 정문으로 다가가 소리 높여 쓰레온을 불렀다.

    "이리 오너라!"

    마음 같아서는 그냥 쳐들어가고 싶지만, 쓰레온은 둘째치고 그 밑에서 일하는 경비병이나 메이드들까지 곤란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내 얼굴은 이미 퍼질 대로 퍼져있었기 때문에, 사실 내가 이렇게 부르기도 전에 이미 정문 앞을 지키던 경비병 한 명이 쓰레온을 부르러 저택 안으로 들어갔었다.

    그래서 그다지 오래 기다릴 필요 없이, 곧바로 저택에서 우리를 마중하기 위해 사람이 나왔다.

    "오오! 성자니이임!"

    어째선지 쓰레온이 아니라 호랑이 놈이었지만.

    "넌 또 여기 왜 있어?!"

    "하하핫. 성자님도 다 아시면서 그러십니다."

    아니. 모르거든.

    아, 그러고 보니 전에도 이 녀석이랑 정의 로리콘이랑 쓰레온이 같이 붙어 다녔던가?

    설마 아예 쓰레온네 저택에 눌러살고 있었던 거야?

    아니. 잠깐만. 이 녀석이 있다는 말은······.

    "우오오! 무, 뭔가?!"

    나는 재빨리 디아나를 등 뒤로 숨겼다.

    "오랜만입니다."

    역시나 튀어나왔잖아. 저 정의 로리콘 녀석.

    디아나의 모습을 보지 못한 건지, 녀석은 아직 멀쩡한 얼굴로 내게 인사를 해왔다.

    그리고 곧장 내가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듯, 의아한 표정으로 한 걸음 더 내게 다가왔다.

    "왜 그러십니까?"

    "자네, 갑자기 왜 그러는겐가?"

    게다가 디아나 역시도 갑자기 자기를 막아선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옆으로 빠져나와 버려서, 결국 내 노력이 무색하게도 둘을 제대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말았다.

    "윽?! 대, 대마법사님도 계셨습니까."

    어째선지 정의 로리콘은 디아나의 얼굴을 보고도 흥분하기는커녕, 오히려 살짝 겁먹은 표정을 지으며 뒤로 한발 물러나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지만.

    이 녀석, 혹시 전에 디아나한테 뭔가 잘못이라도 저지른 적 있는 건가?

    아니. 그런 것치고는 디아나의 표정이 너무 덤덤한데. 저 녀석이 누군지도 모르겠다는 표정이잖아.

    그렇다는 말은······.

    "야! 너 지금 우리 디아나가 나이 많다고 무시하냐?!"

    "갑자기 나이 얘기를 왜 하는 겐가?!"

    나는 디아나의 남자로서, 디아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디아나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격노했지만, 오히려 격노한 디아나한테 딱밤을 맞고 말았다.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44화 > 끝

    ⓒ CurtainC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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