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941화 (925/1,205)
  •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41화 >

    디아나의 마법 연구 시설 덕분인지, 아니면 여신님이 이번에는 자제해주신 건지, 우리와 여신님의 대화는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은 모양이다.

    마틸다와 레이첼 누님이 퇴근하고 온 후, 나는 저녁을 먹으면서 상황을 정리해서 설명해줬다.

    전쟁을 멈춰야 한다.

    위험한 임무가 되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우리가 예상했던 것들과 비교하면 그렇게 위험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마신을 상대해야 한다든가, 일반적인 전투로는 절대 제압할 수 없는 괴물을 상대해야 한다든가, 용사 무리를 상대해야 한다든가. 그런 위험하기 짝이 없는 예상만 해왔으니까 말이야.

    분명 마틸다나 레이첼 누님. 그리고 바넷사도 기뻐해 줄 거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떠오르는 방법이 내가 섹스를 해대는 것밖에 없다는 문제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가 생명의 위기에 처하는 것보다는 좋아할 게 당연하잖아?

    특히 레이첼 누님은 그런 걱정으로 항상 불안해하셨으니, 더욱 기뻐하실 거다.

    "구, 구원아. 그러면!"

    "그래. 그야 전쟁신의 추종자들이니 거기 녀석들도 평균적으로 강하기는 하겠지만, 설마 용사보다 강하겠어? 그리고 인간 상대라면 난 무적이나 마찬가지니까. 더는 내가 던전 아래에서 돌아오지 못하게 될 걱정은 안 해도 좋아."

    "아아······!"

    그리고 내 생각대로, 레이첼 누님은 환희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기뻐해 주셨다.

    하지만 그런 훈훈한 분위기를 순식간에 망쳐버리는 녀석이 있었으니.

    "그러면 나는 성자님에게 교화된 첫 여자가 되는 셈이군."

    바로 미리엘이었다.

    두 번 설명하기 귀찮기도 하고, 어차피 이제 도망갈 생각도 없어 보이니까 같이 식사도 할 겸 여기로 데려와서 설명해준 게 실수였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죠?! 내가······!"

    그리고 저런 말에 우리 용사님이 반응하지 않을 리가 없어서, 사라는 두 손으로 식탁을 내리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사라야. 내가라니. 혹시 나한테서 섹스가 얼마나 좋은 건지 처음 배운 사람은 자기라고 주장하고 싶은 거야? 아니. 그야 틀린 말은 아니기는 하지만 말이야.

    쟤 네 이복동생이라고. 그런 걸로 겨루고 싶니?

    "응?"

    "······."

    사라도 중간부터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조용히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미리엘도 그런 사라한테 딱히 더 신경 쓸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시선을 레이첼 누님에게 옮기고, 미리엘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안심해도 좋아. 레이첼. 성자님의 테크닉이라면 어떤 여자도 굴복시킬 수 있을 테니까. 아니. 저 테크닉이라면 굳이 남녀를 나누지 않더라도 모든 사람을 굴복시킬 수 있을 거야. 성자님의 섹스 테크닉으로 몸도 마음도 굴복해버린 내가 하는 말이니까 확실해.

    앞으로 성자님이 위험해질 일은 절대 없을 거야."

    "야 이것아!"

    "왜 그래. 성자님. 칭찬한 거잖아."

    "그게 어딜 봐서 칭찬이야!"

    "이런 말을 하는 건 자랑 같아서 부끄럽지만, 나 정도 여자를 굴복시킨 거야. 솔직히 성자님이 굴복시키지 못할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응읍. ······으응."

    "그러니까 제발 입 좀 다물어!"

    황급히 손을 뻗어서 미리엘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내가 거칠게 입을 막자 이 녀석은 또 묘하게 얼굴을 붉히면서 콧소리까지 흘려버려서, 그게 또 우리 애들의 심기를 거스른 모양이었다.

    "몸도······마음도 굴복······?"

    "아, 아니야!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실은 그런 게 맞을지도 모르지만, 여기서 저걸 인정해버리면 어떤 수라장이 펼쳐질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이 망할 녀석이 진짜. 하필 또 성격은 시원시원한 쾌남 같은 녀석이라 괜히 더 하는 말에 설득력이 생기잖아!

    "너 대체 뭐가 목적이야?! 이젠 이간질로 작전을 바꾼 거냐?! 우리 사이를 분열시키는 게 목적이냐?!"

    하지만 나도 지금까지 폼으로 하렘 생활을 해온 게 아니라고!

    내부의 분열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동의 적을 만들어 공격하는 거다.

    나는 애써 미리엘을 다그치며 그 죄를 추궁했고.

    "하핫. 미안. 조금 심술부려본 것뿐이야. 성자님의 얘기를 듣는 한, 나와 성자님이 대립할 이유도, 내가 이렇게 되어야 할 이유도 없었던 것 같으니까."

    미리엘도 딱히 우리 애들한테 내가 당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건 아니었다는 듯, 시원하게 웃으면서 장난이었다고 말해줬다.

    휴. 다행이다. 이 녀석이 받아주지 않았다면 지금쯤······아니. 애초에 이 녀석이 기폭제를 던진 거니까 다 이 녀석이 문제잖아.

    그리고 지금 한 말도 그렇다.

    "아니. 어차피 넌 마신의 힘을 받아 용사가 되는 게 목적이었잖아?"

    "하지만 마신은 봉인 당해 없는 거잖아? 그렇다면 내가 용사가 될 방법은 없고, 성자님과 대립할 필요도 없었던 거지."

    "그거야······."

    "알아. 나도 착각해서 무작정 달려들었으니까 누굴 원망할 자격은 없지. 난 성자님의 사명이 세상에 있는 모든 마신의 흔적을 지워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우리 할아버지가 사명을 완수했는데도 여신님이 이렇게 성자님을 보내신 걸 보냈잖아? 여신님은

    사랑의 힘으로 마신의 종족을 교화하는 작전을 실패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었던 거지. 몸에 마신 종족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 여신님에 대한 믿음이 약했던 걸까?"

    과연. 그런 생각을 했던 건가.

    이 녀석은 우리보다 조금 더 정보를 많이 쥐고 있었지만, 그 단편적인 정보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아니. 딱히 피는 관계없다고 보는데."

    그렇게 따지면 사라나 레이아의 몸에도 마신 종족의 피가 흐르고 있는 거니까.

    반사적으로 사라 쪽에 시선을 돌릴 뻔했지만, 나는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사라 본인이 미리엘한테 우리가 이복자매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지 않은 거다. 내가 함부로 힌트를 던져줄 수는 없지.

    "그런가? 아,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렇게 되는 편이 좋았던 건지도 모르겠어. 그때 내가 성자님을 따돌리고 가서 자세한 사정을 알았다면,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군대를 이끌고 전쟁을 더 확장시켜서 마신을 부활시키려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너 그런 짓까지 벌일 생각이었냐?! 그래도 일단 여신님을 믿는 거 아니었어?!"

    "하핫. 가능성의 얘기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게는 정말로 용사가 되는 것밖에 삶의 목적이 없었으니까."

    "지금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그야 성자님한테 몸도 마음도······."

    "그러니까 그 얘기는 그만 됐다고!"

    "하하핫."

    쓸데없이 시원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미리엘은 차에 입을 댔다.

    "하아······아무튼 넌 이제 7계층 출입 금지다? 진짜 들어오면 혼날 줄 알아."

    "······성자님."

    진짜 피곤해 죽겠네. 얘는 슬슬 얘기 마무리 짓고 자기 집으로 돌려보내자.

    그렇게 생각하고 한 말이었지만, 내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미리엘이 진지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뭐야."

    "구체적으로 어떻게 혼나는 건지 알려줬으면 좋겠어. 대답에 따라서는 성자님에게 혼나려고 일부러 들어가는 것도······."

    "뭔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거야?! 그냥 평범하게 혼낼 거야!"

    "그, 그런가. 평범하게 인가."

    섹스 같은 걸로 혼낼 생각 없다고 황급히 말해줬지만, 어째선지 미리엘은 더욱 기대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차! 생각해보니까 이 녀석, 이제 고통으로 느끼는 체질이 되어버려서 일반적인 방법으로 혼내도 좋아할 거잖아! 어떤 의미로는 무적이 되어버린 거 아니야?!

    찰싹!

    내가 당황하고 있자, 갑자기 등에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잡히면 구원이 아니라 내가 혼내줄 거예요."

    그리고 나와 미리엘 사이를 가로막듯이 들어온 사라가, 날 대신해서 미리엘에게 으름장을 놨다.

    "그렇군. 그러면 하는 수 없지. 경험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여자 손에 그렇게 느끼게 되는 건 나도 부끄러우니까. 알았어. 7계층에는 들어가지 않을게."

    하지만 우리 용사님의 으름장에도, 미리엘은 기죽기는커녕 반격까지 시도했다.

    "느낀다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제가 이 변태랑 똑같은 줄 알아요?! 혼내준다는 건 야한 의미가 아니라, 진짜로 이렇게 때려준다는 의미에요!"

    아니. 사라야. 내 등짝을 가리키면서 이렇게라고 말하지 마라.

    그리고 쟤는 그렇게 말하면······.

    "응. 나도 정확히 그런 의미로 말한 거야."

    "······야! 구원! 너 대체 이 여자를 어떻게 해놓은 거야!"

    잠깐의 침묵 끝에, 미리엘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드디어 이해했다는 듯 사라가 눈에 살기까지 품으며 날 노려봤다.

    "어, 어쩔 수 없잖아! 저 녀석이 싸움을 그만두게 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고!"

    "그, 그렇다고 해서! 이, 이 변태가 진짜······!"

    아무리 사라라도 이번에는 분노보다 부끄러움을 더 강하게 느꼈는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미리엘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너무 성자님을 책망하지 말아줘. 나는 이런 몸에도 만족하며 살아갈 생각이니까."

    "넌 제발 좀 조용히 해!"

    "당신은 좀 빠져요!"

    "사이가 좋네. 부러워."

    사이가 좋은 건 인정하지만, 수라장을 만들어 놓은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냐?!

    사라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까지 시선이 날카로워진 거 안 보여?!

    심지어 우리 천사님까지도 애매한 미소를 지으면서 "구원 씨······아무리 그래도 너무 과하셨어요······." 같은 표정을 짓고 있잖아!

    그리고 그 와중에도 혼자 미리엘의 폭탄 투하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디아나였다.

    혼자서 "이, 이 몸······조교 당하고 있었던 것인가아······!" 같은 말을 중얼거리면서 두 손으로 머리를 잡고 있는 게 보였던 거다.

    쟤도 쟤 나름대로 미리엘이 던진 폭탄에 직격당한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디아나야. 넌 그냥 처음 만났을 때부터 노출증이었으니까. 딱히 내가 조교 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니까.

    "하아······아무튼 경고했으니까. 알았으면 넌 이제 좀 가라. 가."

    이 이상 이 녀석을 여기에 두면 괜히 골치만 더 아파질 것 같다.

    혹시 그걸 노리고 저렇게 행동하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어차피 저런 몸이 된 이상 함부로 7계층에 갈 생각은 못하겠지. 만에 하나 갔다고 하더라도, 내가 섹스하자고 하면 저항을 못할 테니까 손쉽게 제압할 수 있고.

    그렇게 생각하고 손을 휘휘 내저으며 미리엘에게 축객령을 내린 나였지만, 미리엘의 대답은 의외의 것이었다.

    "응? 가야 하는 건가?"

    "가도 되는 건가?"가 아니라 "가야 하는 건가?" 라고?

    뭐야 너. 가기 싫어?

    "이런 몸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평생 길러줄······."

    "제발 좀 가라고!"

    "성자님은 매정하군."

    답지 않게. 아니. 사라보다도 동생인 거니까 나이를 생각하면 어울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입술을 내밀어서 살짝 토라진 표정을 지은 후, 미리엘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이만 가볼게. 이제는 날 신용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말해줘."

    그리고 평소처럼 시원스런 미소와 함께, 미리엘은 내게 악수를 청했다.

    내가 그 악수를 받아주자, 미리엘은 갑자기 마주 잡은 손을 확 당겨서 날 끌어안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게 안긴 게 아니라 날 자기 품에 끌어안았다.

    무협지 주인공 같은 성격도 그렇고 이런 왕자님 같은 행동도 그렇고, 이거 원래 남자로 태어나야 할 놈이 여자로 잘못 태어난 거 아니야?

    어이가 없어서 아무것도 못 하고 그대로 안겨있자니, 내 귓가에 미리엘이 입을 가져다 대고 조용히 속삭여줬다.

    "그냥 하고 싶어졌을 때 불러줘도 되고."

    "······사라는 귀 좋아서 다 들린다."

    우리 파티 근처에서 귓속말이 하고 싶으면, 훨씬 더 목소리를 죽여야 한다고.

    "그런 것 같네."

    대체 내 등 뒤에서 사라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 건지, 미리엘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 몸을 놔줬다.

    "그럼 나는 무서우니까 이만 갈게. 성자님도 몸조심해."

    그렇게 말하고 나서, 미리엘은 진짜 조교 받고 가는 게 맞는가 싶을 정도로 시원스러운 걸음걸이로 등을 돌려 식당을 빠져나갔다.

    자기가 폭탄을 던져놓고 몸조심하라니. 모순되지 않냐?

    "······저기 말이죠."

    "왜?"

    눈으로 그 뒷모습을 배웅한 후 몸을 돌려보자, 거기에는 사라가 만면의 미소로 날 맞이해주고 있었다.

    "방금 전 상황을 변명하면 괜히 더 수상해 보이겠죠?"

    "응. 잘 아네."

    "사, 살살 부탁합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라는 손을 들어 올렸고,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등짝에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고, 대신 내 코를 가볍게 잡고 흔드는 감촉만이 느껴졌다.

    "사라야?"

    "······이 바보는 진짜 내가 아무 때나 그러는 줄 알아."

    내가 눈을 뜨고 고개를 갸웃거리자, 사라가 조금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혹시 아까 넌 진짜로 무섭다고 농담한 걸 신경 쓰고 있는 거야?"

    "아니거든 이 바보야!"

    결국 괜한 말을 하는 바람에 나는 옆구리를 살짝 한 번 꼬집히고 말았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미리엘을 둘러싼 일련의 소동을 드디어 끝마칠 수 있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41화 > 끝

    ⓒ CurtainC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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