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937화 (921/1,205)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37화 >

뭐, 아직 이렇게 안심할 단계는 아니지만.

전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제압했다고 방심한 순간 배를 찔릴 뻔 했다.

왜 그렇게까지 강해지는 것에 집착하는지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이 녀석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한계를 뛰어넘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는 것을 상기해야 했다.

진짜 세계관이 무협이었으면 주인공이 어울릴 상인데 말이야.

"성자······큭!"

내 예상대로 미리엘의 회복은 생각보다 빨라서, 미리엘은 내가 먼저 움직이기도 전에 고개를 들어서는 날 바라보는 눈에 힘을 줬다.

딱딱한 물건에 그렇게나 세게 부딪혔다. 아무리 자기가 때린 거라고는 하지만, 그 주먹에 느껴지는 충격이 절대 작지는 않았을 텐데도 저렇게 빨리 회복하다니.

뭐, 감각이 마비될 정도로 아래쪽에 충격을 받고도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아무튼, 이 이상 방심해서 생각에 잠겨있는 건 위험하다.

아무리 힘을 잔뜩 준 채 날 바라보고 있는 그 눈동자가, 분노가 아닌 다른 감정에 물들어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곧바로 그림자 이동을 써서 미리엘의 뒤로 돌아갔다.

물론 미리엘도 내가 자신의 뒤로 돌아갔다는 걸 알고 곧장 대응하려고 했지만, 아직도 살짝 안으로 오므리고 있는 그 다리로 내 공격을 완전히 회피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찰싹!

결국 내 손바닥은 미리엘의 엉덩이를 제대로 때렸고.

"으응읏?!"

그 클린 히트에 다리의 힘이라도 풀린 건지, 미리엘의 무릎이 풀썩하고 꺾였다.

이대로 주저앉고, 그대로 게임 오버인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아라크네 클랜장님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으극!"

무릎이 바닥에 완전히 닿기 직전에, 미리엘은 다리에 애써 힘을 줘서 버티고 일어났다.

다신 꺾이지 않겠다는 듯 쭉 빠진 다리를 곧게 펴고 버티고 선 미리엘.

하반신만 보면 오히려 아까 주먹의 충격으로 오므리고 있을 때보다 더 멀쩡해진 것 같아 보였다. 다리만 보면 말이다.

하지만 그 몸 전체를 시야에 담으면, 무릎은 펴졌어도 앞으로 기울여진 상체는 일어날 생각을 못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 마치 내 쪽으로 그 탄력 있는 엉덩이를 내밀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이렇게 손대기 좋은 위치에 내밀어져 있는 탐스러운 엉덩이를, 내가 가만히 두고 보기만 할 이유가 없었다.

찰싹!

"응흣?!"

찰싹!

"아흣!"

아까의 그 의지를 표명하듯 꼿꼿이 뻗어있던 다리는 어디로 갔는지, 미리엘의 무릎은 내가 그 엉덩이를 찰싹하고 때릴 때마다 풀썩풀썩 꺾였고.

찰싹!

"흐으읏!"

결국 세 번째는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엉덩이를 털썩 붙인 채 주저앉아버렸다.

두 팔로 자신의 몸을 감싸 안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걸 보니, 가볍게 느껴버린 건지도 모른다.

그런 모습까지 보고 나서야, 나는 드디어 완전히 긴장을 풀 수 있었다.

미리엘의 옆으로 이동해서 바닥에 엉덩이를 대지 않고 쪼그려 앉는, 일명 슬라브 스쿼트라고 불리는 자세를 한 채, 나는 미리엘에게 말을 건넸다.

"그래서, 나한테 뭔가 할 말이 있지 않냐?"

애초에 미리엘이 반드시 약속을 지킬 거라고 믿고 승부를 건 게 아니었기 때문에, 이렇게 된 이상 항복 선언을 듣는 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일단 들어둬서 나쁠 건 없잖아?

"하앗······하앗······성자님······."

역시나 가볍게 느껴버린 건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내게 촉촉한 시선을 보내오는 미리엘.

내가 그 부름에 진한 미소로 화답해주자, 미리엘은 분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다만, 그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내가 원하는 말이 아니었지만.

"성자 스킬은······봉인하는 게 아니었어?"

아마 미리엘도 알면서 저렇게 말하는 거겠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

그 증거로, 씽긋 웃으면서 되묻는 내 말에 미리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뭐, 하지만 아직 항복 선언을 하고 싶지 않은 거라면, 그 몸으로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해줄 수밖에 없지.

"으응?! 가, 갑자기 뭘······?!"

나는 미리엘의 등 뒤로 손을 뻗어서, 바지 위쪽을 잡고 들어 올렸다.

바지가 다리 사이로 파고드는 감각이 기분 좋은지 살짝 달콤한 콧소리를 흘리면서도 당황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미리엘.

"뭘 하는 건지 모를 리가 없잖아."

"읏······!"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해주자, 미리엘은 짧은 침음성과 함께 아무런 말도 못 하게 됐다.

그야 그렇지. 내가 바지 뒤쪽을 잡고 들어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미리엘의 엉덩이가 위로 올라가게 됐으니까.

며칠 동안 그렇게 당해놓고도 이 자세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거야말로 문제가 심각하다.

"아직 결투가 안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저항해도 상관없어."

잡고 있던 바지를 이번엔 아래로 확 내리면서, 나는 미리엘에게 그렇게 말해줬다.

"이런 거······저항할 수······앗······!"

미리엘은 그런 내게 뭔가 항변하려 했던 모양이지만, 도중에 뭔가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는 듯 입을 닫아버렸다.

겨우 깨달은 건가.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다니. 은근히 둔한 면이 있단 말이야.

그 탐스러운 엉덩이를 감싸고 있던 속옷도 내려버리고, 나는 미리엘의 뒤로 돌아가 자신의 바지춤도 풀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감각이 없는 물건에 마력을 흘려 넣어 다시 세우고는, 이미 흠뻑 젖어서 날 맞이할 준비를 마친 미리엘의 음부에 단숨에 찔러넣는다.

"흐으읏?!"

"하아아······."

그렇게 하자,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절정에 달해야 확실하게 힐링 효과를 볼 수 있는 힐링 섹스지만, 이렇게 넣고 있기만 해도 자연 회복력은 높아진다.

아래쪽에 슬슬 감각이 돌아오는 느낌에 몸을 떨면서, 나는 미리엘의 엉덩이를 찰싹하고 때렸다.

"야."

"하응읏······!"

"아까 내가 했던 질문. 슬슬 대답할 때 안 됐냐?"

딱히 허리를 움직일 생각은 들지 않아서,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감각이 돌아오면서 슬슬 아래쪽에 본격적으로 통증이 느껴지는 바람에 도저히 허리를 움직일 상황이 아니어서, 나는 가만히 미리엘의 안에 삽입한 채로 대답을 재촉했다.

"하앗······결국 처음부터······응흣······결투의 승패는 정해져 있었다는······으흣······거군······."

드디어 인정할 생각이 들었는지, 엉덩이를 바들바들 떨면서 내 말에 대답해주는 미리엘.

그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지.

자신이 이 며칠 사이에 어떻게 변해버렸는지 겨우 눈치챈 거니까.

주먹에 느껴진 통증으로 느끼는 자신을 보며 자신이 더는 평범하게 싸울 수 있는 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버렸고, 내가 막무가내로 바지를 벗기는데도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내가 섹스를 요구하면 자신은 절대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버렸다.

여러 의미로 처음부터 승부가 되지 않는 결투였다는 얘기다.

"그런 거지."

"······성자님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잔인한 사람이었군."

답지 않게 조금 슬픈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미리엘.

내 섹스 요구에 저항할 수 없게 된 건 둘째 치더라도, 더는 제대로 싸울 수 없게 됐다는 건 상당히 쇼크였겠지.

솔직히 저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약해져 버리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진짜 어쩔 수 없잖아. 네가 그렇게 고집부리지 않았으면 나도 이렇게까지는 안 했을 텐데.

"그래서 싫어?"

"으흥······!"

나는 흔들리려는 마음을 단단히 붙드는 것처럼 미리엘의 가슴을 손으로 꽉 움켜쥐고는, 그 귓가에 입을 가져가서 조용히 속삭여줬다.

"······내가 졌어."

하지만 미리엘은 또다시 내 질문에 대답을 회피했다.

뭐, 딱히 날 좋아한다는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고, 원하던 대답도 들었으니 좋은 게 좋은 거지만.

"좋아."

"으흣?!"

마침 아래쪽의 통증도 슬슬 참을만해 졌기 때문에, 나는 허리를 거칠게 움직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앗······하앗······설마 이런 식으로, 목적을 잃어버리게 되다니."

그렇게 다시 일전을 치른 후, 미리엘의 바닥에 널브러져서 한쪽 팔로 자신의 눈을 가리고는 여러 감정이 담긴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후하핫. 알았느냐. 정의란 언제나 승리하는 법이다."

나도 장난 섞인 목소리로 호응해줬지만, 미리엘은 그런 내 분위기에 맞춰줄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내가 그때 서두르지 않았다면, 결과는 바뀌었을까? 침착하게 때를 기다리고, 성자님이 전쟁을 치르는 동안 숨어들었더라면······."

응? 아니. 야. 지금 뭔가 뒤숭숭한 말을 내뱉지 않았냐?

"전쟁? 무슨 소리야?"

용사 무리와 싸우는 거니까 전쟁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전투 스케일이 커지기는 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표현이 너무 과하지 않냐?

"응?"

내 질문에, 미리엘은 오히려 자기가 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던전의 아래에서 마신의 일족을 소탕하는 게 성자님의 사명 아니었어?"

마신의 일족······뭐, 사라도 미리엘도 마족이니까, 용사는 전부 마족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황실 친위대님의 마음을 뺏은 것도, 공주님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추기경님이 성기사단을 육성하는 것도, 전부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서잖아?"

응? 으으응?

"아니. 아닌데."

내가 고개를 젓자, 미리엘은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 성자님은······그 많은 사람을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야? 나라 하나를, 아니. 대륙 전체를 혼자 상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잖아. 아무리 성자님이라고 해도 그런 건······."

"야. 잠깐. 잠깐 타임. 무슨 소리야? 대륙이라니? 그렇게나 수가 많다고?"

갑자기 등줄기가 차갑게 식는 느낌이 들어서, 나는 미리엘에게 따지듯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미리엘은 당연하다는 듯, 오히려 어떻게 아직도 모를 수 있냐는 듯 날 쳐다봤다.

"성자님도 그곳의 하늘을 봤잖아?"

"그야 태양이 떠 있는 건 똑똑히 봤지만······."

설마, 진짜로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이 세계의 지구는 평평한 거야?

세계가 넓은 면으로 되어있고, 우리는 던전을 통해서 그 반대쪽 면으로 나가버린 거야?

"태양을 말하는 게 아니야. 그 너머를 말하는 거야."

"······잠깐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뭔가 오싹한 느낌이 들어서, 나는 황급히 바지를 챙겨입고 마법 연구실을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문을 연 순간.

"꺄악!"

갑자기 우리 애들이 우당탕탕 넘어지며 밀려 들어왔다.

바닥에 넘어진 사라와 디아나, 실비아. 그리고 조금 멀리 떨어져서 이쪽을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하는 레이아까지.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는 마틸다, 바넷사, 레이첼 누님은 없었지만, 그 밖에는 전부 여기에 모여있었다.

아마 넘어져 있는 셋은 어떻게든 엿들어보겠다고 문에 귀를 대고 있었고, 레이아는 그래도 성직자 신분이라 차마 엿들을 수는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말도 안 하고 왔는데 대체 우리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는지. 역시 바넷사가 알린 건가.

평소라면 우리 애들이 안에서는 일을 엿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당황하거나, 아니면 이렇게까지 날 걱정하는 모습에 흐뭇해하거나 했겠지만, 지금의 내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미안. 미리엘이 도망 안 가나 감시하고 있어줘."

"뭐, 잠깐! 구워······!"

사라가 재빨리 날 붙잡으려고 했지만, 넘어져 있었던 바람에 내 행동이 조금 더 빨랐다.

나는 그림자 이동을 적극 활용하면서, 최대한 빨리 길드를 향해 질주했다.

"구원아?! 드디어 나오신 거니? 하지만 왜 혼자······."

"잠깐 다녀올게요!"

"응?! 잠깐······!"

레이첼 누님에게 절차를 밟는 것조차 대충 넘어가고, 나는 빠르게 텔레포트 마법진을 향해 달려갔다.

미리엘을 조교 하는 동안 시간이 꽤 흘렀으니, 어쩌면 이미 망가져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이 오싹오싹한 기분의 정체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기분이었다.

텔레포트 마법진을 통해서, 우리 외에는 아무도 등록되지 않은 7계층의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가벼운 현기증과 함께 내 몸은 무사히 텔레포트를 마쳤다.

운이 좋게도, 7계층에 설치한 텔레포트 마법진은 아직 파괴되어있지 않았던 거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바라본 순간, 나는 미리엘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37화 > 끝

ⓒ CurtainCall#p5k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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