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933화 (917/1,205)
  •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33화 >

    "뭐야 너······이잇! 설마 떠본 거였냐?!"

    단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이 안 좋은 건 아닌, 아니. 오히려 단순한 만큼 야성의 감이 살아있는 앨리시아는, 갑자기 변한 내 태도를 보고 뭔가를 깨달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험한 말투와는 정반대로, 그 표정은 아까보다 살짝 부드럽게 풀려있었다. 마치 안심하고 있는 사람처럼.

    뭐, 몸을 던져 목숨을 구해줄 정도로 날 좋아하고 있는 앨리시아로서는 나하고 대립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러면서도 미리엘을 위해서 내 멱살까지 잡으면서 흥분하는 점이 앨리시아답다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날 대신해서 검에 찔렸을 때도, 결국 미리엘을 따르는 것과 내게 붙는 것 중에서 선택을 못 하고 갈팡질팡하다가 그런 결과가 나와버린 거니.

    언젠가 길드에서 있었던 소동을 레이첼 누님한테 전해 들었을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진짜 의리 하나는 끝내주는 녀석이다.

    "뭐, 절반 정도는. 아무튼 잘 됐잖아. 단순히 우정 때문에 어울리고 있었던 거라면, 너희는 쉽게 풀어줄 수 있을 테니."

    "괜히 사람 놀리지 마, 새끼야! 옛날부터 걸핏하면 그렇게 사람 마음을 가지고 놀고······."

    내가 긍정하자, 앨리시아는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내 등을 퍽퍽 때렸다.

    솔직히 말해서 조금 아팠지만, 앨리시아가 중얼거린 뒷말에 양심이 무진장 찔려서 아프다는 말은 쉽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게다가 아직 앨리시아의 마음을 괴롭힐 일이 남아있고 말이다.

    "안심하기는 일러. 너희는 이라고 했잖아."

    "······무슨 말이야."

    내가 표정을 다잡고 다시 조금 진지한 분위기를 만들자, 앨리시아도 덩달아 긴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살짝 원망스러운 눈으로 날 노려봤다.

    "너도 알다시피, 미리엘은 날 찌르려고 했던 녀석이야. 게다가 마신의 힘을 얻겠다는 꿈을 쉽게 포기할 녀석도 아니지. 관계없는 너희는 몇 가지 조건만 보태서 풀어줘도 상관없지만, 미리엘은 다르다는 얘기야."

    "······그러면 어쩔 셈인데."

    "······."

    아무리 뻔뻔한 나라도 앨리시아한테 사실대로 얘기할 수는 없었다.

    내가 미리엘과 며칠 내내 섹스를 할 거라는 말을 하면, 충격을 받을 건 불 보듯 뻔하니까 말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애들보다도 더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얘가 지금까지 나랑 엮여보려고 했던 노력이나, 치료를 위해서라고는 해도 나랑 몸을 겹쳤을 때 보였던 반응을 생각해보면 확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대답을 회피하고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어쩔 셈인데?!"

    "안심해. 딱히 심한 짓을 하려는 건 아니니까."

    아니. 그 전투광을 평생 전투가 불가능한 체질로 개조하려는 거니까, 따지고 보면 엄청나게 심한 짓을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생명에 지장을 주려는 건 아니니, 나는 일단 그렇게 우기기로 했다.

    "정말이겠지?"

    "어차피 심한 짓을 하면 나중에 다 들킬 텐데 거짓말해서 뭐하겠어. 그리고 네 눈엔 내가 그렇게 악당으로 보이냐?"

    "그, 그런 건······."

    그제야 자신이 날 엄청나게 노려보고 있었다는 자각을 하게 됐는지, 앨리시아는 눈에 힘을 풀면서 허둥지둥 시선을 옆으로 피했다.

    이런 점도 노리고 앨리시아만 데리고 와서 대화를 하는 거기는 하지만, 역시 나에 대한 마음을 이용해 먹는 것 같아서 양심이 찔리네.

    "따지고 보면 사실 악당은 너희 쪽인데 말이야. 난 여신님의 사도라고. 너흰 마신이랑 붙어먹으려는 쪽이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농담하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에 느껴지는 양심의 가책에서 눈을 돌리기로 했다.

    "우린 별로······!"

    "의도야 어쨌든 구도는 그렇다는 거야. 아무튼 둘이서 할 얘기는 이게 전부야. 그럼 일단 돌아가자고."

    "아, 야. 잠······."

    그리고 나서 다시 다른 아라크네 간부들이 갇혀 있는 마법 연구장으로 돌아가려 했던 나였지만, 앨리시아는 더 할 말이 있다는 듯 날 붙잡아 세웠다. 어울리지 않게 소매 끝만 살짝 잡아서.

    "응?"

    "······읏!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내가 멈춰 서자, 뭔가 억지로 화난 것 같은 목소리로 짧게 그렇게 말하고는 먼저 성큼성큼 가버리는 앨리시아.

    나도 눈치가 없는 건 아니니까 앨리시아가 보여준 행동의 의미를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타이밍이 너무 안 좋잖아.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젖고는, 앨리시아의 뒤를 따라 마법 연구장으로 들어갔다.

    앨리시아를 통해 미리엘을 제외한 사람은 마신의 힘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걸 알았으니, 남은 건 적당한 교섭 후에 얘들을 풀어주는 것뿐이다.

    이쪽에서 내걸 조건은 간단했다.

    미리엘을 개심하게 하는 동안, 다른 아라크네 클랜원들에게 적당히 얼버무려줄 것.

    그리고 미리엘이 이쪽에 있는 동안, 아니. 그 이후로도 마신의 힘을 탐하기 위한 활동은 하지 않을 것.

    나는 지금 상황의 설명과 함께 그런 조건을 아라크네 간부들에게 내걸고, 마지막으로 간단한 협박까지 곁들였다.

    "미리엘과 너희를 살려주기 위해서 이러는 거라고. 너희가 마신의 힘을 탐하기 위해 여신님의 사자인 날 해치려고 했다는 게 세상에 알려지면 어떻게 될지, 머릿속에 간단하게 그려지잖아? 대형 클랜이고 나발이고 없을 거라고."

    "그리고 미리엘의 신변도 그쪽에 있고, 라고 하고 싶은 거지?"

    "그런 거지."

    루티아의 대답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이해가 빨라서 좋네.

    "하지만 우리가 하는 말을 믿을 수 있어? 방금 말한 대로 아가를 해치려고 했던 사람들인데?"

    "댁만 빼면······."

    뭔가 염탐하는 것 같은 루티아의 시선에, 나는 반사적으로 그런 말을 중얼거려버리고 말았다.

    "아가, 지금 뭐라고 했어?"

    그리고 루티아는 그걸 또 들었는지, 눈에 힘을 주고 내게 따지고 들었다.

    하지만 딱히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당당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루티아 누님. 댁만 빼면 믿을만하다고요."

    희대의 의리녀인 앨리시아는 말할 필요도 없고, 쌍둥이 마법사도 디아나랑 평생 척질 생각을 절대 못 할 거다. 성기사인 릴리도 여신님의 사도인 나와 대립각을 세우고 싶지는 않을 거고. 안 그래도 마음이 약해 보이는 음유시인 힐다도 자기들이 전 세계의 적이 되어버리는 상황은 맞이하고 싶지 않겠지.

    그런 것치고 아래에서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랑 대치하지 않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앨리시아도 아까 말했잖아. 쓰레온네 가문도 마신의 힘인 용사를 대대로 이어오면서 잘살고 있지 않냐고.

    즉, 얘들이 우리랑 대치했을 때는, 평생 우리와 대립할 각오를 했던 게 아니었다.

    아마 적당히 우리를 따돌려서 미리엘이 마신의 힘을 얻고, 쓰레온네 가문이 그러는 것처럼 위에서 적당히 얼버무리며 지내려는 계획이었겠지.

    즉, 앞으로 더 수상한 짓을 했다가 평생 우리와 척지게 되는 것하고는 상황이 많이 다른 거다.

    그러니 아라크네 간부 중 경계해야 할 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는 루티아 밖에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뭐, 사실 만약을 위한 대비책도 이미 마련되어 있고 말이다.

    "어, 어머. 당당하네."

    설마 내가 대놓고 그렇게 말할 줄은 몰랐는지, 루티아조차도 조금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옛날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난 댁 같은 사람 분위기에 말려들어 가지 않는다고. 그동안 댁 성격을 여러모로 상회하는 펠리시아랑 이런저런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인간이란,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생물이다.

    "그래서, 받아들일 거야 말 거야."

    "좋아. 어차피 다른 선택지도 없는 것 같으니까."

    결국 아라크네 간부들은 전원 내 조건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아라크네 간부들은 팔에 디아나가 만든 팔찌를 하나씩 차고 저택에서 내보내 주기로 결정됐다.

    참고로 쟤들이 찬 팔찌는 디아나가 전에 만들었던 어려지는 팔찌와 마찬가지로, 디아나가 직접 풀지 않으면 절대 풀 수 없는 장치가 되어있다고 한다.

    저것으로 쟤들이 만에 하나 약속을 깨려고 하면 제재를 가하겠다는 얘기다.

    어떤 식으로 제제가 가해지는지 자세한 내막은 알려주지 않았지만,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걸세."라는 디아나의 협박은 아라크네 간부진들에게 충분히 먹힌 모양이었다.

    역시 사람은 명성이 중요하다니까. 내가 보기에는 귀엽기만 한데, 저런 협박이 먹혀들다니.

    "······그럼 간다."

    팔목에 찬 팔찌를 어색하다는 듯 어루만지면서, 앨리시아는 내게 인사를 건넸다.

    디자인만 놓고 보면 평범하게 예쁜 팔찌라서, 내가 봐도 앨리시아가 저런 걸 차고 있는 게 조금 어색하기는 했다.

    아니. 외모야 좋으니까 어울리기는 어울리지만, 앨리시아 성격이 저렇게 꾸미고 다니는 성격은 아니니까.

    "그래. 미리엘도 며칠 후에 무사히 돌려보내 줄게."

    "······그래."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나서도, 앨리시아의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내가 뭔가 더 말하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처럼.

    "잘 가."

    앨리시아가 무얼 기대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할 타이밍이 아니라는 내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나는 앨리시아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한 척하고, 그대로 현관문을 닫아버렸다.

    "아······큭······!"

    문 사이로 힐끔 보인 앨리시아의 표정에 무척이나 마음이 쓰라렸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니야.

    아무튼 그렇게 아라크네의 간부진을 전부 내보내고 나서, 나는 다시 미리엘이 감금되어있는 방으로 향했다.

    실은 미리엘한테 말했던 대로 하루 정도 쉴 시간을 줄 생각이었지만, 마음이 변했다.

    오랫동안 견제하면서 골머리를 썩혀왔던 아라크네 문제도, 미리엘만 조교 하고 나면 드디어 매듭이 지어지는 거다.

    그리고 우리 애들도 시간을 괜히 시간을 질질 끌기보다는 며칠 밤을 더 사용하더라도 확실히 미리엘 문제를 처리하기를 권해줬고.

    "크흥! 흐읏! 흐으읏!"

    방 안에 들어가자, 미리엘은 괴로운 신음을 흘리며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바넷사가 무표정으로 그런 미리엘의 얼굴을 억누르는 중이었다.

    "······오셨습니까."

    내가 들어오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바넷사는 미리엘의 얼굴 쪽에서 손을 뗄 생각을 하지도 않은 채로 고개만 돌려 날 바라보며 인사를 했다.

    얼핏 보면 오싹해지는 광경이었지만, 물론 그런 오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바넷사는 단순히 미리엘이 먹을 식사를 가져왔을 뿐이다.

    그리고 미리엘의 상태가 저런 만큼 제대로 식사도 불가능해서, 직접 먹이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 정도는 메이드를 시켜도 됐겠지만, 장비가 벗겨진 채 사지가 묶여있다고 해도 상대는 아라크네 클랜의 장. 방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우리 완벽 집사님께서 직접 행차하신 거겠지.

    "응. ······생각했던 것보다 심하네."

    방치해둔 시간은 아래에서 여기로 돌아올 때보다도 짧았지만, 사지가 묶여있어서 자위도 제대로 못 한다는 게 크게 작용한 모양이었다.

    묶여있는 손목과 발목이 쓸려서 피까지 흘리면서도, 미리엘은 몸을 위아래로 들썩이며 어떻게든 구속 상태를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었다.

    "아무튼 고생했어. 앞으로는 내가 알아서 할게. 바넷사는 이제 가봐."

    "······알겠습니다."

    이런 모습까지 직접 눈으로 보고 나면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만도 하지만, 우리 유능한 집사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얌전히 자리를 비켜줬다.

    괜히 못 볼 걸 보게 해버렸네. 이번일까지 포함해서, 바넷사는 나중에 제대로 안아주지 않으면.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미리엘을 처리하는 게 우선이다.

    "흐으응! 하앗, 서, 성자······!"

    그러기 위해 우선 미리엘의 사지를 구속하고 있는 구속구부터 풀자, 미리엘은 번개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덮쳐들었다.

    자위보다 날 덮치는 걸 택하다니.

    그야 내가 풀어주지 않으면 영원히 저 상태인 거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행위지만, 그런 논리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 이성이 남아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혹시 내가 온종일 했던 조교가, 고통을 쾌락으로 느끼는 것 외에도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건가?

    뭐, 들 수만 있다면 보험은 하나보다 두 개를 들어두는 편이 더 안전하니, 나쁠 건 없다.

    나는 우선 미리엘의 몸에 걸린 절정 속박을 풀고, 손가락을 그 질척질척하게 젖은 음부로 집어넣어 가볍게 진동해줬다.

    "흐으으읏?!"

    그리고 그 가벼운 진동만으로도, 미리엘은 거의 실신할 기세로 격한 절정에 달해버렸다.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33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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