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916화 (900/1,205)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16화 >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또다시 바넷사에게 낚였다.

바넷사의 말을 듣고 잔뜩 긴장한 게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 우리 애들은 아무렇지 않게 날 맞이해줬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펠리시아도 내 여자가 된 이상 펠리시아에게도 같이 밤을 지낼 순서가 돌아가야 했으니, 펠리시아와 밤을 보내고 온 것 자체는 딱히 화낼 일이 아니라는 것이 이유였다.

게다가 순서도 마침 실비아의 순서였으니, 성에서 실비아의 동의만 제대로 받았다면 자신들이 화낼 것까지는 없다고.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있을 때는 제대로 미리 말을 하고 외박하라는 가벼운 주의는 들었지만, 그뿐이었다.

······이상해. 뭔가 엄청나게 위화감이 들어.

아니. 물론 이렇게 가볍게 끝나주면 나야 고맙기는 하지만, 평소라면 이렇게 끝날 일이 아닌데?

그도 그럴 것이, 외박만 하고 온 거 아니라 3P까지 하고 온 거라니까?

그런데 왜 저렇게 반응이 미적지근한 건데?

말하는 내용도 뭔가 미묘하게 위화감이 들고, 진짜 뭔가가 이상해.

역시 내 사명이 최종국면에 도달한 만큼, 우리 애들도 웬만하면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하도록 내버려 두려는 걸까?

그 왜, 사형수한테는 형을 집행하기 전에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게 해주는 것처럼.

······뭔가 비유가 이상하기는 하지만, 요는 앞으로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날 풀어주는 걸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무거워. 너무 무겁다고.

그야 여신님이 시키는 일이니 엄청나게 중요하고 위험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마음 편히 먹자고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 건가?

아직도 게임을 플레이하는 감각이 남아있어서, 주인공이 된 기분으로 어떻게든 될 거라고 태평하게 생각하는 건가?

······아니. 역시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무거운 분위기로 이 앞을 헤쳐나가는 게 더 위험해.

물론 너무 풀어지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겠지만, 근심·걱정만 가득한 것도 좋지 않아.

좋아.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왜 화를 안 내는 건데?! 외박하고 왔다니까?! 화내도 되잖아! 사라야! 평소의 질투 마신 같은 모습은 어디 갔어?! 자, 여기야! 내 등짝은 여기에 있다고! 평소처럼 시원하게 한 방 후려갈겨!"

"이, 이 바보는 또 갑자기 뭐라는 거야?!"

내가 사라에게 등짝을 내밀며 외치자, 사라는 반사적으로 몸을 살짝 뒤로 뺐다.

말투는 화난 것처럼 들리지만, 아마 자기가 순간 겁먹었다는 걸 감추기 위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허세다.

······그렇게 위험한 사람처럼 보였니?

"······자네."

"으, 응?"

"혹시 그······펠리시아양과 그런 행위를 즐기고 왔는가?"

"······아니거든?! 무슨 플레이를 말하는 거야?!"

"아, 아니면 아니지 왜 화를 내고 그러는가. 이 몸은 그저 그런 것이라면 이 몸도······."

너도 뭐?!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너 이제 밤에 날 이겨보겠다는 생각은 포기한 거 아니었어?!

실은 아직도 조금 관심이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아니라니까! 오히려 펠리시아 걔는 내가······!"

"······."

욱한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야,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으려고 했는지 깨달았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우리 애들의 차가운 시선으로 인해서.

"아뇨. 제 명예를 위해서 확실히 말해두겠는데, 딱히 제가 펠리시아 걔를 때리거나 했다는 것은 절대 아니고요. 진짜라니까?! 아무리 플레이라도 나도 적정선은 지킨다니까! 그러니까 다들 날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정말이야! 그야 펠리시아 걔가 신선한 플레이를 좋아하는 녀석이라 가벼운 SM 플레이를 좋아하는 건 맞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명령 당하는 걸 좋아하는 수준이야! 때리거나 하는 건 오히려 싫어한다고! 내가 그것도 실험해봐서 잘 알······아, 아무튼!

그리고 애초에 어제는 그런 플레이하고는 전혀 연관 없는 플레이를 했다고!

"못 믿겠으면 실비아한테 확인해보면 되잖아!"

"흐야으?!"

"그 여자랑 한 걸 왜 실비아한테 확인해?"

내가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구석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실비아를 잡아다가 앞으로 내밀자, 사라가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아니. 사라뿐만이 아니다. 다들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그건 아까 말했잖아. 그러니까 실비아의 차례였으니까······."

"잠깐만. 실비아한테 허락받고 차례를 미뤘다는 얘기가 아니었어?"

"······."

과연. 아까 얘기하면서 뭔가 서로 얘기가 엇갈리는 것 같은 미묘한 위화감이 있다 싶었는데, 이거였구나.

어쩐지. 하핫. 외박은 그렇다 쳐도 3P까지 너무 쿨하게 넘어간다 싶더라니. 하하핫. 어쩐지, 어쩐지. 아무리 그래도 이상하더라고.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얘기였던 것 같습니다."

"거짓말하지 마! 이 변태가 진짜 성에서 뭘 하다 온 거야?!"

짝!!!

"끄아윽!"

그렇게 해서, 결국 맞지 않아도 될 등짝 스매시를 한 대 맞게 된 나였다.

그래. 이걸로 된 거야. 너희가 기운을 차렸다면 난 그걸로 족해.

"조금 생각해 봤네만."

"응?"

아무튼 그렇게 내 외박 얘기는 마무리 짓고 나자, 디아나가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생각에 빠진 표정으로 운을 뗐다.

"정말로 던전의 아래에 용사 집단이 있는 것이라면, 그들을 제압하는 것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을지도 모르네."

"그게 무슨 소리야?"

"음. 마틸다 양. 던전에 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설명해주겠는가?"

"네? 아, 네. 으응. 그러네요······. 자연스럽게 마음이 위축되고 몸이 긴장해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느낌이었어요."

갑자기 자신에게 말을 돌리는 디아나에게 조금 당황하면서도, 마틸다는 기억을 되새기듯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오한이 든 것처럼 몸을 한 차례 떨더니, 그런 대답을 들려주었다.

"바로 그걸세. 몬스터들도 여신님의 마나에는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가? 몬스터들은 마나 변환기의 범위 안에 들어오면 날뛰기만 했네만, 제대로 된 사고 능력이 있을 용사 집단이라면 얘기가 달라지네."

"용사들이 마나 변환기 범위 안에 들어오면, 마틸다가 그랬던 것처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야?"

"음. 게다가 여신님이 자네에게 사명을 부여하신 이유도 그 마나 특성과 성자 스킬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와 비슷한 여신님의 마나를 쓰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가?"

확실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네.

같은 용사인 사라도 멀쩡한데 그게 되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라는 이방인이나 이쪽 세계 사람의 피도 같이 흐르고 있으니까 영향을 안 받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고.

하지만 만약 그런 걸로 간단하게 해결이 된다면, 여신님이 굳이 나 같은 이방인을 불러서 사명을 부여했을까?

옛날에는 한 달에 한 번씩 여신 강림을 쓸 수 있는 성녀도 있었다는 모양이니, 그때 강림해서 디아나를 시켰으면 진작에 끝났을 일이잖아?

그리고 그 방법이 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하고는 다른 이유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건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던전의 마나에서 느낌 감각은······으음······무언가 위험한 것이 사방에서 제 생명을 노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요? 끈적끈적한 살기가 몸을 휘감는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그 감각은 분명 전쟁의 신이라는 마신 특유의 마력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용사들이 여신님의 마나에 닿는다고 하더라도, 같은 감각을 느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드네요."

천천히 생각하면서 말을 고르더니, 마틸다는 이쪽 방면의 전문가다운 조언을 해줬다.

역시 우리 추기경님. 가끔 이렇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시는 게 너무 매력적이라니까. 물론 핑크빛 모드로 달라붙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으음······그런가······."

그리고 디아나도 마틸다의 말을 듣고 나니 그렇게 생각됐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디아나 본인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굳이 마틸다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되면 성자라는 존재가 필요 없어지니까 처음부터 별로 가망이 없는 아이디어였다고 생각하는데.

나도 생각해낼 문제를 눈치채지 못하다니. 경험이 많은 만큼 제일 태평해 보였던 디아나였지만, 그런 디아나도 최종국면에 들어오게 되니 조급한 마음이 생기기는 한 모양이다.

하긴. 그것도 그런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랑하는 이 낭군님의 미래가 걸린 일이니까.

"하지만 마나 변환기의 범위 안에 끌어들여서 상대한다는 발상 자체는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일단 몬스터들도 반응을 보이기는 했으니까, 용사들도 뭔가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니까."

"음. 그렇구먼."

그런 디아나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그렇게 다독여주자, 디아나는 겨우 미간을 폈다.

"그러면 일단은 계획대로 마나 변환기를 최대한 많이 준비해놓겠네. 그리고 텔레포트 마법진도 하나 준비해두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구먼."

그렇게 말한다는 건, 우리한테 설명하기 전부터 이미 준비는 하고 있었다는 얘기네.

어제도 각자 할 일을 하러 해산했을 때 제일 먼저 자리를 뜬 게 디아나였는데, 그런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였군.

하지만 텔레포트 마법진이라니.

그야 몬스터가 마나 변환기에 다가오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은 판명됐으니 6계층에는 설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용사가 있는 곳에는 불가능하지 않아?

걔들은 인간이니까 느낌이 싫다고 해서 수상한 곳을 접근도 안 하지 않을 텐데?

마나 변환기 범위에 끌어들여서 싸우자는 것도 그런 가정을 토대로 한 말이었잖아.

"텔레포트 마법진도요? 아, 그렇군요. 용사들은 몬스터들처럼 아무 곳에나 살지 않을 테니까······."

잠깐 그렇게 생각했던 나였지만, 이번에는 또 텔레포트 마법진에 대해 디아나 다음으로 잘 알 레이첼 누님이 감탄과 함께 그렇게 말씀하셨다.

"음. 설마하니 7계층이 딱 용사들만 살아가고 있을 크기일 리도 없으니, 마나 변환기를 각처에 설치해두고 그중 하나를 오지에 숨겨서 텔레포트 마법진도 같이 설치하면 발견 당하지 않고 쉽게 위아래를 오가며 용사들을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네."

과연. 그런 건가. 사람이 살지 않는 오지에 숨겨두면 일단 발견될 확률이 낮고, 마나 변환기에서 풍기는 기운으로 접근한다고 하더라도 그 마나 변환기 자체를 곳곳에 깔아두면 더미 역할을 해서 발견이 힘들어지니까.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했었네.

아까 내 걱정으로 시야가 좁아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마자 이런 아이디어를 짜내다니.

인정하지. 내가 우리 대마법사님을 너무 우습게 봤어.

"그러면 이 몸은 계속해서 준비하러 가보겠네."

생각해뒀던 계책 중 하나는 무산됐지만, 나머지 계책이라도 반드시 실행해내겠다는 결의를 불태우며, 디아나는 오늘도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뭔가 도와줄 건 없어?"

"괜찮네. 자네는 그저 던전에 가기 앞서서 최대한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것에만 집중하게."

몸 상태를 끌어올리라니. 지금까지 딱히 그런 걸 신경 써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애초에 난 힐링 섹스 때문에 자고 나면 항상 몸 상태가 최고조였으니까.

설마하니 섹스라도 더 하라는 얘기는 아닐 테고.

"그럼 부탁하네."

마지막에는 어째서인지 내가 아니라 사라와 레이아를 향해 그렇게 말하고는, 디아나는 그대로 식당을 뒤로했다.

부탁한다니. 대체 뭘?

"잠깐만요, 디아나! 그렇게 말하면 마치······!"

"아우으······."

그리고 사라와 레이아는 또 그런 디아나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었는지, 얼굴을 붉히면서 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아니. 그러니까 대체 뭔데?

나한테 몸 상태를 끌어올리라는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왜 사라랑 레이아한테 부탁한다고 하는······잠깐만. 천사님? 지금 머리도 안 묶었는데 왜 갑자기 눈에서 안광이 흘러나오시는 거죠?

잠깐만. 설마. 아니. 진짜로? 설마하니 진짜로 던전에 갈 때까지 섹스나 실컷 하라는 얘기였어?

"읏······! 뭘 그렇게 보는 거야? 최대한 레벨을 올리려면 어쩔 수 없잖아!"

내 표정이 점점 깨달은 자의 표정으로 변해가자, 사라가 작게 침음성을 흘린 다음 정색하면서 그렇게 외쳤다.

진짜입니까.

몸 상태를 끌어올리라는 게 그 말이었다니.

그야 난 섹스로 레벨만 오르는 게 아니라 성자 레벨도 같이 오르니까, 다른 애들보다도 섹스로 얻을 수 있는 성장의 효과가 더욱 크기는 하지만.

혹시 얘네들, 펠리시아랑 종일하고 왔는데도 별로 화 안 낸 이유가 그런 이유도 있었던 거였어?

던전에 가기까지 며칠 안 남기는 했지만, 어차피 자기들이 두세 명씩 달려들어도······두세 명씩?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서 뭔가를 눈치챈 나는, 자연스럽게 기대를 담아서 사라와 레이아를 번갈아 바라보게 됐다.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16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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