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09화 >
레이첼 누님에게 안겨있는 똥개를 어떻게든 처리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이상 방해할 수는 없었다.
나도 저 똥개와 헤어졌던 것이 누님에게 얼마나 큰 상처였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방해하기는커녕 원래라면 저 똥개와 둘이서 산책이라도 할 수 있게 자리를 비켜줘야 할 상황이겠지. 무지막지하게 본의는 아니지만.
하지만 그러기 전에, 누님에게 한 가지 더 용무가 있었다.
바로 디아나가 6계층에서 말했던, 장기간 실종됐던 모험가가 돌아왔었다는 사건의 전말을 듣는 것 말이다.
"아, 응.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지. 무척이나 특이한 사건이어서 아직도 제대로 기억하고 있어."
"특이? 어떤 점이?"
"길드원으로서 이런 걸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입장이지만······."
다행히도 누님은 그 사건을 정확히 기억하고 계시는 모양이었다.
내 갑작스러운 질문에 살짝 당혹해하면서도, 누님은 뭔가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신 건지 턱에 검지 끝을 가져다 대고는 천천히 기억을 떠올려주셨다.
"던전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실종됐었던 모험가가 돌아온 것부터 이미 특이한 일이지만, 실은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는 숨겨진 비화가 있었거든. 그 사람, 도중에 모험가 카드의 내용이 한 번 지워졌었어."
"뭐? 그거, 죽어야만 그렇게 되는 거 아니었어?"
"음. 맞네."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건가?
잠깐 나 자신의 기억력을 의심할 뻔했지만, 모험가 카드를 직접 설계한 디아나가 옆에서 내 말을 긍정해줬다.
"혹시 우리가 던전에 있을 때 우리 모험가 카드를 확인해본 적은 있어?"
디아나도 전에 말했지만, 이방인은 던전에서 모습을 감추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즉, 우리 전에도 소계층을 다니던 이방인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장기간 실종됐다가 돌아왔던 그 모험가 역시도 소계층에 있느라 모습이 안 보였던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소계층에 있을 동안 길드에 있는 모험가 카드와의 연결이 끊어진다고 한다면, 모두 설명이 된다.
"응? 그거야 언제나······가, 갑자기 그런 건 왜 묻는 거니?"
그런 의미로 던져본 질문이었지만, 누님의 반응을 보아하니 우리의 모험가 카드에 이상이 있었던 적은 없는 모양이다.
다시 말해서 소계층에 있느라 카드 내용이 사라졌던 건 아니라고.
"아니. 그냥."
"후훗. 그런 일은 나도 길드에 있으면서 한 번밖에 못 봤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 그때도 내가 직접 본 건 아니니까 한 번도 못 봤다고 해야지."
"레이첼이 직접 본 건 아니구나."
"응. 애초에 모험가 카드 내용이 사라졌다는 것도 확실한 건 아니야. 당시 모험가 카드의 내용이 사라졌다는 이유로 사망 처리됐었지만, 나중에 그 사람이 돌아오고 나서 다시 한번 모험가 카드를 확인해보니 제대로 내용이 남아있었거든. 하지만 같이 던전에 갔던 파티원들은 정말로 던전에서 사망했으니까, 아마 카드를 확인했던 담당자가 그 사람의 것까지 사라진 것으로 잘못 봤던 것이라는 게 당시 결론이었어."
"그런 것치고는 뭔가 석연찮은 말투네."
"응. 이상한 점은 그것뿐만이 아니었거든. 그 사람, 6계층에 다닐 정도로 뛰어난 모험가였는데, 글쎄 귀환하면서 텔레포트 마법진을 한 번도 이용하지 않았지 뭐니."
"······즉, 6계층에서부터 위까지 직접 걸어서 올라왔다고?"
"응. 수상하지?"
그건 확실히 이상하다.
그렇게 오랫동안 던전을 헤매고 있었던 거라면, 피로도 역시 이루 말하기 힘들 정도로 쌓여있었을 것이다.
만약 텔레포트 마법진을 꺼리는 괴짜라고 하더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텔레포트를 이용해서 편히 돌아오고 싶었을 텐데.
"그래서, 그 이방인의 이름은 기억하시나요?"
우리가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자, 옆에서 사라가 더는 참기 힘들다는 듯 끼어들어서 그런 질문을 던졌다.
마치 뭔가를 예견하고 있는 사람처럼 굳은 표정으로.
"네? 사라씨, 그 사람이 이방인이었다는 건 어떻게 아셨나요? 아, 이름. 이름 말이죠. 으응······사······사무엘······그래. 사무엘이었을 거예요. 콧수염을 멋지게 기르신 신사분이었죠."
"읏······후우우······."
그리고 이어지는 레이첼 누님의 대답에, 사라는 예감이 들어맞았다는 듯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이어서 바로 심호흡을 하듯 한숨을 내뱉으며 표정을 다잡았지만 말이다.
"사라야?"
"······할아버지 이름이야. 동명이인일 수도 있지만, 우리 할아버지가 맞는 것 같아. 분명 맞을 거야."
그리고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사라는 그렇게 내뱉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던전에서 실종됐던 이방인이 사라의 할아버지.
지금까지 그 가능성은 전혀 생각해두지 않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라의 할아버지는 분명 마지막에 2계층에나 겨우 다니던 그놈한테 살해당한 거니까.
사라는 엄청난 실력의 사냥꾼이라고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래 봤자 고작 시골에서 조금 먹히는 수준이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 1차원적인 생각이었다.
아무리 게임 같은 시스템이 적용되는 세계라고는 하지만, 늙어 죽기 직전까지 전성기의 힘을 고스란히 발휘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분명 그전부터 허리로 고생하고 있다고 했었고, 잘은 모르지만 나이를 먹으면 노화 같은 패널티가 생길지도 모르지.
그러니 사라의 할아버지도 원래는 6계층에 다닐 수 있을 실력의 소유자였지만, 나이가 들고 쇠약해져서 그 쓰레기 새끼한테 당한 거라고 생각하면 앞뒤가 맞는다.
그리고 지금까지 모아온 퍼즐 조각들을 전부 맞춰보면 이런 결론이 나온다.
"사라의 할아버지는 여신님의 사명에 따라 6계층의 아래까지 내려가는 것에 성공했고, 거기서 마신을 추종하는······용사를 만났다?"
6계층 아래는 6계층 이상으로 마신의 마나가 짙은 곳일 거다. 길드에 있는 모험가 카드와의 연결이 단절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그런 곳에 다녀오려면 당연히 오랜 시간이 걸렸겠지. 실종 소동이 일어날 정도로.
군데군데 끼워 맞춘 구석이 없는 건 아니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말로 그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거라면 사라가 이방인과 용사의 피를 동시에 잇고 있는 것도, 지금까지 용사라고는 쓰레온의 가문밖에 없었던 세계에 아우덴이라는 새로운 용사의 혈족이 갑자기 등장한 것도 전부 설명이 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건 나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리고 사명 완수에는 실패했다는 이야기로구먼. 아마도 여신님이 내려주신 사명은 마신의 추종자를 처리하는 것이 맞았던 모양일세. 하지만 사라양의 할아버지는 그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고,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추종자 중 하나와 눈이 맞아서 같이 도망을 왔던 것이었구먼."
아마도 그렇겠지. 아마 6계층의 아래에는, 용사들이 모여있는 거겠지.
그렇다면 내게 이만큼의 힘을 줬던 것도, 전투력을 일정 이상 갖추지 않으면 그 아래로 갈 수 없도록 던전을 만든 것도, 그리고 5.5계층의 몬스터들이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도 전부 설명이 됐다.
"읏······그렇게······되는군요."
존경해마지 않는 할아버지의 실패담에 사라는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하지만 디아나도 딱히 자신의 할아버지를 욕보이기 위해서 저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는 거겠지.
사라는 주먹을 움켜쥐고 바르르 떨면서도, 순순히 디아나의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디아나는 머릿속의 퍼즐을 맞추는 것에 열중하느라 그런 사라를 신경 쓰지 못했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수많은 이방인 중에서도 가장 사명 달성에 근접했던 사라양의 할아버지조차 실패하는 모습을 보고, 여신님은 사명을 다수에게 맡기는 것보다 강한 한 명에게 맡기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구먼. 이방인이······앗······."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야, 디아나는 드디어 자신이 너무 무신경했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황급히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아버리는 디아나였지만, 이미 해버린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우리는 디아나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이미 알아버렸으니까.
듣고 보니 그랬다.
지금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생각해보니 사라의 할아버지가 살해당한 시기와 내가 이 세계에 오게 된 시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설마하니 그런 곳에까지 힌트가 있었을 줄이야.
"사라야. 난······."
물론 사라의 할아버지의 죽음과 나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사람 감정이라는 것이 그렇게 논리적으로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자신의 감정을 납득시키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생각과 행동을 고집할 때가 있다.
사라가 할아버지를 얼마나 좋아하고 존경했는지 아는 만큼, 나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혹시 이걸로 사라가 내게 이상한 마음을 품기라도 한다면······.
"괜찮아. 그런 걸로 말도 안 되는 원망을 할 리가 없잖아? 바보같이. 뭘 그런 걸 걱정하는 거야?"
그런 걱정을 했던 나였지만, 역시나 사라는 사라였다.
괜한 걱정 하지 말라는 듯이, 사라는 이런 상황에서조차 내게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내줬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계속 언급된 것 때문에 조금 감정이 격앙되기는 했는지,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전부 그 자식 때문이야. 구원하고는 일절 관계없어. 오히려 지금 얘기를 듣고 나니까 안심될 정도야. 구원은 정말로 할아버지를 잃은 내게 보내주신 여신님의······."
"여신님의?"
"······아무것도 아니야. 바보야."
"사라 너, 날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구나."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잖아. 이 바보야."
"이리 와봐."
사라는 얼굴을 홱 돌렸지만, 자신의 허리에 감기는 내 팔을 피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런 사라를 내 허벅지 위에 앉히고, 그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춰줬다.
"고마워."
"그러니까, 별로 고마워할 일도 아니잖아. 아까도 말했지만, 딱히······."
"그래도."
아까도 했던 말이지만, 사람 감정이라는 것이 그렇게 논리적으로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 감정적으로 행동할 때가 많은 나는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라의 이런 태도가 더욱 사랑스러웠다.
"······바보."
사라도 그런 내 진심을 알아줬는지, 결국 내게 안기면서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진짜 어떻게 이런 차가운 얼굴로 이렇게 사랑스러운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여신님이 내려주신······.
"저, 저기······."
그리고 그런 우리의 둘만의 공간을 깬 것은, 다름 아닌 레이첼 누님이었다.
"아까부터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전혀 못 따라가겠는데······누나한테도 설명해주면 안 되겠니?"
분위기를 깬 건 정말 미안하지만, 정말 무슨 일인지 너무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 표정의 누님.
아, 그러고 보니 레이첼 누님한테는 아래에서 있었던 일들이나 지금까지의 정리한 내용을 얘기하지 않았었지. 실종됐다 돌아온 모험가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물어보기만 하고.
나는 사라를 품에 껴안은 채로, 레이첼 누님에게 지금까지의 있었던 일과 우리의 추리를 정리해서 설명했다.
"결국 정리하자면 여신님이 내린 사명은 마신의 추종자들을 처리하는 것이었고, 미리엘씨는 그 사람들에게 용사의 힘을 얻기 위해서 던전 아래를 향하는 것이었다는 거지?"
"뭐, 간단히 말하자면 그렇게 되네요."
"하지만 그런 거라면 서둘러야 하지 않니? 물론 구원이 네······ 그곳이 열쇠라고는 하지만······."
"음. 그것 말이네만. 꼭 그렇지만도 않네."
부끄러워하면서도 내 다리 사이로 시선을 주는 레이첼 누님에게, 디아나가 중간에 끼어들어 고개를 저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꼭 그렇지만도 않다니?"
"아래에 있을 때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말하지 않았네만, 아마 열쇠는 자네의 물건뿐만이 아닐 걸세."
"뭐 하지만 궁극의 그릇이라고 하면······."
내꺼밖에 없잖아? 애초에 내가 원래 세계에서 했던 게임도 자신의 성기를 열쇠로 삼는 게임이었으니, 분명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물론 자네의 것으로도 가능하리라 생각은 되네만······이방인은 남성만 있었던 것이 아닐세."
"·········아."
그런가. 내가 생각했던 방법은 남자가 아니면 못 하는 방법이니까.
즉, 여자가 만들 수 있는 다른 열쇠도 있을 거고, 그 방법을 사용하면 미리엘 파티가 선수를 칠 수도 있다는 건가!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09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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