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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903화 (887/1,205)
  •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03화 >

    그것은 다른 거북이들과 달리, 뚫려있는 통로를 이동하지 않았다.

    뭔가 다른 때와 땅 울림의 느낌이 다르다 싶었더니, 진짜로 맨땅을 파헤치면서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땅에서 불쑥 튀어나온 그것은, 거북이조차 아니었다.

    "뭐야 저거? 여기는 거북이만 나오는 거 아니었어?"

    우리의 앞에 등장한 것은, 집채만 한 덩치를 자랑하는 개과 몬스터였다.

    이 거북이굴은 물론, 4계층이나 5계층에서조차 본적이 없는 몬스터.

    굳이 비슷한 몬스터를 찾자면 던전 초입에서나 보던 늑대개가 있지만, 그 늑대개가 이런 심층에서 갑자기 튀어나올 리가 없었다.

    애초에 굳이 비슷한 몬스터를 찾자면 같은 개과인 늑대개와 비슷하다는 거지,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점이 상당히 많았다.

    일단 초월종과 비교해도 상대가 되지 않는 커다란 덩치.

    그리고 사자 갈기처럼 목 주변을 감싸고 있는 털.

    그 털 색도 뭔가 야생의 몬스터라고 생각하기 힘든 새하얀 색이어서, 뭔가 고귀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물론 검게 변색된 핏자국이나 땅을 파고 오면서 묻은 흙 때문에, 원래는 새하얬을 그 털도 빛이 바래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녀석이 늑대개와 가장 다른 점은, 녀석이 숨을 쉴 때마다 숨결과 함께 시뻘건 화염이 섞여 나온다는 점이었다.

    아무튼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이 정체불명의 몬스터에, 나는 자연스럽게 몸이 긴장됐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와 마주 보고 있는 그 몬스터 또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녀석은 만나기만 하면 바로 달려드는 다른 몬스터들과는 달리 곧바로 우리를 덮치지는 않았고, 대신 마치 탐색하는 듯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며 천천히 우리 주위를 돌았다.

    게임에 종종 등장하는 이레귤러. 흔히 말하는 히든 몬스터라는 건가?

    하지만 이 소계층 자체가 이미 히든 던전 같은 곳이고, 여기서 히든 몬스터라면 거대 거북이잖아. 왜 또 저런 녀석이 튀어나오는 건데?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은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언제까지 이렇게 대치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럴 때는 역시 먼저 때리는 놈이 이기는 법!

    나는 주먹을 움켜쥐고 그대로 녀석에게······.

    "자네! 잠깐 기다리게!"

    달려가려고 한 순간, 갑자기 디아나가 내게 제지를 걸었다.

    "뭐?! 갑자기 무슨······!"

    그 때문에 나는 반사적으로 몸의 움직임을 멈추고 말았고, 앞으로 튀어 나가려던 몸을 강제로 멈춘 바람에 일순간 경직이 걸리고 말았다.

    그리고 마치 그 타이밍을 노리기라도 한 것처럼, 녀석이 몸을 움직였다.

    아마 1초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겠지만, 경직에 걸려 움직이지 않는 몸 때문에 내게는 그 찰나의 순간마저도 슬로우 모션을 돌린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렇게 느리게 흘러가는 시야 속에서, 녀석이 이쪽을 향해 바람같이 몸을 날리며 공중에서 빙글 하고 몸을 비트는 것이 보였다.

    자신의 몸을 드릴처럼 회전시키면서 공격해올 셈인가?

    젠장. 생긴 것처럼 화려한 공격을 하는 녀석이잖아.

    빨리 몸을 움직여서 저 공격을 막아내지 않으면!

    "다들 공격하지 말게!"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디아나는 우리 파티의 행동을 제지했고, 또다시 반사적으로 몸을 멈춰버린 우리는 몬스터가 하는 짓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공중에서 몸을 빙글 돌린 녀석은······.

    촤아아아악!

    드릴처럼 회전하기는커녕 반 바퀴만 간신히 돌아서는 땅에 등을 가져다 대고 우리 앞까지 그대로 쭈욱 미끄러져 왔다.

    아니. 정확히는 우리 앞이 아니라, 디아나의 앞까지.

    "헥, 헥, 헥, 헥!"

    그리고 녀석은 그렇게 배를 발라당 뒤집어 깐 채로, 혀를 입 밖으로 내밀어 헥헥대면서 열심히 꼬리를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마치 잘 훈련받은 강아지처럼.

    "오오! 역시 그렇구먼! 켈비! 켈비인겐가?!"

    그리고 그런 강아······지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덩치가 큰 개를 보면서, 디아나는 사뭇 감격한 목소리로 그렇게 외쳤다.

    뭐야? 이 개, 디아나랑 아는 사이야?

    대체 던전에서 튀어나온 개랑 어떻게······아니. 잠깐만. 켈비?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 이름인데?

    "살아있었구먼! 요 녀석! 요 녀석! 레이첼양이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는가! 털도 이렇게 푸석푸석해져서는!"

    얼이 빠져서 지켜보는 우리에게 아랑곳하지도 않고, 디아나는 더러워진 개의 갈기에 얼굴을 파묻으면서 놈의 몸을 꼬옥 끌어안아 줬다.

    디아나의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켈비라는 이름을 어디에서 들어봤는지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레이첼 누님이 키웠다는 강아지 이름이 케르베로스였지. 애칭 켈비.

    그리고 디아나도 엄청 귀여워했었다고 했었지 분명.

    "잠깐만. 그러니까 이 녀석이 레이첼 누님이 같이 던전에 데리고 다녔다는 그 강아지라고?"

    "음! 그렇네! 설마 살아있을 줄이야! 레이첼양이 기뻐하겠구먼!"

    응. 그렇겠지. 너도 그렇게 좋아하는데, 레이첼 누님은 오죽하겠어.

    나도 벌써부터 기쁘다야.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확인해야 할 게 있어.

    "강아지라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점이었기 때문에, 나는 두 번 말했다.

    "음? 강아지로 안 보이는 겐가?"

    아니. 어딜 어떻게 봐야 저게 강아지로 보이냐.

    강아지라는 건 개의 새끼를 칭하는 말로 말이지, 물론 다 큰 개라도 그렇게 부르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걸 보고 강아지는 아니잖아.

    "킁! 킁! 컹컹!"

    내가 황당한 표정으로 보고 있자, 녀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디아나를 목에 매단 채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게 코를 가까이 가져와서 냄새를 맡더니, 꼬리를 더욱 세차게 흔들며 내 얼굴을 혀로 핥기 시작했다.

    덩치가 집채만 한 만큼 그 혀도 내 얼굴을 뒤덮을 만큼 커서, 상당히 기분 나쁜 감촉이었다.

    "으악! 뭐하는 거야?!"

    "푸흡. 자네에게서 주인 냄새를 맡은 모양이구먼."

    "웃지 말고 좀 말려 봐! 으악! 야! 그만 안 둬?!"

    "올치. 올치. 켈비. 이 자는 성격이 고약하니 그쯤 하게. 자, 거기 제대로 서 보게. 이 몸이 씻겨주겠네."

    야. 자기 낭군님한테 성격이 고약하다는 건 너무하지 않냐?

    너 내 성격 보고 반한 거 아니었어?

    아니. 그야 나도 성격 나쁘다는 걸 부정은 안 하겠지만.

    아무튼 케르베로스는 상당히 훈련을 잘 받았는지 디아나의 말에 곧바로 내 얼굴에서 혀를 뗐고, 디아나는 물의 마법을 사용해서 그런 케르베로스의 몸을 꼼꼼하게 씻겨주기 시작했다.

    "킁킁. 이상하다······레이첼씨 냄새 같은 건······."

    그리고 그제야, 레이아가 내 몸에 코를 가까이 가져와서는 콧망울을 귀엽게 움찔거리며 냄새를 맡고 있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레이아?"

    "네엣?! 아, 우후훗.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가 이름을 부르자 바로 떨어졌지만 말이다.

    ······천사님. 혹시 이 강아지한테 질투해서 천사님도 제 냄새를 맡으신 거예요?

    이왕이면 냄새만 맡으실 것이 아니라 똑같이 혀도 써서······.

    "이런 때까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얏?!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잖아?!"

    "말 안 해도 무슨 생각하는지 다 보이거든?"

    아니. 확실히 엄한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아직 입도 뻥긋 안 했는데 혼내는 건 너무하지 않냐?

    뭐, 아무튼. 지금은 그런 것보다.

    "그러니까 즉, 레이첼 누님을 구하기 위해서 몸을 던져 몬스터를 막아낸 케르베로스는 죽지 않았고, 그대로 지금까지 던전을 떠돌고 있었다는 게 되는 건가?"

    "음. 우리 켈비는 똘똘해서 불과 땅의 정령을 부릴 수 있으니 말일세. 땅의 정령을 이용해서 잘 몸을 숨겨왔던 모양이구먼."

    아아. 그래서 아까 땅속에서 튀어나왔군.

    불과 땅이면 마침 바람과 물의 정령을 다루는 레이첼 누님과 대비되기도 하고.

    "너무 잘 숨겨서 소계층까지 들어와 버린 것 같지만요."

    그러고 보니, 여기는 소계층.

    우리가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았던 공간이다.

    설마 이 녀석······땅을 파서 소계층까지 빨려들어 온 건가?

    던전은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지형이 복구되니, 소계층에 들어와서는 나가지 못하게 된 거고 말이야.

    그렇다면 지금까지 이 녀석이 발견되지 않았던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레이첼 누님이 필사적으로 찾아봤을 텐데도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었던 거니까 말이야.

    "그러면 어쩔래? 우선 한번 돌아갈까?"

    원래는 아라크네 클랜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서 여기까지 돌아왔던 우리였지만, 일이 이렇게 되니 한번 지상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한시라도 빨리 이 녀석을 레이첼 누님한테 데려다 줘야 하지 않겠어?

    "흠······그렇구먼."

    하지만 그런 내 제안에, 디아나는 살짝 망설이는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이건 또 의외네. 디아나도 그렇게 기뻐했었으니까, 당장 위로 올라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구원씨. 전 이대로 5.5계층에 가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레이아도? 어째서?"

    "여신님의 사명 문제도 있지만, 아라크네 여러분이 정말로 위기에 처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위로 한번 돌아갔다가 늦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5.5계층에서 위험에 처하게 되면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저희밖에 없으니까요. 분명 레이첼씨나 여기 있는 켈비씨도 이해해주실 거에요."

    그리고 내 질문에, 우리 천사님은 또 무척이나 천사님 같은 발언을 하시며 케르베로스의 갈기를 살며시 쓰다듬어줬다.

    그나저나 천사님, 동물한테도 존댓말 쓰시는구나.

    "그리고 위로 올라가면 또 한참 눌러앉아 있을 거고."

    사라야. 괜한 사족은 필요 없단다.

    확실히 그럴 것 같기는 하지만.

    "사라 네가 자기 차례는 필요 없다고 해주면 하루 줄······진 않지. 네가 싫다고 해도 내가 억지로 할 거니까."

    위험해. 하마터면 해선 안 될 농담을 할뻔했네.

    중간에 사라 눈빛이 변하는 걸 보고 바로 말을 바꿔서 다행이지.

    "······싫다고 할 생각도······."

    "응? 뭐?"

    하지만 그러고도 이놈의 입을 장난을 그만두려고 하지를 않아서, 사라가 살짝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자 또 장난기가 동하고 말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바보야!"

    "아닌데. 분명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싫다고······아야!"

    결국 사라한테 옆구리를 꼬집히고 나서야, 나는 겨우 장난을 멈췄다.

    던전에서 사라가 나한테 데미지를 입혔다고 엄살 부리면, 또 꼬집겠지?

    "아무튼, 그러면 다들 이대로 5.5계층에 가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이거지? 실비아, 너도 괜찮겠어?"

    "느헷?! 으앗, 넷! 괘, 괜찮습니다아!"

    실비아는 펠리시아 생각에 일찍 가자는 의견에 힘을 실을 수도 있어서 확인해본 거였지만, 정작 그 실비아는 조심조심 케르베로스를 쓰다듬으면서 한창 힐링하고 있는 중이었다.

    실비아도 개를 좋아했던 건가? 입꼬리를 흐물거리면서 귀여워하기는.

    그런 덩치 큰 개보다 실비아 네가 훨씬 더 귀여워 이것아.

    "좋아. 그러면 케르베로스도 데리고 가야겠지?"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면 이 몸들이 돌아올 때까지 여기에 혼자 남겨둘 셈이었는가? 이곳에서 혼자 살아남았으니, 방해가 되지는 않을 걸세."

    마치 어떻게 그런 심한 생각을! 몇 년간 주인과 떨어져 있었던 아이일세! 불쌍하지도 않은가! 라고 말하는 것 같은 시선을 내게 보내며, 디아나는 켈비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너 그거 그냥 폭신폭신한 게 기분 좋아서 그러는 거지?

    그리고 애초에 방해될 거라는 걱정은 안 했어. 딱 봐도 도움이 됐으면 됐지 방해는 안 되게 생겼잖아.

    "뭐, 좋아. 그럼 케르베로스. 넌 뒤에서 여기 애들을 지키는 거다?"

    "컹! 컹!"

    야. 제대로 대답하는 건 좋은데, 얼굴 좀 그만 들이밀어.

    나도 한입에 삼킬 수 있을 것 같은 녀석이 그러니까 부담스러워 이것아.

    아무튼 그렇게 해서, 우리는 우연히 합류한 케르베로스를 데리고 이번에야말로 5.5계층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열었다.

    결국 얼마 전에 얻은 이 거대 거북이의 성기를 쓸 날이 오게 되다니. 그것도 이렇게 빨리.

    될 수 있으면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했는데.

    또 그 지옥에······잠깐만. 그러고 보니 얘 이름도 하필 케르베로스잖아?

    이 녀석은 뭘 당당하게 지옥 입구를 지키고 있었던 건데? 그렇게 이름값이 하고 싶었던 거야?!

    젠장. 진짜 지옥의 입구라고 생각하니까 괜히 더 불안해지잖아.

    설마하니 그때보다 더 지옥 같은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막연한 불안감을 가슴에 품은 채, 우리는 5.5계층으로 발을 내디뎠다.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03화 > 끝

    ⓒ CurtainCall#o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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