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902화 (886/1,205)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02화 >

"뭐? 걔들이?"

마을에 도착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마을에서 묵기는 애매한 낮시간대였다.

그래서 우리는 여관 1층의 식당에서 간단하게 끼니만 때우고, 계속해서 마을 주위를 돌며 사냥을 해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마을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마을을 지키던 아라크네 클랜의 간부 지니가 할 말이 있다면서 말을 걸어왔다.

이 누님은 같이 5계층을 돌아다녔을 때조차 제대로 말해본 적이 없었을 정도로 과묵한 누님이었기 때문에, 갑자기 말을 걸어왔을 때는 살짝 놀랐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얘기가 있다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우리는 얘기를 들어보기 위해 지니의 방으로 이동했고, 거기서 꽤나 믿기 힘든 얘기를 들었다.

바로 5.5계층을 조사하러 갔던 아라크네 클랜의 다른 간부들의 소식이 두절되었다는 얘기를 말이다.

"그냥 아직 다 돌아보지 못해서 늦어지고 있는 것뿐 아니야?"

나한테 거북이 성기를 받자마자 곧장 5.5계층을 조사하러 갔다는 모양이니, 아직 2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거니까.

우리도 예사로 던전에서 2주 이상 탐험하거나 하니, 아라크네 클랜의 그것도 간부진 파티가 그런다고 해서 딱히 이상할 건 없잖아?

물론 우리 파티는 내 인벤토리 능력 때문에 보급 걱정 같은 것을 할 필요가 없으니, 그리 단순하게 비교하기는 힘들겠지만 말이야.

"나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말에 동의하면서도, 지니는 심각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클랜은 새로운 장소에 갈 때 먼저 하루 이틀 정도 사전 탐사를 하고 돌아와서, 탐사 내용을 토대로 다시 준비를 철저하게 해가는 것이 기본 방침이다."

"그런데 사전 탐사에서 아직까지 돌아오고 있지 않다는 얘기야?"

"······."

내 질문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지니.

확실히 그러면 걱정이 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지만···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여전히 걱정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아니. 미리엘이 마신의 추종자일지도 모르니까 이대로 없어져 버리면 땡큐라든가, 그런 지독한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고.

내가 그렇게 정이 없는 놈은 아니거든.

간부 파티라는 건 앨리시아도 있을 거고,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미리엘 본인도 그런 의혹만 아니었다면 진짜 좋은 녀석이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미리엘 걔는 우리 사라의 이복동생인 거니까.

그러니까 당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내가 5.5계층에 이미 가봤으니까 말이야.

나랑 쓰레온, 정의 로리콘, 스토커. 이 넷이서 끝까지 돌파한 그 소계층에서, 아라크네 클랜의 간부 파티가 당하는 모습이 상상이 안 되잖아.

물론 내가 돌파할 수 있었던 것도 용사 쓰레온이 엄청나게 활약해준 덕분이기는 하지만, 미리엘도 쓰레온하고 비슷한 수준의 실력자라면서?

그러니까 아마 별문제 없을 거야.

뭐, 내가 이미 가봤다는 걸 아라크네 클랜의 사람에게 밝힐 수는 없으니, 위로는 못 해주겠지만.

"아무튼 그래서, 우리가 한 번 5.5계층에 들러줬으면 좋겠다고?"

마침 마을에 도착했으니, 텔레포트를 타고 4계층의 마을로 이동하면 하루 만에 다시 5.5계층의 입구까지는 갈 수 있다.

아직 던전에 들어온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으니, 못 들어줄 부탁은 아니지.

물론 그 지옥에 다시 들어가는 것도, 우리 애들한테 그 고추밭을 보여주는 것도 싫지만, 그래도 아라크네 클랜하고는 협력 관계이기도 하고.

"아니."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던 나였지만, 지니는 쿨하게 고개를 저어버렸다.

"너희한테 그런 무리한 부탁까지 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너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닐 거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나도 그저 늦어지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누님. 댁이 불러서 심각하게 얘기했으면서 이제 와서 무슨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런 내 생각이 표정에 드러나기라도 한 듯, 지니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만약을 위해 길드 카드를 확인해봤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다는 모양이다."

아, 그러고 보니 그걸로 생사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지.

그러면 대체 우리를 불러서 이런 얘기를 한 이유가 뭔데?

"추측이지만, 미리엘과 앨리시아가 새롭게 실력 발휘를 해볼 기회가 생긴 것에 신이 나서 늦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5.5계층이라면 몬스터의 수준도 짐작이 가니까. 보나 마나 루티아도 그런 둘이 재미있다면서 옆에서 부추기고 있을 테고. 릴리나 힐다, 꼬맹이 둘은 그런 셋을 말리지 못한 채 질질 끌려다니고 있겠지."

누님. 평소에는 말도 잘 안 하시면서 할 말 하실 때는 가차 없으시네요.

뭐, 나도 지니가 말했던 그림을 머릿속에서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지만.

그보다 누님.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면 처음부터 무게 잡고 얘기하지 마시라고요. 심각한 얘기인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요.

아, 무게 잡은 게 아니라 원래 표정이 저런 건가?

아무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고 계시지 않으면, 진짜로 이 얘기를 우리한테 하는 이유가 뭔데?

"그래서 결국 우리한테 이 얘기를 한 이유는 뭐죠?"

그렇게 생각했던 건 나뿐만이 아닌지, 뒤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사라가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다른 소계층과 마찬가지로 5.5계층 역시 5계층과 연결되어 있을 테니, 그 녀석들이 5.5계층을 빠져나온다면 5계층으로 빠져나오겠지. 그러니 5계층을 탐험 중에 혹시라도 그 녀석들을 만나게 되면 지니가 보고 싶어 한다고 전해줘. 그것으로 충분해."

뒤는 내가 알아서 하지.

그런 뒷말을 생략한 것 같은 느낌으로 지니는 안광을 무섭게 빛냈다.

앨리시아. 너 살고 싶으면 5계층에 들르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래? 알았어. 그러면 그렇게 할게."

"고맙다."

그렇게 우리는 지니와 대화를 마치고, 아라크네 클랜이 머무는 건물을 빠져나왔다.

"···혹시 5.5계층에서 새로운 발견을 했다든가, 그런 건 아니겠지?"

"자네가 먼저 가서 꼼꼼히 둘러보고 오지 않았는가."

"아니. 그렇기는 하지만···."

디아나는 내가 먼저 하고 온 탐험 결과를 100% 믿는다는 듯 그렇게 말해줬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렇게까지 자신있지 않았다.

5.5계층을 돌 때는 나도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아무래도 던전 탐험의 경험이 차이가 있는 만큼, 아라크네 클랜은 내가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간 뭔가를 발견할 수도 있고.

실제로 그곳에서 발견한 암호용 그림 역시도, 정의 로리콘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칠뻔했으니까.

"그렇게 걱정되면 가볼래? 5.5계층."

"으, 응?"

"뭐야 그 반응은?"

아니. 사라야. 너도 전에 내가 말해준 거 듣지 않았니?

까먹은 것 같으니 다시 한번 말해주자면 말이지, 5.5계층은 아아주 무서운 곳이에요.

그렇게 여자아이가 선뜻 가자고 말할만한 곳이 아니라 이 말이에요.

"사라씨, 구원씨는 아직···."

"아, 그렇죠. 미안. 괜한 말을 했네."

"사, 사과할 거 없는데?! 난 딱히 가도 전혀 문제없고? 오히려 난 너희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니까!"

아니.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될 수 있으면 평생, 너희의 망막에 그 고추밭이 비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

"그, 그리고 우리 파티는 아직 5.5계층을 가기에는 너무 약하잖아?!"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내 말을, 디아나가 측은한 표정으로 받아쳤다.

"그, 그럴 리가 없다니 무슨 소리야?"

"5계층과 6계층의 몬스터는 기본적으로 비슷한 수준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네. 그런데 5.5계층의 수준이 5계층보다 높을 리가 없지 않은가? 5계층을 다닐 수 있는 이 몸들이라면, 5.5계층도 충분히 갈 수 있을 걸세."

"뭐? 그러면 우리가 지금 바로 6계층에 가도 문제없다는 거야?"

몰랐다. 어쩐지. 아무리 쓰레온이나 정의 로리콘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5.5계층인데 너무 쉽게 다녀왔다 했어.

아니. 쉽지는 않았지만 그런 의미로 하는 말이 아니니까.

"음. 전투력은 비슷해도 6계층의 몬스터는 그 특성상 상대하기 더 까다로우니, 조금 더 실력을 키우고 가는 것이 좋겠지만 말일세."

특성? 아, 그러고 보니 6계층의 몬스터들은 생물이 아니라 내 성자 스킬이 통하지 않을 거라고 했던가.

그러면 지금 쓰는 어그로 관리법은 쓸 수 없게 되니, 확실히 실력을 더 늘리는 게 좋기는 하겠네.

"하지만 5.5계층의 몬스터는 그런 까다로운 특성도 없지 않은가?"

아니. 그러니까 왜 그렇게 훅 치고 들어오냐고.

너희 그렇게 5.5계층에 가보고 싶어? 가면 후회한다니까?

"그, 그럼···가, 가볼까?"

진짜 싫었지만, 그래도 만약 아라크네 클랜이 그곳에서 새로운 뭔가를 발견한 거라면 가보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싫어?"

"싫어."

"우와. 이젠 숨기려고도 안 하고 말하는 것 봐."

어쩔 수 없잖아! 싫은 건 싫은 거니까!

하지만 그런 내 필사적인 어필에도, 그러면 가지 말자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우리 파티의 다음 행선지는 파티 리더의 의사과 상관없이 5.5계층으로 정해져 버렸다.

"그래서, 어디로 갈래?"

이왕 가기로 된 이상, 마음을 다잡고 가지 않으면.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나는 파티장으로서 할 일을 하기로 했다.

선택지는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5.5계층으로 가는 것.

또 하나는 여기서 텔레포트를 타고 4계층의 마을로 가서, 거기서 거북이굴로 다시 가는 것.

전자는 오래 걸리지만 가는 동안에도 사냥을 통한 성장을 노릴 수 있고, 후자는 하루면 갈 수 있지 대신 그 하루를 그냥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이게 된다.

"어차피 빨리 더 성장해서 6계층에 가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이대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게 낫지 않아?"

"흠. 6계층을 노리는 것이라면 자네가 성자 스킬을 자제하는 방식의 전투도 해보는 것이 좋을 걸세."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것만 일주일이 걸렸으니까, 그렇게 하면 5.5계층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던전에서 이주나 있는 것이 되네요."

사라는 무조건 전자가 좋다는 분위기였고, 디아나는 돌아가도 상관없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 둘과 달리, 우리 천사님은 던전에서 너무 오래 있게 되는 것을 살짝 걱정하는 눈치셨다.

뭐, 확실히 돌아가면 엄청 오래 있게 되겠지.

5.5계층을 돌아다니는 것도 상당히 시간이 걸릴 거고, 거기에다가 돌아올 때까지 여기로 돌아오면 적게 잡아도 한 달은 던전에 있게 될 거다.

그만큼 성장은 확실히 할 수 있게 되겠지만···.

"저, 저기!"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자, 드물게도 실비아가 할 말이 있다는 듯한 손을 위로 번쩍 들었다.

"응?"

"그, 그게···."

하지만 우리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쏠리자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는 듯, 실비아는 얼굴을 푹 숙이고 슬그머니 손을 내려버렸다.

나도 모르게 쓰다듬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모습이었지만, 진짜로 쓰다듬으면 바들바들 떨면서 아무 말도 못 하게 되겠지.

"괜찮으니까. 실비아도 우리 파티원이잖아? 의견이 있으면 제대로 말 해줬으면 좋겠는데."

나는 제멋대로 움직이려는 손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실비아를 다독여줬고, 실비아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힐끔 다른 애들의 얼굴을 엿보더니 조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페, 펠리시아가···."

아, 딱히 자기가 어떻게 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친구가 걱정됐던 거구나.

하여간 얘는 하는 짓마다 왜 이렇게 귀엽냐.

"그러네. 그럼 4계층에서 가기로 할까? 다들 불만 없지?"

"···그런 거라면 뭐···."

하필이면 반대 의견을 냈던 게 펠리시아랑 제일 사이가 안 좋은 사라라서 살짝 걱정했지만, 사라도 전에 펠리시아의 기운에 당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순순히 자기주장을 굽혀줬다.

얘도 참 착해 빠졌다니까.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그렇게 해서, 우리는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4계층으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거북이굴로 향했다.

이번에는 4계층의 전투를 가능한 한 무시하고 전진하는 식으로 빠르게 이동해서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아 거북이굴까지 도착할 수 있었던 우리였지만, 그래도 출발 시각이 점심시간이었던 만큼 거북이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우리는 거대 거북이가 사라져서 텅 빈 공간에 텐트를 설치하고, 마력 성질 변환기까지 설치한 다음 일단 여기서 하루 묵기로 했다.

사실 보스 방은 보스만 처치하면 안전지대라고 봐도 무방하므로 마력 성질 변환기까지는 설치할 필요도 없었지만, 이왕 있는 거니까 쓰는 게 좋잖아?

아무튼 그렇게 완벽히 준비를 마치고 텐트에 들어가서 잠을 청하려는 찰나에, 갑자기 땅 울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도 점점 강하게. 뭔가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뭔가라고 할까···여기서 다가올 거라고는 거북이밖에 없지만 말이야.

이쪽에서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거북이가, 그것도 마력 성질 변환기를 설치해도 다가오는 게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나는 일단 전투 준비를 다시 갖추고 텐트에서 나갔다.

물론 다른 애들 역시도 마찬가지로 장비를 갖추고 나왔고, 거기에서 우리가 본 것은···거북이가 아니었다.

저건···.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02화 > 끝

ⓒ CurtainCall#o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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