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01화 >
그렇게 해서, 우리는 거대 거북이의 마석과 성기를 얻고 드디어 5계층으로 향하게 됐다.
"와아······. 뭔가······압도되는 곳이네요······."
"그러게요.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건 상상 이상이네요."
모든 것이 확대되어 있어서 마치 자신이 난쟁이가 된 것처럼 느끼게 하는 5계층의 풍경.
이곳에 두 번째 오는 나조차도 살짝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으니, 여기에 처음 와보는 두 명이 그런 말을 중얼거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딱히 겁먹거나 그런 느낌은 아니었고, 사라의 경우는 오히려 살짝 기분 좋기까지 한 것인지 양팔을 벌리고 숨을 크게 들이쉬기까지 했지만.
사냥꾼 할아버지 밑에서 나고 자라며 숲을 좋아했던 우리 용사님은, 이런 곳조차도 숲에 왔다는 기분이 들어서 좋은 모양이다.
하여간 우리 용사님은 담도 크다니까.
"아무래도 감상에 젖어있을 시간은 없는 모양일세."
마음 같아서는 사라와 레이아를 위해서 조금 더 기다려주고 싶었지만, 디아나의 말처럼 언제까지나 5계층의 독특한 풍경에 압도되어 있을 수도 없었다.
5계층이 이런 곳이라고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거대한 외눈박이 괴물 사이클롭스가 발을 쿵쿵 울리며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의 5계층 탐험이 시작됐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나와 실비아, 그리고 디아나가 몬스터의 대처법을 알고 있다는 점이 상당히 크게 작용해서, 5계층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생각보다 더 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여기는 몬스터들의 덩치가 큰 만큼 기본적으로 혼자서, 많아야 두셋이 등장하는 게 전부였으니까 말이야.
한 번에 하나씩만 상대할 수 있으면, 화력으로 순식간에 찍어누를 수 있는 우리 파티만큼 좋은 파티가 또 없지.
몬스터의 덩치 때문에 모든 공격이 범위 공격처럼 들어오는 것은 조금 귀찮았지만, 거대 거북이를 상대했던 때처럼 실비아가 아예 후위진에 딱 붙어서 그쪽으로 오는 데미지를 전부 차단해주니 별문제는 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내가 성자 스킬로 어그로를 끌어서 회피탱 역할을 하고, 날 향한 공격의 여파에 후위진이 당하지 않게 실비아가 후위에 붙어서 막아준다.
그리고 만약 몬스터가 둘 이상 함께 등장하면, 내가 몬스터 한 마리만 남겨둔 채 어그로를 끌어서 멀리 떨어지고, 실비아가 앞으로 나서서 남은 한 마리를 상대로 메인 탱커 역할을 수행한다.
그렇게 한 마리리씩 집중적으로 공략하여 빠르게 처리하는 것으로, 둘 이상의 무리도 어렵지 않게 처리 할 수 있었다.
후위를 지키던 실비아가 앞으로 나설 경우 후위진이 위험에 노출될 염려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또 그렇지도 않았다.
5계층의 몬스터를 상대해 본 건 나와 실비아뿐만이 아니니까 말이다.
범위딜의 여파가 후위진까지 미치려고 할 때마다 디아나가 마법으로 적절하게 막아줘서, 결국 우리 후위진이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뭐, 거의 없다는 말로 알 수 있듯, 사실 위험한 순간이 딱 한 번 있기는 했다.
트롤 다섯 마리와 전투 중에 갑자기 괴조 한 마리가 추가로 난입해왔던 거다.
5계층의 지상 몬스터들은 보통 땅을 쿵쿵 울리면서 등장하기 때문에, 경계가 살짝 소홀해진 것이 문제였다.
괴조는 나와 실비아를 무시한 채 곧장 후위진을 향해 강하했고, 그게 마침 디아나 폭발 마법을 완성시켜 트롤에게 시전하고 있던 순간이었기 때문에 방어 마법을 쓸 수 없는 타이밍이었다.
물론, 앞에 나서서 트롤 한 마리와 대치 중이던 실비아 역시도 괴조를 막을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다.
"이런 망할!"
멀리서 성자 스킬과 월영무사 스킬을 최대한 활용하며 트롤 네 마리와 투닥거리고 있던 나는 황급히 성자의 파동을 날려봤지만, 거리가 너무 멀고 괴조의 스피드가 빨라서 맞출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림자 이동으로 저쪽으로 가버리면 이 트롤 네 마리도 같이 후위진으로 데려가는 꼴이라 더 위험해질 테고.
"레이아! 속박! 할 수 있으면 한쪽 날개만!"
"네, 네엣!"
하지만 나도 언제까지나 예상외의 사태에 당황만 하는 초보 모험가가 아니다.
나는 임기응변을 발휘해서 그렇게 외쳤고, 레이아도 내 말에 곧장 반응해서 보랏빛 불꽃이 일렁이는 손을 괴조 쪽으로 뻗어줬다.
콰직! 쾅! 쾅! 투드드드득.
그리고 다음 순간, 괴조가 오른쪽으로 크게 방향을 틀며 추락해버렸다.
얼마나 기세 좋게 하강하고 있었는지, 커다란 나무에 몇 번이나 부딪히고도 속도가 줄지 않아서 땅에 길게 크레이터를 만들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래도 명색이 5계층 몬스터인데, 추락하고 나서 꿈쩍도 못 하게 될 정도라니. 대체 얼마나 빠르게 접근했던 거야?
저 속도를 이용한 공격을 우리 애들이 당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면, 오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전신에 속박을 걸어버리면 하강하던 방향 그대로 내려가서 우리 애들을 덮칠까 봐 한쪽 날개만 속박을 걸라고 했던 건데, 진짜 그러지 않았으면 큰일 날뻔했어.
내가 그렇게 안도하고 있는 사이에 사라가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 땅에서 꿈쩍도 안 하고 있는 괴조에게 빛나는 화살을 날렸고, 그러고 나서 우리는 다시 평범하게 트롤 다섯 마리를 한 마리씩 차례차례 요리하여 전투를 마쳤다.
"미안하네. 이 몸이 막았어야 했던 것을······."
그리고 전투가 끝나자마자, 디아나는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하는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에게 사과했다.
"괜찮아. 결국 아무도 안 다쳤으니까. 그래도 무슨 일이야? 우리 디아나가 그런 실수도 하고."
솔직히 굳이 잘잘못을 따지고 싶지는 않았지만, 파티 리더로서 확인을 안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방금 것은 명백하게 디아나의 실수가 맞으니까 말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우리 대마법사님은 마침 공격하는 타이밍이라 막지 못했다는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런 상황을 만들면 안 됐던 거니까.
후위진의 보호가 느슨해졌던 만큼 방어 마법을 쓸 수 있는 디아나가 그 역할을 맡아야 했고, 멀티 태스킹이 가능한 디아나는 너무 강한 마법을 쓰려고만 하지 않으면 공격 마법 시전 중에도 충분히 방어 마법을 쓸 수 있었다.
그러니까 믿기 힘들지만, 아까는 우리 대마법사님이 살짝 방심했다는 얘기다.
"트롤은 재생력이 강한 만큼 강력한 공격이 아니면 효과가 약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렇게 말한 후, 디아나는 살짝 뺨을 붉히며 내 얼굴을 엿봤다.
뭐, 뭐지? 저 장소와 상황, 그리고 시무룩한 표정에 어울리지 않게 상기된 뺨은?
설마 부끄러워하는 건가? 그 디아나가 방심할 정도로 부끄러워할 만한 일이라면······잠깐만. 얘 설마······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자, 자네가 트롤 네 마리에 둘러싸여 있지 않았는가아······."
등에 살짝 식은땀까지 나기 시작했던 나였지만, 다행히도 내가 걱정할만한 이유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걱정하기는커녕 오히려 흐뭇해야 할 이유였다.
"아아······."
그러고 보니, 트롤 다섯 마리면 5계층에 들어와서 제일 많은 수랑 싸운 거지.
그래서 네 마리의 어그로를 끌고 있는 날 보고, 빨리 한 마리를 처리해버리기 위해 강한 공격마법을 썼다가 그런 일이 일어난 거라고.
"디아나."
"음······."
"그 뭐냐. 나는 기뻐. 기쁘지만 일단 파티장으로서 말이지."
꾸중 맞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여전히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디아나의 머리를 마구 쓰담쓰담해주고 싶은 마음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면서, 나는 최대한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파티장으로서 말하는 거면 입꼬리 좀 꽉 다잡고 말하지?"
아무래도 실패한 모양이지만.
어, 어쩔 수 없잖아! 우리 디아나가, 그 위기 시에 냉정 침착한 대마법사님이 내가 걱정돼서 그랬다잖아!
게다가 저 내 눈치 보면서 시무룩한 표정을 보라고! 얼마나 귀여워!
진짜 꽉 껴안고 쓰담쓰담 안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많이 참고 있는 거라니까?
그러니까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는 것 정도는 조금 봐줘라.
"아, 아무튼! 난 괜찮으니까, 앞으로 여러 마리를 상대할 때는 방어에 조금 더 치중하기다?"
"음."
뭐, 그마저도 참지 못해서, 결국 나는 디아나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면서 그렇게 말했다.
뭔가 디아나가 이런 반응을 보이니까 신선하네.
"아, 그리고 레이아는 괜찮아? 또 마나가 부족해진 거 아니야?"
"네? 아, 네. 괜찮아요."
그리고 그런 디아나를 귀엽게 본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레이아 역시도 껴안아주고 싶다는 표정으로 디아나를 보고 있다가 내가 말을 걸자 화들짝 놀라며 대답해줬다.
······천사님. 일단 전 얘랑 그런 사이니까 껴안고 싶어해도 이상할 게 없지만, 천사님은 아니니까요?
얘가 천사님보다 백배는 더 나이 많은 거 아시죠?
뭐, 아무튼 그런 것보다.
"역시 속박 대상의 크기랑 마나 소모량이 비례하는 건가? 아니면 방금은 일부분만 속박을 걸어서?"
"으응······아마 둘 다라고 생각해요."
그런가. 그렇다면 레이아의 속박도, 전략적으로 쓸 여지가 있다는 건가.
힐러로서 치료마법을 위한 마나를 남겨놔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저 좋은 스킬을 그냥 썩히는 것도 아깝잖아?
방금은 거의 속박만으로 괴조를 해치운 거나 다름없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까처럼 레이아의 속박에 후위진의 방어를 맡기겠다는 생각은 아니다.
레이아의 속박에 방어를 맡기기에는 너무 리스크가 크니까.
아까도 괴조의 추락 방향이 틀어지지 않았다면 엄청 위험했고.
확실히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이 없는 것도 아니니, 방어는 그쪽에 맡기는 게 맞지.
"그러면 앞으로는 마나를 봐가면서 한 번씩 속박을 걸어볼래? 움직일 때 다리만 살짝 속박을 걸어서 넘어지게 만든다든지 하는 것처럼."
"아······! 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제안하자, 천사님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가슴 앞에서 마주 잡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림자 이동으로 내 회피력이 한층 더 좋아진 덕분에 치유 마법을 쓸 일이 거의 없어져 버렸으니까 말이야.
우리 천사님 성격에 남들이 싸우는 동안 자기는 버프나 걸어주면서 지켜보고 있는 게 마음이 편치는 않았던 거겠지.
"알고 있겠지만, 치료 마법을 쓸 마나는 남겨야 한다? 너무 신나서 남발하지 말고."
"아읏······네에······그럴게요."
만약을 위해 내가 그렇게 말해주자, 레이아는 그제야 자기 반응이 격했다는 걸 깨달았다는 듯 뺨을 살포시 붉히며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가련하시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고······사라야."
"왜······꺄앗?! 가, 갑자기 뭐하는 거야?!"
내가 갑자기 사라의 허리를 휘감고 끌어당기자, 사라가 귀여운 비명을 질렀다.
자기가 그런 반응을 보였다는 게 부끄러운지 곧바로 날 노려봤지만.
하지만 사라야. 그렇게 얼굴이 빨개져서 노려봐도 이 오빠 눈에는 예쁘기만 하단다.
"아니. 왠지 질투하는 것 같아서."
"안······! 던전에서 이게 뭐하는 짓이야?! 놔, 이 바보야!"
진짜 질투하기는 했나 보구나?
차마 아니라고는 말 못하는 게 귀엽다니까.
"사라양도 솔직하지 못하구먼."
아니. 디아나야 네가 할 말은 아니거든?
방금까지 시무룩해 있었던 주제에 금방 또 부활해서는.
하여간 오래 산 만큼······아, 아무튼 멘탈이 강하다니까.
"그러면 대충 정리하고 여기서 좀 쉴까? 마침 점심시간이고."
"느헤으으읏?!"
우리가 서로 진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알콩달콩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혼자서 마석을 캐고 있던 실비아의 뒤로 다가가 그 몸을 꽉 끌어안아 주면서, 나는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실비아 얘는 던전에서 좀처럼 반응을 보여주지 않으니, 이렇게 쉬는 시간에 철저하게 가지고 놀지······실비아 테라피를 받지 않으면.
뭐, 너무 붙어있다가 식사가 끝나고 나서도 전투 불능 상태가 되지 않게 조심은 해야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한 차례 아찔한 위기도 있기는 했지만, 덕분에 레이아의 속박도 활용하게 된 우리는 더욱 견고하고 착실하게 사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별다른 위기랄 것도 없이 5계층을 돌아다닐 수 있었고, 그렇게 정확히 일주일이 됐을 때 우리는 드디어 5계층의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전에 아라크네 클랜과 함께 돌아다녔던 덕분에 5계층의 맵은 거의 다 밝혀져 있었기 때문에 거의 일직선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데도 일주일이나 걸리다니.
뭐든 큰 만큼 넓기도 엄청 넓다니까.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01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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