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891화 (875/1,205)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891화 >

"오오오오!"

뭔가 다른 말로 칭찬을 해줬으면 좋았겠지만, 내 입에서는 그런 감탄밖에 흘러나오지 않았다.

"구, 구원씨······. 너무 그렇게 바라보시면 부끄러워요······."

원래부터도 살짝 부끄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레이아는, 그런 내 반응을 보고 더 부끄러워졌는지 살포시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또 아름다우셔서, 나는 헤벌레 입을 벌리고 그 존안을 바라만 보게 됐다.

갑자기 뭘 하고 있는 거냐고?

그 얘기를 하려면 아침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어제 여러모로 저지르기는 했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제대로 알콩달콩하게 보낸 덕분에, 나와 디아나는 둘 다 상쾌한 기분으로 아침으로 맞이할 수 있었다.

뭐, 식당에 가서 모두와 얼굴을 마주치게 됐을 때, 디아나는 어제 기억이 났는지 조금 부끄러운 것 같았지만.

아무튼 상쾌하게 식당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어제 했던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레이아. 오늘은 뭐하면서 지낼까?"

오늘은 레이아와 같이 있겠다고 했던 약속을 말이다.

디아나 때문에 상당히 정신없는 상태에서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내뱉은 말은 제대로 기억하고 지켜내는 게 나라는 남자다.

"죄송해요. 구원씨. 오늘은 저, 신전에 가야만 해서······."

당연히 레이아도 감격해서 내게 달려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 생각과 달리 레이아는 눈썹 끝을 아래로 내리면서 미안한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도 내가 이런 말을 하자 괜찮다는 식으로 말했었지?

"그게 어때서? 같이 가면 되지. 오랜만에 나도 고아원 애들 얼굴이나 보러 가면 좋지."

솔직히 말하자면 애새끼들 얼굴 따위 쥐꼬리만큼도 관심 없었지만, 우리 천사님과 같이 있을 구실이 되어주는 녀석들이니 같이 놀아주는 것쯤이야.

"후훗. 고마워요. 하지만 오늘은 고아원에 가는 게 아니라, 마틸다 추기경님께 성기사의 전투법을 배우는 날이에요."

선뜻 고아원에 같이 가준다고 하는 내 모습에 행복해하시면서도, 천사님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런 말도 했었지.

애초에 마틸다가 신전에서 성기사 육성 훈련을 하게 된 것도, 던전에 못 가게 된 자신이 우리 파티에 도움이 될 방법은 레이아를 그런 식으로 단련시켜 주는 것뿐이라는 이유였으니까.

"아······그런가. ······옆에서 구경하면 방해되려나?"

"저는 괜찮지만······."

"상관없지 않나요?"

나와 레이아가 그런 얘기를 하고 있자, 가만히 듣고 있던 마틸다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추기경님?"

"어차피 다들 이이를 동경하고 있는 걸요. 이이가 옆에서 봐주면, 훈련도 더욱 힘을 내고 열심히 하지 않겠어요? 저나 당신도요."

아무렇지 않게 자기도 내가 보고 있으면 힘이 난다는 얘기를 하는 마틸다는, 저렇게 핑크빛 모드가 아니어도 내가 좋아 어쩔 수 없다는 느낌을 풀풀 풍겨댔다.

하여간 예뻐 죽겠다니까.

"하지만······."

하지만 그렇게 당당한 마틸다와 달리, 레이아는 여전히 조금 주저하는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레이아는 내가 보고 있는 게 싫어?"

"아, 아니요! 물론 그건 아니지만······조금 부끄러워서요······."

"부끄러울 게 뭐가 있겠어? 레이아는 어떤 모습이든 최고로 예쁜데. 장담할 수 있는데, 난 아마 훈련 내내 레이아한테 눈도 못 떼고 있을걸? 아, 물론 마틸다한테도."

중간에 또 끼어들려고 했던 마틸다였지만, 내가 마지막에 그렇게 덧붙여주자 말 안 해주면 서운할 뻔했다는 표정으로 다시 식사를 계속했다.

"구원씨······네. 알겠어요. 아, 하지만, 너무 빤히 바라보시면 안 되니까요?"

"그건 장담 못 하겠는데."

"정마알······."

그런 연유로, 나는 레이아 마틸다와 함께 신전에 왔다.

그리고 우리가 신전에 오자마자 제일 먼저 한 것은, 바로 다 같이 소피아 대사제의 방에 들러서 얘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레이아는 자신의 엄마격인 소피아 대사제와 그간 쌓인 얘기를 나눴고, 나는 소피아 대사제에게 조금 더 자주 들르라는 핀잔 아닌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신전에 관한 일로 조금 더 할 얘기가 있다고 하는 마틸다를 남겨두고, 나랑 레이아만 먼저 방을 빠져나와 훈련의 준비를 하게 됐다는 얘기다.

그리고 내가 지금 보면서 감탄하고 있는 건 물론, 갑옷 차림의 레이아였다.

우리 천사님은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포근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어서 갑옷 차림이 어떨지 상상이 안 됐었지만, 이런 모습도 내 생각 이상으로 잘 어울리는 천사님이었다.

역시 예쁜 사람은 분위기랑 상관없이 어떤 차림이든 잘 어울린다는 거다.

뭐, 주변에 있는 다른 성직자 후보들과 다르게, 레이아는 갑옷의 일부 파츠만 수녀복 위에 입고 있다는 느낌이기는 했지만.

내가 기동성을 위해 전신에 가죽 갑옷을 입고 손과 발만 건틀렛과 철제 부츠를 장비하는 것처럼, 레이아도 내가 개조한 섹시한 수녀복 위에 팔꿈치까지 오는 건틀렛과 무릎까지 오는 철제 부츠, 그리고 불의의 기습에 대비하기 위한 것인지 등 갑옷을 걸치고 있는 모습이라고 할까?

뭐, 다른 사람들은 진짜 성기사가 되기 위해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고, 레이아는 성녀라는 대사제와 성기사의 하이브리드라고 할 수 있는 직업이 되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거니 그 차이겠지.

아무튼 차림새 얘기가 나와서 조금 더 얘기하자면, 천사님은 머리도 움직이기 좋게 포니 테일로 묶고 계셔서 평소와 달리 조금 더 활동적인 인상마저 주고 계셨다.

"역시 레이아. 이런 모습마저 잘 어울릴 줄이야."

"그, 그런가요······?"

"응. 뭔가 이미지가 확 변한 느낌이야. 멋있어."

"머, 멋있다니······."

두 뺨을 감싸 쥐고는 몸을 흔들며, 예쁘다고 해줄 때 이상으로 부끄러워하는 천사님.

뭐, 천사님 이미지상 멋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을 테니까.

그렇게 몸을 흔들고 계시니, 평소처럼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와 더불어 한데 묶은 머리카락도 살랑살랑 흔들리시는 게 또 매력적이셨다.

게다가 묵직하게 출렁이는 가슴 역시도, 몸에 딱 붙는 등 갑옷에 괜히 더 강조되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등 갑옷이라고 해도 혼자 등에 달라붙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몸통을 감싼다는 느낌으로 가슴 아래까지 감싸고 있었으니까.

사실 가슴 갑옷까지 제대로 입어야 완성될 것 같은 차림새라서, 살짝 어색한 감도 없잖아 있었다.

아니. 보기에는 엄청 섹시하고 좋기는 하지만 말이야.

"구, 구원씨. 너무 그렇게 바라보시면 부끄러워요."

내가 그 갑옷에 의해 더 돌출된 느낌으로 강조된 가슴을 계속 바라보고 있자, 레이아도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두 팔로 가슴을 가려버렸다.

"레이아. 그 갑옷, 원래 가슴 파츠는 없는 거야?"

살짝 무안해진 나는, 이상한 생각이 아니라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처럼 뻔뻔하게 그렇게 말했다.

아니. 말해놓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이상하긴 한데.

그 매력적인 모습에 눈이 멀어서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확실히 이상했다.

설마하니 우리 천사님이 일부러 가슴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런 차림을 했을 리도 없고.

"아읏······."

그러자 레이아가 두 팔로 가슴을 가린 채 얼굴을 붉히더니,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보아하니 레이아도 자신의 가슴이 괜히 더 강조되는 걸 의식은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레이아?"

"그게······이 갑옷, 훈련을 위해 신전에 구비되어 있던 훈련용 갑옷을 빌린 건데요······."

"아, 응."

그야 그렇겠지. 갑옷이 어디서 뚝딱 생겼을 리도 없고.

전에 마틸다가 본격적으로 이 훈련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준비니 뭐니 하면서 신전에 다녔을 때, 교황청의 지원을 받거나 해서 훈련용 갑옷 같은 것도 준비해둔 거겠지.

"가, 가슴은 맞는 게 없어서······."

그리고 드러난 충격적인 진실.

이 갑옷은 원래부터 가슴 파츠가 없는 게 아니라, 그냥 천사님한테 맞는 사이즈가 없는 것뿐이었다.

과, 과연 천사님.

물론 훈련용 갑옷이니 대충 일정 사이즈 별로 구비해둔 것이기는 하겠지만, 여기 있는 훈련용 갑옷들은 전부 성직자들이 쓰기 위한 것이다.

이 세계에서도 특히나 더 미인에 몸매 좋은 누님들이 즐비한 성직자들 전용 말이다.

그런데도 사이즈가 맞는 게 없다니. 역시 굉장하셔. 아니. 알고 있기는 했지만.

낭중지추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 저 압도적인······.

"구, 구원씨이!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바라보시면 부끄러워요오······."

"아, 죄송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계속해서 천사님의 가슴을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자, 천사님이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다시 한번 주의를 주셨다.

"하지만 그럼······아까 나랑 같이 오기 부끄러워했던 것도, 설마 이것 때문이야?"

"정마알!"

"아, 미안. 진짜 미안."

"몰라요. 저 훈련받으러 갈 거에요."

그렇게 말하고, 천사님은 자기가 화났다는 걸 주장이라도 하듯 뺨을 부풀리고 꼬리를 붕붕 흔들면서 뒤를 돌아 버렸다.

솔직히 말해서 저러셔도 마냥 귀여워 보이기만 하셨지만, 말하면 더 화난 척하시겠지?

"훈련받으러 갈 거니까······너무 가슴만 보시면 안 돼요?"

하지만 천사님도 지금부터 몇 시간은 나와 대화도 못 하고 훈련을 받을 텐데 이렇게 화난 척하면서 떨어지기는 싫었는지, 결국 고개만 살짝 뒤로 돌려서 내게 곱게 눈을 흘기시며 그렇게 말했다.

"당연하지. 어떻게 아깝게 가슴만 봐 아주 그냥 전신을 뚫어져라······."

"정마알!"

결국 레이아는 꼬리로 내 가슴을 탁탁 가볍게 두드리고는, 그대로 다른 성기사 후보들 무리에 끼어들어 마틸다의 훈련을 받으러 갔다.

"모두들 안녕하신가요? 다들 준비는 되셨나요?"

"네! 추기경님!"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타이밍을 맞추기라도 한 듯 마틸다가 돌아와 훈련생들을 시선을 끌었다.

이런 훈련을 시작한 지도 벌써 상당히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까지 훈련생들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마틸다를 쳐다보다니.

이럴 때마다 내 여자가 얼마나 대단한 여자인지 실감이 난다니까.

뭐, 지금은 마틸다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비슷한 시선을 받고 있기는 했지만.

뭔가 안절부절못하게 되네.

최근에는 사람들이 보내오는 시선에 꽤나 익숙해졌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내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보통 내가 제일 받게 되는 시선은 아무래도 모험가의 시선이 많은데, 남자 모험가들은 그냥 별다른 감흥 없이 날 쳐다보고, 여자 모험가들은 기회만 있으면 한번 자보고 싶다는 눈으로 쳐다보니까 말이야.

저렇게 순수하게 대단한 사람을 보는 것 같은 눈으로 바라보는 건 또 느낌이 달라서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할까.

역시 성자라는 이름값이 성직자들한테 절대적이기는 하구나.

아무튼 지금은 그런 것보다 레이아와 마틸다다.

괜히 내가 다른 여자들의 시선을 받고 우쭐해있다는 인상을 줄 수는 없지.

내게는 너희뿐이야.

그런 마음을 가득 담아서 땀 흘리며 훈련에 매진하는 레이아와 마틸다를 보고 있자니, 이번에는 또 열심히 포니테일과 꼬리와 가슴을 출렁이며 몸을 움직이던 레이아의 움직임이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천사님. 제 시선을 너무 의식하시는 것 아니에요?

"레이아씨. 그렇게 휘둘러서는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아요."

"아, 죄, 죄송해요."

그거 보세요. 마틸다는 저주에 걸려서 핑크빛 모드가 언제 발동할지 모르는데도 제 시선을 꾹 참고 열심히 하고 있잖아요. 마틸다를 본받아서 천사님도 파이팅이에요!

내가 그런 시선으로 쳐다보자, 천사님이 눈꼬리를 내리고 꼬리를 파닥파닥 흔들면서 ‘정마아알!’ 이라는 표정으로 잠깐 날 바라봤다.

곧바로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향하고 마틸다에게 지적 받은 대로 자세를 교정했지만.

"네. 좋아요. 그러면 여러분, 잠시만 그렇게 연습하고 있어주세요."

마틸다는 진지한 눈으로 레이아뿐만 아니라 다른 성직자 후보들의 자세도 교정해주면서 돌아다니다가, 그런 말과 함께 갑자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왜 그래? 역시 방해돼?"

"아뇨.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잠깐 따라와 주세요."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고 다가온 마틸다의 모습에 내쫓아질 각오까지 한 나였지만, 다행히도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마틸다는 내 손을 잡고 연무장을 빠져나가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날 데려가더니.

"하으으으으······당시인······아아······당시인······응······쪽. 쪽. 쪽."

"우읍! 으읍?!"

갑자기 핑크빛 모드가 되어서는 내 뺨을 두 손으로 감싸고 무차별적으로 키스를 해대기 시작했다.

"하앗······하앗······후우······이걸로 또 한 시간은 버틸 수 있겠네요."

그리고 또 엄한 교관님 표정으로 돌아와서는, 입술을 훔치고는 다시 연무장으로 돌아가 버렸다.

······야. 제대로 참고 있는 게 아니었던 거냐.

내가 속으로 그렇게나 네 칭찬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아니. 고작 이 정도에서 끊고 가는 걸 보면 너도 너 나름대로 엄청 자제하고 있는 거기는 하겠지만 말이야.

하여간 저 핑크 추기경은······날 너무 좋아한다니까. 헤헷.

나도 손등으로 입술을 훔치고는, 마틸다의 뒤를 따라 다시 연무장으로 돌아갔다.

여러분! 저기 저렇게 늠름하게 사람들을 지도하고 있는 추기경님이 방금 전까지 저한테 달라붙어서 열렬하게 키스해대던 그 사람이에요!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891화 > 끝

ⓒ CurtainCall#o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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