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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883화 (867/1,205)
  •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883화 >

    "자! 이제 순순히 말해보실까?!"

    식후의 티타임까지 마치고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가며 디아나만 데리고 방까지 끌고 온 나는, 문을 닫자마자 부담스러울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디아나를 몰아붙였다.

    "무, 무얼 말인가아?!"

    그런 내 모습에서 상당한 압박감이 느껴졌는지, 디아나는 문에 찰싹 달라붙어서 한 손만 뻗어서 필사적으로 내 이마를 밀어내려고 했다.

    물론 디아나가 민다고 해서 내가 밀릴 리가 없었고, 아무리 끙끙대면서 밀어도 내가 꿈쩍도 하지 않자 디아나는 내 이마를 한 손으로 토닥토닥 때리는 것으로 도중에 방침을 바꿨다.

    뭐,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크크크큭. 다 알고 있다고. 순순히 실토해."

    "그러니까 아까부터 묻고 있지 않은가! 대체 무얼 말하는 것인가!"

    뭐, 진심으로 모르는 것 같고, 나도 빨리 대답이 듣고 싶으니 조금 힌트를 주기로 할까.

    "하아······. 디아나야. 오늘따라 왜 그렇게 눈치가 없니. 척하면 척! 내가 아침부터 기분이 왜 좋았겠어?"

    "무읏······이 몸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겐가?"

    뭐, 질투하는 모습도 귀엽기는 하겠지만, 그게 아니야.

    게다가 질투하는 모습은 이미 보고 있고 말이야.

    입을 ㅅ모양으로 만들고 토라진 표정으로 날 노려보는 디아나의 머리에 손을 얹고 쓰다듬어주면서,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냐.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이유로 좋아하는 건 맞지만, 그걸 너한테 자랑하려고 이런 말을 꺼낸 게 아니야. 주목할 점은 그게 아니라고."

    "······그럼 뭔가?"

    "진짜 하나도 짐작 가는 게 없어? 사라가 나한테 뭘 해줘서 내가 기분이 좋아졌는지? 디아나라면 분명 짐작 가는 게 있을 텐데? 같이 성인용품점에 갔던 디아나라면."

    아무리 힌트를 줘도 디아나가 맞출 기색이 안 보였기 때문에, 나는 결국 대놓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디아나가 이렇게 눈치가 없을 줄이야. 원래 이런 애가 아니었는데?

    그런 내 의문은, 디아나의 다음 말로 모두 풀렸다.

    "결국 사라양은 그것을 쓴 겐가······. 하여간 사라양은······."

    부끄러워서 파닥파닥 거릴 거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과 달리, 어째선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여기 없는 사라를 향해 투덜대는 디아나.

    "둘이서 성인용품점에 간 것은 사실일세. 하지만 그래도 자네가 왜 그렇게까지 좋아하는지는 모르겠구먼. 자네 정말로 동물 귀가 취향이었는가?"

    그리고는 내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그런 질문을 던지기까지.

    응? 동물귀? 보통 그 세트라면, 귀보다는 꼬리에 더 주목해야 하는 거 아니야?

    "······잠깐만. 혹시 둘이서 성인용품점에 갔을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려주지 않겠어?"

    "음? 사라양한테 다 들은 것이 아닌 겐가?"

    "아니. 그냥 갑자기 그런 걸 꺼내 드니까, 내가 어림짐작한 것뿐이야. 내가 없는 동안에 그런 데를 갔다는 얘기는 없었고, 그렇다면 남은 건 그제 다 같이 놀러 갔을 때 주점에서 너랑 사라가 같이 화장실 간다면서 자리를 비웠을 때밖에 없지 않겠어?"

    뭐, 정확히 말하자면 꺼내 든 것이 아니라, 시작하기 전부터 착용하고 있었던 거지만.

    그런 것까지 말할 수는 없으니 적당히 그렇게 말할 수밖에.

    "후흠. 알려주지 못할 것도 없네만."

    내 말을 들은 디아나는, 어째선지 가슴을 펴고 우쭐해 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렇게 어제 주점에서 화장실에 같이 간 사라와 디아나의 얘기가 시작됐다.

    "사라양. 뭘 하는 겐가?"

    사라의 뒤를 따라 디아나가 화장실에 들어가니, 거기에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는 사라의 모습이 있었다고 한다.

    "디아나? 왜 따라온 거에요?"

    "음? 그······코홈! 그보다 사라양은 갑자기 왜 그런 차림을 하고 있는 겐가?"

    "뭐에요. 제가 걱정돼서 따라온 거에요? 괜찮아요. 화나서 그런 거 아니니까. 레이아가 구원의 어리광을 받아주는 게 한두 번인가요? 이따가 밀어내고 제가 옆자리를 차지하면 되죠."

    역시 사라야. 요즘 내 앞에서는 쿨한 모습을 거의 안 보여주고 있지만, 역시 이런 점은 참 쿨하다니까.

    그러고 보니 실제로 돌아와서는 레이아랑 내 사이에 파고들어 와서는 옆자리를 차지했었지.

    레이아도 조금 미안했는지 비켜줬고.

    뭐, 아무튼 그런 것보다 다음이다 다음.

    "이, 이 몸은 왜 그런 차림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네만!"

    "아, 이건······으응······. 말 안 하면 안 돼요?"

    "그렇게 말하니 더욱 알아야겠네. 이 몸은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란 말일세."

    "하지만 디아나에게는 자극이······."

    "무, 무얼 하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걱정은 전혀 필요 없네! 이 몸이 살아온 시간만 하더라도 사라양의 몇 배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겐가?!"

    아니. 몇 배라니. 디아나야. 백수십 배잖아?

    순간 그런 말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말하면 삐칠 게 뻔했기 때문에 참기로 했다.

    "으응······그럼 디아나도 같이 가요."

    "몰래 밖으로 나가려는 겐가? 대체 어디를······."

    "따라와 보면 알아요. 자, 빨리요."

    "알았네. 알았네. 잠시 기다리게! 정말로. 그런 변장이면 금세 들키지 않는가."

    그렇게 말하고, 디아나는 투명 마법을 걸었다고 한다.

    사라가 후드를 뒤집어썼다길래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아무리 차림을 달리해도 사라랑 디아나가 같이 가게 밖을 빠져나가는데 내가 눈치 못 챘을 리가 없지.

    마법으로 빠져나간 거였구나.

    "여기에요."

    그렇게 해서, 디아나는 사라의 뒤를 따라 성인용품점에 도착했다고 한다.

    "여, 여, 여기는······! 조금 전에는 사라양도 같이 여길 들어가는 건 반대하지 않았는가아!"

    "그거야 구원이 같이 들어가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그랬죠. 아니면 역시 디아나한테는 자극이 강했나요?"

    "무, 무슨 소리인가! 전혀! 전혀 그렇지 않네만! 자네는 이 몸의 연륜을 너무 우습게 아는구먼! 이 정도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네!"

    "그럼 상관없잖아요. 자, 가요."

    "으, 음!"

    그렇게 해서 당당하게 성인용품점으로 들어간 디아나였지만 솔직히 조금 떨렸다고 한다.

    그야 그렇겠지. 디아나는 이런 곳과 전혀 연이 없었을 테니까.

    그럼 사라는 연이 있었냐고? 생각해 봐. 사라 걔는 내가 괜찮다고 해도 맨날 엉덩이를 미리 준비해 오는데, 그 도구를 어디서 구했겠어?

    "하지만 갑자기 이런 곳에 오다니······."

    "레이아를 보니까 조금 좋은 생각이 나서요. 어때요?"

    그렇게 말하고, 사라는 정해둔 게 있다는 듯 곧바로 고양이 귀가 달린 머리띠가 놓인 곳으로 가서 시착을 했다고 한다.

    "······사라양."

    그리고 여기부터가, 디아나가 아까 그렇게 우쭐댔던 이유가 나오는 대목이었다.

    "자네 잠깐 이 몸 좀 보세."

    "네? 자, 잠깐만요! 디아나?!"

    디아나는 사라를 손목을 붙잡고 그대로 가게 밖까지 빠져나와서는, 곧바로 사라에게 훈계를 늘어놨다.

    "알겠는가! 이 몸들의 낭군님이 확실히 레이아양에게 많이 어리광부리는 것은 맞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레이아양의 그 뭐든 받아주는 성격 때문일 뿐! 결코 이 몸들보다 레이아양이 더 좋다든가 하는 이유가 아닐세! 레이아양을 따라 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일세! 낭군님이 좋아해 주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에게 조금 더 자부심을 가지게!"

    응. 어디서 많이 들어본 대사다.

    아니.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 한다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잘한 건 맞지. 잘했어. 우쭐할만해.

    어떻게 보면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그것도 내일 서로 투닥투닥 싸우는 사라에게 저렇게 말하면서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거니까.

    평소에는 의지 안 되는 것처럼 보여도, 여차할 때 제일 믿을 수 있는 우리의 최고 연장자 포지션 답다고 할까?

    하나 문제가 있다면, 사라가 그런 생각으로 고양이 세트를 구하려 한 게 아니라는 것이지만.

    레이아를 따라하려고 한다든가 그런 생각보다는, 그냥 꼬리로 내 등을 쓰다듬어 주는 걸 보고 자기도 꼬리를 이용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뿐이지 않을까?

    엣! 헴! 하고 없는 가슴을 쫙 펴며 얘기하는 디아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아뇨. 전······."

    그리고 역시나 내 생각이 맞았는지 사라도 뭔가 변명을 하려고 했다는 모양이지만.

    "사라양!"

    "알았어요······정말."

    디아나의 강력한 눈빛에 결국 디아나의 말을 받아들였다는 모양이다.

    아니. 디아나야. 아마 네 눈빛 때문이 아니라 설명하기 귀찮아서······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면 다른 게 있나 한 번 보러 가봐요."

    하지만 그렇게 디아나의 열렬한 설득을 듣고도, 사라는 성인용품점에 가려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고 한다.

    "어째서인가?! 지금 이 몸이 한 말을 못 들었는가?!"

    "레이아를 따라 하지 않더라도 뭔가 구원의 마음을 잡을 이벤트 정도는 준비해도 괜찮잖아요. 자고로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여자가 밤에 준비한 화끈한 이벤트라고 그랬어요."

    "누가 말인가?"

    "······."

    거기서 처음으로, 사라의 말문이 제대로 막혔다고 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 말을 해준 게 바로······.

    "사라양?"

    "······그게, ······성에 사는 그 여자가······."

    바로 펠리시아였으니까 말이다.

    "펠리시아양 말인가? 사라양, 펠리시아양을 싫어하는 것 아니었는가?"

    "그야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가 아는 여자 중에서는 그 여자가 남자한테 인기가 많은 걸요! 도움이 되는 말은 적의 말이라도 듣는다는 게 제 원칙이에요!"

    아니. 사라야. 적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표현이 너무 과하지 않냐?

    그야 사라도 펠리시아가 적이라는 뜻으로 한 말은 아니겠지만.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겐가! 이 몸이 있지 않은가! 이 몸!"

    게다가 디아나는 사라의 말에서 제일 신경 쓰이는 점이 그 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네?"

    "자네가 아는 이 중 남자한테 가장 인기가 많은 어른! 이! 몸!"

    디아나야······. 아니. 확실히 인기가 많은 건 부정 안 하겠는데, 이건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을 원하는 거니까 말이지······.

    "그야 디아나도 인기가 많은 건 알겠지만······."

    그리고 역시나 사라도 나와 완벽하게 같은 심정이었던 모양이다.

    "알겠지만 뭔가?!"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튼 들어가 봐요. 디아나도 뭔가 준비해두면 좋지 않겠어요?"

    "이, 이 몸은 이런 가게의 도움 필요 없이 가진바 매력으로도 충분하네만, 자네가 그렇게 원한다니 어쩔 수 없구먼!"

    그렇게 해서, 사라와 디아나는 같이 성인용품점에 들어가게 됐다.

    그리고 사라는 결국 고양이 귀를 샀다고 한다.

    "디아나는?"

    "마, 말하지 않았는가! 이 몸은 그런 가게의 도움 필요 없이 가진바 매력으로도 충분하네! 무얼 살 필요가 있겠는가!"

    흐음. 그래서 내가 그렇게 추궁해도 아무것도 모르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하고 싶은 거지?

    "그래서, 사라가 고양이 귀를 살 때 또 설교 같은 건 안 했고?"

    "으음. 이 몸도 레이아 양과 상관없이 커진 모습으로 할 때가 있지 않은가. 사라양도 비슷한 생각으로 그저 특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은 것뿐이라고 하니, 이 몸도 더 해줄 말이 없었네."

    "과연. 그래서 결국 디아나는 사라가 고양이 귀만 산 줄 알았다고."

    "으음? 그, 그게 무슨 말인가? 설마 사라양도 이 몸 몰래 다른 걸 산 겐가?!"

    걸렸군. 그럴 줄 알았어 이것아. 어딜 모르는 척 시치미를 뚝 떼고 있어.

    분위기에 휩쓸려서 사기는 샀지만, 막상 나한테 말하려니 부끄러워져서 그냥 안 산 셈 치기로 했다든가, 대충 그런 거겠지.

    "도?"

    "으앗······!"

    내 짧은 추궁에, 디아나는 두 손으로 입을 막고 딱딱하게 굳어졌다.

    "사라양 도오오?"

    "코, 코홈! 마, 말실수네! 사라양이 말일세. 사라양이! 에헤헤. 디아나, 실수했네."

    뒤늦게 귀여운 척까지 하면서 무마시키려고 힘쓰는 디아나였지만, 그런 거에 넘어갈 내가 아니었다.

    아니. 무지막지하게 귀엽기는 했지만.

    그런 건 또 누구한테 배운 거야?

    그리고, 이왕 귀여운 척할 거면 그 말투까지 바꾸지 그랬냐.

    "늦었어 이것아! 자, 대체 우리 대마법사님께서 므흐흣한 성인용품점에서 대체 뭘 사왔는지, 한 번 봐보실까!"

    "벼, 별거 안 샀네! 그저 그곳의 여자 점원이 요즘 이런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말하니까아······."

    "그러니까 그 별거 아닌 걸 내놓아보시지!"

    "우으으으······."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883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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