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878화 >
부스럭부스럭.
팔 안에서 뭔가가 살금살금 움직이는 감각이 느껴져서, 나는 잠결에 반사적으로 팔에 힘을 줬다.
"크흣?!"
그러자 팔에 가벼운 진동이 느껴짐과 함께, 어째서인지 하반신에 기분 좋은 압박감이 같이 느껴졌다.
잠에서 덜 깨 몽롱한 상태. 아니. 외부의 자극에 반사적으로 반응하고 있을 뿐 아직 잠들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그렇게 기분 좋은 감각까지 느껴지니, 나는 또 반사적으로 팔에 힘을 줘서 팔 안에 있는 물체를 더욱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물체에 뺨을 대고 비벼대면서, 하반신에 느껴지는 기분 좋은 감각을 더욱 음미하기 위해 허리를 살짝살짝 움직여서 가장 좋은 위치를 잡았다.
"일어나 있으······큭······으흡······읏······!"
귓가에 뭔가 듣기 좋은 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지만, 그 소리가 가진 의미를 생각할만한 이성이 내게는 없었다.
대신 귓가를 간질이는 그 소리를 듣기 좋은 자장가로 삼으며, 나는 다시 깊은 수면에 빠졌다.
그렇게 기분 좋게 다시 한번 잠이 드니, 눈을 떴을 때의 기분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상쾌함을 마냥 즐기고 있을 수 없었다.
"후우읏······후으으읏······."
지금 막 잠에서 깬 거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맑은 내 눈앞에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날 노려보고 있는 바넷사의 얼굴이 있었기 때문이다.
뭐, 노려보고 있다고는 해도, 눈동자가 살짝 풀려있어서 평소 같은 박력은 없었지만 말이다.
게다가 눈만 풀린 게 아니라, 어째서인지 손으로 입을 막고 있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니 내 품에 안겨있는 그 몸도 왠지 나른한 느낌으로 축 처져있는 것 같고.
이래선 마치 어젯밤에 절정 속박을 걸고 괴롭혔을 때 같잖아.
"으흣?!"
어젯밤 일을 생각하니, 아직도 바넷사의 안에 있는 내 물건에 또다시 힘이 팍하고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중간에 바넷사가 너무 터프하게 나오는 바람에 살짝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것만 빼면 완벽한 밤이었다.
드물게 바넷사의 가드가 완전히 풀어져 버린 모습도 볼 수 있었고 말이다.
"······음흉하게 웃지 마시고······후읏······슬슬 빼주십시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는지, 바넷사가 살짝 달콤한 한숨을 섞어가며 그렇게 말했다.
"야. 음흉하다니. 네 서방님이 짓는 기분 좋은 미소를 보고 그런 말이 나와? 진짜 너무 하는 거 아냐? 뭐, 야한 생각 하면서 미소 지은 건 사실이지만 말이야."
그건 그렇고 얘는 아침부터 왜 이렇게 되어있는 거지?
그야 어제 철가면이 벗겨진 바넷사가 너무 예뻐서 새벽 늦게까지 불타올랐던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잠을 안 잔 건 아니다. 나도 지금 막 기분 좋게 일어난 참이고 말이다.
그렇게 충분히 쿨다운할 시간이 있었는데, 얘는 왜 아직도 자기 전에 불타올랐던 흔적이 전혀 사라지지 않은 걸까?
사라지기는커녕, 조금 전까지 섹스를 계속하고 있었던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혹시 내가 잠든 후에도 달아오른 몸을 주체 못하고 혼자 계속했다든가?
아니. 그럴 리는 없는데? 제대로 얘가 잠든 모습······이라고 할까, 기절한 모습까지 확인하고 잠들었으니까.
그리고 이 성자님이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 만족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럼 대체 이 모습은 뭐냔 말이야?
"그리고 빼주지도 않을 거야. 어딜 벌써 끝내버리려고. 안 되지. 안 돼. 일어났으면 우선 알콩달콩하게 굿모닝 섹스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니겠어?"
아무튼 일단 한 판 하고 생각해보자.
"······."
그렇게 판단하고 허리를 움직이려 했지만, 바넷사가 무언의 압박을 계속해서 보내는 통에 나는 차마 허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눈이 풀려있어서 박력은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이런 표정인 애를 상대로 멋대로 시작해버리는 것도 그렇잖아?
"대체 왜 그러는데? 아, 혹시 지난밤에 부끄러운 모습 보인 것 때문에 그래?"
"······큿. 생각나게 하지 마십시오."
내 말에, 바넷사는 이제야 겨우 어제 자기가 어떤 반응을 했었는지 생각해냈다는 듯 내게서 시선을 피해버렸다.
아차, 괜히 말해서 부스럼만 만들었나.
하지만 밤에 있었던 일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라면 대체 왜 그런 반응을?
나는 다시 한번 찬찬히 바넷사의 몸을 머리부터 아래로 쭉 훑어봤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달아오른 뺨. 거친 호흡. 풀린 눈. 그리고 살짝 땀에 젖어서 섹시하게 빛나고 있는 몸까지.
진짜로 방금 전까지 섹스를 계속하고 있었던······잠깐만. 그러고 보니 얘 방금 전까지 입을 틀어막고 있었지.
마치 자기 목소리 때문에 내가 깨는 걸 원치 않는 것처럼.
"바넷사."
"······뭡니까."
"혹시 나 말이야, 자면서도 계속했어?"
"······."
바넷사는 굳이 대답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개를 돌린 채 눈동자만 움직여서 힐끔 날 쳐다보는 그 표정은, 명백하게 그걸 이제야 알았냐는 표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잠결에 뭔가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었던 것 같아.
그렇구나. 그냥 그래 보였던 게 아니라, 진짜로 방금 전까지 느끼고 있었던 거였구나.
잠결에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그 바넷사를 이렇게 녹아버리게 하다니. 훗, 나란 녀석은 정말.
뭐, 날 안 깨우려고 참느라 괜히 더 느껴버린 것도 있겠지만.
"사랑해. 바넷사."
"······후우. 어차피 금방 끝날 테니, 빨리하십시오."
나는 이 뭐라 말하기 힘든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애교를 부렸고, 바넷사는 그런 날 보면서 깊게 숨을 한번 내쉰 후 그렇게 말해줬다.
"바넷사가 빨리 느끼고 싶은 건 아니고?"
"······."
"아, 미안! 할게! 할 거야!"
"응흣?! 갑자기 시작하기 전에······후읏······미리 말부터 하십시오!"
그렇게 나는 바넷사와 알콩달콩하게 굿모닝 섹스까지 즐길 수 있었다.
사실 밤에 너무 괴롭힌 것 같아서 살짝 걱정했는데, 다행히 바넷사도 그에 관해서는 뭐라고 할 생각이 없어 보였고. 여러모로 다행인 아침이었다.
뭐,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전에 한 번 같은 일로 홍역을 치렀으니 이번에는 괜찮다는 건가.
즉, 앞으로는 바넷사랑 할 때는 매번 저 철가면을 벗겨 내고 부끄러운 반응을 즐겨도······.
"······."
야. 그러니까 노려보지 말라니까.
속으로만 생각했는데 대체 어떻게 알고 노려보는 거야?
아무튼 그렇게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한 나는, 식사를 마치고 오늘 하루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고민했다.
이제는 던전에 가는 것도 서두를 이유가 없으니까 말이야.
나만이 그 뜻을 해석할 수 있는 그림으로 심층에 가는 길이 봉인되어있는 만큼, 아라크네 클랜이 우리보다 먼저 6계층 아래로 가버릴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거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위에서 조금 오랫동안, 적어도 레이아의 차례까지 전부 돌아갈 때까지는 있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던전에 다니거나 우리 애들이랑 꽁냥 거리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는 나로서는, 이렇게 할 일이 없으면 고민이 되기도 했다.
역시 오늘도 아무나 붙잡고 꽁냥 거리는 것밖에 없나.
하지만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고민이 생긴단 말이지. 대체 누구랑 꽁냥 거리는 게 좋을까 하는 고민이.
나도 나름 하렘 비스무리한 상황에 처해있는 만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거다.
어제는 삼인방이랑 꽁냥거렸으니까 오늘은······.
"자네. 할 일 없으면 이 몸의 연구나 도와주게."
하지만 내가 식후의 차를 홀짝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디아나가 내 온몸에서 느껴지는 잉여의 기운을 감지했는지 그런 제안을 해줬다.
"네."
물론, 나는 두말할 것도 없이 승낙했다.
휴우. 뭔지는 모르지만 뭔가 할 일이 생겨서 다행이다.
아니. 난 딱히 집에서 밥만 축내고 있는 백수 같은 게 아니니까 집에서 좀 놀고 있어도 전혀 양심에 찔리지 않지만 말이야!
"그런데 연구라니 뭘?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데?"
"음. 어제 마력 변환기를 들고 가지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 꺼내자는 얘기를 하지 않았는가."
"아, 응."
"자네가 없는 사이에 이 몸이 미리 하나 만들어놨었네. 하지만 역시 그 크기가 상당히 거대해서 말일세. 그렇다고 해서 각 계층의 마을에 설치하는 것만큼 크기가 큰 것은 아니네만."
즉, 내 인벤토리가 아니면 들고 다닐 수 없는 크기라는 건가.
그렇다는 말은 당연히 돌아다니면서 들고 다니면서 실험 같은 것도 못 해봤을 거고.
"그러니까 실제로 가지고 다니면서 실험을 못 해봤으니까 오늘 해보자고?"
"음. 그런 걸세. 물론 자네는 던전에서 돌아온 지 며칠 되지 않았으니, 아직 던전에 가고 싶지 않다면 무리해서······."
"아니. 괜찮아. 확실히 지옥을 겪고 오기는 했지만, 실험하러 가는데 그렇게 깊은 곳으로 가자는 것도 아니잖아?"
혹시 그 근육 지옥까지 가자고 하면 살짝 고민을 해봐야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야.
"물론일세. 우선은 1계층부터 차근차근 실험해볼 생각이네. 미안하구먼. 이 몸에게 전성기의 마력만 있었다면 굳이 자네를 번거롭게 하지 않아도."
"아니. 그렇게 따지면 애초에 던전에 가는 것부터가 내 사명 때문인데 뭘."
그보다 전성기 마력만 있으면 인벤토리 없이 옮기기도 힘든 기계를 혼자 가지고 다니면서 실험할 수 있다는 게 더 신경 쓰이는데.
그거, 엄청 대단한 거 아니야? 뭘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건데.
가끔 보면 얜 못하는 게 뭔지 궁금할 정도라니까.
뭐, 그러니까 모든 마법사들의 존경을 받는 대마법사님인 거겠지만.
"아무튼 그런 거라면 가자. 아, 그래도 일단 던전에 가는 거니까, 할 일 없는 애들 몇 명 더 데려가는 게······."
마틸다는 오늘도 성기사 육성을 하러 신전에 갈 거고, 레이아도 아마 따라갈 거다.
하지만 사라나 실비아 정도라면······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내 행동을 디아나가 제지했다.
"1계층의 몬스터 정도라면 이 몸이 육탄전으로 싸워도 이길 수 있는 수준이지 않은가! 그냥 가세!"
야. 아무리 나랑 단둘이 데이트가 하고 싶어도 그렇지. 너무 노골적이지 않냐?
아니. 나야 좋지만 말이야. 귀엽기도 하고.
"아, 아무 말 없이 이 몸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은 그만두게."
내가 미소를 지으면서 디아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디아나는 부끄러운 건지 머리 위로 손을 휘휘 내저으며 내 손에서 빠져나왔다.
"아무튼 그러면 준비하고 지하로 오게. 변환기는 그곳에 있네."
그렇게 해서, 나는 마력 성질 변환기를 인벤토리에 넣고 디아나와 단둘이 던전에 가게 됐다.
그리고 길드에 가기 전에, 먼저 한나의 대장간에 들러서 어제 맡겼던 무기부터 찾기로 했다.
사실 1, 2계층 정도는 무기 같은 게 없어도 전혀 문제없지만, 이왕 던전에 가는 건데 최대한 시간을 유익하게 써야 하지 않겠어?
위쪽 계층은 대대적으로 개조한 무기에 익숙해지기 좋은 연습장이기도 할 테고.
"자, 여기. 이런 식의 무기는 처음 만드는 거라서 힘 좀 써봤는데. 어때?"
맡긴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아서 완성됐을지 조금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한나는 내 개조 의뢰가 마음에 들었는지 밤을 새워가면서 최우선적으로 내 무기부터 개조를 해줬다는 모양이었다.
그 때문에 방어구나 다른 애들의 무기는 아직 강화하지 못했다는 모양이지만, 어차피 본격으로 던전에 가는 건 미룰 생각이었으니 전혀 상관없었다.
"괜찮네. 부탁했던 부분들도 완벽하게 구현해줬고."
사실, 너무 괜찮아서 무서울 정도야.
아니. 건틀렛에 손톱 같은 날을 달고 그게 발사까지 되는 장치를 만들어 준 건 그렇다고 치더라도 말이야, 근육 지옥에서 얻은 소재까지 완벽하게 이용해서 강화해놨잖아.
진짜로 대체 그 사이에 레벨이 얼마나······아, 아니. 신경 쓰면 지는 거다. 신경 쓰면 지는 거야.
아무튼 그렇게 해서, 우리는 이번에야말로 진짜로 던전으로 향했다.
우선은 1계층. 그것도 텔레포트를 타고 우리가 발견한 안전지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정면의 입구에 걸어서 들어갔다.
사실 여기서부터 실험을 할 필요는 없을 거다.
그도 그럴 것이, 몬스터가 강하면 강할수록 여신님의 마력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거니까.
반대로 말하면 약하면 약할수록 거부반응이 약하다는 것으로, 던전 입구에 있는 몬스터들이 마력 변환기에 반응을 보일 리가 없었다.
오죽하면 1계층은 안전지대가 없어서 우리가 안전지대를 발견하기 전까지 텔레포트 마법진도 설치하지 못하고 있었겠어.
뭐, 그때는 몬스터들이 여신님의 마나에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는 걸 정확히 모를 때이기는 했지만.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878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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