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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870화 (854/1,205)
  •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870화 >

    크윽. 아직도 살짝 쓰라린 것 같아.

    식사가 끝나고, 나는 살짝 시큰거리는 등에 번민하며 자기 방으로 혼자서 터벅터벅 돌아갔다.

    하필 맞은 위치가 손으로 닿지도 않는 곳이라 어루만질 수도 없어서, 괜히 더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다.

    보통 말이야. 거기선 사라만 한 대 때리고 끝나는 분위기잖아?

    왜 다 같이 한 대씩 때리는 분위기가 된 건데.

    아니.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이유는 알고 있다.

    사라의 권유에 우리 집사님이 곧바로 응했기 때문이다.

    그 녀석, 중요한 자리니까 같이 앉아서 얘기 들으라고 해도 지금은 집사라면서 한사코 거절했었으면서.

    그야 그런 바넷사에게 그러면 뒤에 서서 듣다가 끼어들고 싶으면 언제든 끼어들라고 한 건 다름 아닌 나다. 나지만 말이야, 그래도 보통 내 등짝에 손자국 남기려고 끼어드냐?

    그것도 사라가 때린 곳이랑 정확히 똑같은 곳을 때렸어.

    아마 어제 그렇게 하루종일 기다리게 만들고, 오늘도 또 따라가서 기다려줬는데 그 결과 내가 한 짓이 다른 여자를 새로 들이는 짓이었다는 사실이 내심 상당히 분했던 모양이다.

    그나마 저택에 오자마자 사라한테 들켰을 때는 바넷사 얘가 마차를 넣으러 가서 자리에 없었으니 망정이지.

    아무튼 그렇게 바넷사가 사라의 제안에 응하니, 처음에는 다들 조금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먼저 제안했던 사라마저도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다들 내 등짝을 한 대씩 때리는 분위기가 돼서, 결국 이렇게 됐다는 얘기다.

    물론 다들 어느 정도 힘 조절은 해줬다.

    나중에 때린 애들뿐만이 아니라, 처음 시작한 사라나 바넷사도 말이다.

    게다가 디아나는 어차피 힘껏 때려봤자 별로 타격도 없고, 실비아는 애초에 펠리시아가 내 여자가 되는 걸 기뻐하는 입장이니 보여주기 식으로 살짝 손바닥만 가져다 댔다.

    마틸다나 레이첼 누님도 그냥 적당한 수준으로 톡 치는 것으로 끝냈고, 제일 마지막에 손을 가져다댄 우리 천사님에 이르러서는 남들 몰래 살짝 힐까지 써주셨다.

    하지만 빗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도 있듯, 같은 장소에 계속 타격이 들어오니 데미지가 은근히 누적됐다.

    게다가 천사님도 일부러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완전히 치료를 안 해주시고, 살짝 데미지가 남을 정도로만 치료해주셨으니까.

    응. 아마 천사님도 질투를 아예 안 하신 건 아니라는 얘기겠지.

    당연한 얘기다. 아무리 천사님이라도 그 상황에서 질투를 아예 안 하셨으면 오히려 내가 서운했을 거다.

    뭐, 어찌 됐든 지금은 그런 것보다 레이첼 누님이 우선이다.

    물론 펠리시아와 잘 됐고 우리 애들한테 허락까지 다 받은 건 기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제와 같은 실수를 또 저지를 수는 없지.

    결과적으로 다 잘 됐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자를 안으면서 눈앞의 여자가 아닌 다른 여자를 생각하는 건 해선 안 될 일이니까.

    그러니까 지금은 레이첼 누님에게만 집중······아니. 잠깐만. 그러고 보니 오늘, 레이첼 누님 차례가 맞기는 한가?

    확실히 저번에는 마틸다 다음 레이첼 누님 차례였던 것은 맞다.

    하지만 그때는 여러 일이 겹쳤었으니까.

    밤의 순서를 3명에서 모두가 돌아가면서 하는 것으로 바꾸기 시작한 때였고, 마틸다와의 밤은 던전에서의 연장선 같은 느낌이었고, 레이첼 누님은 저택에 막 이사를 와서 그걸 환영하는 느낌도 있었고, 게다가 바넷사는 날 피하느라 레이첼 누님에게 순서를 양보까지 했었으니까······그래서 결국 오늘 차례는 어떻게 되는 거지?

    바넷사가 양보를 안 하면 내 여자가 된 순서대로 바넷사가 먼저인가?

    아니면 한 번 했던 대로 계속 레이첼 누님이 먼저?

    ······조, 좋아. 이렇게 된 이상, 누가 오든 환영할 마음가짐으로 준비하고 있자.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거기에 맞춰 플레이 내용이 확확 바뀌는 게 내 스타일이지만, 그건 나 자신의 임기응변 능력에 맡기기로 하자고.

    어차피 벌써 방에 도착해버렸으니, 지금 확인하러 돌아가 봤자 다들 해산해서 없을 거다.

    전에 순서를 착각했다가 제대로 당한 기억이 있어서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말이야.

    그것도 하필 또 바넷사야.

    아니. 그때도 바넷사보다는 사라가 주도해서 장난쳤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면서도 준비를 마치고 한참을 기다린 나였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누군가 내 방에 찾아올 기색이 안 보였다.

    벌써 한 시간이나 기다렸는데도 말이다.

    ······뭐야? 설마 펠리시아 때문에 화났으니까 오늘은 혼자 자라는 거야?

    아, 아니지? 아닐 거야. 그, 그럴, 그럴 리가 없잖아? 하핫.

    우리 애들과 이런 관계가 되고 처음으로 집에서 혼자 밤을 지새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나는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을 나섰다.

    "바넷사아! 바넷사아아아!"

    복도에 나가자마자 곧장 우리 집사님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레이첼 누님이 아니라 바넷사를 부른 게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단순히 바넷사랑 만나서 확인하는 게 더 빠르니까 그런 것뿐이다.

    우리 슈퍼 집사님은 저택 안이라면 어디에서 부르든 자기 이름만 부르면 어떻게 알고 곧바로 나타나시니까.

    "······뭡니까."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무뚝뚝하달까 살짝 뚱한 표정의 바넷사가 곧장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완벽히 정돈된 집사복 차림. 그리도 뚱한 표정이기는 하지만 내 부름에 곧장 나타났다는 점까지.

    누가 봐도 자기 차례지만 화나서 내 방에 찾아오지 않고 있던 사람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렇다는 말은, 오늘 차례는 레이첼 누님이라는 건가.

    "크흠. 아니. 그 뭐냐."

    상황을 파악한 나는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면서 대충 얼버무리려고 했다.

    마음 같아서는 레이첼 누님이 왜 안 오는지, 모른다면 적어도 누님이 어디에 있는지는 물어보고 싶었지만, 안 그래도 펠리시아 때문에 뚱해 있는 애한테 또 다른 여자 얘기를 할 필요는 없겠지.

    "오늘 네 차례 아니었어?"

    "······아닙니다."

    내 질문에 바넷사는 잠깐동안 침묵을 유지하더니, 이내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내가 자기를 애타게 부른 이유가 이런 착각 때문이라는 걸 알고 은근히 기분이 좋기는 했는지, 처음에는 살짝 뚱했던 표정이 이제는 평소의 무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기분이 좋아져서 무표정이 됐다는 것도 뭔가 이상한 얘기지만.

    뭐, 아무튼 방금 내 외침이 그만큼 애절했다는 뜻이지.

    "아, 아아! 그렇구나! 내가 착각했나 보네! 그럼 이만!"

    "······레이첼님이라면 방에 계십니다."

    "크흑. 바넷사아······."

    그렇게 얼버무리고 바넷사와 헤어지려고 하자, 바넷사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해줬다.

    우리 철혈 집사님의 너무도 상냥한 배려에 감동한 나는 그 몸을 끌어안으려고 했지만.

    턱.

    손바닥에 이마가 막혀서 제대로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이마를 잡힌 상태 그대로 바넷사의 눈을 빤히 쳐다봤지만, 바넷사는 무표정을 유지하며 안면 근육에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살짝 힘을 줘서 이마부터 들이밀어 접근해보려고 까지 해봤지만, 바넷사는 그 팔에 전혀 힘을 빼지 않았다.

    "야. 정말 이러니냐."

    "지금은 집사입니다."

    "······그러냐. 훗!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 반응을 보고 나는 살짝 포기하는 척 뒤로 뺐다가, 바넷사가 방심한 틈을 타서 기습을 시도했다.

    어떠냐! 이거라면!

    턱. 탁. 퍽.

    이번에는 두 손을 집사복 아래에서도 자랑스럽게 앞으로 튀어나온 그 흉부로 뻗으며 돌진해 봤지만, 바넷사의 대처는 완벽했다.

    이마와 두 손을 전부 막을 순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끄아아악! 마이 아이!"

    바넷사는 두 손으로 각각 내 손목을 잡고, 내 손으로 내 얼굴을 막아버린 거다.

    "이런 짓 하실 시간이 있으시면, 레이첼님께 가보시는 게 어떠십니까?"

    "네가 말 안 해도 알고 있어!"

    이 피도 눈물도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너 내일 자기 차례인 건 알고 있는 거지?!

    두고 봐라! 내 밑에서 엉엉 울면서 빌게 만들어 줄 테니까!

    뭔가 삼류 악당 같은 대사를 내뱉으며, 나는 바넷사와 헤어져 레이첼 누님의 방으로 향했다.

    바넷사랑 장난치면서 살짝 마음이 가벼워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누님은 대체 왜 내 방에 찾아오지 않으신 거지?

    일단 누님은 펠리시아 일로 그렇게 화난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셨는데.

    아, 혹시 펠리시아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또 던전에서 위기에 처한 것 때문에 화나신 건가?

    내가 막 돌아왔을 때는 그냥 무사히 돌아온 사실이 마냥 기쁘기만 하다는 반응을 보였던 누님이었지만, 내가 펠리시아랑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기절하듯 잠들 정도로 무리했었다는 걸 알게 된 지금은 또 느끼는 바가 다를지도 모른다.

    뭐, 펠리시아랑 그렇게 된 건 전날에 실비아랑 잠도 안 자고 해대서 그런 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던전의 위험성을 누구보다도 의식하고 있는 레이첼 누님에게는 변명으로 들릴 지도 모를 일이고.

    "누님!"

    "으응······이건 너무······꺄아악?!"

    그런 걱정을 하면서 누님의 방에 쳐들어간 나였지만, 아무래도 그런 걱정은 기우였던 모양이었다.

    방에 들어가니 속옷을 늘어놓고 거울 앞에서 비교해보며 뭘 입을지 고민하는 레이첼 누님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화나서 그런 게 아니었구나.

    속옷 같은 건 그냥 아무거나 입고 오셔도 되는데. 어차피 뭘 입으셔도 예쁘시니까.

    뭐, 단순히 예쁘게 보이려는 것만이 아니라, 원래 누님이 이런 걸 철저히 준비해와서 하려고 하는 성격인 것도 한몫하겠지만.

    하지만 누님. 이제부터 주기적으로 계속 저랑 같이 자는 거니까, 매번 그렇게 이벤트를 해주려고 하면 누님도 피곤할 걸요?

    "어, 어쩐 일이니?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구, 구원아? 그러니까 이건······."

    갑자기 들이닥친 내게 상당히 놀랐는지, 누님은 당황해서 손을 파닥파닥 거리며 변명을 하려고 했다.

    뭐 막상 변명하려고 하니까 할 말이 없는지, 입말 오물오물 거리고 말을 잇지는 못했지만.

    애초에 딱히 변명할 상황도 아니고 말이다.

    보이는 그대로 준비에 시간이 너무 걸린 나머지 늦은 거니까.

    누님은 아래에만 속옷을 입고 위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손에 속옷을 들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손을 파닥파닥 거릴 때마다 그 커다란 가슴이 격하게 출렁였다.

    나는 그 가슴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아무 말 하지 않고 누님에게 다가가서, 누님의 골반 위에 사뿐히 두 손을 올리고 같이 춤이라도 추는 것같이 자연스럽게 누님의 침대로 유도했다.

    "아······."

    그리고는 누님의 손에 들린 속옷을 빼앗아 뒤로 던져버리고, 그 입술에 입을 맞추면서 그대로 누님과 같이 침대로 쓰러졌다.

    "응흐읏······하응······구, 구원아······누나 아직······."

    오감의 자극에 민감한 누님은 이런 식으로 타액을 교환한 것만으로도 벌써 달아오르기 시작했는지, 몽롱한 표정을 지으며 날 올려다봤다.

    그리고 그 심장 역시도, 내 가슴팍에 닿아서 짓눌리고 있는 그 풍만한 가슴이 그 충격을 다 흡수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크게 두근거리고 있었다.

    "괜찮으니까. 자, 아······."

    "아아······응긋······하읏······하, 하지만······모처럼 던전에서······."

    내가 혀를 내밀어 아래로 타액을 떨어뜨려 주자, 누님은 입을 벌려서 그대로 내 타액을 받아서 삼키고는 또다시 거친 숨을 내뱉으면서 그렇게 중얼거리셨다.

    화가 난 것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나 내가 아까 생각했던 대로 던전에서 내가 험한 꼴을 당하고 온 걸 신경을 쓰고는 있으셨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더 내가 너한테 이렇게 봉사해줘야지."

    레이첼이 이런 걸 극도로 신경 쓰는 걸 알면서도, 괜히 불안하게 만든 건 나니까.

    "그러니까 오늘은 이렇게 내가 해주는 대로······."

    "아읏······하읏······!"

    내가 입을 그 긴 귓가에 가져가면서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자, 누님은 귀를 간질이는 그 감촉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몸을 바들바들 떠셨다.

    "알겠지?"

    "읏······네에······."

    누님. 존댓말 나오고 있어요.

    그렇게 무심코 존댓말이 나와 버릴 정도로 제 목소리가 유혹적이었어요?

    원래는 존댓말을 하던 누님이기는 했지만, 이번 존댓말은 그때랑 어딘지 모르게 느낌이 달라서, 나는 뭔가 오싹오싹하는 기분을 맛보며 누님에게 미소를 지어줬다.

    만약 여자를 유혹하고 다니는 인큐버스가 있다면, 이런 기분일지도 몰라.

    아, 아니! 물론 난 인큐버스가 아니라 성자지만! 성자!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870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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