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849화 (83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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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얼굴 마주치는 일 없도록 하자.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번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

    "하핫. 성자님은 마지막까지 그러시는군요."

    "…나쁘지 않아."

    "농담 아니거든 새끼들아!"

    역시 밑에 있을 때 묻어버렸어야 했는데.

    사람으로서 가지고 있는 마지막 양심 때문에 차마 이 두 놈을 묻지 못한 나는, 위로 올라오고 나서 황급히 놈들과 헤어지기로 했다.

    저 두 놈…그나마 그렉은 노래라도 안 하고 있으니 낫지만, 팔찌를 찬 내 매도를 음미하는 듀크 놈의 얼굴을 계속 보고 있으면 이번에야말로 진짜로 살인을 저지를 것 같았으니까 말이야.

    그렇지 않더라도 정신이 한계까지 달해있는 상태니까 더더욱.

    젠장. 쓸데없는 고생을 너무 많이 했어.

    마지막 소계층에 갔던 것만 얘기하는 게 아니다.

    그야 물론 그게 제일 쓸데없는 고생이었지만, 저 두 놈을 파티에 낀 것도 큰 실수였다.

    저 두 놈을 파티에 꼈을 때, 사실은 이런 생각을 했었다.

    앞으로 이런 식으로 소계층을 미리 조사해야 할 일이 몇 번이나 더 있을지 모르고, 그때마다 내가 아라크네의 눈을 속이고 쓰레온과 함께 던전에 내려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만약 저 두 놈의 솜씨가 쓸만하다면, 앞으로는 저놈들을 쓰레온에게 붙여서 조사를 맡기자.

    그런 쓰레온이 알았다면 진심으로 내 암살을 꾀했을 생각을 하고 저 두 놈도 파티에 낀 거였지만, 결과는 그 근육빡빡이들의 소굴이 마지막 소계층이라는 결과뿐.

    즉, 앞으로 저놈들을 쓸 일은 전혀 없다는 거다.

    "그러면 또 나중에 뵙죠. 언제든 또 성자님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그동안 힘을 기르고 있겠습니다."

    "일없어!"

    때문에 나는 그렉의 인사에 차갑게 대응하고, 황급히 뒤를 돌았다.

    미리엘에게 놀아난 기분마저 들 정도야.

    그 망할 녀석. 뭔가 무협지 주인공 같은 시원스런 느낌을 풀풀 풍기고 다니면서 말투도 쓸데없이 확신에 가득 차 있으니까. 괜히 낚였잖아.

    어림짐작이면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말하지 말란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녀석들과 헤어지고, 나와 쓰레온은 곧장 텔레포트 마법진을 통해 지상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길드 안을 채우고 있는 무수히 많은 모험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나는 드디어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그래. 이 세계는 이래야지. 다 벗고 잡기 기술을 걸려고 달려드는 근육빡빡이들이 웬 말이야.

    이 세계는 이런 아름다운 여자 모험가들이 득실대는 세계라고.

    "우리, 그 지옥을 빠져나온 거지?"

    "…그래."

    뭔가 미묘하게 강한 유대감을 느끼면서, 쓰레온과 나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처럼 여자 모험가들로 눈을 정화하고 있는데 쓰레온의 얼굴을 오래 마주 보며 다시 눈을 더럽힐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곧바로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지만.

    "레온씨. 꼬마 아가씨. 돌아오셨어요?"

    "크흑…! 응. 다녀왔어."

    그렇게 지옥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을 만끽하며 안내 데스크에 있는 레이첼 누님에게 다가가니, 누님은 여느 때보다 더 환한 미소와 함께 우리를 맞이해주셨다.

    내가 평소보다 위험한 곳에 갔다가 무사히 돌아왔으니 저런 미소를 지은 거겠지.

    그걸 알기 때문에, 나는 괜스레 차오르는 눈물을 꾹 참고 의연한 미소를 돌려줬다.

    크흑. 언제나 아름다우시지만, 오늘은 유독 더 아름다우신 것 같아.

    "다녀오신 일은 잘 해결되셨나요?"

    그러고 보니 쓰레온이 길드의 의뢰를 받아서 다녀왔다는 설정이었지.

    완전히 잊고 있었다. 어쩔 수 없잖아. 지금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고.

    "네. 제대로 다 둘러보고 왔습니다. 이상은 없었습니다. 여기 마스터 카드입니다."

    쓰레온도 뭔가 벅차오른 표정으로 레이첼 누님을 바라보면서, 마스터 카드를 누님께 넘겨줬다.

    야. 기분은 잘 알겠지만, 내 여자한테 그딴 시선 보내지 마라. 새끼가 예쁜 건 알아가지고.

    아까 유대감을 느낀 건 느낀 거고, 이건 이거야. 눈깔아.

    "어머, 그거 잘 됐네요."

    레이첼 누님도 쓰레온의 그 부담스러운 표정에 살짝 당황한 것 같으면서도, 안내원으로서의 형식적인 미소를 잊지 않고 카드를 받았다.

    크으. 하지만 저 형식적인 미소마저 아름다우시다.

    뭔가 누님 얼굴을 보니까, 이대로 헤어지기 싫어졌다.

    계속 누님 얼굴이나 보면서 눈을 정화하고 싶어.

    던전을 나서기 직전까도 당장 저택에 돌아가고 싶어했던 나였지만, 막상 돌아가기 전에 누님 얼굴을 보게 되니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피곤하실 테니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들을게요. 그럼 두 분 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누님은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인사를 하며 곧장 우리는 돌려보냈다.

    빨리 가서 쉴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걸까? 크윽. 누님….

    "…네. 그럼 갈까."

    쓰레온은 누님을 얼굴을 보고 있고 싶은 마음보다 피곤함이 더 컸는지, 누님의 인사를 받아들여 곧장 길드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자식. 그러니까 네가 밤에 그렇게 힘을 못 쓰는 거야.

    단순히 매력 스탯 문제가 아니라고. 좀 더 여자 욕심을…아니. 그렇다고 내 여자한테 더러운 시선을 보내라는 건 절대 아니지만.

    "뭘 같이 가자는 것처럼 말하는 거야. 혼자 가라."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같이 고생하면서 유대감을 느낀 건 느낀 거고 이건 이거다.

    난 더러운 사내새끼랑 쓸데없이 붙어 다닐 생각은 쥐꼬리만큼도 없어.

    같이 다녀야 할 일은 끝났으니, 여기서 쿨하게 헤어지자고.

    뭐, 어차피 우리 둘 다 귀족가에 집이 있으니까, 도중까지 가는 길이 같기는 하지만.

    "…왔을 때랑 똑같이 가야 하는 거 아니냐?"

    "……."

    젠자앙…. 그러고 보니 메이드 차림하고 저택을 빠져나왔었지….

    "뭐해! 빨리 가자고!"

    "자기가 그런 차림으로 와놓고 화내지 마라…."

    나는 하는 수 없이, 집에 돌아가기 앞서서 쓰레온의 집에 먼저 들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게 있다면, 이 녀석의 집이랑 우리 집이 의외로 가까운 거리라는 점일까.

    "다녀오셨습니까."

    "크흑! 바넷사아아앙!"

    "으읏?!"

    아무튼 그렇게 해서, 나는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 집이 최고야. 설움에 복받쳐서, 나는 마중 나온 바넷사를 보자마자 그 품에 달려들어 아까 레이첼 누님을 봤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행위를 했다.

    그게 뭐냐고? 뭐긴 뭐겠어. 커다란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여자 안는 느낌을 만끽하는 거지.

    크으. 그래. 이거야. 이거라고. 이게 바로 여자의 감촉이라고.

    그러니까 두 팔 벌리고 달려드는 모습의 근육빡빡이들아! 이제 내 머릿속에서 좀 나가라!

    "…뭐하시는 겁니까? 놓으십시오. 지금은 집사입니다."

    바넷사도 내가 갑자기 달려들어 안길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지, 살짝 몸을 긴장시킨 채 차가운 목소리로 날 경계했다.

    "바넷사아…바넷사아아…."

    "응큿…잠…이상한 곳은 만지지 마십시오."

    하지만 평소라면 모를까…아니. 솔직히 말해서 평소라도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으면 바넷사가 아무리 위협해도 절대 얼굴을 떼지 않을 텐데, 지금은 지옥에서 돌아와 천국을 느끼는 중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이 가슴에서 얼굴을 뗄 생각이 없었고, 내가 그렇게 완고하게 얼굴을 부비적거리자 바넷사는 결국 포기했는지 날 떼어놓으려고도 하지는 않고 그저 말로만 약하게 저항을 보였다.

    고생하고 온 나를 보자마자 매몰차게 대할 수는 없다는 걸까?

    아니면 아직 팔찌를 풀지 않아 어린 애 모습이라 매몰차게 대하기 힘든 걸까?

    뭐,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만.

    "구원씨…!"

    그리고 우리가 로비에서 그렇게 소란을 피우고 있자, 제일 먼저 천사님이 냄새를 맡고 오셨다.

    그냥 관용적 표현으로 냄새를 맡고 왔다고 하기는 했지만, 진짜로 내 어려진 모습의 냄새라도 맡고 오신 거 아니야?

    어떻게 귀가 좋은 사라보다도 빨리 오셨지.

    "다녀오셨어요!"

    천사님은 바넷사에게 안겨있는 날 확인하자마자, 뒤에서부터 날 꽉 끌어안으셨다.

    덕분에 얼굴뿐만 아니라 뒤통수에까지 부드러운 가슴 감촉이…크흑. 그래. 이거지. 이게 이세계지.

    "천사니이임…."

    "큭…."

    두 여자 사이에 끼인 모양새가 된 나는, 몸을 돌려서 이번에는 천사님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예전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역시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어.

    역시 천사님이 계신 그곳이 바로 천국이야.

    현세의 지옥을 보고 온 내가 하는 말이니 틀림없어.

    "왜 그러시나요? 무슨 일 있으신가요? 어디 다치기라도 하셨어요? 어디인가요? 누나한테 보여주세요."

    내가 울상으로 안겨들자, 천사님은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황급히 내 몸을 어루만졌다.

    아닙니다. 천사님. 천사님이 이렇게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어 만져주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해요.

    "저 변태는 돌아오자마자…."

    "음. 한 대 때려주고 싶구먼."

    그렇게 천국을 느끼고 있자니, 천사님뿐 아니라 다른 애들도 차례차례 내 귀가를 눈치챘는지 하나둘 로비로 모이기 시작했다.

    "디아나야. 아무리 너한테는 내가 안길 가슴이 없어도 그렇지. 질투하는 건 추하다."

    돌아왔다는 사실에 너무 들뜬 나머지, 나는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까지 무심코 내뱉고 말았다.

    "질투 아닐세! 그런 말 하는 걸 보니 멀쩡하지 않은가! 어리광 그만 부리고 다녀온 얘기나 하게! 애초에 그 팔찌는 언제까지…아, 아무튼 떨어지게!"

    물론 디아나는 그 말에 격한 반응을 보였지만, 어째선지 말하는 도중에 당황하면서 말을 바꿨다.

    쟤 갑자기 왜 저래? 나랑 시선도 안 마주치고. 어딜 보고 저러는 거야?

    디아나가 바라본 쪽. 그러니까 내 조금 위로 시선을 올리자, 거기에는 생글생글 웃는 천사님의 얼굴밖에 없었다.

    헤헷. 천사님. 천사님이 웃으시니까 저도 행복해요.

    "어차피 팔찌 지속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을 텐데, 빨리 옷부터 벗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무리 제가 당신을 사랑해도 작아서 터질 것 같은 메이드복을 입고 있는 당신까지 사랑해줄 자신은 없어요."

    하지만 그렇게 천사님과 아이 컨택트를 하며 행복감에 잠겨있는 내게, 마틸다의 미묘하게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평소에는 걸핏하면 핑크빛 모드가 되어서 앞뒤 안 가리고 나한테 달라붙는 애가 그런 목소리로 말하니까 묘하게 임팩트있잖아.

    "…갈아입고 오면 되잖아."

    "아아…우으…."

    나와 떨어지는 게 못내 아쉽다는 듯 끝까지 팔을 뻗는 천사님의 품에서 벗어나서, 나는 일단 옷부터 갈아입고 오기로 했다.

    마틸다의 말대로, 이 차림으로 팔찌의 마력이 떨어져서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가 버리면 그만한 참사도 없으니까.

    "그래서, 소계층 말인데."

    옷을 갈아입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나는, 우리 애들과 다 같은 방에 모여서 지옥에서의 생환담부터 얘기하기로 했다.

    물론 정신 방어 태세를 완벽하게 갖추고.

    아래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그때 있었던 일을 다시 상기시켜야 한다는 거니까.

    이렇게 실비아테라피라도 받지 않으면 정신이 버티지를 못해.

    "햐우으으…."

    대신 실비아가 죽으려고 하고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날 위해서라도 힘내줬으면 한다.

    게다가 이번에는 실비아 혼자도 아니니까.

    "아아…당시인…."

    내 양옆에는 각각 레이아와 마틸다가 내 팔을 끌어안아서 자신의 풍만한 가슴을 꽉 밀착시키고 있었다.

    "마틸다. 다 좋은데 귓가에 숨만 불어넣지 마라."

    안 그래도 땀내나는 놈들 사이에 있다 와서, 평소보다 내성이 약해져 있는 상태라고.

    역시 인선을 잘못 선택한 걸지도 몰라.

    가슴 크…얘기하면 기꺼이 내 팔을 껴안고 있어 줄 두 명을 고른 거였는데.

    역시 마틸다 대신 바넷사로 해야 했나.

    뭐, 그 바넷사는 아까 로비에서 있었던 일 때문인지 엄청나게 경계하는 표정으로 내게 다가오려고 하지도 않고 있었지만.

    아니. 아까 그일 뿐만이 아니라, 이 모습부터 마음에 안 드는 걸지도.

    "그래서, 결국 어땠는데? 제대로 다 돌아보고 온 거야?"

    물론 지금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바넷사 뿐만이 아니었다.

    질투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사라 역시도, 질투 가득한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내게 질문을 던졌다.

    사라야. 조금만 참아. 너도 내 얘기를 듣고 나면 내가 왜 이 모습이 아니면 얘기를 안 하겠다고 했는지 알게 될 거야.

    "물론 다 둘러보고 왔으니까 돌아왔지. 무슨 일이 있었냐면 말이지."

    그렇게, 나는 우리 애들에게 아래에서 있었던 지옥과도 같은 한 때에 대해 설명을 해줬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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