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847화 (83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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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던전에서 진짜 지옥을 맛볼 때가 언제라고 생각하나?

    상대하는 몬스터가 너무 강할 때? 아니야.

    함정에 빠져서 오도 가도 못할 때? 아니야.

    자신이나 동료가 생사의 갈림길을 오갈 때? 맞…지만 그걸 말하는 게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고!

    차라리 전투가 힘겨운 거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격렬한 전투를 통해 이 지옥의 한가운데에 있는 느낌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을 텐데.

    확실히 5.5계층의 몬스터는 강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전투는 너무나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몬스터가 강한 것보다, 우리 파티의 수준이 훨씬 더 대단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내 성자 스킬은 예전에 5계층 몬스터 상대로 힘겨워했던 적이 있기라도 했냐는 듯 몬스터들을 복상사시켰다.

    물론 이전 계층에서처럼 성자 스킬 한 방에 한 놈씩 처리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성자 스킬을 적극 활용한다면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쓰레온은 용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화려한 검술로 몬스터를 도륙했고, 듀크도 생각보다 훨씬 잘 해주고 있었다.

    물론 단신으로 6계층을 다닐 수 있는 쓰레온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명색이 모험가. 쓰레온보다 파티 플레이에 능하다는 점과 리치가 긴 창을 쓴다는 장점을 살려서, 나나 쓰레온보다 살짝 뒤에 포지션을 잡고 몬스터의 허를 찔러서 그 몸에 바람구멍을 내주고 있었다.

    취향이야 어찌 됐든, 6계층에 발을 디딘 적 있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건가.

    또한 그렉이 주는 노래를 통한 버프와 디버프도 생각 외로 그 효과가 엄청났다.

    솔직히 그렉은 우리 파티가 3계층에서 구해준 적도 있는 만큼 여기 있는 다른 멤버들보다 레벨이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 큰 기대를 안 했는데 말이지.

    이 정도면 우리에게 걸리는 버프와 몬스터에게 걸리는 디버프를 생각했을 때, 레이아가 걸어주는 버프 이상일지도.

    물론 음유시인은 버프와 디버프에 특화된 직업이고, 레이아는 힐 쪽에 더 강점이 있으니 그렇게 단순히 비교할 건 아니지만.

    아무튼 그런 이유로, 우리는 5.5계층에서 덤벼드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전혀 고생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면 사람이 던전에서 진짜 지옥을 맛볼 때가 언제인지는 왜 물어봤냐고?

    …보면 알아.

    "머쓰으으으으을!"

    "아아. 성자님의 그 늠름한 물건은 거친 던전의 파도마저 진정시키고~."

    "으아아아아! 니들 다 제발 좀 닥쳐어!"

    음유시인이라는 녀석은, 노래로 버프와 디버프를 주는 직업이었다.

    그리고 그렉의 노래는 전부 자작곡으로 보이는 날 찬양하는 노래였다.

    아니. 찬양하는 건 좋다 이거야. 왜 내 물건을 찬양하는 건데!

    게다가 그 가사, 사실조차 아니잖아!

    4계층에서 얼음 동굴로 이어지는 곳을 물살을 말하는 거면, 거기 진정시킨 거 디아나의 마법이거든?! 그걸 뭔 수로 내 물건으로 진정시킨다는 거야!

    저 새끼 설마, 술집에서 불렀다는 노래도 저딴 노래였던 건 아니겠지?

    어쩐지 여자 동료를 못 구하는 이유가 있었어!

    저 노래, 누가 들어도 그런 느낌이잖아!

    "끄어어어…나는, 나는 여기서 쓰러질 수 없어! 저 끔찍한 물건을 모조리 도축하기 전까지는!"

    물론 저 빌어먹을 노래를 싫어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렉이 내 물건을 찬양할 때마다 트라우마가 되살아나기라도 하는 듯, 쓰레온은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흘려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뭔가 미묘하게 용사다운 대사를 내뱉으며 가볍게 몬스터를, 특히 몬스터의 물건을 집요하게 썰어버리는 게, 역시 용사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저렇게 고통스럽게 만들면서도 그를 상회하는 힘을 부여하는 음유시인의 버프 디버프가 뛰어난 거라고 해야 할지.

    아니. 단순히 그 이상으로 상대하는 몬스터들에 대한 적대심이 강한 것뿐일지도 모르겠군.

    "머쓸! 머쓸! 머쓸!"

    "머쓰으으으을!"

    온몸의 근육을 번들번들 검게 빛내며 물건을 풀발기 시키고 이상한 기합과 함께 우리에게 달려드는, 이 몬스터들에 대한 증오 말이다.

    그래. 비단 문제는 그렉의 노래뿐만이 아니었다.

    5.5계층의 몬스터도, 전투력뿐만이 아니라 다른 의미에서도 우리를 괴롭게 했다.

    "니들 근육 대단한 거 알겠으니까 좀 닥쳐어!"

    뭐가 머슬이야! 보디빌더 대회를 하는 것도 아니고 왜 온몸이 그렇게 번들거리는 건데!

    왜 잡기 공격에만 집착하는 건데! 특히 베어 허그를 유독 많이 시도하지 않냐?!

    그리고 지금까지 만난 몬스터 중에 제일 인간이랑 비슷하게 생긴 주제에, 아래는 왜 안 가리고 있는데?! 1계층에서 만난 오크 놈들도 아래는 가리고 있었다고!

    또 왜 내가 성자 스킬을 쓰기도 전부터 풀발기하고 있는 건데?!

    아무튼 그렇게 내 물건을 찬양하는 노래와 쓰레온의 신음소리와 공존하는 이곳은, 현세에 강림한 지옥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특히 저 검은 괴수들이 양팔을 펼치고 덮쳐오는 꼴은 꿈에 나오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끔찍했다.

    젠장. 5계층에서 이어진 소계층이잖아! 보통 소계층은 본계층의 특징을 그대로 이어받잖아!

    그러면 대형 몬스터들이 혼자서, 혹은 많아 봐야 두셋씩 뭉쳐있어야 하는 거잖아!

    왜 여긴 몬스터들의 몸집이 2.5미터 정도로 작아진 대신 무리지어 나오는 건데!

    더 커도 되니까 하나씩 나오라고! 하나씩!

    그리고 말해두지만, 더 커도 된다는 건 덩치를 말하는 거지 풀발기시킨 저 물건을 말하는 게 아니니까!

    애초에 소계층은 수컷은 마지막에 하나만 나오고 기본적으로 암컷만 득실거리는 곳이잖아! 왜 여기만 이러는 건데?!

    진짜 미리엘 말대로 여기가 마지막 소계층이기라도 한 거야 뭐야!?

    "씨익…씨익…."

    처음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태클을 걸었던 나였지만, 결국 먼저 지쳐버린 건 나였다.

    젠장. 이 빌어먹을 공간에는 태클 걸 게 너무도 많아.

    애초에 내가 태클 거는 역할이라는 것부터가 이상해.

    나는 파티의 비정상을 담당하고 있는 거 아니었어? 왜 여기서는 내가 제일 정상인 같은 건데?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상대적 정상인 원칙이라는 거야?

    크흐흑. 천사님. 언제나 그립지만, 오늘따라 너무 보고 싶어요. 제발 강림하셔서 이 지옥 같은 공간을 천국으로…아, 아니야. 아무리 내가 고통스러워도 천사님이 이 지옥에 발을 디디게 할 수는 없어!

    "하핫. 그렉의 노래가 독특한 풍미가 있기는 하죠."

    "그것뿐?! 지금 여기서 태클 걸 게 그것뿐이라고?!"

    내가 씩씩대면서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자, 뒤에서 듀크가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해줬다.

    이 녀석 변태 주제에 고레벨 남자 모험가답게 얼굴은 멀쩡해서, 저렇게 상큼한 미소를 지어 보이면 괜히 더 화가 났다.

    그리고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넌 어째서 그렇게 멀쩡한 건데 이 변태 새끼야! 풍미는 또 뭐고!?

    "그래서 성자님께 긴히 제안할 것이 있습니다만, 팔찌를 차시면 적어도 물건이 커다랗다는 노래는 부르지 못하게 되는 것이…."

    "팔찌 차도 크거든 새끼야!"

    "허, 허엇! 그, 그렇습니까! 그렇습니까!"

    "더러운 시선 보내지 말고 눈깔아, 새끼야!"

    "머쓰으을!"

    "으악! 씨…!"

    하마터면 쌍시옷 나올 뻔 했네! 이 미친 몬스터가 다 벗고 누굴 끌어안으려고!

    공격이 단조로운 만큼 그 스피드는 엄청난 수준이라서, 나도 사실 그림자 이동이 아니었다면 벌써 몇 번은 당했을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그래도 몸집이 작아진 만큼 5계층 몬스터들보다 공격의 위력은 약하지 않겠냐고?

    그걸 알아보려고 저 더러운 공격에 당해줄 생각은 없어!

    "머쓰을!"

    "난 질 수 없어! 질 수 없어!"

    "성자님의 화려한 손기술은 몬스터들마저 사정으로 이끄시고~"

    "성자님. 생각해보니 몸집이 작아지시면 그만큼 이 몬스터들의 공격도 피하기 쉬워지시는 것이…."

    "크흐흑! 제발 좀 다들 닥쳐어! 제발 조용히 던전 좀 돌자!"

    그렇게 지옥의 한가운데에 있는 나는, 우리 애들과 같이 어울리며 많이 온순해졌던 성격이 실시간으로 파탄 나고 있었다.

    크흐흑. 진짜 싫다, 이 파티. 얘들아 보고 싶다. 나 집에 가고 싶어.

    천사님. 앞으로 다시는 천사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따로 다니거나 하지 않을게요.

    우리가 이 미친 근육밭에 들어오고 벌써 꽤나 시간이 지났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시간을 세는 것은 잊었다.

    언제든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는 강점을 살려서 던전 안에서 낮과 밤을 철저하게 구분하는 생활을 하던 것도, 여기에 들어온 첫날부터 깨졌기 때문에 더더욱 며칠이 지났는지 알기 힘들었다.

    우리는 잘 수 있을 때 자고 돌아다닐 수 있을 때 돌아다니면서 철저하게 미친 근육밭의 맵을 메워갔다.

    희망은 오직 하나뿐. 정말로 여기가 던전의 마지막이든 아니든, 맵을 다 메우면 이 지옥에서 빠져나갈 수는 있다.

    그 단 하나만의 희망을 붙잡고, 나는 무너져가는 멘탈을 추스르며 어떻게든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눈앞에는 다른 근육빡빡이들보다 덩치가 두 배는 더 커 보이는 근육빡빡이가 있었다.

    "알고 있겠지. 나는 그림자 이동으로 최대한 적을 산만하게 만들면서 성자의 파동만 날릴 거야. 쓰레온은 놈이 정신없는 틈을 타서 녀석을 도륙. 호랑이 넌 저기 구석에 박혀서 버프와 디버프에만 주력하고, 정의 변태는 상황을 봐가며 우리 셋의 커버를 하는 거야. 알겠지?"

    "네!"

    "좋아! 그럼 가자!"

    그렇게 작전 회의까지 철저하게 하고, 우리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싸움에 임했다.

    그리고 이겼다.

    "훗. 허무하군."

    하얗고 빨간 물웅덩이가 생긴 땅에 머리를 박고 쓰러져서 전신을 꿈틀거리는 녀석을 보며, 나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겼냐고?

    지금 저 모습만 봐도 대충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

    왜 그런 끔찍한 광경을 굳이 알고 싶어하는 거지?

    아무튼 소계층의 주인까지 처리한 우리는 마석을 회수하고, 잠깐 멈춰서 생각에 잠겼다.

    굳이 말하지 않고 있었지만, 이 소계층의 놈들은 전부 수컷인 주제에 어째선지 내 스킬에 맞고 죽어도 성기를 드랍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방금 잡은 보스 역시도, 성기는 드랍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말은, 역시나 이 소계층도 다른 소계층처럼 특별한 수컷 개체가 있다는 말인 걸까?

    하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소계층의 맵을 철저하게 전부 채웠지만, 특별한 수컷 근육빡빡이의 흔적은 물론 뭔가 비밀스러운 숨겨진 장소 역시도 찾지 못했다.

    물론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뿐일지도 모르겠지만…제발 그것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한 번 지나간 곳을 또 지나가는 수고를 들이기 싫어서, 우리가 얼마나 철저하게 조사하면서 왔는데.

    왔던 곳들을 전부 다시 한 번씩 다 둘러보면서 숨겨진 장소를 찾으라고?

    차라리 죽여줘.

    "…일단 통로부터 가보자."

    다른 소계층과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도 보스가 통로를 지키고 있기는 했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저 통로가 6계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일 크기는 하지만, 이 소계층은 특이한 점이 워낙 많다 보니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 차라리 6계층이 아니라 어딘가 새로운 곳으로 이어져라. 그러면 적어도 저 지옥에서 숨겨진 장소 찾기는 안 해도 되잖아.

    "여긴…6계층이군요."

    물론, 그런 내 희망을 철저하게 깨부수는 게 바로 던전이라는 곳이었다.

    6계층에 발을 들인 적이 있는 듀크는, 통로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주위를 둘러보고는 그렇게 내 희망을 짓밟았다.

    "…맞아."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쓰레온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쓰레온 역시도 고개를 끄덕이며 확인사살을 해줬다.

    …여신님. 진짜 이러깁니까. 뭔 던전을 이딴 식으로 만들어놨…참자. 여긴 진짜 신이 있는 세계라고. 천벌이라도 떨어지면 어떻게 하려고. 착한 내가 참자.

    "…일단 돌아가서, 계층의 주인이 있던 곳부터 차분히 살펴보자."

    "…진심이냐?"

    "…진심이다."

    "모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얘기로군요! 이거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는 것 같습니다!"

    "비록 아리따운 아가씨를 구하는 여행은 아니지만, 세계를 구하는 여행이라는 것도 나쁘지 않군요."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진심으로 꿈에도 몰랐지만, 쓰레온. 지금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건 너밖에 없는 것 같다.

    저 새끼들은 그 지옥을 지나오고도 왜 멀쩡한 건데?!

    "앗, 성자님! 성자님!"

    하는 수 없이 지나왔던 통로를 다시 되돌아간 우리였지만, 지나가면서도 이 망할 녀석들은 입을 멈추지 않았다.

    "제발 좀 입 좀 다물어…."

    "아, 아니. 이번에는 팔찌 얘기가 아닙니다."

    "너 씨ㅂ…자각 있었던 거냐, 새끼야?!"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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