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우덴 -->
"아니. 잠깐만. 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이상하잖아."
내게 보란 듯이 두 손으로 속옷을 활짝 펼쳐 들고 내게 접근하는 바넷사.
나는 그런 바넷사에게서 최대한 멀어지기 위해 뒷걸음치며 그렇게 말했지만, 내 다리는 그저 허공만 휘저을 뿐이었다.
뭐 애초에 땅을 밟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머리 뒤에 닿는 이 물컹한 감촉 때문에 뒷걸음질은 칠 수 없었겠지만.
"처, 천사님?"
뒷머리에 닿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황홀해지는 이 엄청난 볼륨감의 정체는, 물론 우리 천사님의 가슴이었다.
"후훗."
처, 천사님?! 어, 어째서 그런 미소를 지으시는 건가요?!
아니. 아름다우시지만.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버릴 것 같은 미소지만, 지금 상황에 어울리는 미소는 아니지 않나요?!
아니. 그보다 잠깐! 제 몸은 왜 그렇게 꼬옥 끌어안으시는 거죠?!
놔, 놔주세요! 놔주시지 않으면 제가…서, 설마 그걸 원하시는 겁니까?!
"도, 도와…!"
"응? 내가 왜? 구원 이런 거 좋아하잖아?"
나는 옆에 있던 사라에게 손을 뻗어 도움을 요청했지만, 사라는 날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오히려 일이 점점 더 재미있어진다는 듯, 생글생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너무나도 시원스러운 미소에, 나는 가망이 없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제, 젠장! 어째서 일이 이렇게!
이 모든 건 디아나의 한 마디로부터 시작됐다.
레이아와 기분 좋은 밤을 보낸 나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레이첼 누님이 출근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방에 설치해뒀던 팔찌의 배터리만 회수한 다음 곧장 쓰레온의 집으로 향하려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던 바로 그때, 디아나가 이렇게 말한 거다.
"자네 설마 그 모습 그대로 갈 생각인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때 무시하고 그냥 갔어야 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도 못 하고 있었던 당시의 나는, 디아나의 말을 받아주고 말았다.
"응? 그런데? 왜?"
"몰라서 묻는 겐가? 생각해보게. 자네가 굳이 그렇게 모습을 바꾸고 가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야 아라크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지."
"음. 그런데도 그 모습 그대로 가겠다는 겐가? 자네도 알다시피, 이 저택에 머물고 있는 남성은 자네 하나뿐일세."
아, 그런가. 아무리 모습이 바뀌었어도, 저택에서 갑자기 남자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의심의 눈을 피할 수는 없다는 건가.
역시 어제 쓰레온이 왔을 때 그 녀석 시종인척하고 따라갔어야 했는데.
뭐, 척이라도 그런 녀석의 시종 행세를 하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닌 디아나가 저렇게 말하고 있는 거다. 분명 뭔가 비책이 있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멍청하게도 이런 말을 내뱉었다.
"그런가. 그러면 어떻게 하지? 아, 혹시 이 팔찌를 이용해서, 내가 여자 모습으로 변할 수도 있다든가?"
"시간만 충분하다면 그런 식으로 개조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네만, 지금으로서는 어렵네."
꽤나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뭐, 그야 그런가. 폴리모프라는 게 쉬운 마법도 아니고.
"그럼 어쩌지?"
"무얼 고민하는 것인지 모르겠구먼. 여장을 하면 그만 아닌가?"
아라크네의 눈을 속일 방법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은 나는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고, 그런 내게 디아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툭하고 한 마디를 던졌다.
"꺄아아아악!"
"……응?"
…뭔가 위에서 새된 비명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그건 일단 무시하기로 하자.
그보다 지금 디아나가 뭐라고 했지?
여, 여장? 아니. 그야 물론 먼저 팔찌로 여자로 변할 수 있냐고 물어본 건 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완벽한 변신을 뜻하는 거고, 그거랑 내 모습 그대로 아래쪽에 물건을 덜렁거리면서 여자행세를 하는 것이랑은 전혀 다른 얘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난 여장에 어울리는 외모가 전혀 아니다.
물론 내가 잘생기기는 했지. 잘생기기는 했지만, 잘생김에도 여러 종류가 있잖아?
여장이라는 건 이른바 미소년 스타일이라고 하는 곱상하게 잘생긴 애들이나 어울리는 거지, 선이 굵고 남자답게 생긴 나는 전혀 어울리지….
"확실히. 저 모습이라면 전혀 위화감이 없겠네요."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디아나의 옆에서 마틸다가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쟤, 쟤는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대체 내 어디를 봐서!
지금도 이렇게 남자답게…천사님의 품에 안겨있는데. 물론, 어려진 모습으로.
……응. 그러고 보니 나, 어려진 모습이었다.
원래 어린애라는 존재는, 머리 길이 정도만 제외하면 남녀 구분이 쉽지 않은 법이다.
더군다나 어려졌다고 해서 내 어마어마하게 높은 매력 수치가 딱히 낮아진 것도 아니어서, 분명 대충 여자처럼 꾸미기만 해도 엄청나게 어울릴 게 분명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내 모든 오감이 당장 이 자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경종을 울려댔다.
하지만 내가 그 경고를 받아들여 이 자리에서 도망가기보다 먼저, 디아나가 바넷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바넷사."
"네. 준비해왔습니다."
당했다. 완전히 당했다.
내가 출발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처음 깨달은 것처럼 행동했던 디아나였지만, 애초에 디아나는 처음부터 전부 이렇게 될 것을 알고 말을 꺼낸 거였다.
그 증거로, 바넷사는 디아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어디에서 꺼낸 건지 곧장 여성용 속옷부터 꺼내서 내게 들이밀며 다가왔다.
그리하여 이야기의 처음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바넷사 얘, 쓸데없이 의욕이 넘치지 않냐?
아니. 바넷사뿐만이 아니다. 옆에서 흥미진진한 눈으로 보고 있는 사라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 녀석들…설마 둘 다 내가 이미지 플레이 좀 시켰다고 이렇게 복수하려는 거야?
이 치사한 녀석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너희도 같이 즐겨놓고는!
그래. 백번 양보해서 사라는 내가 이해해. 이해할 수 있어.
그런데 바넷사 넌 아니야! 넌 그거 네 옷이었잖아! 자기가 자기 옷 입고 한 거니까 코스프레도 뭣도 아니었잖아! 어째서 이런 식으로 복수하려 하는 건데?!
그리고 복수하면, 제일 처음 이 계획을 생각해냈을 디아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젠장. 뭘 귀엽게 생글생글 웃는 거야!
너도 어제 내가 식당에서 내 물건 만지게 했다고 복수하려는 거지!?
애초에 그건 너 혼자 착각한 거지, 난 만지게 할 생각도 없었다고!
그렇게 각자의 생각을 알게 되니, 어딜 둘러봐도 주변에 적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면초가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보통 이럴 때는 천사님이 유일하게 내 편이 되어주시지만, 오늘만큼은 그 천사님조차도 의지가 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구원씨. 중요한 일이잖아요. 할거면 제대로 하셔야죠."
응. 내가 그런 식으로 천사님을 설득했었지.
뭐, 천사님은 진짜 그런 이유로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겠지만.
천사님. 아까 비명 지르는 거 들었다고요.
그냥 다른 이유 없이 제가 여장하면 귀여울 거라고 생각해서 그러시는 거죠?!
결국 천사님이 좋아하는 건 단순히 어린애라기보다는, 아니. 물론 어린애도 좋아하시지만.
적어도 이렇게 눈이 돌아가서 흥분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건 단순히 대상이 어린애라서 그런 게 아니라, 대상이 귀여워진 나이기 때문인 거니까.
그런 천사님이니만큼, 내가 더 귀여워 보이게 꾸민다는데 그걸 반대하실 리가 없었다.
다시 말해 내게 남은 아군은, 저기 구석에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실비아랑 언제 핑크빛 모드가 될지 모르는 마틸다뿐이었다.
아니. 아까 한 말을 생각해보면 마틸다도 디아나의 제안에 아무런 이견이 없는 모양이니, 실질적으로 내게 남은 아군은 실비아뿐이었다.
응. 어떻게든 나 혼자서 헤쳐나가자.
"야, 야. 진정해. 아무리 그래도 고작 이런 일 가지고 너무 호들갑 떠는…."
"당신, 고작 이런 일이라니요? 여신님의 사명과도 밀접하게 관계있는 중요한 일이잖아요. 아무리 조심해도 부족함이 없는 일이 아닌가요?"
일단 가벼운 말로 주변을 진정시키려고 입을 연 순간, 나는 추기경님이 중립에서 확실히 적으로 돌아서는 게 느껴졌다.
제, 제엔자아앙! 아, 아니야! 애초에 마틸다의 도움은 기대도 안 했잖아! 난 할 수 있어!
"애, 애초에 말이야! 여장을 한다고 해도 처음 보는 어린애가 튀어나오면 의심하는 건 마찬가지일 테니까 별로 의미가…."
"아라크네가 이 저택에 있는 시종의 얼굴까지 전부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힘듭니다. 메이드로 분장하시면 문제없으실 겁니다. 또한, 플리투스가에 보내는 전령으로 가장할 수도 있게 되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바넷사는 또 어디서 꺼낸 건지 얼핏 보기에도 지금 내 몸에 딱 맞을 것 같은 사이즈의 메이드복을 꺼내 들었다.
야! 그런 게 있었으면 우선 그걸 꺼내는 게 맞는 거 아니냐?! 왜 여성용 속옷부터 들이민 건데?!
"…백번 양보해서 메이드복은 입는다고 치자. 어째서 속옷도 들이미는 건데? 속옷까지 입을 필요는 없잖아."
"남성용 속옷으로는 치마 앞부분이 튀어나올 우려가 있습니다."
아니. 그야 내 아들이 좀 크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애초에 내 아들은 그런 딱 달라붙는 여자 속옷에 다 들어가지도 않을 크기라고!
하지만 그런 내 항변에 아랑곳하지 않고, 바넷사는 들고 있던 속옷을 한쪽 팔목에 걸치고는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내 바지 윗단을 턱하고 잡았다.
이, 이 녀석…진심으로 벗길 생각이야.
평소 같으면 그 바넷사가 다른 사람도 있는 곳에서 내 바지를 벗기려 한다는 사실에 흥분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번만큼은 이유가 이유이니만큼 내 물건이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자, 잠깐! 알았어! 할게! 하면 되잖아! 입어! 입는다고! 메이드복은 입을 테니까 적어도 속옷은 봐줘! 일단 입어보고 앞부분이 심하게 튀어나오는 것 같으면 그때 가서 대책을 세워도 늦지 않잖아!"
바넷사가 바지 윗단뿐만이 아니라 속옷까지 한꺼번에 잡아버리자, 다급해진 나는 결국 그런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시죠."
그리고 내가 그런 말을 내뱉자마자, 바넷사는 마치 내가 이렇게 나올 거라고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손목에 걸쳐뒀던 속옷을 집어넣고는 메이드복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서, 설마…처음에 속옷부터 들이밀었던 것부터 이미 설계였던 거냐!?
그리고 이게 다 설계라면, 이런 설계를 할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후흐응."
내가 디아나에게 시선을 돌리자, 역시나 디아나는 어떠냐는 듯 없는 가슴을 쭉 펴고는 코를 울리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저 할망…꼬맹…아무튼 저게 진짜!
"제가 입혀도 될까요?!"
뭐라도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천사님이 날 품에 안은 채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됐다.
"…부탁합니다."
바넷사는 본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레이아에게 떠넘겨도 좋을지 조금 고민하는 눈치였지만, 레이아의 초롱초롱 빛나는 눈을 보고 그런 고민을 할 필요는 없다고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덤으로, 천사님이 상대라면 나도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할 거라는 계산도 한 거겠지.
그래. 젠장. 정확히 봤다, 이것아!
"네! 그럼 구원씨! 저기 가서 저랑 같이 갈아입고 올까요?!"
"아니. 혼자서도 갈아입을 수…."
"안 돼요! 여성복은 입어보신 적 없으시잖아요!"
그, 그야 그렇죠. 하지만 고작 옷 하나 입는 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아니면 설마 구원, 있어? 변태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변태일 거라고는…."
"없거든, 이것아! 괜한 소리 하지 마라!"
"후훗. 역시 그렇죠? 그러니까 누나가 도와줄게요. 자, 그럼 갈까요?"
"앗…."
사라의 말에 낚여서 욱해버린 나는, 결국 힘없이 레이아의 손에 이끌려 식당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구원. 쓸데없이 잘 어울리는 거 아니야?"
"푸흐흡. 이 몸의 예상대로구먼. 으음. 풉. 이거라면 아라크네의 눈을 완벽히 속일 수 있을 걸세."
"하아앙…하아아…귀여워어어…귀여워어어…."
"구, 구원…니임…?"
"확실히. 이건 생각했던 것 이상이네요. 어딜 어떻게 봐도 여자아이로밖에 보이지 않아요."
"돌아오시면 화장이라도 시켜 드리려고 했습니다만, 그럴 필요도 없는 것 같군요."
사라! 황당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지 마!
디아나! 넌 나중에 두고 보자!
천사님! 너무 그렇게 달라붙지 말아 주세요! 아니! 여기저기 닿아서, 기분은 좋지만요! 너무 좋아서 치마 앞쪽이 부풀어 오를 것 같다고요!
실비아야! 그렇게 미심쩍은 눈으로 보지 마라! 나 구원 맞으니까!
마틸다! 뭘 그렇게 꼼꼼히 보는 건데! 괜히 부끄러우니까 차라리 핑크빛 모드가 되어줘!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넷사! 너 또 화장품은 어디서 꺼낸 건데?! 왜 그렇게 쓸데없이 의욕이 넘치는 거야?!
젠장! 젠자아앙! 내 남자로서의 존엄심이!
"여러분. 그러면 저는 다녀올…어머? 그 아이는…못 보던 메이드씨네요. 신입인가요?"
"누니이임! 저에요!"
출근하기 전 인사를 위해 잠깐 얼굴을 비친 레이첼 누님의 마지막 일격으로 인해, 수치심에 부들부들 떨던 나는 결국 무릎부터 바닥에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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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소설 // 네.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