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우덴 -->
"정말로. 도움이 안 되는 할망구 같으니라고."
돌아온 디아나는 벌써부터 길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흥흥 삐쳐있었다.
아니. 디아나야. 아무리 그래도 할망구라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세계에서 독보적으로 나이가 제일 많을 네가 할 말은…여기까지만 하자.
"별 수확은 없었나 봐?"
"어, 없지는 않네!"
디아나야. 고집부릴 타이밍이 아니지 않냐?
그야 네가 자신만만하게 제안하고 실행한 작전이니만큼 아무런 수확도 없으면 무안하기는 하겠지만.
"이 몸의 생각대로, 미리엘양의 정체를 알고 있던 길드는 은밀히 그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던 모양일세. 그 여편네, 딸인 레이첼양에게도 말하지 않고 말일세."
"하지만 결국 미리엘이 따로 만나는 사람 같은 건 없었다고."
"다, 단순히 동시기에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하는 모험가가 있는지만 알아보고 있었던 것이 아닐세. 던전 안에서 장기 체재하는 모험가도 있지 않은가. 그런 모험가들까지 전부, 미리엘양과 자주 동선이 겹치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고 있었네. 하지만 그럼에도 겹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일세. 다시 말해서…."
"외부의 협력자가 있을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해도 된다는 거로군."
"음!"
뭐, 확실히 그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면 큰 수확이다.
미리엘에게 던전의 정보를 줬을 인물의 범위가 좁혀지는 거니까 말이다.
아니. 좁혀진다고 해야 할지….
"역시 제 아빠가 알려줬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네요."
응. 뭐, 역시 그렇게 되지.
물론 아라크네 클랜 내부에 협력자가 있을 가능성도 0%는 아니지만, 사우론 아우덴이 죽자마자 곧장 거대 클랜으로 들어갔다고 했으니까.
마치 던전에 들어가서 이루어야 할 목표라도 있다는 것처럼.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같이 아라크네 클랜에 들어간 사람도 없다고 했으니, 역시 사우론 아우덴이 던전에 대해 말해줬을 가능성이 제일 크다는 얘기가 된다.
"음. 우선은 그렇게 가정하고 동향을 주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 하지만 사라양…."
"괜찮아요. 마음의 정리는 어느 정도 끝냈다고 생각하니까요."
"음. 그런가."
최연장자답게 배려심이 많은 디아나는, 이번에도 사라를 신경 써주는 걸 잊지 않았다.
하지만 사라가 괜찮다고 말해주자, 장하다는 듯 그 엉덩이 쪽을 손바닥으로 톡톡 두드려줬다.
야. 사라의 하트모양 엉덩이는 나만 만질 수 있는…아, 아니.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키가 작은 디아나가 키가 큰 사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면 팔을 위로 뻗어야 하고, 그러면 그림이 안 살 테니까.
디아나가 까치발까지 들고 팔을 쭉 뻗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건 나뿐이라는 거다. 엣헴.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던 거지?
아, 그래.
"하지만 정보 출처가 사우론 아우덴이라고 하면, 더욱 미리엘의 목적을 모르겠네. 전에도 말했지만, 사우론 아우덴이 던전과 마신의 연관성을 말해주면서 마신의 의지에 따라 이 세계를 전복시켜라! 같은 말을 했을 것 같지도 않고. 전에 우리가 예상했던 것처럼 버려진 것도 아니었으니까, 용사의 힘을 손에 넣어서 돌아보게 만들어 주겠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음. 그것만큼은 차차 알아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구먼. 그보다도 지금은 눈앞의 일부터 처리하도록 하세."
내 말에 디아나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렇게 화제를 전환했다.
"응? 무슨 말이야?"
"언제까지 자네가 기절한 척을 하고 있을 수도 없지 않은가."
"아, 응.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미리엘의 목적을 알 수 없는 지금, 함부로 내려보낼 수도 없잖아. 애초에 던전과 마신이 관계있다는 걸 사우론 아우덴한테 들었던 거니까, 정말 미리엘이 말하는 대로 5.5계층의 너머가 던전의 끝일지도 모르고."
잠깐. 생각해보니까 진짜 그렇잖아.
사우론 아우덴한테 던전의 정보를 들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미리엘이 말하는 던전의 정보는 상당히 신빙성이 높은 정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렇게 생각했던 나지만, 디아나는 그런 내 의견에 부정적이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건 아닐 걸세. 그렇다면 자네가 나타나기 전까지 미리엘양이 6계층에서 헤매고 있었겠는가. 몬스터의 성기가 열쇠가 된다는 것도, 소계층의 존재도 모르던 미리엘양일세."
아, 그것도 그런가.
즉, 미리엘이 가진 던전의 정보는 정확하기는 해도 상당히 치우쳐진 정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는 건가.
"하지만, 자네 말대로 미리엘양을 그냥 아래로 보내는 것은 좋지 않네. 만에 하나 정말로 미리엘양이 먼저 던전의 최심부에 도달하면 큰일이니 말일세."
"그러면 어떻게 할까? 우리가 먼저 가서 5.5계층이 최심부와 이어져 있는지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야."
"음. 이 몸이 전성기 시절의 마력만 가지고 있었다면 그 정도는 일도 아니었네만…."
이제 와서 전생 마법을 쓴 게 아쉬워졌는지, 디아나는 침음성을 흘리는 것 같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원래는 몇 년 후에나 전생 마법을 쓸 예정이라고 했던가.
그걸 내 성자 스킬에 눈이 멀어서 나랑 섹스하려고 일찍 써버린 거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가슴을 디스 당해도 전생 마법을 일찍 쓴 건 후회하지 않던 디아나가 이런 반응이라니.
뭐, 그만큼 마신 관련 얘기는 심각한 안건이기는 하지만.
"그 말, 혹시 조금 더 자주 섹스해달라고 돌려 말하는 거야?"
"아, 아닐세!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각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좋지 않다.
나는 음흉하게 미소를 지으며 디아나에게 다가갔고, 디아나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뒤로 사사삭 물러났다.
아침 식사 때 그런 일이 있었던 만큼, 오늘은 이런 주제로 얘기하는 게 더 부끄러운 모양이다.
하지만, 이걸로 살짝 어두워질 뻔한 분위기는 다시 밝아졌다.
"적당히 해. 이 바보야."
"후훗. 구원씨도 참."
다들 내가 왜 갑자기 이런 장난을 쳤는지 이해해준 모양이고 말이다.
"뭐,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다는 얘기야. 그리고 디아나도 대안이 없는 건 아니잖아?"
우리 머리 좋은 디아나가 여기까지 말해놓고 아무런 생각도 없을 리가 없으니까 말이야.
분명 뭔가 좋은 생각이 있을 거다.
그리고 우리 대마법사님은, 역시나 내 기대에 부응해줬다.
"음.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길드는 모험가가 던전에서 새로운 정보를 가져오면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지급하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그 정보가 확실한 정보인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지."
응. 그거야 알고 있지. 나도 길드 퀘스트라는 걸 종종 해봤고, 새로운 정보도 상당히 많이 가져다줬었으니까.
먼저 확인 절차를 거친 후에 보수가 지급되는 것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갑자기 그게 왜?
"모르겠는가? 5계층이나 6계층의 정보를 받을 때도 길드는 확인 절차를 거친다는 얘기일세."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자, 디아나는 맞춰 보라는 듯 그렇게 말해줬다.
"아, 그런가. 즉, 5.5계층도 얼마든지 조사할 전력이 있다는 건가. 다시 말해서 디아나는 길드의 협력을 얻자는 얘기지?"
"후음. 절반만 정답일세."
내 대답을 들은 디아나는 까치발을 하고는 팔을 쭉 뻗어서, 장하다는 듯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전부 정답이 아닌 거냐.
"자네 말대로 길드에도 5계층이나 6계층을 조사할 전력은 있네. 다만, 그런 전력들은 전부 길드의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네. 그 여편네를 필두로 말일세. 즉, 매일같이 일에 치여 사느라 도저히 조사까지 할 틈이 없다는 얘기일세."
…그러냐. 아니. 그야 이 도시 전체가 던전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니, 그 던전과 모험가를 관리하는 길드가 엄청나게 바쁜 것도 이해는 되지만.
실제로 우리 레이첼 누님도 워커 홀릭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매일같이 엄청나게 일하고 계시고 말이다.
"애초에 5계층이나 6계층에서 새로운 정보를 받아서 보수를 지급할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하니 말일세. 기본적인 정보는 이미 전부 알려져있고, 만약 새로운 정보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 계층에 다니는 모험가가 고작 길드의 보상을 목적으로 정보를 공개해버리지는 않으니 말일세."
이것 역시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였다.
"하지만 그래서는…."
"하지만 그래도 가끔 심층의 정보를 길드에 공개하고 보수를 받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닐세. 그리고 그런 일이 생길 경우, 길드는 보통 외부의 협력을 구한다네."
즉, 디아나는 우리도 그런 식으로 협력을 구해서 5.5계층의 조사를 의뢰하자고 말하고 싶은 걸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마신에 관한 정보를 또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꼴이 되어버린다.
물론 이 세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여신님에 대한 믿음이 굉장하지만, 그래도 마신이라는 매력적인 힘을 눈앞에 두고 사람이 어떻게 돌변할지는 알 수 없는 거니까 말이야.
만약 우릴 배신하고 미리엘 쪽에 붙기라도 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웬만큼 마신에 대한 혐오감이 강하고 입이 무거우면서 동시에 강한 사람이 아니면….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는 문득 한 사람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니. 미안. 거짓말했어. 솔직히 얼굴은 잘 기억 안 나.
어쩔 수 없잖아. 사내새끼 얼굴 같은 걸 일일이 기억하는 성격이 아니라고.
애초에 그놈은 원체 밋밋하게 생겨놔서 자세히 관찰해도 기억에 잘 남지 않는…뭐 지금 그 녀석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니지만.
아무튼 딱 한 명, 모든 조건에 들어맞는 사람이 있었다.
마신의 저주를 받아서 마신을 엄청나게나게 혐오하고, 그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뭐든 할 놈이니까 쓸데없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도 않을 테고, 동시에 미리엘 수준으로 전투력이 뛰어난 사람이.
드디어 디아나의 의도를 이해한 나는, 진중한 목소리로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쓰…레온…레온…그 녀석 성이 뭐였더라?"
"플리투스일세…."
아, 아니. 사람이 살다 보면 조금 까먹을 수도 있지!
그러니까 디아나야. 내 기억력 수준이 의심스럽다는 듯한 그 시선은 그만둬주지 않을래?!
"아, 아무튼! 그 녀석한테 먼저 5.5계층에 가서 대충 둘러보고 오라고 하자는 거지?!"
"음. 그런 것일세. 조금 전에 메이드를 보내놨으니, 늦어도 내일이면 연락이 올 걸세."
과연 디아나. 일 처리도 빠르셔.
하지만 그 말을 바꿔말하면, 그 녀석이 여기로 와서 사정을 듣고 5.5계층의 조사를 하고 올 때까지 나는 저택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뭐, 그래도 대충 앞으로의 행동 방침은 정해진 거니,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쉴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잘 됐네요. 역시 디아나씨에요."
"후음. 설령 마력이 부족하더라도, 이 몸에게 걸리면 이 정도 문제쯤은…레, 레이아양! 달라붙지 않아도…히이잉!"
천사님도 나와 같은 생각이셨는지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디아나를 가슴에 끌어안아 줬다.
정작 디아나는 질색하면서 가슴을 밀어내려다가, 자신의 손바닥에 닿는 그 엄청나게난 감각에 울상이 되기까지 했지만.
전에도 생각했던 거지만, 천사님. 은근히 디아나를 외모에 상응하는 나이로 취급하고 계시지 않아?
확실히 디아나가 천사님보다 어려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이 엄청나게 많아요.
아니.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안심하기는 일러요. 만약 5.5계층의 안전을 확인하고 그 사람들을 내려보내 줘도, 거북이굴에서 그랬던 것처럼 또 엄청나게난 속도로 5.5계층을 파헤치고 다음 계층에 가기 위해 연락해올 테니까요."
뭐, 사라의 얘기도 지당했다.
해결책이 보이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이것도 임시방편.
쓰레온도 용사인 만큼 전투력이야 든든하겠지만, 혼자라는 한계가 있는 만큼 언제까지나 조사를 의뢰할 수도 없고 말이다.
"결국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아라크네 클랜보다도 먼저 소계층을 조사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지."
"그래. 맞아."
내 진중한 말에, 사라 역시도 진지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으나 싫으나 이 문제에서 제일 깊게 관여되어 있는 만큼, 사라는 심각함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 섹스를 해야 하고."
"그래. 맞…아니거든?!"
"뭐가 아니야?! 섹스로 레벨업하는 세계에서 섹스를 부정하지 마! 자 말해! 하고 싶다고!"
"이, 이 바보가 진짜! 아무리 사실이라도 그런 말을 큰 소리로 떠들지 마, 이 바보야!"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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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