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우덴 -->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네. 아직 그렇다고 확실히 정해진 것은…."
"아뇨. 디아나도 말했잖아요. 미리엘…씨가 아라크네 클랜에 가기 전부터 같이 있었던 사람이 정보원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물론 저택에 제 아빠…사우론 아우덴만 있었던 건 아니었겠지만, 시종이나 다른 사람이 정보원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 사람이 정보원이라고 생각하는 게 가장 앞뒤가 맞아요. 마신의 가호를 받은 용사, 그것도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용사니까요."
디아나는 혼란스러워하는 사라를 다독여주려고 했지만, 사라는 이미 마음속에서 그렇게 결론을 지은 모양이었다.
미리엘이 뭔가를 꾸미게 된 건, 자신의 아버지 사우론 아우덴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그리고 바넷사의 조사로도, 미리엘씨가 아라크네 클랜에 가기 전에 다른 누구와 접촉했던 흔적은 찾지 못했던 거죠? 그리고, 처음부터 미리엘씨과 아라크네 클랜에서 쭉 함께했던 사람도 없었고요."
"…네."
그리고 바넷사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생각에 쐐기를 박는 사라였지만, 디아나는 그런 사라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키 크고 어른스럽게 생긴 사라의 어깨를 디아나가 있는 팔을 쭉 뻗어서 톡톡 두드리는 장면은 상당히 흐뭇해서 평소 같으면 웃음이 나올 광경이었겠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분위기다 보니 아무도 그 모습에 웃지 않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섣불리 단정 짓지는 말게. 바넷사가 유능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넷사가 얻은 정보가 전부는 아닐세. 그리고 꼭 정보원과 아라크네 클랜에서 함께 할 것이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정확한 정보는 더 알아봐야 하네."
"맞아. 그리고 만약에 진짜로 사라네 아빠가 마신과 던전의 관계를 알려준 거라면, 우리 생각만큼 위험하지 않을 수도 있고 말이야."
그리고 디아나의 말에 맞장구치면서, 나도 사라를 다독여줬다.
이럴 때야말로, 남자는 자기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것 아니겠어?
뭐, 그렇게 거창하게 표현할만한 건 아니지만.
"그게 무슨 말이야?"
"생각해 봐. 미리엘이 용사가 되고 싶어 한다는 추측은, 어디까지나 미리엘이 버려졌기 때문에 자신의 핏줄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었잖아? 그런데 그 전제부터 부정된 거니까, 미리엘은 딱히 용사가 되고 싶은 게 아닐 수도 있잖아. 오히려 네 아빠한테 마신의 위험성을 전해 듣고, 그를 제거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적어도 구원한테는 사실대로 털어놓고 협력을 구했겠지."
"뭐, 그게 아니더라도, 너희 아빠는 던전의 위험성에 대해 알려줬는데 미리엘이 멋대로 폭주하는 것일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나는 사우론 아우덴이 위험인물이라는 생각은 안 드는데. 진짜로 자기 딸한테 마신 부활 같은 걸 시킬만한 인물이었으면, 귀족들이 들이대는 걸 거절도 못 하고 다 받아주다가 복상사로 죽었겠어? 디아나도 그랬잖아. 인상 좋은 호청년이었다고. 디아나가 사람을 잘못 봤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드는데."
"그건…."
그리고 내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사라는 조금 진정된 것처럼 보였다.
역시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라는 자기 아빠가 좋은 사람이었다고 믿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까는 사우론 아우덴이 사라 자신의 위해 희생한 걸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도 혼란스러워했으면서.
뭐, 오늘 하루 사이에 자기 아빠의 평판이 딸의 미래를 위해 희생한 아버지부터 마신 부활을 꿈꾸는 흑막까지 극과 극을 오간 거다.
결국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말에 안심하는 건 당연한 거겠지.
"그러니까, 괜히 아우덴이 악의 근원인 것처럼 생각할 것 없어. 아니.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러면 어때? 사라 넌 아니잖아? 설마 나중에 아우덴의 의지를 받들어 날 배신하거나 그럴 거야?"
"바보.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내 말이 그 말이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살짝 장난을 덧붙이자, 사라는 완전히 평소 모습을 되찾은 것 같았다.
뭐, 여전히 속마음은 조금 복잡하겠지만, 태도라도 돌아왔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
멘탈이 튼튼한 사라니까, 시간을 조금 주면 마음도 완전히 정리할 수 있을 거다.
"아무튼, 미리엘에 대해서는 조금 더 알아봐야 한다는 걸로 하고. 일단은 조금 쉬고 내일 더 얘기하기로 하자. 어차피 밤도 늦었고, 나도 막 기절에서 깨어났는데 너무 복잡한 얘기를 하니까 머리 아파 죽을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한 나는 사라가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머리를 부여잡고 엄살을 부렸다.
일단 밤이 늦은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그냥 빨리 밤을 즐기고 싶은 건 아니고?"
내 엄살을 들은 사라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배려가 고맙다는 듯 작게나마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응. 역시 용사님. 벌써 미소까지 지을 수 있게 되다니. 멘탈이 튼튼하셔.
"그렇다고도 하지."
"진짜 이 변태는…."
사실 이럴 때야말로 밤새 같이 있어 주는 게 남자의 역할인데 말이야.
아무래도 이쪽 문제는 내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섣불리 말을 꺼내기 조심스러웠다.
"사라양. 사라양이 원한다면…."
하지만 다행히도 그렇게 생각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디아나도 똑같은 생각을 한 듯, 사라를 바라보면서 조심스레 운을 뗐다.
크으. 역시 최연장자. 심심하면 사라랑 둘이 누가 정실인지를 두고 투닥투닥대면서, 결국 이럴 때는 자기 차례까지 미루면서 챙겨준다니까.
하여간 하는 짓이 너무 예뻐요.
"아뇨. 괜찮아요. 디아나도 급하잖아요."
하지만 사라도 사라대로 그렇게까지 해주는 건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음. 언제나 말하는 거지만, 내가 여자 보는 눈 하나 만은 진짜 끝내준다니까.
"무, 무, 무,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아?! 이, 이 몸은 전혀 모르겠네만?! 급하다니?! 누가?! 이 몸이 말인가?! 대체 어떤 연유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지 모르겠구먼! 전혀 아닐세! 이 몸이 급할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아?!"
그리고 사라가 내뱉은 짧은 거절의 말에, 디아나는 눈에 띄게 동요했다.
모처럼 진지한 얘기를 하면서 여유를 되찾은 것 같았는데 말이야.
완전히 조금 전 구석에 처박혀있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린 그 모습을 보고, 내 의문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진짜로 내가 기절해있는 사이에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하지만 나는 궁금증을 푸는 것보다, 우선 사라의 케어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차피 사라가 이대로 가버리면, 궁금증을 풀 시간은 듬뿍 있는 거니까. 그야말로 밤새도록.
"사라야, 정말 괜찮겠어?"
"응. 정말로 괜찮으니까. 조금 예상도 못 했던 얘기를 들어서 동요했던 것뿐이야. 처음부터 아빠라는 사람한테는 크게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걸. 만약 결과가 최악으로 밝혀지더라도, 구원 말대로 나는 나니까."
자기 아빠가 착한 사람일 거라고 하니까 다시 안심한 주제에.
눈에 뻔히 보이는 허세였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는 괜찮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괜찮아. 그럼 저희는 방해되지 않도록 이만 가죠. 구원. 잘 자."
"네에…. 그러면 구원씨. 오늘은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푹 쉬셔야 해요?"
"사라야앙! 레이아야앙! 대체 어떤 의미인가아! 이 몸이 무리하게 할 거라는 뜻인가아?!"
…아니. 디아나야. 방금 그건 그냥 환자한테 하는 평범한 인사말이었잖아.
"푸, 푹 쉬십시오!"
"당신. 내일 봐요."
그리고 어째서인지 디아나의 저런 반응을 보고도 누구 하나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뭔가 뜨뜻 미지근한 시선을 보내면서, 다 이해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네들! 이 몸의 말이 안 들리는 겐가아?!"
디아나는 그런 반응에 오히려 더 흥분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디아나의 외침에도 그 누구 하나 반응하는 일 없이, 다들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마치고 방을 빠져나갔다.
"저는 음식을 조금 가지고 오겠습니다. 하루 종일 굶으셔서 허기가 지실 테니까요."
심지어 바넷사마저 이럴 정도라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바넷사는 웬만해서 디아나한테 이럴 애가 아닌데?
게다가 바넷사의 말은 마치 ‘곧 올 테니까 제발 그사이에 시작하고 있지 마십시오.’라고 하는 것 같아서, 괜히 더 위화감이 들었다.
"디아나."
"뭔…히그읏?!"
하지만 바넷사가 저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동안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내가 아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바넷사가 나가고 방문이 닫히자마자 곧바로 디아나의 뒤에 밀착해서는, 그 치마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손을 더듬어 그 속옷에 손끝을 가져다 대자, 그냥 젖었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흠뻑 젖어있는 속옷의 감촉이 느껴졌다.
"우와아…."
"히, 끄, 우으으…!"
내 입에서 무심코 그런 감탄이 흘러나오자, 디아나는 눈을 치켜뜨고 필사적으로 날 노려봤다.
뭐, 그래 봐야 내 눈에는 귀여워 보이기만 할 뿐이었지만.
나는 일단 디아나의 시선을 무시하고, 조금 더 디아나의 하반신 상태를 점검해보기로 했다.
축축이 아니라 질척질척 이라고 할까, 이건 그냥 애액으로만 젖은 수준이 아닌데?
이 끈적끈적한 느낌은…아, 내 정액인가. 나 쌌었구나.
하긴, 힐링 섹스는 그냥 삽입만 하고 있어도 지속적으로 회복되는 스킬이기는 하지만, 절정에 달하면 대량으로 힐이 들어오는 효과도 있으니까.
효율적으로 날 회복시키고 싶었으면, 그야 날 싸게 만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내가 기절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하지만 대놓고 물어봐도, 분명 알려주려 하지 않겠지.
그렇다면 여기선, 조금 꼬아볼까.
"야. 노출증 변태."
"그, 그러니까 아니라고 하지 않았는가아아! 조금 전 일은…!"
내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디아나는 격렬한 반응을 보이며 내 말을 부정했다.
물론 도중에 내 말의 의도를 깨달을 듯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멈추기는 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상황이었다.
평소라면 이런 낚시에 걸려들지 않겠지만, 지금은 엄청나게 동요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말이야.
하여간 노출증 관련 얘기만 나오면 이렇게 된다니까. 우리 변태 대마법사님은.
"역시나."
"우으으으! 우으으으으!"
디아나야. 그렇게 분하다는 듯이 발을 동동 굴러봐도, 봐주지 않을 거니까 말이야.
뭐, 귀엽기는 하다만.
"어쩐지. 아무리 오늘이 디아나 차례라고 해도, 힐링 섹스를 굳이 디아나가 했다는 게 이상하기는 했어. 다들 뭔가 시선이 따뜻하기도 했고. 날 위해 스스로의 노출증을 밝히면서 흥분하고 나선 거구나?"
"아닐세에에! 이 몸은 노출증이 아니라고 매번 말하고 있지 않은가아! 이 몸은 그저 자네가 말했던 세부 스탯에서 매력의 수치가 이 몸이 가장 높을 테니, 효율적인 치료를 위해서 이 몸이 나선다는 이성적인 선택을…."
아, 그런가. 하긴. 기절한 날 상대로 하는 것이니만큼, 날 사정으로 이끌기 위해선 그런 스탯이 가장 영향이 크기는 하겠지.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테크닉이라는 건 정신적인 부분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는 만큼, 기절한 날 상대로 얼마나 먹힐지 미지수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테크닉이 제일 좋은 우리 천사님은 성행위를 통해 생기를 빨아들이는 구미호라는 특성상 힐링 섹스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에 적합한 체질은 아니고.
그러니까 테크닉보다는 스탯을 생각해서 누가 내 치료를 할지 결정했다는 건가.
그렇게 따지면 원래 레벨이 높은 실비아나 마틸다가 제일 적임이었겠지만, 최근에는 레벨 격차도 많이 줄어들었으니까 말이야.
그렇다면 매력 스탯이 제일 영향력이 높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거다.
그리고 디아나 얘는 그저 레벨 한계 때문에 스탯이 봉인되어있는 것뿐이라, 그쪽으로는 압도적이니까 말이야.
단순 매력 수치만 놓고 보면 한계치인 500을 찍고 있어서, 나조차 넘어서고 있는 디아나다.
과연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죽을 걸 알면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삽입했던 여자답다고 할까.
아무튼 디아나가 저렇게 밝힌 것으로, 대충 사건의 전모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군. 그렇게 이성적으로 시작했는데, 막상 하고 나니까 노출증을 자극 받아서 너무 흥분해버렸다고."
"우극…. 그, 그러니까 이 몸은 그저 자네가 사정하도록 하기 위하여…."
내 추측이 상당히 정확했던 건지, 디아나도 이번만큼은 격렬히 부정하지 못하고 살짝 주춤했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Sasins // 레이아 대사였습니다. 말투 때문에 다들 알아 보실 거라고 생각하고 그냥 묘사 없이 넘어갔는데, 헷갈리셨나 보네요. 그 부분 조금 수정했습니다.
아루꿍 // 제가 조아라 규정을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싸라비 // 같은 질문이 많아서 공지에도 추가했습니다.
이번 편만 보시더라도 답변이 됐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