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829화 (813/1,205)
  • <-- 아우덴 -->

    뭐, 앨리시아가 왜 그랬는지는 둘째치고, 우선은 상황 파악부터 하지 않으면.

    나는 우리 애들이 사태를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지 캐물었고, 역시나 다들 내가 아라크네가 내려가는 걸 저지하기 위해서 일부러 다쳤다는 것 정도는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정확한 사정, 그러니까 미리엘이 사라의 이복동생이라는 것까지는 모르는 눈치였다.

    뭐, 내가 갑자기 들이대서 다친 이유를 설명해준 것도 디아나일 테니, 그 점은 디아나 자신이 섣불리 말할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일부러 말 안 한 거겠지.

    정작 그 디아나는 구석에 처박혀서 여전히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지만.

    평소라면 자기가 설명해줬다면서 없는 가슴을 쫙 펴고는 자랑스럽게 말할 텐데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냥 힐링 섹스만 해준 것치고는 너무 반응이 이상한데.

    …잠깐만. 잠든 날 치료하기 위해 해준 힐링 섹스는, 당연한 얘기지만 다른 애들도 전부 동의한 다음에 수행했을 거다.

    디아나가 혼자서 다른 사람들 몰래 나한테 그런 짓을 한다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리고 디아나가 힐링 섹스로 날 치료하는 동안, 다른 애들은 어디 가지 않고 방문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

    아니. 분명 그랬을 거다. 우리 애들 성격에 다친 날 내버려 두고 다른 데 갈 리가 없으니까.

    즉, 디아나는 다른 애들이 전부 방 밖에서 이제나저제나 하면서 기다리는 동안 나하고 그런 짓을 했다는 게 되니…쟤 혹시 노출증이 도져서 이상한 짓이라도 한 건가?

    이건 아무래도 심도 있는 질의응답 시간이 필요할 것 같군.

    "그래서,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야? 어차피 성기는 얻어버렸으니까, 계속 못 가게 막을 수도 없잖아. 저 사람은 말하지 않더라도, 어차피 계속 기절해있는 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래. 사라 말대로 우선은 이 문제부터 처리하는 게 맞겠지.

    "디아나."

    "히끅! 뭐, 뭔가아?!"

    얼씨구. 아주 이제 딸꾹질까지 하는 것 봐라. 너 진짜 무슨 짓을 한 거냐?

    게다가 디아나가 저러고 있는데도, 다른 애들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는 게 더 이상했다.

    진짜 뭐가 뭔지.

    "아니. 너 이틀 전에…아니지. 그러고 보니 나 기절한지 며칠이나 지났어?"

    던전에 가기 전에 디아나와 나눴던 대화를 언급하려다가, 나는 문득 자신이 며칠이나 기절해있었는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거북이굴에서 4계층 마을까지만 하더라도 꼬박 하루가 걸리는 거리니, 적어도 하루 이상은 기절해있었다는 얘기인데.

    "하루 조금 넘게요."

    그리고 그 대답은 옆에 있던 레이아가 들려줬다.

    그럼 저택에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눈을 떴다는 얘기인가?

    어쩐지. 아무리 그래도 앨리시아가 며칠씩이나 묵으면서 내가 깨어나기를 기다렸을 리가 없지.

    우리 애들이 그런 걸 허락해 줄 것 같지도 않고.

    하지만 저택에 돌아오고 곧 눈을 떴다고 하더라도, 하루 넘게 기절해있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내 생각보다 훨씬 타격이 컸었나 보네. 와이번한테 한 방 맞았던 것보다 더 오래 기절해있었잖아.

    하긴. 와이번의 공격력이 더 강하다고는 해도, 그때는 그냥 한 대만 맞고 끝난 거였으니까.

    맞은 순간 정신을 잃어서 정신적 충격도 생각만큼 크지 않았고.

    반면 거북이한테는 지속딜이었고, 그걸 생생하게 느끼면서 정신적 부담감이 엄청났으니까.

    으윽…생각한 것만으로도 거기가 쓰라리는 기분이야.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만.

    "아무튼 출발 전에 나한테 뭔가 미리엘의 정보원을 밝힐 방법이 있는 것처럼 말했잖아. 우선 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아서."

    "으, 으음! 그, 그렇구먼! 바넷사!"

    내가 그렇게 말하자, 디아나는 곧장 바넷사를 바라봤다.

    뭐야? 그냥 대책만 있었던 게 아니라, 설마 가기 전에 바넷사한테 뭔가 시켜놓고 가기라도 한 거야? 대체 어느 틈에….

    바넷사랑 따로 말할 틈은 없었던 것 같은데.

    아, 혹시 마법으로 말한 건가.

    "네. 전부 알아봤습니다. 다만…."

    그리고 우리 완벽 집사님도 디아나가 시킨 무언가를 그 짧은 기간 내에 완벽히 수행한 듯 그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뭘 알아봤는지 구체적인 말은 하지 않고, 아주 잠깐 사라 쪽으로 눈짓을 줬다.

    아, 그런가. 그 얘기를 하려면, 우선 필연적으로 미리엘의 출생부터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말이다.

    "응? 왜 그래요? …어쩐지. 디아나랑 둘이서 속닥속닥 얘기하더니. 구원, 또 나한테 숨기는 거 있지?"

    그리고 눈치 빠른 사라도, 바넷사가 자기 눈치를 살피고 있다는 걸 민감하게 알아챈 모양이었다.

    아니. 단순히 바넷사의 시선만 눈치챈 게 아니라, 나랑 디아나가 왜 둘이서만 얘기했는지까지 추론해낸 모양이었다.

    하여간 눈치 하나는 엄청 빠르다니까.

    "아니. 그거야 그런데. 우린 널 생각해서…."

    "그건 내가 판단할 문제잖아. 괜찮으니까 말해. 뭔데?"

    이렇게 되면, 얘도 참 고집이 세서 말할 때까지 버틸 거란 말이지.

    솔직히 그다지 좋은 얘기는 아니라, 아직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여지는데.

    "구원씨. 사라씨를 믿어 봐요. 전에 얘기했죠? 서로 숨기는 건 없기에요."

    그리고 그런 사라를, 옆에서 레이아가 보조까지 해줬다.

    천사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또 말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하아…. 어쩔 수 없지. 잘 들어."

    나는 하는 수 없이 디아나와 같이 얘기했던 미리엘의 출생에 관해 설명해주게 됐다.

    그리고 예상대로, 얘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사라의 표정은 점점 더 차가워져 갔다.

    이래서 얘기해주기 싫었는데 말이야.

    "흐으응…."

    내 설명을 다 들은 후, 사라는 짧게 그런 소리를 내는 것으로 감상을 대신했다.

    야. 그런 경멸하는 표정 짓지 말라고. 넌 안 그래도 그런 표정이 생긴 거랑 너무 잘 어울려서 파괴력이 배가 된다고.

    아니. 그 경멸이 날 향하는 게 아니라는 건 잘 알지만 말이야.

    "흐으응. 이라니. 그것뿐?"

    "그럼 내가 더 무슨 말을 해? 어차피 얼굴도 모르는 사람인데."

    아니. 그거야 그렇기는 하지만.

    "굳이 더 얘기하자면, 그렇네. 쓰레기라고 생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쓰레기였네. 자기 자식이 태어난 줄도 모르고 방탕하게 놀다가 죽었다는…."

    "아니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기랑 별 상관없는 얘기인 것처럼 말하면서도, 사라는 상당히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오랜만에 제대로 독설을 퍼붓는 사라였지만, 그런 사라의 말을 바넷사가 부정했다.

    "…무슨 말이죠?"

    "디아나님의 명령으로 미리엘님이 아라크네 클랜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행방을 알아봤습니다만, 그것이 아무래도 묘합니다."

    "묘하다니?"

    "미리엘님이 모습을 드러내신 건, 정확히 사우론님이 돌아가시고 난 직후입니다. 그 이전까지의 행방은 아무리 알아봐도 알 수 없었습니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처음 모습을 드러내고 아라크네 클랜을 방문했을 때, 어린 미리엘님은 이미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한,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던 사람의 행색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차림새가 너무 말끔해서, 처음에는 몰락 귀족의 자제가 겁도 없이 모험가가 되려고 찾아온 줄 알았다는 얘기까지 들었습니다."

    확실히. 바넷사의 얘기는 나와 디아나가 했던 추측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내용의 것이었다.

    적어도 태어나자마자 용사가 아니라는 걸 알고 버려졌다는 추측은 완전히 틀렸다고 봐도 좋았다.

    아니. 오히려 방금 바넷사의 말을 종합해보면….

    "아무래도 사우론 아우덴이 일부러 숨기고 있었던 모양이구먼."

    그래. 그런 결론이 나오게 되지.

    아직도 얼굴이 새빨갛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런 중요한 얘기를 하는 순간까지 구석에 처박혀있을 수만은 없다는 듯 이쪽으로 다가와 그렇게 얘기하는 디아나.

    그런 디아나를 보며,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내뱉었다.

    "귀족들이 다들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고 있었던 거잖아? 그런 게 가능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닐세. 두 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지면, 가능하기는 하네. 먼저, 사우론 아우덴의 아이를 낳은 것이 귀족이 아니라 시종, 그것도 다른 귀족가에서 보내지 않은 시종일 것. 그리고 그 사우론 아우덴의 저택에 있는 시종들 전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아이의 존재를 숨길 것. 두 가지 조건만 충족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태어난 아이를 저택에서 키우며 숨긴다는 것도 말일세. 물론 사우론 아우덴의 저택에 있던 시종 대부분이 감시 겸 씨를 얻기 위해 다른 귀족가에서 파견 나간 처자들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말일세. 하지만 결과가 이렇게 나왔으니, 아무래도 사우론 아우덴은 그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성공한 모양이구먼."

    그 말은 즉 다시 말해서, 저택에 있는 모든 메이드들이 맹목적으로 자기만 바라보게 만들었다는 얘기? 그것도 메이드들 대부분이 불순한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이었는데?

    …완전 멋지잖아. 그야말로 하렘의 왕이잖아. 인생의 선배로 모시고 싶…아, 아니. 난 우리 애들만 있으면 충분하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만큼 사우론 아우덴도 필사적이었다는 얘기겠지. 적어도 동기는 충분하지 않은가?"

    "동기?"

    "사우론 아우덴이 잘생긴 용사라는 것이 밝혀지고, 어떤 처우를 받았는지 생각해보게."

    응? 그야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쥐어짜였지.

    그게 왜…아.

    "이해한 모양이구먼. 만약 그 용사의 딸이 나타난다면, 같은 처지가 될 가능성이 크지 않겠는가?"

    확실히. 게다가 여자인 만큼, 사우론 아우덴보다 더 심한 꼴을 보게 될 가능성도 있었다.

    물론 아직 원래 세계의 상식이 남아있는 나와 이 세계 사람들의 감성은 다르니, 이 세계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조금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아니. 하지만 미리엘은 용사가 아니잖아? 디아나도 그래서 귀족가에서 버려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거 아니야?"

    "음. 그랬지. 하지만 멀리서 사태를 보기만 했던 이 몸과 귀족들에게 직접 시달린 사우론 아우덴은 생각은 달랐던 건지도 모르네. 설령 용사가 아니더라도, 귀족들은 일말의 가능성을 쫓아서 용사가 아닌 자신의 자식마저 괴롭힐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미리엘양의 존재를 숨겼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나? 그게 아니면…설령 부모 용사가 아니더라도 아우덴의 핏줄만 있으면 그 자식은 용사가 될 수 있다고, 사우론 아우덴 자신은 알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지."

    과연. 그런 건가.

    어느 쪽이든, 사우론 아우덴의 동기가 확실하다는 것쯤은 이해가 됐다.

    그리고 자신의 자식을 위해, 사우론 아우덴이 얼마나 노력했을지도.

    "하지만 사우론 아우덴 자신도 원치 않은 아이였을 미리엘양을 위해서도 그렇게 했다는 것은…어쩌면 사우론 아우덴이 끝까지 고향에 돌아가지 않았던 것도, 그와 같은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구먼."

    "읏…그, 그만 하세요!"

    디아나는 사라를 다독여주듯 그렇게 말했지만, 사라는 그 말을 듣고 오히려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야 그렇겠지. 기껏 쓰레기라고 생각하며 자기랑 관련 없는 사람이라고 마음의 정리를 해놓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실은 사라 널 위해 일부러 그런 걸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은 거니까.

    "미안하네. 그럼 잠시 사라양의 마음이 정리 될때까지…."

    "아뇨. 계속하세요."

    "음? 하지만…."

    "괜찮으니까요. 더 할 얘기가 있는 거죠?"

    하지만 그렇게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사라는 자기 때문에 시간을 끌리기는 싫다는 듯 계속해서 얘기를 진행시키려 했다.

    하여간 쟤도 고집은 엄청 세다니까.

    "음. 사실 이 몸이 바넷사에게 미리엘양의 과거를 조사하게 한 것은, 다름이 아닐세. 만약 미리엘양이 아라크네 클랜에 들어가기 전부터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이 있다면, 그자가 바로 던전과 마신이 관계있다는 정보를 미리엘양에게 준 당사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일세. 사실 이 몸은 그 정보원도 거의 동시기에 아라크네 클랜에 들어가 지금도 같이 활동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었네만, 아무래도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구먼."

    "사우론 아우덴…제 아빠가 정보원일 가능성이 생겼군요."

    디아나는 일부러 말을 아꼈던 거겠지만, 눈치 빠른 사라가 거기까지 듣고도 그런 결론에 다다르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으응. 사우론 아우덴뿐만이 아니네요. 제 할아버지도 던전의 비밀에 대해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네요."

    그야 그렇다. 만약 정말로 사우론 아우덴이 정보원이라면, 그 정보가 날 때부터 머릿속에 있었던 건 아닐 테니까.

    그렇다면 그 정보의 출처는, 역시 사라의 할아버지가 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분명 사라의 할아버지는 일반인 아니었던가? 난 분명…아, 잠깐만. 부모가 용사가 아니더라도, 아우덴의 피가 흐르면 자식이 용사일 수도 있다.

    설마 이게 이렇게 이어지는 건가?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프리미엄 전환 예정 시기가 7월 17일로 변경되었습니다.

    제 작품 때문에 노블레스를 3개월 결제하신 분들도 계시는데, 그런 분들도 남은 결제 기간 동안 쭉 볼 수 있도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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