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우덴 -->
뭐, 나로서도 너무 다치기는 싫지만 말이야.
제일 좋은 건, 실은 그다지 다치지 않았으면서 남이 보기에는 엄청나게 다친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역시 피범벅이 되는 게 제일이기는 한데.
고작 이렇게 물리는 정도로 피가 나려나?
은근슬쩍 갑옷이라도 벗어둘 걸 그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공간 속에서, 나는 턱을 손에 대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단순히 동굴 속이라 어두운 게 아니다.
던전이 으레 그렇듯 소계층 역시도 어딘지 모르게 빛 자체는 들어오고 있어서, 거북이굴도 조금 어둡기는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수준은 아니었으니까.
내 시야가 이렇게 어두운 이유는 그런 것보다 조금 더 심플한 이유였다.
그냥 머리부터 상반신이 거북이한테 먹혀있기 때문이다.
응. 실은 아까부터 습기 차고 끈적이고 냄새나서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게다가 이렇게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태면, 그림자 이동도 못 쓰게 된단 말이지.
사실 이렇게 내가 겁도 없이 덤벼들어 다치려고 한 것도, 어느 정도 다치더라도 그림자 이동으로 빠질 수 있다는 절대적인 믿음 때문이었는데.
나, 생각보다 꽤나 곤란해진 건가?
"끼에에에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갑자기 괴성과 함께 내 시야에 빛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빛에 익숙해진 내 눈에 처음 들어온 광경은, 대검을 든 앨리시아가 공중에서 내 몸을 낚아채는 모습이었다.
"괜찮아?!"
앨리시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얼굴을 엿보며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그런 앨리시아의 말에 제대로 대답해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중에 떠 있는 앨리시아의 등 뒤로 거대한 동굴 벽이 밀려오고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동굴 벽이 아니었다. 벽처럼 보이는 거북이의 등껍질이었다.
즉, 이런 건가. 이놈의 거북이는 애초부터 공격을 목적으로 날 물었던 게 아니었다.
내 몸을 문 건 어디까지나 공격을 위한 사전 동작에 지나지 않았다.
진짜 공격은, 날 문 상태에서 그대로 몸을 뒤집어 깔아뭉개는 거였다.
과연. 어쩐지 이상할 정도로 무는 게 안 아프더라. 내 방어력이 많이 높기는 하지만, 딱히 방어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로 데미지가 안 들어오는 게 이상하기는 했어.
그리고 지금 나와 앨리시아의 몸이 공중을 부유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라면 완벽하게 설명이 됐다.
그렇게 상황 파악을 끝낸 나는, 곧바로 앨리시아의 팔을 덥석 잡았다.
"넌 기껏 구해줬더니 왜 또 왔냐."
"뭣?!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내 어처구니없는 반응에 앨리시아는 당장이라도 욕설을 내뱉으려는 것 같았다.
뭐, 자기도 기껏 도와주러 왔는데 상대가 이런 반응이면 황당하기는 하겠지.
하지만 그 욕설이 제대로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나는 공중에서 몸을 빙글 돌리며 그대로 앨리시아의 몸을 위쪽으로 크게 던졌다.
아무래도 공중이다 보니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 무식한 스탯은 앨리시아의 몸을 아슬아슬하게나마 수컷 거북이의 등딱지 너머로 넘겨버리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뭐, 덕분에 나는 그림자 이동을 쓸 타이밍도 놓치고 위쪽이 완전히 거북이 등껍질로 덮여서, 다시 시야가 깜깜해졌지만.
하지만 이걸로 된 거다. 이걸로 제대로 다칠 수 있어.
아니. 오히려 이런 식의 공격이면 오히려 나로서는 고맙기 이를 데 없지.
어느 정도 위력을 가늠하면서 공격을 받을 수 있으니까.
"크헉!"
등부터 바닥에 떨어지며 제멋대로 숨이 입 밖으로 토해지는 것을 참고는, 나는 곧바로 자신 성기에 마나를 돌렸다.
바로 내 유일한 방어 스킬, 아이언 페니스를 발동시키기 위해서.
아니. 하고 싶은 말은 잘 알겠어. 전에도 이런 식으로 아이언 페니스를 써먹은 적 있다가 큰코다치지 않았냐고 말하고 싶은 거지?
하지만 그때랑 지금은 전혀 다르다고.
그때의 난 지금보다도 훨씬 레벨이 낮을 때였고, 심지어 이 녀석보다 적어도 한 단계 이상은 상위 몬스터일 5계층 보스의 기파 공격을 막은 거였다.
게다가 그때도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공격 자체는 제대로 막았었고.
그러니까 분명 지금이라면, 고작 4.5계층의 보스급 몬스터가 하는 공격에 내 물건이 다칠 리가 없어!
그렇게 자신의 물건에 무한한 신뢰를 표하며, 나는 아예 바지 앞섶까지 풀고는 물건을 하늘 위로 높게 곧추세웠다.
고추를 곧추세우…푸흡. 아, 아니. 웃을 때가 아니지.
아무튼 내 장한 아들은 하늘 높이 치솟아서, 대자로 누워있는 내 얼굴이나 가슴 높이보다도 훨씬 더 위쪽으로 튀어나와 있는 모양새가 됐다.
그리고 그 위를, 뒤늦게 내려오는 거북이의 등껍질이 강타했다.
"흥샷빡쉣!"
아, 아들아…버틸 수 있는 거 아니었냐….
아니. 그야 물론 전에 비하면 훨씬 낫기는 하지만.
그때는 잠깐이지만 정신까지 잃었었고, 아래쪽에 감각도 없었으니까.
지금 이렇게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건, 역설적으로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
내 아들은 살아있어! 살아있다고! 크흐흐흑…아파아아아!
"끄어어어…."
벌써부터 죽을 것처럼 아파졌지만, 이렇게 다치고 끝나면 개그로 끝날 뿐이다.
아라크네 클랜도 앨리시아도, 하반신을 깐 채 물건이 다쳐서 기절해있는 내가 걱정돼서 던전 탐험을 그만둘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물건이 아니라, 제대로 몸이 다칠 필요가 있다.
이왕이면 아까 생각해뒀던 것처럼 피범벅이 되어서.
"후욱…후우욱…."
그렇게 생각한 나는 심호흡을 해서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고, 두 손을 뻗어서 거북이의 등껍질은 단단히 받쳤다.
아니. 물론 이런다고 해서 이 거대한 녀석을 밀어낼 수 있지는 않겠지만, 조금이나마 데미지를 경감시킬 수는 있겠지.
그렇게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는 천천히 물건에서 힘을 뺐다.
그리고 그 직후.
"크허어어억…흐억…꿀럭."
수컷 거북이의 압도적인 중량이 내 전신을 찍어눌렀다.
허파에 있던 바람이 입으로 빠져나옴과 동시에, 입에서는 나오면 안 될 뜨거운 액체까지 같이 터져 나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아까 반장난식으로 아파했던 물건의 격통과는 비교도 안 될 충격이 내 전신을 엄습했다.
안 되겠다. 이러다가는 척이 아니라 진짜로 죽겠다.
그래도 예전에는 나름 탱커 역할도 맡았던 몸이라 고통에는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도저히 참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확실히 피투성이가 되면 제일 그럴듯할 것 같다고 생각은 했지만, 내가 말한 건 그냥 생채기가 많이 나서 피투성이가 되면 좋다는 뜻이었지.
절대 입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전신을 적시는 걸 말하는 게 아니었다고.
"끄으으…으아아악!"
나는 전신의 마나를 물건 쪽으로 돌려서, 다시 물건에 힘을 불어넣었다.
일어서라 아들아! 넌 여기서 쓰러져서는 안 되는 운명이다! 힘을 내! 일어서는 거다! 일어서서 적을 밀어내라!
그런 내 기원이 통했는지, 마나가 잔뜩 주입된 내 아들은 점점 힘을 내며 수컷 거북이의 등껍질을 위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장하다! 장하다 우리 아들! 역시 믿을 건 너밖에 없다!
그렇게 겨우 고개를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간격을 벌린 후, 나는 곧바로 고개를 옆으로 돌려 목구멍까지 다시 차오른 피부터 뱉어냈다.
그리고는 출혈로 살짝 멍한 상태의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려, 앞으로의 일을 계산했다.
이 녀석이 이렇게 몸을 뒤집고 있는 지금, 당연히 녀석의 하물은 위에 있는 전원의 눈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을 거다.
즉, 들키기 전에 드랍된 성기를 인벤토리로 회수하고 성자 스킬을 안 쓴 척하는 작전은 물 건너 갔다는 얘기가 된다.
이제는 정말로 동정심에 기댈 수밖에 없나.
뭐, 일단은 계획했던 수준으로 다치기는 했으니, 앞으로는 내 메소드 연기가 얼마나 효과를 발휘하냐에 달렸군.
당연한 얘기지만, 이대로 깔려있다가 그대로 목숨을 잃은 걱정 같은 건 안 한다.
이 녀석이 아무리 단단하다고 하더라도, 위에는 공격력이라면 모험가 전체를 놓고 봐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인물들이 무더기로 포진하고 있으니까.
게다가 내가 이렇게 깔린 걸로 사라나 디아나도 눈이 돌아갔을 테니, 가만히 놔둬도 조금 있으면 처리가 될 거다.
아니. 그래도 일단 나도 도움을 주는 게 나으려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손에 성자의 손길을 두르고 놈을 공격하려 했을 때, 수컷 거북이의 움직임에서 다시 한번 변화가 나타났다.
가만히 날 짓누르고만 있던 놈의 등껍질이 다시 천천히 회전을 시작한 거다.
"아니. 야. 잠깐만. 너 지금 등껍질 한가운데에 내 물건을 두고 누워있는 거 알지? 팽이처럼. 한낱 축생인 네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말해서 지금 네 모든 무게가 내 물건 끝에 쏠려있다는 얘기에요. 그 상태로, 어? 네가 회전을 하면, 어? 어떻게 되겠어? 어? 잠깐만. 잠깐만요. 잠깐만요 형님. 방금 축생이라고 한 말 취소할 테니까. 아니. 진짜로. 혹시 날 기분 좋게 해주려고 그러는 거야? 그런 거라면 마음만 받을 테니까. 나 그런 회전 회오리 바닥딸 같은 걸 하는 취미는 진짜로 없으니까. 애초에 바닥딸도 해본 적 없으니까. 형님? 형님? 듣고 계시죠? 형님? 우리 대화로…."
속사포처럼 내뱉은 내 말도 무색하게, 놈의 회전은 점점 더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마이 써어엉어언어엉엉…!"
이 눈물이 격통에 의한 것인지, 자랑스러운 아들이 갈려 나가는 것 같은 감각이 슬퍼서 그런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내게는 1초가 100년 같던 인고의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놈의 회전이 멈췄다.
그리고 놈의 몸이 재가 되어 사라짐과 동시에, 내 머리 위로 커다란 검은 그림자가 들이닥쳤다.
바로 놈의 성기였다.
솔직히 이미 제정신은 아닌 상태였지만, 그래도 내 머리 한구석에 원래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는 사명감은 남아있었다.
그것마저 해내지 못하면, 지금껏 내 아들이 고통받은 의미가 사라져버려!
나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을 간신히 뻗어서, 내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는 수컷 거북이의 성기를 인벤토리 안으로 집어넣었다.
이걸로 적어도, 아라크네 클랜이 곧장 5.5계층으로 갈 방법은 사라졌어.
"야! 구원!"
내가 그렇게 흡족해하고 있자니,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와 함께 또다시 검은 무언가가 내게 들이닥쳤다.
뭐, 검다고 해도 이번에는 우유를 듬뿍 탄 밀크 커피색이었지만.
바로 앨리시아였다.
우리 애들보다 얘가 제일 먼저 다가온 건 조금 의외였지만, 뭐, 가까이서 싸워야 하는 전사니까 단순히 거리가 제일 가까웠던 거겠지.
매번 쥐고 있던 대검까지 어디론가 던져버린 채로 내게 들이닥친 앨리시아는 곧바로 내 몸을 붙잡고 흔들면서 아까 다 못했던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 미친놈아! 나보다 약한 주제에 뭘 구하겠다고 나대기는 나대! 네까짓 것의 도움 없어도 나는…!"
하지만 그렇게 욕설을 퍼붓는 앨리시아의 얼굴은 나보다도 훨씬 더 눈물로 범벅이 되어있어서, 나는 앨리시아의 뭐라고 할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뭐, 애초에 몸 상태가 이렇다 보니, 아무리 물에 빠져도 입만 떠다닐 놈이라는 평을 듣는 나라도 입을 움직일 기력은 없었지만.
"지금 뭐 하는 건가요?!"
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라서, 내 귀로 날카로운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는…믿기지는 않지만 우리 천사님?!
"출혈이 있는 환자의 몸을 흔들다니, 제정신인가요?! 당장 비켜요!"
"읏…으, 응…."
제아무리 막무가내인 앨리시아라도, 우리 천사님의 호통에는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뭐, 쟤가 아무리 눈치가 없더라도, 평소에 우리 천사님이 어떤 성격인지 정도는 알 테니까.
"구원씨? 정신은 있으세요? 괜찮아요. 괜찮으니까요. 제가 곧장 치료해드릴게요."
그리고 앨리시아가 내 위에서 비키자마자, 이번에는 내 시야에 천사님의 얼굴이 보였다.
아아. 확실히. 이 얼굴로 그런 호통을 지르는 걸 보면 그야 앨리시아라도 기가 죽어서 비켜주겠지.
앨리시아 이상으로 눈물범벅이 된 천사님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괜히 더 죄책감이 생겼다.
물론 세계를 위기를 구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역시 내 여자를 울리는 방법은 택하는 게 아니었는데.
애초에 내가 그 정도로 정의감이 투철한 성격도 아니고 말이야.
훗. 나란 남자는 세계의 위기보다는 사랑을 택하는 남자라고나할까?
…뭐, 아무튼 그냥 너무 일이 급박하게 돌아가니까 나도 모르게 저질러 버린 거다.
레이첼 누님의 위기대처 능력이 조금 옮아버린 걸지도.
그런 건 옮아서 좋을 게 없는데 말이야.
"레이…아…."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최대한 목소리를 짜내서 레이아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는 환하게 빛나며 내 몸을 쓰다듬고 있는 레이아의 손목을 붙잡아서, 그대로 아래로 내렸다.
정확히는 내 아들 쪽으로.
"이왕이면…여기부터…."
그리고 그렇게 말하며, 나는 최대한 입꼬리를 올려서 씨익 웃어 보였다.
"네에! 네에!"
…아니. 천사님. 농담은 웃으면서 받아주셔야 하는데.
그야 물론 내 아들이 제일 치료가 시급한 건 사실이지만.
필사적으로 내 물건을 쓰다듬는 천사님을 바라보면서, 나는 살짝 실소가 새어 나왔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태연한 척하려고 해도 뇌에 걸린 과부하는 한계에 달해있었는지, 나는 물건에 느껴지는 천사님의 손길을 만끽할 틈도 없이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Baramdolyi // 제가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다른 작품의 경우는 잘 모르겠네요.
저 같은 경우 계약내용상 그런 식의 연재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아티피아, 자사팍 //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826화의 오타를 수정하려다가 그만 826화가 아니라 825화에 내용을 붙여넣어버렸네요.
이제 825화도 정상적으로 나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