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826화 (810/1,205)
  • <-- 아우덴 -->

    "그럼. 여기부터는 맡길게."

    내가 그렇게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동안, 우리는 거북이굴에 들어와 버렸다.

    그리고는 기대감 듬뿍 담아서 내 어깨를 두드리는 미리엘.

    진짜로 나쁜 녀석으로는 안 보이는데 말이야.

    아니. 나와 디아나의 추측이 맞다면, 실제로도 나쁜 녀석은 아닐 거다.

    다만 목적이 목적이다 보니 위험할 뿐이지.

    "으, 응. …계층의 주인도 없구나."

    소계층 특유의 거대 마석이 대놓고 보이는 그 공간은, 우리가 봐왔던 좁은 통로로만 이루어진 거북이굴과는 달리 상당히 넓었다.

    그리고 또한 엄청나게 고요했다.

    어쩜 이렇게 시간을 끌 요소가 단 하나도 없을 수가 있냐.

    "이 누님이 바로 얼마 전에 잡았으니까. 튀어나오려면 며칠은 더 걸릴걸?"

    앨리시아는 자랑하듯 그렇게 말했지만, 나로서는 전혀 달갑지 않은 정보였다.

    일단은 탐색을 하는 척이라도 할 수밖에 없겠네.

    어차피 얘들도 구석구석 돌아다녔지만 발견하지 못한 거다. 탐색하는 척하면서 며칠 정도는 시간을 끌어도 될 거야.

    그리고 그사이에 어떻게든 틈을 봐서 디아나와 의견을 교환하자.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타성적으로 맵에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지금 있는 위치의 맵에 눈에 들어온 순간, 나는 등 뒤에서 자기도 모르게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야. 너 괜찮냐? 왜 그래?"

    그리고 그런 내 반응을 제일 먼저 캐치한 것이, 하필이면 또 내 바로 앞에서 으스대던 앨리시아였다.

    일단 얼버무리자. 앨리시아는 답지 않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으니, 잘 속이면 넘어갈 수 있을 거야.

    "아니…."

    "어머, 여기구나?"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넘어가려고 했지만, 앨리시아가 내 이상 반응을 확인하고 그 얘기를 입 밖으로 꺼낸 시점에서 이미 늦은 상태였다.

    눈치 빠른 사람이 우리 애들만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야.

    생긴 것부터 직업까지 뭘 봐도 눈치가 빠를 것 같은 도적 루티아는, 내 표정을 보고 곧장 그런 결론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젠장! 이래서 눈치 빠른 인간들이란…!

    아니. 얘들아. 물론 너희 얘기한 거 아니다? 난 너희가 눈치 빠른 점도 참 좋아하니까!

    "응? 하지만 여기에는 아무것도…."

    당연히 여기도 조사해봤을 앨리시아는 의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부정하려고 했지만, 앨리시아가 루티아를 이기기를 바라며 아무것도 안 하는 건 꿈이 너무 큰 거겠지.

    "다들 조심해!"

    어차피 늦으나 빠르나 여기 있는 수컷 거북이의 존재는 들킬 테니, 나는 아라크네 클랜 사람들이 반응하기 전에 먼저 한발 빨리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이렇게 된 이상 고민하고 있을 필요는 없어!

    나는 팔을 벌려서 일단 사라, 디아나, 레이아, 실비아의 몸을 한꺼번에 끌어안고는, 그대로 우리가 지나왔던 통로 속으로 다시 밀어 넣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발에 성자의 손길을 두르고 그대로 바닥을 있는 힘껏 박찼다.

    쿠르르르릉.

    그리고 그 순간,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공간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기 거북이굴의 거북이들은 등껍질을 이용해 자기가 마치 벽인 것처럼 의태하고 있는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최종 보스인 수컷 거북이는, 등껍질을 이용해 바닥으로 의태하고 있었다.

    그래. 다시 말해서, 이 방의 바닥 전체가 수컷 거북이의 등껍질이었다는 얘기다.

    내가 맵을 보고 놀란 이유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분명 우리는 바닥을 밟고 있는데, 맵에서는 아래로 훨씬 더 넓은 공간이 펼쳐져 있고 내가 그 넓은 공간 한가운데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표시되고 있었으니까.

    "뭣!? 바, 바닥이?!"

    아무튼 내 성자의 손길로 의태해있던 놈이 반응을 했고, 그 거대한 놈이 몸을 움직이려 하자 단순히 바닥만 진동하는 게 아니었다.

    공간 전체가 흔들리며, 천장에 달려있던 종유석들이 날카로운 창이 되어 바닥으로 떨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수컷 거북이의 행동은 단순히 몸을 일으키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몸을 일으킨 놈은 곧바로 천천히 도는가 싶더니 점점 그 회전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아니. 그야 물론 일반 거북이들도 이런 식으로 공격을 하기는 했지만, 진짜냐.

    너도 그런다고? 이 거대한 몸이 돌아간다고?

    예상도 못 하고 있던 타이밍에 발을 디디고 있는 바닥이 갑작스레 불안해지면, 제아무리 뛰어난 모험가라도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건 아라크네 클랜 멤버들도 마찬가지라서, 다들 자세가 무너져서는 바닥을 기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쌍둥이 마법사 둘이 부유 마법을 써서 태세를 갖추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그마저도 천장에서 쉴 새 없이 떨어지는 종유석 때문에 쉽지 않았다.

    안 그래도 마나 소모가 큰 부유 마법을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멤버 전원에게 걸려고 하는 거니, 그야 종유석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겠지.

    "타핫!"

    그래도 과연 세계 최고의 베테랑 모험가 집단이라는 건 허명이 아니어서, 처음 당해보는 공격에 자세까지 무너진 상황에서도 아라크네 클랜은 최선으로 보이는 선택을 해냈다.

    앨리시아가 두꺼운 대검을 단단한 수컷 거북이의 등에 어떻게든 박아서 자세를 바로잡고는, 미리엘과 루티아를 각각 쌍둥이에게 각각 한 명씩 던져버린 거다.

    그리고 던져진 미리엘과 루티아는 무사히 쌍둥이에게 달라붙어서, 부유 마법의 힘으로 공중으로 뜰 수 있었다.

    그렇게 쌍둥이는 부유 마법을 쓰고 미리엘과 루티아가 각각 종유석을 쳐내는 것으로, 아라크네 클랜은 수컷 거북이의 회전을 완벽히 대처하고 있었다.

    단 한 명, 앨리시아만 제외하고 말이다.

    "크윽!"

    거북이의 등에 대검을 박고, 거북이와 같이 회전하면서 온몸으로 떨어지는 종유석을 받아내고 있는 앨리시아.

    물론 쟤는 마법사들과 달리 튼튼한 만큼 종유석에 맞는다고 해서 극심한 데미지를 입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데미지가 차곡차곡 누적되고 있을 거다.

    하지만 통로로 피신한 우리도, 앨리시아를 신경 쓸 정도로 상황이 여유로운 건 아니었다.

    수컷 거북이는 단순히 제자리에서 회전하는 것이 아니라, 명백히 우리 쪽을 향해 다가오면서 회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거대한 몸이 벽을 깎고 지형을 변형시키며 밀고 들어오니, 통로는 피신처의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게 됐다.

    "으으으으읏…!"

    실비아가 방패를 내밀고 발로 벽을 밀며 버티고 서서는 밑에서부터 비스듬하게 밀려오는 수컷 거북이의 몸을 버텨내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당연히 실비아 혼자서 그 거대한 몸을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실비아의 발은 순식간에 종아리까지 벽에 박혀 들어갔고, 맹렬하게 불꽃이 튀는 그 방패는 당장이라도 부러질 것만 같았다.

    뒤에서 사라가 열심히 화살을 날려보기도 했지만, 놈의 단단한 등껍질은 그마저도 큰 데미지를 입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애초에 평범한 거북이들도 마나를 담지 않은 평범한 공격은 가볍게 무시할 정도였으니까 말이야.

    "다녀올게!"

    그리고 그런 순간에, 나는 수컷 거북이의 위에 올라타기로 했다.

    애초에 이놈이 우리 쪽으로 회전하고 있는 것도, 내 성자의 손길에 한 대 맞아서 날 노리고 그러는 거니까.

    나만 바깥쪽으로 빠지면 우리 애들이 위험에 처할 일은 없다.

    그리고 애초에 성자 스킬부터 한 방 날려서 잠자코 있던 수컷 거북이를 깨운 것도, 일부러 다치기 위해 그런 거였으니까.

    우리 애들은 싫어하겠지만, 역시 여기서 던전 탐색을 중단하는 방법은 내가 다치는 것밖에 없어.

    물론 수컷 거북이한테 성자의 스킬을 날린 시점에서 이 방법도 불안 요소가 생기기는 했다.

    결국에는 수컷 거북이를 잡아야 끝날 테고, 그러면 성기는 드랍될 테니까 말이다.

    아라크네 클랜이 다친 날 방치하고 그냥 다음 던전으로 가버리면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나는 자신의 안목을 믿고 도박을 하기로 했다.

    이 녀석들의 목적이 불순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그렇게 매정하고 나쁜 놈들은 아니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직 날 좋아하고 있는 게 틀림없는 앨리시아가 다친 날 놔두고 그냥 가버릴 리가 없어.

    솔직히 말해서 차버린 여자의 마음마저 이용하는 건 상당히 마음에 걸렸지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세계의 위기가 걸려있는 거다.

    전부 미리엘의 말대로 되면, 그대로 마신을 부활시켜 버릴지도 모르는 거니까 말이야.

    이제 와서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지.

    뭐, 제일 좋은 건 드랍된 성기를 아라크네 클랜이 그걸 눈치채기 전에 내가 인벤토리에 넣어버리고 시치미를 떼는 거지만, 다친 상태에서 그런 짓까지 할 수 있을 가능성은 없다시피 하니까 말이야.

    "네?! 구, 구원씨?!"

    "성자 스킬 때문이니까!"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나는 곧장 앞으로 달려나갔다.

    물론 우리 애들은 당황해서 날 막아서려고 했지만, 나는 짧게 이유를 설명하고 곧바로 앞으로 뛰어나갔다.

    이왕 올라타는 거, 앨리시아라도 도와줄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곧장 그림자 이동을 써서 앨리시아의 뒤로 이동했다.

    그리고 곧바로 앨리시아의 허리를 끌어안은 나였지만,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작인 앨리시아는 갑자기 뒤에서 자기를 끌어안는 누군가에게 소스라치게 놀라며 날 공격하려고 했다.

    "뭐, 누, 너 뭐 하는 새끼야?!"

    "나야! 나!"

    황급히 변명을 한 나였지만, 귓가를 때리는 세찬 바람 소리에 그 말이 앨리시아에게 잘 들렸을지는 의문이었다.

    이 녀석, 이런 걸 버티고 있는 거냐.

    게다가 몸에 부딪히는 종유석도 그 자체로 수컷 거북이의 공격 판정인 건지, 그냥 돌멩이가 떨어지고 있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아팠다.

    "몸에 힘 빼!"

    "하응!? 뭣?! 너 갑자기 어떻게…아니, 힘을…무, 뭘 하려는 거야?! 이런 때에?!"

    나는 혹시 바람 때문에 목소리가 안 들릴까 봐 입을 앨리시아의 귀에 바짝 가져가서 그렇게 말했고, 그러자 한순간 앨리시아의 몸이 휘청하면서 힘이 쭉 빠지는 게 느껴졌다.

    물론 곧바로 아까처럼, 아니. 아까보다 더 몸에 힘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니. 저기요. 너야말로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내가 몸에 힘 빼라고 하면 다 그런 뜻으로 들리냐?! 내 인상이 그 정도야?!

    아니. 많이 당해본 우리 애들이 그러는 거면 또 몰라. 넌 나랑 한 거라고는 내 동정을 가져갔을 때 한 번밖에 없잖아!

    "…도와주려고 하는 거니까 힘 빼고 검에서 손 놔."

    뭔가 엄청나게 억울해지기는 했지만, 앨리시아의 말대로 이런 때에 이상한 소리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이를 악물고 그렇게 말해줬다.

    그리고 손을 뻗어서, 앨리시아가 잡고 있는 검의 손잡이를 꽉 붙잡았다.

    간단히 말해서, 앨리시아를 저기 우리 애들이 있는 통로 쪽으로 던져주려는 속셈이다.

    앨리시아가 미리엘과 루티아를 던졌던 것처럼.

    하지만 그 순간, 거북이의 회전이 멈췄다.

    그래. 내가 앨리시아의 뒤에서 한쪽 팔로 그 허리를 꽉 껴안고 나머지 손은 앨리시아의 손 위에 겹치듯 검을 잡고는 입을 그 귓가에 가져가고 있는, 엄청나게 수상하게 밀착해있는 자세일 때 말이다.

    하필이면, 하필이면 이럴 때! 적어도 앨리시아가 검을 놓고 내가 던져주려는 자세일 때 멈추던가! 왜 하필!

    "구원!"

    그리고 역시나, 우리 질투심 강한 용사님의 목소리가 공간 전체에 울려 퍼졌다.

    "아니야! 그런 거 아니니까! 오해니까! 여신님께 맹세코…."

    "뒤!"

    나는 황급히 변명했지만, 사라는 그런 말을 하려던 게 아니었다.

    사라의 목소리에 따라 황급히 뒤를 돌자, 거기에는 내 몸보다도 훨씬 거대한 거북이의 머리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응. 그렇지. 아까 그렇게 통로 쪽 벽을 깎으면서 들어왔으니까, 당연히 반대쪽에는 머리를 꺼낼 정도의 공간은 확보됐겠지. 응.

    "이런 젠장!"

    그 머리를 확인한 순간, 나는 황급히 앨리시아의 몸을 밀쳐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거북이의 목이 쭈욱 늘어나면서 내게 닥쳐왔다.

    물론 그 머리가 내 몸에 닿기 전에 사라의 마나 머금은 화살이 날아와 그 머리를 때렸지만, 아무리 사라라도 다급한 공격에 많은 양의 마나를 담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때문에 화살은 거북이가 견딜 수 있을 만한 데미지밖에 주지 못하게 됐고, 결국 거북이는 그대로 날 입으로 물어버렸다.

    "구원씨이!"

    멀리서 우리 천사님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가슴이 찢어질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나는 조금 안도하고 있었다.

    아니. 그도 그럴 것이, 안 그래도 앨리시아를 구조하고 나서 넌 왜 그림자 이동으로 안 피했냐고 추궁하면 뭐라고 변명해야 할지 고민이었거든.

    그런데 이렇게 다칠 기회가 생겼으니 다행이잖아?

    오히려 너무 데미지가 안 들어와서 문제일 정도였다.

    야. 조금만 더 세게 물어봐. 그 정도로 상처가 나겠냐?

    후우. 나란 녀석은. 하여간 너무 튼튼한 것도 문제라니까.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프리미엄으로 가면서 19금 장면들이 사라질까 봐 걱정하시는 분이 많은데, 그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프리미엄으로 가면서 19금 장면들이 삭제되는 작품의 경우 그런 장면들이 허용되지 않는 다른 플랫폼에도 올리게 되면서 그렇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 글은 주제부터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는 작품이기 때문에 아예 19금 장면이 허용되는 플랫폼에만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오타 수정이나 비문 수정 그리고 너무 직접적인 표현만 수정해주기로 하셨는데, 아시다시피 직접적인 표현도 제가 잘 쓰는 경우가 없어서요.

    초반에나 가끔 썼던 좆물 같은 표현이 정액으로 완화되거나 하는 것 말고는 지금 글과 차이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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