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825화 (809/1,205)
  • <-- 아우덴 -->

    그야 물론 지금 우리가 나눈 얘기는 전부 추측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내용이기도 했다.

    "어쩌지? 가서 대놓고 추궁해볼까?"

    일단 미리엘이 마인에 아우덴이라는 정보는 쥐고 있는 거니, 만약 이쪽에서 추궁한다면 미리엘 쪽에서도 마냥 시치미만 떼고 있을 수는 없겠지.

    게다가 우리 쪽에는 이 세계의 유일신 여신님을 위한다는 최고의 대의명분이 있으니까.

    "흠. 아니. 그건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닐 것 같네."

    하지만 그런 내 제안에, 디아나는 신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응? 어째서?"

    "미리엘양이 대체 어디서 던전과 마신이 관계가 있다는 정보를 얻었는지 신경 쓰이네. 이 몸의 억측이라면 좋겠네만, 어쩌면…."

    그렇게 말하고, 디아나는 미간에 주름을 만들며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뭔가 짚이는 거라도 있어?"

    "흠. 짚이는 것이라고까지 할 것까지는 아니네만, 이 몸조차도 자네와 함께 다니면서 겨우 추측해낸 정보를 고아로 자랐을 미리엘양이 알고 있는 걸세. 어쩌면 아라크네 클랜에는 던전의 정보, 아니. 마신의 정보를 잘 알 수밖에 없는 인물이 소속되어있는 걸지도 모르겠구먼."

    "마신의 정보를 잘 알 수밖에 없는 이유라니?"

    "생각하고 싶지는 않네만, 오랫동안 몸을 숨기고 있었던 마신의 추종자 같은 인물 말일세."

    "그런 사람이 있어?!"

    이런 여신님의 열렬한 신도들밖에 없는 세계에, 아직도 마신을 추종하는 사이코가 남아있다고?

    "아니. 이 몸이 알기로는 없네. 그러니 전부 추측에 지나지 않는 얘기일세.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도 아니지 않겠는가? 마신의 추종자가 무언가의 수단으로 미리엘양의 출신을 알아내고 꾀어냈다는 얘기는. 그 정도가 되지 않으면, 미리엘양이 어떻게 던전과 마신과의 관계를 알아냈겠는가."

    "그건…그렇기는 하지."

    "아니면 몬스터와의 대화 수단을 알고 있다는 가능성도 있을 수 있겠구먼. 던전 최심부 공략에 누구보다 힘쓰고 있고, 누구보다 던전의 비밀을 많이 알고 있는 아라크네 클랜이라면 어쩌면…. 그리고 던전에 직접 살고 있는 몬스터와의 대화를 통해서…."

    내가 수긍하자, 디아나는 턱에 손을 대고는 혼잣말로 끊임없이 뭔가를 중얼거렸다.

    아니. 디아나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나간 거 아니냐?

    걔네들이 던전에서 몬스터를 썰어버리는 걸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만에 하나 대화가 통한다고 하더라도, 몬스터들이 순순히 대화에 어울려주고 정보까지 줬을 리가 없잖아.

    하여간 머리가 너무 좋아도 문제라니까.

    디아나는 머리가 좋으니 그만큼 생각나는 가능성도 많아서, 괜히 더 머리가 복잡해지는 모양이었다.

    "여기서 우리끼리 추측만 떠들고 있어 봐야 아무 소용도 없잖아. 일단은 정보의 출처를 밝히기 위해서라도, 겉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있어야 한다는 걸로 충분하잖아?"

    "으, 음. 그렇구먼."

    내가 디아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를 하자, 디아나는 그제야 겨우 고개를 들어줬다.

    그리고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자기 멋대로 폭주해버린 게 조금 쑥스러운 건지, 살포시 뺨을 붉혔다.

    겨우 그 정도로 부끄러워하기는. 우리 사이에 말이야. 하여간 귀엽다니까.

    "뭐, 마냥 모른 척하고만 있는다고 해서 정보의 출처를 밝혀낼 수 있는 것도 아니기는 하지. 알아내려면 뭘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흠. 그거라면 이 몸에게 생각이 있네."

    그런 디아나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내가 다시 디아나에게 질문을 던지자, 디아나는 내 뜻을 알았는지 배시시 웃으며 가슴을 쫙 폈다.

    "하지만 그 전에 우선, 이번에 거북이굴에 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 부터 생각해야 할 것 같구먼."

    아, 그래.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지.

    생각해보니 눈앞에 들이닥친 제일 큰 문제는 그거네.

    "하지만 진짜로 그럴까? 미리엘이 말한 것처럼, 5.5계층 너머가 마지막이고 거기는 열쇠도 없이 갈 수 있을 거라고, 디아나도 그렇게 생각해?"

    "생각 안 하네. 열쇠 없이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던전의 끝이 소계층을 통해 갈 수 있는 곳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네."

    내가 골머리를 썩히며 한 질문에, 디아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부정했다.

    "응? 그래?"

    "음. 이 몸들의 가정이 맞다고 친다면, 던전은 여신님께서 만드신 걸세. 여신님께서 마지막 일 처리를 그렇게 허술하게 하실 리가 없지 않은가."

    아, 그래. 너도 이 세계 사람이었지.

    딱히 평소에 부각되는 건 아니지만 디아나도 결국 이 세계의 사람. 여신님에 대한 믿음은 확실한 모양이었다.

    내가 혹시 여신님이 어떤 음모를 꾸미는 게 아닐까 하고 불안해할 때도, 날 다독여주면서도 설마 여신님이 그럴 리가라는 태도이기도 했고.

    "그리고 소계층 역시도, 이 몸은 자네와 같은 사람이 빠르게 던전을 내려갈 수 있도록 마련한 장치라고 생각하네. 하지만 결국은 그뿐. 던전의 마지막 층은 6계층을 통해서 가야 한다는 것이 이 몸의 생각일세.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결국 쟤네들을 5.5계층으로 보내면 안 된다는 얘기잖아."

    "음."

    디아나야…. 그건 가슴 펴고 할 대답이 아니지 않냐? 앞에 늘어놓은 장황한 얘기는 결국 뭐였는데?

    하여간 설명하는 건 엄청 좋아한다니까.

    뭐, 그 점이 또 귀엽지만.

    "어떻게 하지? 솔직히 그렇게 완벽하게 지도를 완성해온 애들한테, 아무리 뒤져봐도 못 찾겠다는 얘기가 통할 것 같지는 않은데."

    "흠…그렇구먼. 수컷을 발견하고 성자 스킬을 쓰기 전에 해치워 버리는…것은 안 되겠구먼. 다시 부활할때까지 기다리자고 할 터이니. 흐으으음."

    "무조건 그러겠지. 으으으음."

    아무래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서, 나와 디아나는 한동안 머리를 맞대고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좋은 생각이 떠오르기도 전에,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구원. 디아나. 둘이서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느라고 그렇게 오래 있는 거야? 저 사람들 아까부터 성화니까 급한 일 아니면 빨리 나와."

    아라크네 사람들이 더 이상은 못 기다리고 폭발한 건가? 하긴, 방에 들어오고 나서 시간이 조금 오래 지나기는 했지.

    그렇게 생각했지만, 다행히도 노크의 주인은 사라였다.

    "아, 미안. 급한 일이야. 조금 더 기다려."

    사라라면 조금 더 기다리게 해도 되겠지. 그렇게 판단하고 시간을 조금 더 끌려고 했던 나였지만, 하필이면 상대가 사라였다.

    "왜? 혹시 둘이서 이상한 짓이라도 하는 건 아니지?"

    사라야…너 나 너무 의심하는 거 아니냐?

    아니. 그만큼 날 좋아하니까 그렇게 질투도 해주는 거겠지만.

    그렇게 생각한 나였지만, 한편으로는 좋은 변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창 하는 중이라고 하면, 제아무리 사라나 아라크네 클랜 사람들이라도 함부로 쳐들어오지는 못할 테니까.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그렇게 변명한 다음 던전에서 어떻게 할지부터 정하자.

    "이상한 짓이라니! 야한 짓이라고 왜 말을 못 해! 야한 짓이다! 야한 짓! 네 말대로 나랑 디아나는 지금 절찬리 야한 짓 중이라 바쁘니까 조금만 더 기달…으읍!"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아!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아! 자네라는 사람은! 자네라는 사람은! 아닐세! 사라양! 아니니까 말일세! 이 몸은 그런 짓 안 하고 있네!"

    그러나 그런 내 시도는, 제대로 시작도 해보기 전에 무위로 돌아갔다.

    하필이면 같이 있는 게 남한테 알려지는 걸로 흥분하는 우리 변태 대마법사님이었으니까 말이야.

    디아나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황급히 내 가슴을 몇 차례 토닥토닥 때리고는,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듯이 문을 활짝 열어버렸다.

    아니. 디아나야…그러면 더 토론할 시간이 없어지잖아.

    하여간 평소에는 그렇게 이성적인 주제에 노출증이 조금만 자극되면 저렇게 된다니까.

    "대체 무슨 얘기를 그렇게 오래 한 거에요?"

    그 너무나도 절박한 태도에, 이런 상황에 흥분하는 또 다른 성벽의 주인인 사라조차도 의심할 생각은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후, 후훙. 비밀일세. 이 몸과 낭군님만의 비.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대마법사님은 대마법사님.

    이성이 완전히 날아간 건 아니라서, 사라의 질문에 오히려 도발하듯 없는 가슴을 쭉 내밀며 그렇게 대꾸하는 디아나였다.

    사라한테 섣불리 할 얘기는 아니었으니까 말이야. 저런 식으로 얼버무리려는 거겠지.

    다만 문제는, 디아나가 도발하고 있는 상대가 그 사라라는 것이었지만.

    "뭘 그렇게 내밀어요? 그렇게 내밀어도 없으면서."

    역시나. 우리 사라는, 내가 마음속으로만 하는 얘기를 거침없이 입 밖으로 꺼내서 디아나의 명치를 후려쳤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제대로 있네! 사라양이야 말로 그 상태에서 성장이 멈추지 않았는가! 더는 성장할 가능이 성이 없는 사라양과 비교하면 이 몸은! 이 몸이 성장만 하면 사라양 같은 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전 제 걸로 만족하니까요."

    "우으으! 우으으으으!"

    아니. 그러니까 억울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지 말라고. 난 못 도와주니까.

    애초에 도발은 네가 먼저 했잖아.

    가볍게 잽 한 번 날렸다가 일방적으로 얻어맞아 버린 건 조금 불쌍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얘기는 끝난 거지? 가자. 저 사람들 너무 보채대서 더는 참겠어."

    과연. 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라가 왔나 싶었더니, 못 참을 것 같아서 자기 발로 온 모양이다.

    게다가 사라는 특히 더 앨리시아를 좋게 보지 않으니까 더 그렇겠지.

    "알았어. 알았어. 가자."

    던전에서 어떻게 할지 정하지는 못했지만, 어차피 지금 출발한다고 해서 곧바로 거북이굴에 도착하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유예 기간이 있으니, 그사이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를 빌 수밖에.

    "우으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라와의 패전에서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은 디아나를 끌어안고 그대로 식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일주일 정도 유예 기간이 있을 거라는 내 예상은, 던전에 진입하자마자 들려온 미리엘의 말에 가볍게 깨지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너희, 4계층 몬스터들의 성기는 당연히 가지고 있지?"

    "응? 그건 왜?"

    그야 종류별로 적어도 하나씩은 모아서 레이아의 스태프 강화에 쓰기는 했지만.

    갑자기 그걸 왜 묻는 거지?

    "응? 그야 물론 4계층에서 거북이굴로 바로 가려고 그러지. 너희도 앨리시아를 통해 완성된 지도를 봤잖아? 우리는 성기를 얻을 수단이 없어서 직접 이용해보지는 못했지만, 위치를 대조해서 4계층에서 거북이굴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는 이미 파악했어."

    …아, 잠깐만. 앗, 젠장.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딴생각에 정신이 팔려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이번에도 얼음동굴을 통해 거북이굴로 갈 거라고 믿고 있었어!

    "지금까지의 예를 놓고 보면 수컷은 소계층의 주인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거북이굴로 향하는 통로가 있는 곳도 얼음동굴로 가는 통로보다 마을에서 훨씬 가까우니까. 내일이면 도착할 수 있을 거야."

    내, 내일?! 아, 안 돼! 아직 어떻게 할지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했는데!

    "그, 그거 잘됐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대놓고 표현할 수도 없어서, 나는 어색한 미소로 그렇게 맞장구쳐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거북이굴로 향하는 통로가 있는 곳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아무런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는 길에 나타난 몬스터들은 아라크네 사람들이 나타나는 족족 지워버려서 생각할 시간 자체는 많았지만, 아무래도 혼자서 생각하는 건 한계가 있었으니까 말이야.

    하필이면 또 물 속이라서, 뭔가 다른 사람이랑 얘기를 하려고 하면 엄청나게 티가 나버리고.

    심지어 불침번도 아라크네 사람들이 알아서 전부 맡아버린 바람에, 디아나와 둘이서 얘기를 나눌 시간이 아예 없었다.

    "그럼 레이아."

    "아, 네."

    그리고 아라크네 클랜이 발견한 구멍에 레이아의 스태프를 꽂아 넣자, 황당할 정도로 손쉽게 구멍이 벌어지며 길이 생겨나고 말았다.

    진짜냐. 벌써 다 왔잖아. 어쩌면 좋아.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없는 건 아니었다.

    단 하나, 아라크네 사람들을 5.5계층으로 보내지 않을 방법이 있기는 했다.

    다만 우리 애들에게까지 알리지 않은 상태에서 이 방법을 실행하는 건 성공률이 너무 낮았고, 무엇보다도 이 방법은 우리 애들이 엄청 싫어할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일부러 엄청나게 다쳐서, 이번 던전 탐색을 리타이어 하는 방법은 말이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공지로도 올렸지만 못 보신 분이 계실 것 같아 여기에도 씁니다.

    먼저 이렇게 갑작스럽게 공지를 올리게 된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이번에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이 노블레스에서 프리미엄으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제 글을 좋게 봐주신 곳이 있어 계약을 맺게 됐는데, 그에 따라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을 다른 플랫폼에도 연재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편당 결제 형식인 다른 플랫폼과 맞추기 위해 조아라에서도 노블레스에서 프리미엄으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정확하게 결정된 것은 아닙니다만, 전환 시기는 5월 15일로 예정하고 있습니다.

    만약 예정이 바뀌게 된다면 바로바로 추가 공지를 통해 전달 드리겠습니다.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인해 기간을 넉넉히 잡지 못하고 공지 올리게 된 점 다시 한번 사과드리며, 앞으로도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을 사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표지는 공지 때문에 일부러 내렸습니다.

    출처를 적으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프리컨텐츠였는데, 새 공지를 올리니 출처를 적었던 전 공지가 자동으로 메인에서 내려가서요.

    pleen // 글을 올리자마자 바로 확인하고 수정했는데, 그 사이에 보셨나보네요.

    뽀빠잉, Sasins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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