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823화 (807/1,205)
  • <-- 아우덴 -->

    "으으…아직도 엉덩이에 뭐가 들어가 있는 것 같아."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방을 나서기 전에, 사라가 미묘하게 엉덩이를 흔들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최근에는 밤새 엉덩이를 쓰는 일은 잘 없었으니까 말이야.

    오랜만에 진득하게 엉덩이를 쓰는 바람에, 아직까지 그 감각이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물론 이렇게 되기 전에 한소리 듣기는 했다.

    하지만 사라도 그냥 형식상 한마디 했다는 느낌이라, 별일 없이 부드럽게 넘어갔다.

    얘도 괜히 나랑 있은 기간이 제일 긴 게 아니라는 거지.

    뭐, 나도 이 정도로는 사라가 진심으로 화내지 않을 거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 거였고.

    "그래서 흥분돼?"

    "너 바보지?"

    사라야. 그 표정 생긴 거랑 엄청 잘 어울리기는 하는데, 좋아하는 사람한테 지을 표정은 아니지 않니?

    뭐, 내가 바보 같은 말을 한 건 사실이지만.

    "얘가 오빠한테 또 너라고 그런다."

    "네. 네. 바보 오빠."

    전부터 생각한 건데 말이야, 얘는 어미에 오빠만 붙이면 내가 뭐든 용서해준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닐까?

    뭐, 지금은 용서해줄 거지만.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밤새 힐링 섹스의 효과를 받았으니까 전혀…."

    "그런 걱정한 거 아니거든?!"

    "끄아아아!"

    그렇게 사라에게 옆구리를 꼬집히며 방을 나온 나는, 언제나처럼 바넷사의 뒤를 따라서 식당을 향했다.

    하지만 오늘의 식당은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펼쳐져 있었다.

    "왔군. 텔루나님의 호의에 따라 실례하고 있다."

    왜냐하면 식당에는 우리 애들뿐만 아니라, 아라크네 클랜의 간부들도 모여있었기 때문이다.

    이름이 나온 디아나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디아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그럼 그냥 방치할 수도 없지 않겠는가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 확실히 그럴 수도 없기는 하지.

    "너희들 진짜 던전에 죽고 못 사는구나."

    "하핫. 뭐, 그렇지."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날린 내 핀잔을, 미리엘이 대표로 시원스럽게 웃으면서 받아넘겼다.

    칭찬한 거 아니거든 이것아.

    "드디어 꿈이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거다. 이른 아침부터 들이닥친 건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너그럽게 이해해줬으면 좋겠군."

    일단 이 녀석도, 내가 칭찬으로 한 말이 아니라는 걸 알기는 아는 모양이다.

    뭐, 그 정도 눈치도 없으면 대형 클랜의 클랜장 같은 것 못 해 먹겠지.

    즉, 알고도 그렇게 받아쳤다는 건가.

    대범하다고 해야 할까…여전히 무협지 주인공을 하면 잘 어울릴 것 같은 호인인 미리엘이었다.

    "그래서, 기대감에 가슴을 부풀리는 소녀 미리엘씨. 준비는 철저히 해왔지?"

    이런 애한테 비꼬는 말이나 장난 같은 걸 쳐봤자, 나만 속 좁고 이상한 놈이 될 뿐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식탁에 앉으며 곧바로 일 얘기부터 하기로 했다.

    하지만 미리엘은 내 뒷말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어째선지 앞말에 반응을 해왔다.

    "응? 더 이상 가슴이 부풀어 오를 만큼 소녀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뜻으로 말한 거 아니거든?! 아니니까! 얘들아! 나 믿지?! 진짜로 아니니까!"

    너 혹시 앨리시아를 찬 것 때문에 대신 복수하는 거냐?! 어딜 어떻게 들으면 그런 반응이 나오는 건데?!

    "당신, 그렇게 당황하면 더 수상해 보여요."

    그리고 당황한 날, 남들 앞이라 그런지 오늘은 처음부터 지극히 추기경님 같은 모습의 마틸다가 부드러운 말로 정신 차리게 해줬다.

    "아, 응. 그렇지. 미안. 내가 전적이 많다 보니."

    "자각은 있는 겐가…."

    디아나야. 내가 아무리 철면피라도 그렇지, 설마 자각도 없겠니? 황당하다는 눈으로 보지 마라.

    그리고 거기 구석에서 배 잡고 깔깔대는 루티아씨. 웃긴 건 알겠는데 이게 배까지 잡고 웃을 일입니까?

    당신도 일단은 누님 캐릭터니까 댁들 클랜장 좀 어떻게 해보라고요.

    뭐, 우리 레이아 같은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는 타입의 누님 캐릭터는 절대 아니기는 하지만.

    "후훗. 괜찮아요. 구원씨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그러지 않는다는 건, 누구보다도 저희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다들 가지각색의 반응을 보이며 날 지켜보는 가운데, 날 감싸 안아주는 건 역시 우리 천사님밖에 없었다.

    크흑! 천사님! 역시 제 마음의 오아시스!

    왠지 다른 사람한테만 안 그럴 뿐 우리한테는 자주 그런다는 뉘앙스가 느껴지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역시 제게는 천사님밖에 없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오늘은 아라크네 클랜의 간부진들까지 다 같이 식사를 하게 되어버렸다.

    일단 가볍게 아침은 들고 왔다는 모양이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식탁에 앉아서 앞으로의 얘기를 하는 게 편하니까 말이야.

    뭐, 같이 식사를 한다고 해도 아라크네 클랜의 간부 중 실제로 식사를 하는 건 조금씩 음식을 깨작이는 앨리시아뿐이고, 다른 사람들은 가볍게 차만 홀짝이는 정도였지만.

    "…뭐야. 할 말이라도 있어?"

    그리고 그런 내 시선을 느꼈는지, 앨리시아가 불편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뭐, 저 앨리시아가 내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자기를 바라봤는지 민감하게 캐치했을 리는 없고, 그냥 단순하게 밥 먹는데 내가 쳐다봐서 반응한 것뿐이겠지만.

    일단 아직도 나한테 마음이 남아있는 모양이고.

    "아니.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먹어도 된다고."

    "새ㄲ…아침 먹고 왔다니까!"

    아니. 그래도 왠지 너라면 더 먹을 것 같아서. 응. 미안. 이건 확실히 내가 잘못했다.

    이번만큼은 내 잘못이 명백했기 때문에, 나는 곧바로 앨리시아에게 사과를 했다.

    하지만 그래도 한번 내 시선을 의식해버린 것 때문인지, 앨리시아는 아까보다 더 깨작이게 됐다.

    이거 미안한 짓을 해버렸네.

    깨작이면서도 표정은 ‘이런 음식들을 앞에 놔두고 이래야 한다니….’ 라는 표정이라서, 괜히 더 미안해졌다.

    아니. 그래도 일단 너희 이거보다 더 큰 저택에 살고 있지 않냐?

    뭐, 크기보다는 질이라고. 메이드들의 솜씨는 이쪽이 훨씬 더 낫다는 건가.

    무엇보다 이쪽에는 최고의 집사가 있으니까.

    정작 그 집사씨는 아까부터 내 쪽에 눈길 한번 안 주고 묵묵히 서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지만.

    "그나저나 간부진이 다 온 건 아니네?"

    아무튼 그렇게 대충 주변을 둘러보고, 나는 곧바로 미리엘과 일 얘기나 하기로 했다.

    "우리도 되도록 전력을 다하고 싶지만, 이쪽에도 사정이라는 게 있으니까. 5계층 마을 수비의 핵심인 지니를 언제 끝날지도 모를 이런 여정에 빼 올 수는 없지 않겠어? 그리고 릴리는…."

    그렇게 말하고, 미리엘은 힐끔 앨리시아를 바라봤다.

    그러자 음식을 깨작이고 있던 앨리시아가, 목을 움츠리며 괜히 더 위축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오. 저 앨리시아가 밀리고 있어.

    무슨 일이지? 평소에는 우리 미리엘이라면서 자기가 누나인 것처럼 말하더니.

    "개인적인 바람도 섞인 희망적 추측이지만, 거북이굴을 지나서 나오는 5.5계층. 그리고 그 너머가 바로 던전의 마지막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어."

    아무튼 앨리시아한테 한 번 시선을 줬던 미리엘은, 다시 내게 시선을 돌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폭탄 발언을 던졌다.

    솔직히 얘들은 뭔가 뒤가 구린 게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서로 협력하는 관계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던전의 심층에 대한 정보를 던져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응? 그래? 어째서?"

    속으로는 꽤나 놀랐지만, 나는 일단 태연함을 가장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미리엘의 다음 말을 유도했다.

    "단순한 얘기야. 그쪽도 텔루나님께 들었겠지만, 6계층은 아래로 가는 길이 발견되지 않고 있어. 그리고 성기를 얻는 게 불가능한 몬스터들로 가득 차 있지. 하지만 지금까지 소계층은 그 직전 계층에서 얻은 성기를 열쇠로 삼아 진입할 수 있잖아? 개미굴은 2계층에서 얻은 모기의 성기를 통해, 3계층은 얼음굴은 물범의 성기를 통해 갈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6계층은 아래로 갈 수 있는 길이 없고, 6.5계층으로 갈 성기도 얻을 수 없어. 그러니까 5.5계층을 통해 도달한 그곳이, 던전의 마지막이 아닐까 하고 추측하는 거지."

    과, 과연. 생각해 보니 확실히 그랬다.

    과연 던전 탐색의 프로. 아니. 그걸로 돈을 번다는 뜻에서는 나도 일단 프로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거북이굴 너머에 있는 5.5계층. 그리고 그 너머가 마지막이라.

    지금까지는 막연히 마지막까지 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말하니 뭔가 갑작스레 마지막 전투가 확하고 코앞까지 다가온 기분이 들었다.

    아니. 진짜로 뭔가와 싸워야 하는 건지 어떤지도 아직 모르는 거지만.

    "그리고 정말로 5.5계층의 너머가 마지막이라면, 마지막 정도는 성기가 없어도 갈 수 있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어? 일반 계층이 그냥 통로로 이어져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내가 현실감을 느끼는 사이에, 미리엘은 더욱 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발언을 내뱉었다.

    어? 잠깐만. 그렇다는 말은 즉….

    "그러니까 이번 여정으로 우리가 5.5계층에 진입하게 되면, 그대로 마지막까지 갈 가능성도 있다는 거지. 릴리가 참여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야. 릴리가 성직자들 중에서는 유독 던전에 내성이 있는 체질이라고는 하지만, 던전의 마지막 층에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미리엘은 다시 한번 앨리시아를 노려봤다.

    저 녀석, 나한테는 그렇게 자기가 알려줬다는 말 절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더니, 결국 자기가 미리엘한테 들킨 거냐.

    어쩐지 앨리시아는 구석에 박혀있고 미리엘이 대표로 얘기하더라.

    그냥 미리엘이 클랜장이라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것만이 이유는 아닌 모양이다.

    그리고 미리엘의 말을 통해서, 릴리가 빠진 이유도 일단은 확실히 설명이 됐다.

    어쩐지 심층에서도 회복 마법을 쓸 수 있는 만큼 제일 중요한 멤버 중 한 명일 사람이 빠졌더라.

    이거 아쉽게 됐네. 이번에 만나면 은근슬쩍 애널라이즈를 써서 레벨이라도 확인해보려고 했는데.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기는 하지만.

    "하긴. 그건 그렇겠네."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하면서도,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뭔가 이렇게 툭 터놓고 던전의 마지막 층에 대한 정보를 공유해주니까 살짝 미심쩍어지기는 했지만, 나는 여전히 얘들이 뭔가 뒤가 구린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애들이, 어쩌면 이번 여정으로 던전의 마지막 층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거, 막아야 하는 거 아니야?

    "물론, 만약 마지막 층에 갈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조사할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약속은 잊지 않고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수상한 것이 발견되면, 곧바로 귀환해서 너희에게 보고. 맞지?"

    그리고 마치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미리엘이 시원스러운 미소와 함께 그렇게 말했다.

    저 미소만 보면, 진짜로 그냥 좋은 녀석 같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래. 그렇지. 여신님이 굳이 날 이 세계에 데려와서까지 시키려고 한 일인 만큼 진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조심해라. 릴리씨가 빠져서 힐러도 없는 거니까."

    결국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런 말로 최대한 미리엘을 겁주는 것뿐이었다.

    "…그래야지."

    오히려 역효과만 낳은 것 같기는 했지만.

    마냥 호인처럼만 보이는 녀석이지만, 역시 이 녀석도 살짝 맛이 갔어.

    위험하다니까 더 두근거리는 표정을 짓다니.

    괜히 그 아라크네 클랜의 클랜장을 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얘기인가.

    던전의 마지막에 가고 싶은 이유가 단순히 더 강한 상대와 싸워서 더 강해지고 싶다고 했던 예전의 그 말이 정말일지 거짓일지는 몰라도, 일단 얘가 진짜배기 전투광이라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이런 세계에서 대체 어떻게 이런 전투광이 태어난 건지.

    전쟁신의 축복까지 받고 있는 우리 쪽 용사님보다, 성향만 놓고 보면 얘가 훨씬 더 용사에 잘 어울리는 거 아니야?

    아니. 애초에 그 쓰레…또 다른 용사인 레온이랑 실력이 호각이라고 했으니, 얘가 용사일 리는 없겠지만.

    누가 봐도 얘가 레온보다는 레벨이 높고, 전투 경험도 많은데 실력은 호각인 거니까.

    얘가 용사라면 말이 안 되는 얘기지.

    아니. 애초에 얘는 마인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미리엘에게 애널라이즈를 써봤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그동안 쓸 기회가 많지 않아서 스킬 레벨은 제자리걸음 수준인 애널라이즈였지만, 어차피 애널라이즈는 내 레벨을 기반으로 발동하는 스킬이다.

    덕분에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미리엘의 정보창이, 이번에는 내 눈앞에 곧바로 뜨게 됐다.

    그리고 그 창을 자세히 본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이름 : 미리엘 아우덴

    종족 : 마인 19

    직업 : 마법검사 250 / 모험가 250

    레벨 : 250

    ……어?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Sasins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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