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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의혹이 어느 쪽으로든 풀린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오히려 진짜 펠리시아가 날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하더라도 난 모르는 척하고 있어야 하니, 모르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
알아봤자 괜히 의식되기만 할 테니까.
하지만 사람 심리라는 게 또 그렇게 이론적으로만 돌아가는 것도 아니라서, 한 번 궁금증이 생기니 그 궁금증을 무시하기 너무 힘들어졌다.
"실비아."
"네, 네헷?!"
가만히 있던 내가 갑자기 이름을 부르자, 마차 구석에서 벽에 찰싹 달라붙어 최대한 나와 멀리 떨어져 있던 실비아가 몸을 움찔하고 떨었다.
그렇게 긴장하지 마라. 잡아먹으려는 거 아니니까.
"위에서 쉬는 동안 성에는 안 갔어?"
"네?! 그, 그것이…가, 갔습니다아…."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내 질문에 실비아는 마부석 쪽 눈치를 엄청나게 보더니 결국 바른대로 실토했다.
아마 거짓말을 해도 바넷사가 있으니 들킬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그런데도 오늘 또 볼 일이 있나 보네."
"그, 그러니까아…그게에…."
실비아야. 눈동자가 정처 없이 헤엄치고 있어.
온몸으로 안절부절못하다 라는 말을 완벽히 표현하면서, 실비아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내놓은 대답이라는 것이.
"구, 구원님과아! 가, 같이…있고 싶어서어…."
자기가 말하면서도 뭔가 정체 모를 불안감을 느낀 건지, 실비아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만 갔다.
하지만, 확실히 저렇게 말해버리면 나도 더 추궁할 방법이 없네.
뭐, 실비아 본인이 직감하고 있듯, 자기 무덤을 파는 발언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나랑 떨어지기 싫었어? 자, 이리 와. 안아줄게."
"우, 우으으…네헤에엥…."
내가 팔을 벌리며 활짝 미소짓자, 실비아는 망했다는 표정과 함께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내 품에 포옥 안겨서는 바들바들 떨었다.
그래. 그래. 울 정도로 좋았냐.
아무튼, 이걸로 실비아가 뭔가 나한테 들키기 싫은 이유로 성에 가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해졌다.
그리고 우리 귀여운 실비아가 나한테 들키기 싫은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뭔가 하고 있다는 건, 분명 펠리시아와 관련된 일임이 틀림없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실비아가 그런 뒤가 구린 짓을 할 리가 없지.
다시 말해서, 내 의혹이 점점 확신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말이다.
이제 펠리시아의 반응만 조금 떠보면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은데.
하필 또 이번에는 그다지 오래 안 끌고 가게 됐네.
던전에서 16일 동안 있었던 거니까, 지난번과 비교하면 정말 빨리 찾아가는 편이었다.
아니. 그래도 혹시 정말로 날 좋아한다면….
"어머, 자기. 이번에는 정말로 빨리 왔네? 전에 나한테 진하게 당한 게 효과가 있었나 봐?"
정말로 펠리시아가 날 좋아한다면, 또 지난번처럼 내가 눈이 돌아가서 사랑한다고 달려드는 경험을 맛보고 싶을 거다.
그러니까 조금 빨리 왔더라도, 일부러 참기 힘든 척을 하면서 그 향을 맡게 할지도 모른다.
전에도 잘 참다가 다 나가고 나만 남은 상태에서 향을 풀어버렸으니까.
그렇게 미약하게나마 기대를 품었던 나였지만, 역시나 펠리시아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뭐, 그렇겠지. 만약 펠리시아가 정말 날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자기 욕망은 대놓고 표현하는 애가 지금까지 그걸 밝히고 있지 않는다는 건, 다시 말해서 나한테 숨기고 싶다는 얘기니까.
그러니 펠리시아가 그런 허술한 짓을 할 거라고 기대하는 것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당연하지. 내가 미쳤다고 그걸 또 당하려고 하겠냐."
정말 순수하게 재미있다는 얼굴로 날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는 펠리시아.
그 얼굴을 뚫어지라 바라보면서, 나는 일부러 조금 심한 말을 내뱉었다.
"엄청 필사적이었는걸. 사랑해. 키스하게 줘. 부탁이야. 뭐든 할 테니까. 아하하하하핫!"
하지만 펠리시아는 그런 내 말에 전혀 상처를 받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아니. 상처받기는커녕 그저 마냥 즐거워 보이기만 했다.
목소리를 낮게 깔고 내 흉내를 내고는 저렇게 꺄르륵 웃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슬슬 진짜 그냥 내가 왕자병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왜 그래? 사람 얼굴 그렇게 빤히 쳐다보고. 앗! 혹시…저기, 자기? 미안해? 마음은 고맙지만…."
"뭘 사과하는 건데?! 아니거든?! 왜 갑자기 내가 차인 것 같은 분위기가 되는거야?!"
"그치만, 자기가 너무 빤히 쳐다보는걸. 혹시 나한테 반했나 했지."
내 고함에, 펠리시아는 혀를 살짝 내밀어서 메롱 하고는 다시 생글생글 웃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평생 그럴 일 없어."
"아앗, 너무해. 자기. 자꾸 그렇게 심한 말을 하면…."
하지만 내가 이번에도 일부러 조금 심한 말을 하자, 드디어 펠리시아가 손으로 자신의 눈가를 매만지며 고개를 숙였다.
"상처받냐?"
"아니. 전혀."
"……."
그럼 지금 하고 있는 그 손동작은 대체 뭔데.
혹시 말만 저러고 실은 우는 건가 싶어서 또 그 얼굴을 빤히 엿봤지만, 역시나 펠리시아는 눈물을 닦는 척만 할 뿐 정작 눈물은 한 방울도 흘리고 있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표정부터 그다지 슬픈 표정이 아니었다.
그리고 우는 척을 하던 펠리시아는 눈동자만을 치켜떠서 내 얼굴을 확인하더니, 내가 자기 얼굴을 빤히 엿보고 있는 걸 보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자꾸 그렇게 심한 말을 하면…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됐어."
하지만 그렇게 미소를 지으며 뭔가 말하려고 했던 펠리시아는, 곧바로 고개를 흔들며 말을 얼버무렸다.
"…뭐?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데?"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신경 쓰지 마. 신경 쓰지 마."
"아니. 그렇게 말하면 더 신경 쓰이는데. 뭔데?"
특히 난 아까부터 네 반응을 살피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더.
오늘 처음으로 내 예상과 비슷한 반응이 나온 거다.
내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추궁하자, 펠리시아는 하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냥. 자꾸 심하게 굴면 나랑 키스한 거 디아나님한테 이른다고 말하려고 했지. 아직 말 못 했지?"
"당연하잖아?! 그런 쓸데없는 말을 왜 해?!"
"자기가 짓궂으니까, 나도 짓궂게 행동하고 싶어져서?"
이 녀석, 눈에는 눈이라는 거냐!
아니. 결국 펠리시아는 도중에 그만뒀고, 내가 캐물어서 대답한 것뿐이지만.
"애초에 그걸 말하면 혼나는 건 나뿐만이 아니거든?"
"그치만, 난 자기가 해달라고 해서 해준 것뿐인걸. 그렇게나 거부했는데도 끈질기게 섹스로 기분 좋게 만들면서 성자님의 테크닉으로 뇌를 녹여버리고, 해롱해롱해진 나한테 끈질기게 달라붙으니까…내가 쾌락에 약한 거 알면서. 짓궂어."
펠리시아는 이번엔 수줍음 많은 소녀처럼 얼굴을 살포시 붉히고는, 두 손으로 자신의 뺨을 감싸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네 기운에 당해서 그런 거잖아?! 뭘 갑자기 부끄러운 척하고 있는데?! 안 어울리니까 그 표정 그만둬!"
"아하하하하핫!"
뭐, 내가 고함치자 곧바로 그만두고 깔깔 웃어댔지만.
"너 진짜 디아나한테 그렇게 말하기만 해봐!"
"말하면 어떻게 할 건데? 혼내줄 거야?"
나는 만약을 대비해서 펠리시아에게 다시 한번 경고했지만, 물론 펠리시아는 전혀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천천히 내게 다가와서는, 손을 뻗어 바지 위로 내 물건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눈을 치켜떠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요염하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그런 플레이도 좋아하는 녀석이었지.
"아니. 앞으로 섹스할 때 재미없게 다른 건 아무것도 안 하고 단조롭게 움직여서 성욕만 처리하고 갈 거야."
아예 섹스를 안 해준다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한 번 하겠다고 약속한 걸 이제 와서 빌미로 잡아 협박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굳이 그러지 않아도, 이 쾌락주의자 녀석한테는 이것만으로 충분히 먹힐 테지.
물론 내가 섹스를 대충 한다고 해서 기분이 안 좋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왕 하는 거면 최고로 기분 좋게 하자는 성격이니까 말이야.
"……!"
설마 내가 그런 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지, 오늘 처음으로 펠리시아가 의외라는 듯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곧바로 재미있다는 듯 진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자기, 날 너무 잘 아는 거 아니야? 혹시 자나 깨나 내 생각만 한다든가?"
"넌 공주병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아하핫. 그치만, 진짜 공주니까 공주병이 아닌걸."
펠리시아는 다시 한번 그렇게 웃고는, 내 몸에서 떨어져 침대로 향했다.
"그럼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자기."
그리고는 그대로 누워서 요염하게 다리를 꼬고는, 유혹하듯 내게 손짓을 했다.
전부 의식하고 하는 건 아니겠지만, 하여간 동작 하나하나가 쓸데없이 요염한 녀석이라니까.
아니. 얘 성격이면, 어쩌면 전부 의식하고 있으면서 일부러 이러는 걸지도.
뭐, 어느 쪽이든 서큐버스라는 종족에는 잘 어울리지만.
아무튼 펠리시아의 말대로, 언제까지 잡담만 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이 이상 대화해봤자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원래는 대화하면서 은근슬쩍 펠리시아의 의중을 떠볼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역시 얘는 속마음을 읽기가 너무 힘들어.
게다가 얘하고는 대화하면 할수록 이쪽이 지치기까지 하니 더 그랬다.
"네이. 네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옷을 벗은 후 펠리시아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요염하게 꼬고 있는 펠리시아의 다리를 잡고 벌리며 그 사이로 몸을 들이밀려고 했지만, 펠리시아는 어째선지 다리를 벌리려고 하지 않았다.
그 대신, 한 손으로 자신의 옆쪽을 톡톡 두드렸다.
"거기 누우라고?"
"응. 어차피 자기한테 맡기면 또 사랑이 담긴 섹스니 뭐니 하는 얘기만 할 거잖아?"
…뭐, 확실히 이번에도 그러면서 은근슬쩍 반응을 엿볼 생각이기는 했지만.
전에는 하면서도 그다지 의식은 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제대로 관찰해보면, 어쩌면 그냥 쾌감에 흐느끼는 것 말고도 다른 표정을 순간순간 보여줄지도 모를 일이고.
"아니. 너도 좋아했잖아."
"그야 기분 좋았지만…자기도 말했잖아. 난 신선한 걸 좋아한다고. 좋은 것도 자주 하면 질리지 않겠어?"
뭐,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저번에도 마냥 그런 섹스만 한 건 아니었는데.
오히려 처음에만 잠깐 그러다가, 나중에는 스킬을 써가면서 철저하게 쾌락에 빠뜨렸었잖아.
자기도 너무 느낀 나머지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할 정도로 녹아버린 주제에.
"그래서, 이번엔 뭘 어쩌겠다고?"
"오늘은 내가 리드해줄게."
펠리시아는 그렇게 말하고, 혀로 아랫입술을 요염하게 한 번 핥았다.
그리고 그 모습은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내 물건에 힘이 불끈 들어갈 정도의 마력이 있었다.
그러니까 하는 짓이 일일이 쓸데없이 요염하다고.
아니. 하는 짓뿐만 아니라 생긴 거든 뭐든 전부.
펠리시아도 내 물건이 커진 걸 눈치챘는지, 눈을 살짝 아래로 내리면서 쿡쿡하고 작게 웃었다.
"리드해준다니. 그거야말로 제일 질리도록 많이 해본 거 아니냐? 너 어차피 다른 놈하고 할 때는…."
펠리시아는 아직 옷을 벗지도 않았는데 혼자 서버린 것에 나는 왠지 무안해져서, 반사적으로 펠리시아의 말에 태클을 걸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내뱉은 그 말은, 뇌 내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탓에 너무 직설적인 말을 되어버렸다.
아차 싶어서 말을 멈췄을 때는 이미 늦었다.
"나, 자기랑 이런 관계가 되고 나서는 다른 남자하고 한적…."
펠리시아는 살짝 몸을 일으켜서 고개를 숙이고는, 뭔가 듣는 사람의 가슴마저 떨리게 할 정도로 애달픈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니. 미안."
분명 처음에는 내가 그렇게 말하기도 했지만, 나중에 마음을 바꿔서 그냥 다른 남자하고도 하라고 하기는 했었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딱히 내가 사과할만한 일이 아니기도 했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사과를 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내 사과에도 불구하고, 펠리시아는 푹 숙인 고개를 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랑 할 때도 처음 빼고는 리드한 적은 거의 없고…."
으, 응? 잠깐만. 뭔가 흐름이 이상하지 않냐?
"그러니까 오랜만에 하면 기분 좋을지도 모를 거라고 생각한 것뿐인데…소녀의 생각을 그렇게 매몰차게 부정해버리시면, 소녀는…소녀는…."
아니. 야. 그러니까 왜 점점 얘기가 이상한 쪽으로 가는 것 같냐?
그리고 왜 쓸데없이 목소리는 계속 애절한 건데?
"아니. 그러니까 미안하다니까."
"그러니까 미안하시면, 여기 누워서 소녀에게 한번 리드를 맡겨주지 않으시겠어요?"
펠리시아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곧장 울기라도 할 것 같은 표정으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이게 지금 장난하나.
"하아…."
뭔가 일일이 상대해주기도 지쳐서, 나는 그냥 펠리시아의 옆에 얌전히 눕기로 했다.
그러자 펠리시아는 곧장 표정을 바꿔서 생글생글 웃고는, 자기도 뒤로 벌러덩 누운 후 몸을 내 쪽으로 반 바퀴 빙글 돌렸다.
"응. 응. 우리 자기 착하지 착해."
그리고는 손으로 자기 뺨을 받친 후, 날 내려다보며 앞머리를 손끝으로 부드럽게 정리하듯 매만져줬다.
"누가 네 자기라는 거야."
"자기도 참. 그냥 한 말이잖아. 여자 말에 일일이 트집 잡으면 인기 없을걸?"
"이미 충분하고 남을 정도로 인기 있으니까 신경 꺼라."
"아하핫. 자신감 넘치는 것 봐. 반하겠어."
"반하기는. 사랑이라는 감정이랑은 담쌓은 몸이잖아?"
"응. 그래. 그랬지. 자, 그럼 자기, 기대해. 오늘은 듬뿍 서비스해줄 테니까. 공주님의 극진한 봉사, 쉽게 맛볼 수 있는 게 아닌 거 알지?"
펠리시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내쪽으로 더 돌려서 내 반신 위에 그 몸을 비스듬하게 기댔다.
하지만 그 몸의 부드러운 감촉을 전신에 맛보면서도, 나는 머리 한구석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야. 너 잘 하다가 또 왜 그러냐. 이러면 또 의식을 할 수밖에 없잖아.
그랬지는 과거형이라고.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GoodYear // 상대방한테 아예 신경을 안쓰고 있어야 일하는 건데, 이미 한번 신경을 써버렸으니까요.
OneChance // 그러게요. 제가 다시 봐도 그런 것 같아서 조금 내용을 추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