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804화 (788/1,205)
  • <-- . -->

    마틸다를 그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바넷사가 찾아온 것도 돌려보내고 마틸다가 잠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

    바넷사 녀석. 그래도 아침 식사는 부르러 와줬다고 생각했더니, 내가 나중에 간다고 말하자마자 더 말도 안 하고 그냥 돌아가 버리더라고.

    물론 마틸다를 신경 써줘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역시 이유가 그거 하나만은 아닌 것 같단 말이지.

    아무튼 그렇게 마틸다를 내 방에 재우고, 나는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식당으로 내려갔다.

    "구원씨 안녕히 주무셨어요. 추기경님은 어떠신가요? 괜찮으실 것 같은가요?"

    그리고 식당에 내려가니, 다들 마틸다를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어제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시점에서 당연한 얘기지만, 다들 디아나한테 사정을 들어서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내가 어제 하루종일 마틸다와 있어 주고도, 오늘 아침마저 평소보다 늦게 나타나니 더욱 걱정이 됐던 거겠지.

    나한테 인사를 하자마자 마틸다의 안부부터 묻는 걸 보면 말이다.

    "응. 괜찮아. 걱정할 것 없어."

    물론 여전히 아쉬움은 크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막 호들갑을 떨 정도는 아니겠지.

    어제 나랑 얘기하면서 감정 정리도 어느 정도 잘 마쳤고, 애초에 멘탈 하나는 그 누구보다 튼튼한 애니까.

    그리고 호들갑 떨면서 걱정하는 게 괜히 더 의식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그럼 마틸다씨는 왜 같이 오지 않은 거야?"

    하지만 내 말이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 건지, 다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마틸다가 지금 안 온 건 던전에 못 가게 된 거 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이유인데.

    뭐, 그것 때문에 평소보다 더 격렬하게 섹스를 한 거니, 따지고 보면 전혀 상관 없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그거야 물론…헤헷."

    내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자, 모두의 표정이 순식간에 걱정하는 표정에서 질렸다는 표정으로 변했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동시에.

    "하아…하여간 못 말려."

    평소라면 한소리 할 사라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왜 그랬는지 이유가 대충 짐작이 가는 만큼 뭐라고 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대신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하지만, 일단은 괜찮은 모양이구먼."

    "그럼. 그럼. 내가 누군데."

    나는 그렇게 말하고, 레이첼 누님의 옆자리에 엉덩이를 내렸다.

    "안녕. 잘 잤어?"

    "응. 구원이도. 좋은 아침."

    나랑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게 어색할 만도 한데, 누님은 완벽한 미소를 보여주며 그렇게 인사를 받아줬다.

    이것도 혼자 연습하고 오신 걸까?

    "어제는 미안. 너무 정신이 없어서."

    마틸다와 던전에서 나오면서, 당연한 얘기지만 누님께도 얼굴을 비췄다.

    하지만 경황이 없다 보니,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황급히 수속만 마치고 나와버렸단 말이지.

    "아니. 누나도 사정을 들었는걸. 괜찮아. 전부 이해해."

    누님은 내 사과 역시도 깔끔한 미소로 받아줬다.

    하지만 사과할 건 이걸로 끝이 아니란 말이지.

    "그리고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갑자기 던전에 들어가 버린 것도 미안해. 레이첼이랑 얘기를 하고 나니까 너무 의욕이 샘솟아서."

    이유야 어찌 됐든, 누님이 저택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제대로 적응도 하기 전에 던전에 틀어박혀 버린 거다.

    그때는 의욕이 너무 폭발해서 곧장 던전에 들어간다고 말해버렸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조금 여유를 가지고 하루 이틀 정도 늦췄어도 됐었지.

    그렇게 하면 디아나한테 차례를 양보하도록 부탁할 필요도 없었고.

    "어머, 누나 때문이었니?"

    "아니. 핑계 대는 건 아니고. 미안."

    "후훗. 아까부터 계속 사과만. 괜찮아. 전부 이해하니까. 그러니까 슬슬 식사나 하세요. 아니면 누나가 먹여줄까?"

    레이첼 누님은 자기 때문에 내가 곧바로 던전에 갔다는 말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다시 완벽한 미소를 보여주면서 장난스럽게 그런 말까지 해줬다.

    하지만 누님. 누님이 아무리 연습하고 오셨어도 장난은 제가 한 수 위에요.

    "응."

    "으, 응?!"

    "먹여줘. 아아…."

    내가 얼굴에 철판을 깔고 그렇게 말하며 입을 벌리자, 누님은 설마 이렇게 나올 거라고는 예상 못 했다는 듯 갑자기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완벽한 미소를 짓고 있던 미소도 살짝 금이 가서, 동요의 기색이 얼굴 전체로 퍼져가는 누님.

    그런 누님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후하핫. 누님. 앞으로 그런 걸 준비해오실 거면 더 완벽하게….

    "스스로 먹어!"

    "아베시!"

    하지만 레이첼 누님을 곤경에서 구해준 건 다름 아닌 사라였다.

    이, 이 녀석. 포크에 파스타를 말아서 그대로 입안에 쑤셔 넣었어.

    찔리면 어쩌려고?! 다른 애들이면 몰라도 네가 든 포크에 찔리면 아무리 나라도 아프다고!

    그렇게 생각한 나였지만, 불평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입안에 들어온 이 포크가 방금 전까지 사라가 파스타를 먹었던 그 포크라는 사실을 깨달았거든.

    때문에 나는 얌전히 입안에 들어온 파스타를 우물우물 씹어먹기로 했다.

    그러자 사라가 황당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기는 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아직 황당해하기는 이르다고.

    "이, 무, 무…!"

    내가 파스타를 다 먹고도 포크를 계속 물고 있자, 사라가 내 입안에서 자신의 포크가 어떤 짓을 당하고 있을지 상상이라도 한 듯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내가 혀로 낼름낼름 핥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라도 한 걸까?

    뭐, 실은 딱히 아무 짓도 안 하고 있지만.

    인간의 상상력이란 것이 이렇게나 무섭습니다.

    "이, 이 바보! 안 빼?!"

    그리고 사라는 황급히 포크를 빼내려고 했지만, 물론 나는 이빨에 꽉 힘을 줘서 그걸 막았다.

    훗. 아무리 힘을 써봐라. 그게 빠지나.

    인간의 치악력은 완력보다 몇 배는 더 세다고.

    "후우. 자."

    그렇게 한참을 물고 있다가, 나는 겨우 한숨과 함께 사라의 포크를 놔줬다.

    "아."

    "뭐가 아야! 안 줄 거야, 이 바보야!"

    그리고 다시 한번 입을 벌려봤지만, 물론 돌아온 건 포크가 아니라 손바닥이었다.

    내 안면을 때리다니. 너무해.

    이렇게 된 이상, 나도 더이상 참고 있지만은 않겠어!

    "와. 그걸 그냥 또 먹으려고 하네. 실은 좋았던 거지? 이제 나랑 키스하는 기분으로 그 포크를 구석구석…."

    "찌른다?"

    "죄송합니다."

    이제 혼자서 파스타를 먹으려는 사라를 놀리자, 사라가 날카롭게 빛나는 포크를 내 옆구리에 들이밀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폭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크흑. 치사하게 무력을 사용하다니. 더러운 용사 같으니라고.

    하지만 뭐, 결국 내가 입에 물고 있던 포크로 파스타를 먹으며 얼굴을 살짝 붉히는 모습이 귀여우니까 용서하기로 하자.

    "…제가 드릴까요? 자, 아앙…."

    그렇게 겨우 진정되는 분위기에서 이제 진짜 식사를 시작하려고 했던 나였지만, 이번에는 맞은 편에 앉아있던 레이아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앞으로 숙이고 빵을 든 손을 내 쪽으로 뻗었다.

    크흑! 천사야! 천사가 있어! 역시 내 마음의 오아시스!

    하지만 천사님?! 천사님?! 그런 자세를 취하시면 가슴이 음식에! 닿아요! 닿는다니까요?! 자기 가슴 크기를 생각해주세요!

    "레이아! 그러니까 레이아는 너무 구원의 어리광을 받아준다고요! 디아나도 그러고 있지 말고 한마디 해줘요!"

    물론 레이아의 그런 모습을 보고, 나보다 먼저 사라가 한마디 했다.

    뭐, 내가 하려던 말과는 전혀 다른 말이었지만.

    그리고 과연 혼자서는 벅차다고 생각한 건지 디아나까지 도움을 요청한 사라였지만.

    "코홈. 자네가 그렇게나 원한다면 이 누나! 도 해주지 못할 것도 없네만."

    "디아나?!"

    디아나마저도 사라 편은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디아나야. 그 말투는 뭐냐. 너 혹시 레이첼 누님이 누님티 팍팍 내는 거 보고 조금 부러웠니?

    아무튼 그렇게 오늘도 왁자지껄하게 식사를 마치고, 나는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조금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일단 제일 급선무는 아라크네 클랜과의 일이지.

    고작 2주 만에 거북이굴을 구석구석까지 전부 조사하고 보고까지 해준 거다.

    그렇게 의욕적으로 일 처리를 해줬으니, 동맹으로서 우리도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곤란하겠지.

    앨리시아도 조만간 이쪽에서 연락하겠다는 말로 돌려보내기도 했고.

    하지만 어제 막 던전에서 돌아왔으면서 또 곧바로 던전에 들어가는 것도 조금 그렇단 말이지.

    물론 내 체력이나 의욕은 문제가 없지만,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도 신경을 써줘야 하지 않겠어?

    파티원들은 번갈아 가면서 알콩달콩하게 지냈지만, 바넷사나 레이첼 누님은 그렇지 않으니까.

    특히 레이첼 누님. 누님이 이사 오고 같이 사는 기분을 맛보기도 전에 던전에 가버렸으니, 이번에는 조금 그런 기분을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뭐…이건 어디까지나 덤이지만 펠리시아의 성욕도 처리해줘야 하고.

    펠리시아인가….

    그러고 보니 던전에서 성장에 집중하느라 전혀 신경을 안 쓰고 있었지만, 그 녀석도 뭔가 조금 의심스럽단 말이지.

    아니. 왕자병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기는 하지만.

    좋아. 어디 한번 확인하러 가볼까.

    어차피 곧장 던전에 가지 않을 거면 펠리시아의 일부터 제일 먼저 처리하는 게 마음 편하기도 하고, 어차피 레이첼 누님은 출근하셨으니까.

    그렇게 정했으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하나밖에 없다.

    "바넷사!"

    바로 우리 슈퍼 집사님을 부르는 것 말이다.

    하지만 어째선지, 다른 때 같으면 언제 어디서든 내가 이름만 부르면 나타나는 우리 집사님께서 오늘따라 등장이 늦으셨다.

    "바, 바넷사?"

    어, 어라? 두 번이나 불렀는데 이래도 안 나타나?

    "바넷사씨? 집사님? 애인님? 예쁘고 섹시하고 멋진 우리…으읍."

    "그만하십시오."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야, 바넷사는 겨우 그 모습을 드러냈다.

    불러서 왔다기보다는, 내 입을 틀어막기 위해 나타났다는 느낌이었지만.

    뭐야. 역시 듣고 있었잖아.

    "너 아직도 아래에서 있었던 일가지고 그러는 거냐?"

    "아직도?"

    입을 막고 있는 바넷사의 손을 치우고 그렇게 말하자, 바넷사가 살짝 눈썹을 움찔거리며 그렇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고작 그런 일이라는 어투로 말한 내 말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모양이다.

    벌써 2주가 넘게 지났는데도 이러는 걸 보니, 바넷사 입장에서는 아마 상당히 부끄러운 경험이었던 거겠지.

    하여간 평소에 하는 행동은 제일 쿨한 주제에 은근히 이상한 곳에서 소녀 감성이라니까.

    하지만 말이지, 바넷사야. 내 여자로 있을 거면 그 정도는 고작 그런 일 맞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실은 다들 그 정도 수준의 섹스는 하고 있단 말이야.

    심지어 너보다 늦게 내 여자가 된 레이첼 누님마저도 그 정도 수준의 섹스는 맛봤을 정도라고.

    "아무래도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이것만큼은 나도 양보 못 해. 네가 익숙해져."

    "……!"

    설마 내가 이렇게 말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지, 바넷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살짝 눈만 크게 떴다.

    "정 힘들면 도와줄 수는 있는데."

    "…뭘 말입니까."

    "뭐기는. 나랑 하는 부끄러운 짓에 익숙해지는 걸 말하는 거지."

    그렇게 말하고, 나는 곧바로 바넷사의 허리를 휘어잡아서 내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원래는 펠리시아한테 갈 생각이었지만, 뭐, 하루 정도는 늦어도 상관없겠지.

    "큿! 전 지금 집사…으읍!"

    바넷사는 내 가슴을 손으로 밀치고 고개를 흔들며 저항을 하려고 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입술에 그대로 입을 맞췄다.

    "어때? 조금 익숙해질 것 같아?"

    "…크윽. 이런 걸로 익숙해질 리가 없지 않습니까."

    혀까지 써가면서 조금 끈적한 느낌으로 키스를 한 후에 입술을 떼고 그렇게 물어보자, 바넷사는 있는 힘껏 날 노려보며 대답해줬다.

    아무래도 지금은 집사라고 말했음에도 키스를 한 게 상당히 원망스러운 모양이다.

    뿔이나 꼬리까지 나오지 않은 걸 보면 말이야.

    뭐, 폴리모프가 풀리는 건 억지로 참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도 바넷사한테 미움받는 건 원하는 바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계속 이런 상태로 지낼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안 그러겠다는 거짓말은 또 못하겠고.

    같이 지내다 보면 분명 또 그런 식으로 섹스할 날이 올 거야. 나라는 놈은 반드시 그래.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