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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802화 (78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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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앨리시아와의 대화를 마치고, 나는 조만간 연락을 주겠다는 말과 함께 앨리시아를 돌려보냈다.

    생각보다도 훨씬 더 실속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어.

    원래는 돌려보내려고 했었는데, 그러지 않기를 잘 했지.

    이것도 전부 마틸다 덕분이다.

    뭐, 마냥 마틸다에게 감사하고 있을 때도 아니지만.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기에는 마틸다가 오도카니 앉아서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들어왔는데도 고개도 들지 않는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절로 한숨이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앨리시아와의 대화가 끝나고, 나는 먼저 마틸다에게 내 방에 가 있도록 부탁했다.

    그리고 앨리시아를 돌려보낸 후, 디아나와 둘이서 조금 더 얘기를 하다가 다시 방으로 왔다는 얘기다.

    즉, 지금 여기에 있는 건 우리 둘뿐.

    솔직히 나 혼자 이런 얘기를 하는 건 부담이 크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런 얘기는 둘이서만 하는 게 좋을 테니까 말이야.

    좋아. 시작하자.

    막막한 심정을 억지로 가슴 한구석에 눌러놓고,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서 마틸다의 정면에 엉덩이를 내렸다.

    "마틸다."

    "읏…!"

    이제부터 내가 어떤 얘기를 하려는 건지,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얘기하듯, 내가 이름을 부르자마자 마틸다가 침음성과 함께 몸을 움찔하고 떨었다.

    "미안. 여러모로 방법을 생각해봤는데, 역시 지금으로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그래. 방에 돌아오기 전 디아나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생각해봤지만, 결국 우리는 그런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그나마 제일 현실적인 해결책이 던전의 마을 중심에 설치하는 마나 성질 변환기를 들고 다니는 것이었지만, 디아나의 말에 따르면 아무리 소형화시켜도 던전 탐험을 하면서 들고 다닐만한 크기까지는 줄이지 못한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만약 억지로 들고 다닐 만 한 크기로 만들어 본다고 해도, 그래 봤자 출력이 부족해서 마틸다가 던전에 다닐만한 수준은 되지 못할 거라고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디아나가 하는 말이다.

    아마 마법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거겠지.

    그리고 마법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건, 다시 말해서 마틸다가 앞으로 던전에 다닐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얘기였다.

    아니. 사실 딱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했다.

    바로 마틸다의 몸에 남아있는 저주를 다시 키우는 거다.

    밖을 돌아다니며 다른 남자에게 사랑에 빠지기를 반복하는 거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꼴만큼은 내가 죽어도 못 보지.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방법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거다.

    애초에 다른 사람을 수없이 많이 희생시켜야 하는 그 방법을, 마틸다가 선택할 거라고 생각되지도 않고.

    "그러니까 정말 미안한데, 앞으로 마틸다는 같이 다니지 못할 것 같아."

    생각해보면, 마틸다는 파티에 들어오는 것부터 조금 특이하기는 했다.

    다른 애들은 그래도 다들 필요성을 느끼고 파티에 들인 거라면, 마틸다는 스스로 따라오겠다고 달라붙은 거였고, 당시에는 나도 반쯤 황당해하면서 그러라고 했던 거니까.

    하지만 그렇게 들어온 멤버라고는 해도, 아니. 그렇게 자신이 원해서 던전에 따라다니던 마틸다였기 때문에, 이렇게 더는 같이 던전에 다니지 못할 거라고 얘기하는 게 상당히 가슴이 아팠다.

    "…역시 그런가요."

    아마 마틸다도 방에서 혼자 기다리는 동안 마음의 준비를 한 거겠지.

    어쩌면 앨리시아와 얘기를 나눴을 때부터, 아니. 디아나에게 저주의 마나 특성을 검사받았을 때부터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때문에 우리 추기경님께서는, 일견 의연한 목소리로 그렇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래도 감정의 동요를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는지, 무릎에 얹어진 양손에 힘이 꽉 들어가서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래."

    "……."

    나는 그렇게 말하고 마틸다의 옆으로 다가가서, 그 머리를 내 가슴에 꽉 껴안아 줬다.

    그러자 마틸다는 이제 손뿐만 아니라, 몸 전체를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어서 보이지는 않지만, 어쩌면 눈물까지 흘리고 있는 게 아닐까?

    "…왠지, 분하네요. 제가 조금만 더 참을 수 있었으면…."

    "참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라는 건 마틸다도 얘기를 들어서 알잖아. 그 마신의 마력이라고. 어쩔 수 없는 문제였어."

    "하지만…그래도…마신을 상대하는 거니까 더욱 제가…뭔가…뭔가 방법이 없을까요?"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말하는 도중에 점점 더 미련이 생긴 모양이었다.

    마틸다는 내 가슴에 얼굴을 비비면서 물기 어린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 목소리에 나는 마음이 약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이럴 때 나까지 마음이 약해져서 이상한 말을 해버리면 결국 마틸다를 더 무리시키는 결과만 나올 거다.

    때문에 나는 마음을 다잡고, 확실한 말투로 대답했다.

    "없어. 만약 있다고 해도, 그게 마틸다에게 무리가 된다면 절대 시키고 싶지도 않고. 그러니까 앞으로 마틸다는 위에서 우리를 응원해줘."

    "전 조금 무리하는 것 정도는…!"

    하지만 내 말투에서, 마틸다도 깨달은 모양이었다. 만약 자신이 무리를 하면, 던전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젠장. 하필 이럴 때 단어 선정을 실패하다니.

    "그러니까 내가 싫다고. 그러니까 만약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거라면 그만둬. 절대 하지 마. 만약 그러면…그…미워한다?"

    그것만큼은 절대 싫었기 때문에, 나는 아까보다 더 강한 말투로 마틸다에게 그렇게 말했다.

    뭐, 마지막 문장에서는 살짝 목소리에 힘이 빠져버렸지만.

    어쩔 수 없잖아. 저것만큼은.

    "후훗. 가능한 건가요?"

    내 강한 말투에 마틸다는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하지만 마틸다도 마지막 말은 조금 웃겼던 모양이다.

    여전히 목소리에 슬픈 감정이 배어 나오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까보다는 살짝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의도하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된 건가?

    "웃지 마. 진짜로 엄청 노력해서 미워할 거니까."

    "…네. 그러면 저도 포기할 수밖에 없겠네요."

    역시나. 말투를 보아하니, 마틸다도 그사이에 자신이 던전에 갈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 뭔지 깨닫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여간 머리는 좋다니까. 뭐, 그렇지 않으면 저런 젊은 나이에 추기경님이 될 수는 없었겠지만.

    하지만 저 말투를 보아하니, 내가 미워할 거라고 말 안 했으면 시도했을지도 모른다는 건가?

    추기경님. 너 원래 그런 성격 아니잖아?

    착해 빠져서 남이 걸린 저주를 자기가 대신 뒤집어쓰고, 저주를 빨리 없애고 싶어 하는 것도 고자가 된 수많은 사람들 때문이었잖아.

    그런데 나와 던전에 다니기 위해서 또 저주를 다시 키울 생각까지 했다니.

    아니. 그냥 말만 그렇게 말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래도 그렇지. 너 대체 날 얼마나 좋아하는 거냐?

    실은 굳이 핑크빛 모드가 안 돼도 머릿속은 항상 핑크빛인 거 아니야?

    "미안. 최대한 자주 올라올 테니까."

    "아니요. 괜찮아요. 고작 던전에 있는 동안 얼굴을 못 보게 된다고 해서 제 이 마음이 사라질 일은 없을 거라고, 구원씨가 알려주셨으니까요."

    역시나 마틸다는 저주가 사라지면 자신의 감정도 사라질지 모른다는 사실을 계속 마음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까 마틸다에게 그런 말을 해줘서 정말 다행이다.

    "오히려 저야말로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해서 미안해요. 아래로 내려갈수록 저도 도움이 될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결국 마지막까지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네요."

    게다가 지금까지 쭉 뒤에서 지키고만 있었던 마틸다는, 속으로 그런 생각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여간 얘는 은근히 혼자 속앓이를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니까.

    물론 처음 만났을 때부터 속마음이랑 겉모습이 따로 노는 스타일이기는 했지만.

    자신에게 함부로 다가오지 못하도록 일부러 고압적으로 굴었던 태도는 저주가 풀려가고 나와의 관계가 진전되면서 점점 사라졌지만, 그래도 할 말을 전부 안 하고 속에 담아두는 성격은 천성인 모양이다.

    "그렇지 않아. 오히려 지금까지도 엄청 도움이 됐어. 마틸다가 뒤에서 든든히 버텨주고 있으니까, 나도 앞에서 마음껏 바보짓을 할 수 있었던 거고."

    "그래선 제가 있었기 때문에 당신이 무리했다는 말밖에 안 되잖아요."

    "무슨 소리야. 무리라니. 난 좋아서 바보짓을 하는 건데. 앞으로 못하게 될 생각을 하니까 막막할 지경이라고."

    마틸다는 살짝 기가 찬다는 말투로 말했지만,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의도는 잘 전달됐는지 더욱 내 몸에 몸을 기대며 두 팔로 날 꽉 끌어 안아줬다.

    "그리고 위에 있다고 해서 도움을 못 주는 것도 아니잖아? 도와줄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

    "…예를 들면요?"

    "여신님이 내려주신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서 신전의 도움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잖아? 그럴 때의 연락책으로 마틸다만큼 적임인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 그게 아니더라도, 선배 성녀로서 레이아에게 전투의 노하우를 전해줄 수도 있고."

    마틸다가 원래 성녀 후보였다는 사실로부터 알 수 있는 얘기지만, 성녀는 성기사에서도 전직을 할 수 있는 직업이다.

    그리고 대사제인 레이아 역시 상위직에 성녀가 존재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성녀는 사제 계열과 성기사 계열을 합친 하이브리드형 직업이라는 얘기가 된다.

    원래부터 레이아도 마틸다도 성녀로 만들 생각이었으니, 레이아가 성녀가 되면 당연히 지금까지와는 전투에 참여하는 방식도 바뀌게 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순수하게 힐러 역할만 수행한 레이아가 곧바로 그런 포지션에 적응할 수 있을 리도 없을 거고, 그에 관해서 제일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바로 마틸다였다.

    "…그러네요."

    그렇기 때문에 레이아의 얘기도 꺼낸 거였지만, 내 말을 들은 마틸다의 목소리에는 살짝 씁쓸함이 묻어났다.

    그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나도 자신의 말실수를 눈치챌 수 있었다.

    이런. 바보 같은 놈. 마틸다가 위에서도 도움 될 수 있을 만한 것만 필사적으로 생각하다가 정작 그 얘기를 듣고 마틸다가 어떤 기분이 될지는 생각을 못 했잖아.

    안 그래도 이제 같이 던전에 가지 못하게 되어서 슬플 텐데, 비슷한 위치면서도 여전히 같이 던전에 다닐 수 있는 레이아 얘기를 꺼내다니.

    "미안. 그럴 생각으로 한 말이 아니라…."

    "아뇨. 괜찮아요. 정말로 그런걸요. 당신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만한 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전 기뻐요."

    하지만 마틸다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어줬다.

    "자, 그럼 이제 다시 던전으로 가셔야죠? 아, 제가 못 가게 됐으니까 사라씨를 불러와야 할까요?"

    게다가 고개를 들고는 그런 말까지 해왔다.

    애써 미소까지 지어 보이면서.

    "아니. 오늘은 쉴 거야."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하자, 마틸다의 미소가 살짝 흔들렸다.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안 되잖아요. 절 생각해주시는 건 기쁘지만…."

    "애초에 던전 아래에 틀어박히면서 처음 목표로 했던 수준은 며칠 전에 달성했어."

    물론 4계층에서 5계층으로 넘어가는 모험가들의 평균 직업 레벨이나 스킬 수준을 따라잡은 건 아니지만, 애초에 그렇게까지 성장할 정도로 틀어박혀 있을 생각은 없었으니까.

    5계층에서 충분히 제 역할을 수행하면서 싸울 수 있을 수준까지만 성장하면 된다.

    다시 말해서, 무지막지한 스탯으로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만 직업 레벨과 스킬 레벨을 올리면 된다.

    그리고 2주가 살짝 넘는 기간 동안 나는 이미 충분히 그런 수준에 도달해있었다.

    너무 짧은 기간이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평범하게 던전을 다닌 게 아니었으니까.

    평소에 던전을 다닐 때는 사실 전투보다는 지도 작성에 중점을 두며 돌아다니는 게 보통이었다.

    게다가 몬스터와 전투가 일어나도, 경험치를 제일 많이 먹는 건 바로 사라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처음부터 사냥만을 목적으로 해서 적극적으로 몬스터를 찾아다니고 끌고 오며 사냥을 했고, 경험치도 거의 고스란히 내가 먹었으니까.

    아무래도 성장이 빠를 수밖에 없지.

    "오늘 사냥을 가려고 했던 건, 그냥 네 차례까지 돌리고 싶었기 때문이야. 사라부터 시작했으니까, 네 차례에서 끝내는 게 제일 끝맺음이 좋잖아? 그러니까 오늘 사냥은 됐어. 그냥 오늘은 쉬면서 하루종일 너랑 이러고 있지 뭐."

    "당신…."

    내가 그렇게 말하자, 마틸다는 내 몸을 끌어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면서 애틋한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이상하다. 원래 이쯤 되면 핑크빛 모드가 돼야 하는데. 설마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멋있지는 않았나?"

    그리고 그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면서, 나는 살짝 장난기 있는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마틸다가 파티에서 빠지게 되는 건, 전력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매우 뼈아팠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계속 꿀꿀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있을 수도 없잖아?

    영영 못 만나는 것도 아니고, 같이 있는 시간은 즐겁게 있어야지.

    "아뇨. 너무. 너무 멋있어요. 아아…당신…."

    그리고 마틸다 역시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그렇게 말하면서 점점 그 시선을 핑크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생각하는 거지만, 너 역시 핑크빛 모드 조절할 수 있는 거 아니야?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드디어 말할 수 있게 되네요.

    예전부터 마틸다의 등장이 적다는 지적이나, 개성이 부족하다는 얘기는 댓글로 종종 보였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임시 파티원으로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파티원에서 빠질 때 후폭풍이 클 것 같아서 일부러 그런 거였어요.

    생각보다 마틸다가 파티에 있는 기간의 얘기가 너무 많이 길어져서, 결국 그렇게 한 의미가 없어진 것 같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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