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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799화 (783/1,205)
  • <-- 던전의 마나 -->

    다시 핑크빛 시선을 보내며 내게 찰싹찰싹 달라붙게 된 마틸다는, 결국 다음 순번이 교대하러 왔을 때가 되어서야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사라였구나."

    "…뭐야. 내가 와서 불만이야?"

    "아니. 그런 게 아니고. 레이첼 누님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레이첼씨는 일이 있으니까 올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하긴, 그야 그렇지.

    휴가가 쌓였다고는 했었지만, 그래도 나 때문에 상당히 휴가를 자주 쓰기도 하셨고.

    이 특훈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정기적으로 휴가를 막 쓸 수도 없겠지.

    아니. 애초에 같이 사냥하러 가기 위해 휴가를 쓰라고 하는 것도 웃긴 일이다.

    "참고로 바넷사씨도 안 올 거야."

    그렇게 혼자 납득하고 있자니, 사라가 한 가지 소식을 더 알려왔다.

    "바넷사도?"

    레이첼 누님은 납득이 되지만, 바넷사도 라니.

    아니. 그야 바쁜 건 레이첼 누님이나 바넷사나 마찬가지겠지만, 임의로 일을 빠질 수 없는 레이첼 누님과 달리 바넷사는 얼마든지 재량껏 일을 빠질 수 있었다.

    "저번에는 특별히 왔었지만, 매번 그렇게 저택을 비워둘 수는 없대."

    "…혹시 그냥 내 얼굴 보기 부끄러워서 그런 건 아니고?"

    "바보. 그걸 나한테 물어? 보통."

    아니. 완전히 핑계잖아.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한 나는 그렇게 질문을 던졌지만, 사라는 대답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 응. 너한테 물어볼 건 아니긴 하지.

    "대체 뭘 했으면…아, 됐으니까 말하지 마."

    하지만 사라는 토라진 표정을 지으면서도, 마치 힌트를 주듯 한 마디를 더 내뱉었다.

    하여간 귀엽다니까.

    "들으면 흥분할 것 같아서? 아야!"

    괜히 한 마디 덧붙였다가 옆구리를 꼬집힌 나는, 따끔거리는 옆구리를 손으로 문지르며 생각에 빠졌다.

    그렇다는 말은 즉, 결국 내가 성장하는 동안 옆에 붙어있을 사람은 평소에 던전에 같이 다니던 멤버들로 한정되는 건가.

    하긴. 내가 여기 있는 목적을 생각해보면, 그게 맞는 건지도 모른다.

    물론 다들 보조만 해줄 뿐이지만, 그래도 적게나마 직업 레벨이나 스킬 레벨은 오르면서 성장을 할 테고 말이다.

    여기 틀어박혀 있는 동안 바넷사나 레이첼 누님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되는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어차피 펠리시아의 성욕 해결을 위해서라도 가끔 위로 올라가기도 할 거고.

    위로 올라가서 얼굴 보게 됐을 때 잘 해주자.

    그렇게 해서, 나는 날마다 파트너를 바꿔가며 꾸준히 직업 레벨과 스킬 레벨을 올려갔다.

    사냥은 이렇다 할 해프닝도 없이 순조롭게 풀려갔고, 그렇게 각자의 차례도 한 번씩 더 돌았다.

    하지만 마틸다와 세 번째로 사냥을 가게 된 날, 일이 터졌다.

    "으읏…!"

    마을 밖의 물속에 한 발을 뻗은 순간, 마틸다가 소름이라도 돋은 것처럼 몸서리치며 황급히 발을 빼버린 거다.

    "마틸다?"

    황급히 마틸다의 안색을 살피면서도, 나는 직감적으로 마틸다가 왜 이런 반응을 보였는지 이해했다.

    왜냐하면 지난번, 그러니까 마틸다와 두 번째 사냥을 나섰을 때도 살짝 조짐이 보였었거든.

    그때는 마틸다가 곧바로 표정을 다잡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갔지만, 머리 한구석에서 이에 관한 생각을 하고는 있었다.

    내 여자에 관한 일이니까, 소홀히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어?

    그리고 덕분에 이렇게 곧장 반응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괜찮아요. 괜찮으니까요."

    "아니. 전혀 안 괜찮아 보이거든?"

    "…요즘 할머니의 건강을 계속 신경 쓰고 있었으니까요. 그것 때문에 집중력이 조금 약해진 걸지도 모르겠네요."

    집중력이라.

    그 말을 듣고, 나는 내 직감이 맞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그런 거였나.

    "던전에 나가면 답답한 거지?"

    그래. 마틸다는 이전에도 던전에 거부반응을 보였었다.

    디아나 말로는 던전을 감싼 마나 때문이고, 특히 성직자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했었지.

    시간이 지나면서 마틸다도 점차 익숙해지는 것처럼 보였었지만, 그게 또 재발하게 된 거다.

    "…알고 계셨나 보네요. 네. 하지만 괜찮아요. 정신을 집중하면 이 정도쯤은…."

    "지난번에도 살짝 힘들었지?"

    마틸다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다시 마을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나는 그런 마틸다의 팔을 잡아서 멈춰 세웠다.

    "그러니까 할머니를…."

    "아니. 실은 짐작 가는 게 있어."

    마틸다는 할머니에게 신경 쓰느라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그러는 거라고 주장하고 있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전에 보인 그 반응은 그런 정신적인 문제가 원인이 아닌 것 같단 말이지.

    정신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신체적인 문제라는 건데. 이 기간에 마틸다의 몸이 뭔가 변했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딱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마틸다의 팔과 다리로 향했다.

    이제는 온몸을 완전히 꽁꽁 가리는 추기경복이 아니라, 그야말로 성기사라는 느낌의 복장을 하고 있는 마틸다.

    추기경복에 비하면 살짝 노출이 생기기는 했지만, 이제 마틸다도 이 정도 노출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저주가 회복된 상태였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변한 게 있다면 이것밖에 없단 말이지.

    "…당신?"

    "마틸다. 오늘 하루는 쉬자."

    역시 제대로 알아보는 게 좋겠어. 알아볼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때문에 나는 오늘 하루 사냥을 쉬기로 정했다.

    "네? 하지만 저 때문에 그런…괜찮으니까요."

    "아니. 너 때문이 아니야. 내가 그렇게 하고 싶은 거야. 따라 줄 거지?"

    물론 마틸다는 그런 결정에 반발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할머니를 보러 가자는 제안조차도 거절했을 정도로 책임감이 강한 마틸다니, 반발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주장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때문에 일부러 핑크빛 모드를 만들기 위해서 마틸다의 허리를 끌어안고 느끼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

    꼭 이럴 때에 한해서는 마틸다도 핑크빛 모드가 되지 않았다.

    결연한 표정으로 폐 끼치기 싫다는 티를 팍팍 내는 마틸다의 모습에, 나는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제발 오늘만 쉬자. 나도 가끔은 쉬어야지. 벌써 며칠째 사냥만 했단 말이야. 그리고 알아볼 것도 있어."

    "…알아볼 거라니요?"

    내 말의 앞부분은 엄살이라는 걸 알았는지 반응도 보이지 않은 마틸다였지만, 뒷 문장은 조금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었다.

    "네 그 반응 말이야. 조금 짐작 가는 게 있어서. 따라와 줘."

    "네? 잠깐?! 당신?!"

    마틸다는 여전히 조금 납득이 안 되는 것 같은 반응이었지만, 나는 그런 마틸다를 무시하고 그 손을 붙잡은 채 당장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향했다.

    그렇게 내가 향한 곳은, 물론 저택이었다.

    "디아나!"

    "우햣?! 뭐, 뭔가. 자네 왔는가?"

    내가 마틸다를 데리고 디아나의 방에 난입하자, 디아나는 또 뭔가 수상한 마법 연구라도 하고 있었는지 당황하며 날 쳐다봤다.

    "바빠?"

    "아, 아닐세! 전혀 바쁘지 않네! 전혀!"

    역시 뭔가 수상한 짓이라도 했군.

    보아하니 또 나랑 관련된 뭔가를 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성자 스킬 연구라도 하고 있었나?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만.

    "잘 됐다. 잠깐 부탁할 게 있어."

    "음? 갑자기 와서 부탁이라니, 뭔가?"

    "자."

    내가 마틸다와 마주 잡고 있는 손을 앞쪽으로 당기자, 마틸다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앞으로 나서게 됐다.

    "음? 마틸다양?"

    물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건 디아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둘을 바라보며, 나는 일단 상황 설명부터 하기로 했다.

    "과연. 다시 던전에 대한 내성이…그래서, 이 몸에게 무얼 부탁하고 싶은 겐가?"

    "디아나는 마나의 종류라고 할까 특징 같은 것도 알 수 있는 거지?"

    "음? 그야 그렇네만."

    내 말에, 디아나는 당연한 말을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대마법사님. 믿음직스럽다니까.

    "그럼 마틸다의 저주에 담긴 마나의 특징을 한 번 알아봐 줄 수 있겠어?"

    "…과연. 그런 것인가."

    그리고 내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디아나는 내 의도를 정확히 파악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저주의 흔적을 이 몸이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봐야 하네만. 괜찮겠는가?"

    "…네."

    그리고 우리 추기경님도 물론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정확히 파악한 모양이었다.

    원래는 저주의 흔적을 흉측하다고 생각하고 꽁꽁 싸매서 다른 사람에게 절대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는 마틸다였지만, 이번에는 사안이 사안인 만큼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줬다.

    "…여기서 벗으면 되나요?"

    "음. 그 전에 자네, 자네는 잠시 나가 있게."

    "응."

    평소같으면 나도 구경하겠다고 장난이라도 쳤겠지만, 이번에는 그럴 때가 아니었다.

    나는 순순히 밖에 나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방문 앞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자니, 그다지 오래 지나지도 않아서 디아나가 다시 방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로는 옷을 다 챙겨입은 마틸다가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었다.

    "자네의 예상이 맞았네."

    내가 디아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자, 디아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해줬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그런 건가.

    간단히 말해서 이런 얘기다.

    던전에 가득 차 있는 마나는 다름 아닌 전쟁신의 마나다.

    그리고 성직자들이 쓰는 신성력은,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 여신님의 마나다.

    유독 성직자가 던전에서 크게 압박감을 느끼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

    그리고 어린 나이에 추기경이 될 정도로 자질이 뛰어난 마틸다는, 여신님의 마나를 받아들이기에 최적화된 몸을 타고난 만큼 전쟁신의 마나에 대한 거부감도 그만큼 강한 체질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런 마틸다에게 전쟁신의 마나에 대한 내성을 붙여주고 있는 장치가 있었으니, 바로 똑같이 전쟁신의 마나와 비슷한 특징의 마나로 이뤄진 저주였다.

    즉, 마틸다의 몸을 감싸고 있는 저주는 전쟁신 시대의 저주라는 얘기였다.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다.

    아무리 엄청난 저주라지만, 존재하는 모든 마법에 통달했다는 디아나조차 모르는 저주.

    게다가 그 어떤 사제들도 치료를 못 할 정도로 강력한 저주.

    그리고 대상이 섹스를 못 하도록 만드는, 그야말로 여신님의 신자들을 타깃으로 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저주.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대의 유적을 건드려 걸렸다는 것까지.

    전쟁신 시대의 저주라고 의심할만한 요소는 처음부터 엄청나게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솔직히 그다지 신경은 안 쓰고 있었다.

    저주가 전쟁신 시대의 저주든 뭐든 간에 결국 나한테는 통하지 않는 저주였고, 내가 풀 수 있는 저주였으니까.

    하지만 설마 그 저주 덕분에, 마틸다가 던전을 제대로 다닐 수 있는 거였다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의심을 해야 했다.

    분명 마틸다가 맨 처음 던전을 갔을 때, 그러니까 날 따라서 처음부터 5계층에 갔을 때는 분명 마틸다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저주가 온몸에 퍼져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내가 저주를 풀 수 있다는 걸 알고 조금씩 마틸다의 저주를 풀어갔고, 그 결과 마틸다는 이번엔 4계층에 가자마자 거부반응을 보였다.

    유일한 의문점이 있다면 그 이후로 마틸다가 4계층에 적응한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는 건데.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조난 당했다가 구조된 다음부터 그랬지만.

    …응? 잠깐만. 마틸다는 분명 그때 내가 걱정되어서 4계층 마을에 계속 있다 보니 적응됐다고 말했었지?

    하지만 아까 전에 보였던 반응을 보면, 원래 던전 안이라도 마을에서는 문제가 없었다. 거부반응을 보이는 건 마을 밖뿐.

    애초에 마을은 텔레포트 마법진을 중심으로 던전의 마나의 성질을 바꾸는 장치도 같이 설치되니, 던전의 마나에 닿을 일이 없다.

    그 말은 다시 말해서 아무리 마을에 오래 있었다고 해서 던전의 마나에 적응할 일은 없다는 말로…젠장! 내가 지금까지 왜 이걸 놓치고 있었지?!

    "마틸다 그럼 너 그동안 계속 억지로 참고 있었던 거야?!"

    "……."

    내 외침에, 마틸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해버렸다.

    역시 그런 거였나!

    마틸다는 던전의 마나에 적응한 게 아니었다. 그냥 무식하게 참고 있었던 거였다.

    그리고 이번에 내가 특훈을 하면서 나와 섹스할 일이 많아지면서 저주가 급속도로 풀리게 되자, 점점 강해지는 거부반응에 결국 참지 못하고 티를 내버리고 말았다는 거다.

    젠장. 뭔가 내 여자의 일이니까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거야! 전혀 눈치 못 채고 있었잖아!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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