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797화 (78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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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님하고는 통신 마법으로 대화한 거지?"

    "네? 네. 그야 그렇죠."

    "그럼 이건 어때? 오늘은 하루 쉬고, 교황청에 직접 얼굴이라도 보러 가는 거야. 직접 보고 나면 조금 안심이 될지도 모르잖아? 분명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갈 수 있었지? 나도 같이 가줄 테니까."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많지 않다.

    내 특기인 장난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푸는 것도, 이런 상황에서는 적절치 못하니까 말이다.

    때문에 머리를 쥐어짠 끝에, 나는 마틸다에게 그런 제안을 했다.

    "당신…아뇨. 괜찮아요. 이런 일로 방해가 되기는 싫은걸요."

    하지만 마틸다는 그런 내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래도 내 말에 살짝 미소를 짓는 걸 보니, 아까보다 기분은 나아진 모양이었다.

    "아니. 이런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네 할머니면 나한테도 처조모님이 되는 거고."

    "아뇨. 정말 괜찮아요. 할머니도 그 시간에 제 저주를 빨리 풀기를 바라실 테니까요. 그리고 저도…."

    그렇게 말하면서, 마틸다는 살포시 뺨을 붉혔다.

    게다가 아직 핑크빛 모드가 된 건 아니라고는 하지만, 명백하게 그런 눈빛으로 내 쪽을 힐끔힐끔 보기까지 했다.

    이건…그런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거지? 내가 착각하는 거 아니지?

    "할까? 당장."

    "네? 안 되잖아요. 그런 건."

    핑크빛 모드가 아닌 마틸다는 바른말만 하시는 추기경님답게 그렇게 말하며 살짝 몸을 빼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그 목소리로 보나 행동으로 보나 저항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수준이었다.

    "어째서?"

    "어째서라니…그거야…."

    나는 마틸다의 어깨에 두른 팔에 힘을 줘서 그 몸을 끌어당기고, 바싹 밀착한 상태로 그 두 눈을 똑바로 마주 본 채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마주 보고 있는 마틸다의 두 눈이 점점 몽롱하게 풀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틸다의 두 손이 사뿐히 내 가슴 위에 얹어진 순간, 나는 그대로 마틸다의 몸을 침대 위로 밀어 넘어뜨렸다.

    "우응…?"

    그리고 나와 마틸다가 서로 부둥켜안은 채 침대 위로 누운 순간, 바로 옆에서 우리의 것이 아닌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침대에 누워있던 실비아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아, 잠깐 잊고 있었다.

    순간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황이었다.

    "자, 잘 잤어?"

    "……하우으…."

    실비아는 내 어색한 인사를 받고도 무슨 일인지 상황 파악이 안 된다는 듯 잠에서 덜 깬 멍한 눈으로 날 쳐다보다가, 꼴까닥하는 느낌으로 픽하고 고개를 떨구며 눈을 감았다.

    "아니! 야! 다시 기절하면 어떻게 해?!"

    그 모습을 보고 황급히 소리쳐봤지만, 물론 실비아가 눈을 뜨는 일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 캐릭터가 너무 확고한 거 아니냐?

    "당시인…절 봐주지 않으면 싫어요."

    게다가 여기엔 자기 캐릭터가 확고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뭐?! 야, 잠깐! 실비아가 바로 옆…으읍?!"

    이, 이 녀석?! 진짜로 키스를 했어?!

    아니! 야! 상황을! 상황 파악을 하라고!

    너 핑크빛 모드 컨트롤 할 수 있잖아?! 평소엔 잘만 하면서 왜 하필 지금…야, 잠깐! 진짜 안 돼! 서! 선다니까?! 거길 만지면 진짜로 선다니까?!

    그러니까 넌 구미호도 서큐버스도 아닌 주제에 왜 이렇게 테크닉이 좋은 건데?!

    하여간 이 세계의 성직자라는 것들은…!

    아니. 따지고 보면 내가 그 대표 격인 놈이지만!

    아무리 흥분이 되더라도, 실비아의 바로 옆에서 아침부터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발버둥 친 끝에, 결국 나는 간신히 마틸다를 떼어놓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마틸다 녀석, 한 번 핑크빛 모드가 되어버리면 진정시키기 상당히 곤란하다니까.

    옛날에는 막 대하는 걸로 금방 풀어버렸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없고.

    이거 괜히 오늘 사냥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는데. …별일 없겠지?

    아무튼 그렇게 마틸다를 진정시키고, 식사를 룸서비스로 주문한 후 평소보다 늦은 아침을 먹고 있자니 실비아도 냄새에 이끌렸는지 자연히 눈을 떴다.

    그리고 어젯밤 일 때문에 부끄러워 죽으려 하는 실비아를 간신히 돌려보낸 후, 우리는 드디어 오늘 사냥을 시작하게 됐다.

    "결국 실비아씨의 우려는 현실이 됐나 보네요."

    하지만 마을을 벗어나기 직전, 마틸다가 또 그런 말을 해왔다.

    "응? 아, 응. 그거? 뭐, 그렇지."

    뭐, 어제 아침에 얼굴을 봤을 때부터 벌벌 떨고 있었으니, 그야 저택에서 여기로 오기 전부터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겠지.

    마틸다가 실비아가 뭘 두려워하고 있었는지 안다고 해서 이상할 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틸다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냐? 어차피 둘만의 밤이었으니까 뭘 하든 우리 마음이잖아!

    "…뭔가요? 그 자세는."

    하지만 마틸다는 그런 의미로 저런 표정을 한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니. 슬슬 사냥이니까.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자신이 반사적으로 경계태세를 취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무안한 표정으로 자세를 다잡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당신 말이죠…. 아무리 저라도…."

    "이럴 땐 핑크빛 모드 안 될 자신 있다고?"

    "…없지만요."

    살짝 희망을 담아서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나였다.

    "없는 거냐?!"

    "어, 어쩔 수 없잖아요?! 그런 저주니까요!"

    내 태클에 마틸다는 살짝 뺨을 붉히며 그렇게 외쳤다.

    아니. 그거야 그렇겠지만! 대답만이라도 안심할 수 있는 대답을 들려달라고!

    나는 역시 살짝 경계하는 자세를 취하며, 마을을 나가기 전에 잠깐 오늘 사냥에 대해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자 그럼 오늘은 어떤 식으로 전투를 할까.

    마틸다는 우리 파티에서 기본적으로 후위진 호위 역할을 맡고 있지만, 사실 엄밀히 따지면 실비아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직종이라고 볼 수 있었다.

    순전히 우리 애들의 안전을 생각하는 내 고집과 내 비정상적으로 높은 어그로 능력 때문에 뒤를 맡고있는 것뿐이지, 보통 우리 파티 구성이라면 실비아와 마틸다가 전위에 서는 것이 정상이지.

    그리고 내가 그 바로 뒤에서 근접 딜러 역할을 수행하고, 나머지 셋이 뒤에서 지원해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니 사실 전투는 어제 실비아와 했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이런 생각도 든 거다.

    혹시 이게 마틸다의 스킬 레벨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아닐까?

    내가 빨리 강해지고 빨리 아래 계층으로 내려가서 마틸다를 적극적으로 전투에 참여시키며 스킬 레벨을 올린다. 그렇게 해서 최대한 빨리 여신 강림을 배우게 만든다.

    그게 원래 계획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 같은 기회를 그냥 날려버리는 것도 아깝잖아?

    "뭐, 뭔가요? 확인 삼아서 유혹하시는 건가요?"

    내가 마틸다의 얼굴을 빤히 보면서 생각에 잠겨있자, 마틸다는 안절부절못하면서 필사적으로 자신을 억누르는 것 같았다.

    "아니니까 괜히 내 생각에 잠긴 모습 보고 새삼 반하지 마라."

    "누, 누가! 전…! 으읏! 어쩔 수 없잖아요! 멋있으니까! 당신이 전부…당신이…아아."

    야. 이렇게까지 잘난 듯이 말했는데 태클도 안 거는 거냐.

    뭐, 좋아. 태클 안 걸어도 좋으니까 조금만 더 힘내. 아까의 자신 없던 말과는 달리 의외로 꽤나 잘 버티고 있잖아. 조금만 더 그렇게 버티라고.

    혼자 번뇌에 빠져서 괴로워하는 마틸다를 내버려 두고, 나는 마틸다의 스킬창을 열어서 스킬을 확인해봤다.

    대사제의…아, 아니지. 성기사의 신앙심을 찾아야 하지.

    중간에 왔다 갔다 전직도 한 마틸다는 대사제 스킬과 성기사 스킬이 이것저것 섞여 있어서 찾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결국 나는 그 성기사의 신앙심이라는 스킬을 찾을 수 있었다.

    스킬 레벨은…93.

    상당히 낮았던 대사제의 신앙심과는 달리, 성기사의 신앙심은 상당히 높은 레벨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긴, 대사제는 저주에 걸리고 밖에 못 나가는 몸이 되니 전직한 거였고, 원래는 쭉 성기사로 있었다고 했으니까.

    뭐야. 그럼 만렙까지 진짜로 얼마 안 남았잖아?

    그럼 여신 강림도 곧 쓸 수 있다는 건데?

    아니. 그야 만렙에 가까워질수록 레벨 올리기 어렵기도 하겠고, 여기 계층에서는 결국 다 올리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좋아. 그래도 해보는 데까지 일단 해보자.

    "마틸다. 오늘 네 역할은 힐러다."

    "…네. 네?"

    계속해서 번뇌에 괴로워하고 있던 마틸다는, 내 말에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아니. 쓸 수 있잖아. 치료 스킬."

    방금 전에 스킬창을 확인하면서 제대로 힐 스킬도 확인했다고.

    "물론 쓸 수는 있지만요…."

    "괜찮아. 효율이 조금 떨어져도."

    어차피 성기사의 신앙심 스킬의 레벨을 올리는 게 목적이고.

    사실 그런 목적이라면 마틸다를 전투에 적극 참여시키는 게 제일 빠르겠지만, 그래선 내 성장이 더뎌지게 되니 본말전도가 되어버린다.

    한시라도 빨리 여신님을 다시 강림시켜서 날 보낸 진짜 목적이 뭔지 알고 싶은 마음이야 물론 있었지만, 그래도 여기선 미래를 보는 판단을 해야지.

    그렇게 정하고, 나는 마틸다에게 힐러 역할을 맡긴 채 사냥을 나서기로 했다.

    물론 나 자신의 전투 방식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월영무사의 스킬들만을 사용해서.

    단, 그림자 이동은 봉인하고.

    아니. 나도 아쉽지만, 어쩔 수 없잖아. 그림자 이동은 지금으로선 암습용보다 회피용으로 쓰는 게 좋은 스킬이라고.

    마틸다에게 힐러를 맡긴 이상 전투를 하면서 적당히 맞아줘야 하니, 회피기는 전부 봉인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나도 게임을 할 때 효율보다 멋을 중시했던 사람으로서, 이 멋진 스킬을 봉인하는 건 절대 본의가 아니라고.

    "하앗…하아앗…."

    그런 느낌으로 적당히 맞으며 전투를 하고 그때마다 마틸다에게 힐을 받기를 반복하는 동안, 마틸다의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져 갔다.

    역시 마나를 조금 낭비하더라도, 대화할 때 마스크를 맞대는 대신 공기의 정령을 불렀어야 했던 걸까?

    아니면 마틸다가 신성력을 아낀다면서 손으로 직접 터치하는 방식의 치료 마법을 쓰겠다고 했을 때, 허락했던 게 문제였던 걸까?

    아니. 하지만 레이아는 매번 그런 식으로 치료하는 걸 마틸다도 봤을 텐데, 마틸다만 거부하는 것도 조금 그렇잖아.

    "야. 진정해. 진정하라고. 여기 던전이다? 던전이라니까? 너랑 나 둘뿐이라니까? 여기서 핑크빛 모드가 되면…."

    "하아앗…후으응읏…!"

    아니! 야! 왜 단둘이라는 얘기를 듣고 숨이 더 거칠어지는데?!

    안 된다니까?!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안 된다니까?!

    젠장! 다른 애들한테는 전부 힐링 섹스 드립을 쳤는데, 왜 얘한테는 반대로 내가 이렇게 쫄아있어야 하는 거야?!

    그런 식으로 하루종일 아슬아슬 외줄 타기를 하는 심정을 맛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결국 우리는 아무 일도 없이 무사히 사냥을 마칠 수 있었다.

    이 녀석, 결국 잘 참을 거면서 괜히 불안하게 만들고 있어!

    그리고 사냥을 마치고 온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경쟁하듯 여관방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방에 도착하자마자 순식간에 옷을 벗어 던지고 마틸다를 바라보자, 마틸다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달콤한 목소리로 날 부르며 내게 찰싹 안겨 왔다.

    "아아…당시이인…."

    그리고는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듯, 만화라면 눈동자에 하트라도 떠 있을 것 같은 시선으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이봐요. 마틸다씨. 다 좋은데, 왜 옷은 안 벗고 있으신지요?

    아니. 그야 네가 못 참겠는 건 핑크빛 모드였을테니까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오늘 온종일 네 거친 숨소리를 들었던 내 기분도 좀 되어보라고!

    엄청 야했다니까!? 사냥에 모든 마나를 집중해야 할 때에 발기를 가라앉히려고 쓸데없는 마나까지 써버려야 했을 정도라니까?!

    그렇게 사람을 흥분시켰으면 말이야, 날 생각해서라도 너도 들어오자마자 벗었어야지!

    내가 옷 다 벗는 동안 대체 뭘 한 거야?!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린 거야?!

    넌 이런 말도 몰라?! 사람이 물건을 까면 그쪽도 까는 게 예의 아닌…아, 아니. 이건 아니지만. 아무튼!

    그런 스스로도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모를 생각을 하면서, 나는 마틸다의 양어깨를 잡고 황급히 그 몸을 떼어냈다.

    "아앙…당시이인…키스해줘요. 키스으…."

    하지만 마틸다는 떨어지기 싫다는 듯 내 목에 팔을 감고 그렇게 말하며 입술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일단 그 입술에 입부터 맞춰줬다.

    어, 어쩔 수 없잖아! 아무리 흥분했어도 예쁜 건 예쁜 거라고!

    나도 던전에 있을 때나 핑크빛 모드를 질색하는 거지, 이럴 때 핑크빛 모드가 되어주면 그냥 감사하고 예뻐 보인다고!

    이렇게 예쁜 애가 나 좋다고 달라붙는데 내가 그걸 왜 싫어해?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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